024: 부산의 페미니스트들, 부산대 여성주의 실천 동아리 〈여명〉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24: 부산의 페미니스트들,  부산대 여성주의 실천 동아리<여명>

 

부산대 여성주의 실천 동아리 <여명> 부산에서 강남역 사건 추모하는 활동으로 결성된 여성주의 모임이다.

<여명>은 부산대에서 몰래카메라 탐지 사업을 벌이고, 2018년 부산대학교 성평등 네트워크 제3차 심포지엄 시대를 넘어, 페미니스트를 만나다에 참여해 현 시대에 부산대 여성주의 운동을 소개하기도 했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변서현, 한솔은 회로, 인터뷰이 부산대 여성주의 실천 동아리 <여명>의 보경, 재윤, 해인 님은 보경’, ‘재윤’, ‘해인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우연,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 (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인터뷰이 재윤은 개인 사정으로 본 인터뷰에는 참여하지 못 하고, 재윤의 응답은 보경과 해인의 인터뷰에 서면으로 보충하는 식으로 받았음을 밝혀둔다.)

 

<여명>을 알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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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각각 보경과 해인. 사진: 페미회로

회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해인: <여명> 운영위원 해인입니다. 부산대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하고 있고, 교육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또 과에서 영화, 책 등을 다루는 비평 동아리의 장을 맡고 있어고 있어요. 전에는 동아리에서 주로 교육 관련 작품을 다뤘는데, 이제는 여성 영화나 여성주의와 퀴어리즘을 다루는 작품을 많이 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올해 장을 맡으면서 분위기가 좀 바뀌고 있어요.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 장이 되는 바람에요. 매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오픈 비평 행사를 하는데, 이 행사에서 퀴어 소설이나 여성주의 영화로 이야기 나누려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보경: 저는 19학번 휴학생 불어불문학과 소심한 <여명> 회장 전보경이에요. 순수 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재윤: 2017년 3월 <여명>을 만들었고, 현재는 <여명> 활동을 쉬고있는 국어국문학과 14학번 김재윤입니다.

 

회로: 인터뷰에 응한 동기를 소개해주세요.

해인: 사실 인터뷰에 응한 아주 큰 동기는 없어요. 저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요. 사실은 페미니즘 판에서 제가 활동하는 게 맞는지도 모를 만큼 엄청 열성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을 많이 뵈었어요. 그분들은 정말 많은 것을 걸고 포기하고 활동하시는데, 저는 그렇지는 않거든요. 저는 사범대에서 교사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고, 조그마한 동아리에서 운영위원을 맡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지만 내가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다는 무언가를 하고 있으니까 거기에 의미를 두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하자’고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했어요.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보경: 저는 솔직히 말하면, <페미회로>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인터뷰 대상자가 3명 정도 되면 좋겠다고 하셔서 인터뷰에 응했어요. ‘내가 아니면 누가 해’라는 생각에서요. 해인님처럼 신념이 있는 건 아니에요.

재윤: 다른 페미니스트에게 힘이 될 수 있는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참여하고 말하고 싶어요. 제 경험을 나누고 싶고, 페미니스트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가 말하기 시작하면 조금씩 바뀐다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회로: <여명>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보경: 재윤님과 예전 <여명> 회장님이 〈여명〉의 불법촬영감지 활동 후 한 인터뷰를 봤어요. 제가 부산대에 입학하기로 결정한 뒤에 본 인터뷰라, ‘나는 여기에 뼈를 묻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회로: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고등학교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보경: 네. 제가 중고등학교 때 굉장히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남자친구랑 사귄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도 많이 당했어요. ‘나중에 만약 결혼한다면 여성이 집안일은 물론이고 일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에 맞춰 ‘개념녀’가 되기 위해 굉장히 애썼어요. 처음엔 그래도 남자가 집안일을 ‘도와’줘야하지 않냐는 약간만 빻은(잘못된) 생각을 했었는데, 그 상대와 연애하다보니 나중엔 여성이 집안일을 하는 게 어쩔 수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그리고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어요. 그때 저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아니라 묻지마 살인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가부장적인 남자친구와 사회의 영향 때문에 그런 빻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던 제게, 친구들이 “너도 이제 페미 할 때 안됐냐?”라고 물으며 제게 페미니즘 영업했어요.

그때마저도 저는 ‘여성이 여성을 어떻게 혐오해’라는 둥 빻은 말 대잔치를 했었어요. 친구들이 많이 답답해 하면서도 정말 고맙게도 잘 알려줬어요. 도대체 페미니즘이 뭐길래 쟤들이 저러나 싶어서 책도 찾아보고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물어보곤 했어요. 그렇게 페미니즘에 눈뜨고, 고3 때는 페미니스트라고 광고하고 다녔어요. 제가 부산대에 입학하기로 결정하고는, 친구들이 부산대에 <여명>이 있다고 영상을 보내줬어요. 이미 주변에 메갈들이 많았죠(웃음).

해인: 저는 재수하던 스무 살 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어요. 재수 공부하느라 오가는 지하철에서 할 일이 없으니까, 여성 미디어 ‘핀치’랑 오마이뉴스 칼럼을 많이 읽었어요. 그러면서 한두 달이 지나고, 강남역 사건이 터졌어요. 그때부터 마음 먹고 책을 조금씩 읽었어요.

입학하고 <여명> 포스터를 보고 가입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큰 계기는 제1회 부산퀴어문화축제에요. 거기서 <여명> 깃발이 흔들리는 걸 봤어요. 그래서 ‘내가 저 동아리에 들어가면 깃발을 흔드는 실천을 할 수 있겠구나.’고 느꼈어요.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에서는 내가 두발로 뛸 수 있는 곳이구나.’고 생각해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 정신적 학대의 일종으로,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해 자신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 (출처: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828307.html)

 

회로: 회원들은 주로 포스터를 보고 <여명?에 가입하나요?

해인: 가입 경로는 엄청 다양해요. 포스터 보고 오는 사람, 지인 추천, 트위터 보고 오는 사람… 원래 활동했던 사람이 다시 오기도 하고. 저희 동아리가 학교에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어요. 악명이 높다고 할까. 저희 동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다들 원래부터 <여명>을 알고는 있다가, 고민하다 들어오는 것 같아요.

 

회로: 핀치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사람들에게 유명한 매체는 아닌데, 주변에서 누군가 권했나요?

해인: 누가 권해준 건 아니에요. 제가 트위터에 일기를 썼는데, 페미니즘 말고도 사회이슈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와 관심이 비슷한 계정들을 팔로우하니 자연스럽게 핀치 글이 타임라인에 보이더라고요. 그때 좋은 정보, 칼럼, 매체를 많이 알았어요.

 

회로: 핀치에서 어떤 글을 가장 인상 깊게 읽었나요?

해인: 성매매 여성이 직접 쓴 글(*)이요. 본인이 ‘창녀’라고 불리는 길을 걷기 시작한 이유와 성매매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비판, 사회적으로 규정하는 ‘창녀’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이야기했어요. 일단 그분이 자신이 성노동을 하게 된 계기를 이야기했었는데, 아버지가 항상 ‘너 그렇게 살면 창녀 밖에 안된다.’고 이야기했대요.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창녀’는 여성이 몰락할 수 있는 최저점으로 인식되잖아요. 그래서 글쓴이는 자기가 최저점으로 굴러 떨어지길 원해서, ‘창녀’ 일을 시작했대요. 그 여성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가출청소년이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아예 없던 사람이 아니라, 본인 신변을 보호할 수 있는 고학력 여성이었어요. 그런데도 ‘창녀’가 되기를 선택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성매매를 직업으로 삼아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상세한 내용이 많았어요. 그 때 처음으로 성노동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요즘은 성노동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때는 그렇지 않아서 더 충격적이었어요.

(*) 이로아, 『창녀됨의 기록』(https://thepin.ch/think/m5fu/being-a-sex-worker-1)

 

회로: 페미니즘을 만나고 삶에서 어떤 부분이 바뀌었나요?

보경: 일단 미디어를 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죠. ‘저거 좀 빻지 않았나?’고 생각하고, 불편해지는 게 많아졌어요. 그리고 제 생각이나 말을 자꾸 스스로 검열해요. 그래서 활동하면서도 좀 겁나는 게 생겼어요. 내가 빻은 말을 했을 때 뭔가 사람들에게 지탄받지 않을까. 단어에 성별이 있는 불어로 쓰인 문학을 공부하니, (해인: 교수 등 지위를 나타내는 단어는 여성형이 아예 없어요.) 남성형 인칭대명사가 항상 먼저 나오는 게 눈에 거슬려요. ‘신사숙녀 여러분‘처럼요. 거의 모든 일상에서 ‘이거 페미니즘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모퉁이극장이라는 독립영화관에서 『멋진 인생』이라는 흑백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저는 그 영화를 보고 굉장히 행복하기만 했는데, 한 친구는 불편했다고 하더라고요. 주인공 부부 중 남편이 부인을 때렸는데 부인이 저항하지 못하고 맞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또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여자 주인공 대사에는 존댓말로, 남자 주인공 대사에는 반말로 자막이 달려있었고요. 너무 신기했죠. 이런 시각도 있구나 하면서요.

친구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서 제가 페미니즘을 영업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싫어해요. 자기는 그것을 잘 모르는데 자꾸 제 이야기만 강요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그 친구들에게는 영업을 못해요. 그러면서 이제 메갈인 친구끼리 친해지고, 누가 메갈인 것 같으면 친해지고 싶어요.

 

회로: 해인 님은 어땠나요?

해인: 저는 제 전공에 많은 회의를 느꼈어요. 제 전공이 교육인데, 교사양성과정에서 성평등 교육이 필수가 아니에요. 젠더 교육이 들어가지 않은 교사 양성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교사양성과정 자체가 엄청나게 잘못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교수들도 남교수가 대부분이고, 양성과정에서 배우는 내용도 이상해요.

‘남녀 화법’이라고 의사소통에서 남성과 여성이 아예 다르다고 배워요. 예를 들면, ‘여성은 톤이 높고 의성어와 의태어를 많이 사용하고 부드러운 어조이며 멀티태스킹을 더 잘 하는 반면, 남성은 사투리를 더 많이 강조하는 경향이 있으며 여성에 비해 공감을 잘 못한다’와 같은 내용을 배워요. 또 그 화법에는 남성과 여성밖에 없어요. 그걸 공부하고 시험 봐요. 그걸 심지어 여러 수업에서 배우고요.

문학에서의 남성적/여성적 어조도 아직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나와요. 제가 그저께 학원 알바로 이 내용도 수업해서 기억해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예로 들면, ‘김소월이 여성적 어조를 빌려서 표현했다. 왜냐하면 한이라는 정서는 여성으로서 더 잘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요. 저도 어쩔 수 없이 교육과정대로 가르치느라 좀 많이 힘드네요.

보경: 저도 경험했던 건데, ‘「나그네와 나룻배」에서 기다리는 쪽은 여성일까, 남성일까?‘ 라고 물어봐요. ‘요즘은 남자가 기다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남성적 어조요!’라고 이야기하면 혼나요. ‘여성적 어조이지 않을까?’고 하는 분도 있고, ‘이건 여성적 어조야.’고 이야기하는 분도 계시고.

 

회로: 해인 님은 중고등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 중고등학생들은 분위기가 어떤가요?

해인: 저는 알바도 학원에서나 과외로 해요. 학원에선, 제가 정식이 아닌 보조 강사니까 애들이 제 말을 잘 안 들어요. 중고등학생들이 엄청난 혐오 발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쏟아내거든요. ‘게이 새끼야’, ‘정신병자야’ 등등. 그럼 제가 하지 말라고 화내는데, 안 들어요. 제가 교사도 아니니까.

보경: 이것도 남학생과 여학생이 엄청 많이 달라요. 여학생은 그런 말을 잘 쓰지도 않고, 제가 말하면 알아들어요. 그런데 남학생은, 제가 ‘여성적 어조 이런 거 요즘도 학교에서 가르쳐? 요즘에 이런 거 사회적으로 말 많잖아.’라고 말하면 ‘그래요?’라고 답해요. 페미니즘 리부트가 된지 몇 년이 되었는데, 걔네는 페미니즘이 뭔지도 몰라요.

학교 종류마다 차이가 커요. 여고 학생과 남고 학생이 달라요. 그래서 가끔 엄청난 좌절하곤 해요. 남녀공학에서는,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에 관심이 있어 여학생들 눈치를 봐서 그러는지, 남학생들도 자제하려는 것 같고요.

 

<여명>이 밝다

 

회로: <여명> 결성 과정을 소개해주세요.

재윤: 2016년 3월부터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저와 친구 두세 명이 함께 책모임을 만들고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그때 모두가 자신의 삶에서 여성혐오가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체감했죠. 추모 활동을 진행하던 중,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말 그대로 ‘깽판’을 쳤어요. 그 때는 공식적인 활동을 할 엄두가 안 났죠. 겨우 두세 명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같이 책모임을 하던 친구들과 동아리를 만들자고 결심했어요.

‘여명’이란 이름은 여성들의 혁명의 줄임말이고, 부산대 여성주의의 어두운 밤에 새벽을 열자는 뜻이기도 해요.

해인: 17년에는 중앙동아리에 등록했어요. 결성을 먼저 했는데 중앙동아리 등록이 거절당했어요. 16년 5월부터 두세 명이 활동을 하다가, 너무 심리적, 신체적 위협을 느껴서 함께할 사람을 모아서 동아리를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두세 명이 포스트잇을 붙일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기에는 리스크가 엄청나잖아요. 그해에 활동을 하다가 공간 마련을 위해서 동아리 신청서를 냈는데 거절당했어요.

그 이유가 ‘남자 회원이 없어서, 성비가 불균등하다’였어요. 그래서 항의서를 냈어요. 젠더 개념 등을 설명하면서요. 동아리연합회 회칙에 성비 관련 규정이 없고, 미식축구 동아리도 성비가 안 맞고, 여자축구부도 있는데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냐고 주장해 2017년에 허가가 났어요.

 

회로: (서현)가 활동하는 <포스텍 페미니즘>은 동아리연합회나 총학생회의 통제를 받는 것이 싫어서 등록을 안했어요. 그리고 대학원생은 등록 인원에 포함이 안되는데 저희는 대학원생이 더 많고 학부생이 적다 보니 일부러 등록하지 않았어요. 혹시 등록을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등록에 리스크가 있을 수 있고, 통제받아야 하기도 하고요. 물론 등록하지 않는 데에도 단점도 있죠.

재윤: 학교의 공식 동아리가 된다는 게 굉장히 상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부산대 페미니즘, 아직 안 죽었다! 너네들 이제 눈치 좀 봐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고요. 사실 등록한 가장 큰 이유는 동아리방이에요. 페미니스트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안전한 공간이 굉장히 절실했거든요.

해인: 제가 듣기로, 다음 이유는 중앙동아리라는 지위가 있어야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어요. 중앙동아리라는 지위가 엄청난 권력이에요. 저희가 중앙동아리 자격을 가져야, 신입회원 모집 포스터, 행사 플랜카드 등 오프라인 홍보를 할 수 있어요. 게시물에는 학교 도장이 필요한데, 중앙동아리연합회 통해 쉽게 도장을 받을 수 있거든요. 그리고 <여명>이 중앙동아리기 때문에 밖에서 태클이 덜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보경: 이번 학기에도 어떤 안티페미가 저희를 중앙동아리에서 끌어내리고 징계를 내리라고 엄청 요구했어요. 그 사람은 <여명>의 어떤 표현이 혐오표현이라면서 ‘<여명>을 중앙동아리에서 끌어내려라, 동아리연합회칙이 잘못되었다’고 말했고, 동아리연합회에서 입장문을 밝혀 앞에 나섰어요. 그래서 보호받는다고, 바리케이트가 하나 생겼다고 느꼈어요.

해인: ‘<여명>이 왜 중앙 동아리냐’는 항의가 매년 들어와요. ‘페미니즘을 다루는 동아리는 중앙동아리가 될 수 없다’, ‘중앙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아요. 그러기에 더더욱 ‘우리는 중앙동아리로 존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는 학부생 비율이 훨씬 높기도 하구요. 대학원생은 한두 명 정도?

 

회로: 회원들간에 관심사가 다르지는 않나요? 사회 이슈 등등.

보경: 동물권에 관심 있는 분도 계시고, 그래서 비건인 분도 계시고.

해인: 개인적인 관심사는 방학에 많이 보여주는 편이에요. 동아리가 회원 참여가 엄청나게 활발한 편이 아니라서, 학기 시작할 때 커리큘럼을 짠 대로 진행해요. 학내 이슈가 끊임없이 생겨, 대응하기도 바빠서요.

때에 맞는 활동을 기획하려고 노력해요. 퀴어문화축제가 있는 달에는 퀴어리즘을 끌어오고, 무슨무슨 가시화의 날이 있는 달에는 그 주제를 다루고요. 매 학기 첫 달에는 회원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행사를 많이 진행해요. 저희는 학기 별로 목표를 새로 세워서 다양하게 하려고 노력해요.

보경: 회원들의 의견을 많이 받으려고 회원 총회를 하기도 해요. 방학 때 두 번 회원들 모아서 저번 학기엔 어땠는지, 다음학기에는 무슨 책을 했으면 좋겠는지 정해요. 민주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회로: 총회에서는 어떤 의견이 많이 나오나요?

해인: 친목하자는 의견이 많이 나왔어요. 우리 <여명> 회원들이 좀더 가깝고 친밀해져서 모임이 좀더 즐거워지면 다 많이 참여하리란 생각에, 친목을 다지고 더 전문적인 일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보경: 그래서 마니또도 기획했어요.

해인: 이번에 엠티도 기획하고, 소품도 기획했는데, 힘드네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소풍을 기획하면 소풍을 안 오고! 엠티를 기획하면 엠티를 안와요…

보경: 오는 사람이 정해져 있어요. 이미 친한 사람들.

 

회로: 주로 어떤 강연과 책을 읽나요?

보경: 권김현영 선생님의 부산 ‘OO소사이어티’ 강연을 같이 듣고 왔어요.

해인: 부산에는 강연이 아주 많지는 않아요. 저희가 참여하기 가장 좋은 강연은, 부산대학교 안에서 진행되는 여성주의학회에요. 부산대 여성연구소장 교수님이 학기마다 심포지움도 열어주시고요.

보경: 책은 회원 총회에서 정해 읽어요. 회원 총회에서 읽고 싶은 책 목록이 나오면, 운영위원회에서 분량, 난이도, 편파성을 기준으로 판단해 일부만 후보로 내 투표로 정해요. 지금은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를 읽고 있어요. 전에는 한 학기 두 권도 읽었다는데, 지금은 한 권으로 줄였어요.

해인: 읽는 분량을 줄여서, 회원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좋아해요. 지금은 한 학기에 책 한 권, 영상 한 편 보고 있어요.

 

회로: 학기마다 목표를 새로 잡는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번 학기에는 어떤 목표를 잡았나요?

해인: 작년 말, 우리가 너무 소진되고 있다고 느꼈어요. 우리가 계획대로 못 했다고 해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저번 학기 목표를 완료를 못했는데, 너무 낙심하지 말고 이번 학기에 이어서 하기로 했어요. 그 내용이 여성건강권이에요. 생리공결제 도입나 생리대 자판기 설치가 예시겠네요. 그리고 좀 있으면 총학생회 선거를 해요. 선거운동본부에 질의서를 보내기로 했고, 서명운동을 해서 300명 정도 서명 받는 거를 목표로 설문지 작업 등을 진행하고 있어요.

 

회로: 그 동안은 부산대에서는 생리공결제나 생리대자판기 이슈는 제기되지 않았나요?

해인: 지금까지도 언급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설문조사, 부스 등 여러 시도로 이슈를 만들려 해요. 우리 학교에 생리공결제 등 여성건강권 관련 제도 현황을 잘 아는지, 여성건강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설문을 진행했어요. 부스에서 역시 많은 사람이 설문조사에 응하도록 독려코자 게임과 상품 등을 활용해서 이목을 끌었어요.

 

회로: 회원 간 이견이나 갈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해인: 저희들은 약간, 이견이 생겨도 말로 풀려 해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니, 이견이 있다는 걸 생각하고 들어오시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도 제가 누구와 갈등을 빚었는데, 그냥 얘기할 수 있는데 까지만 얘기하고 다음 번에 다시 이야기하자, 사과를 주고 받고, 자기 생각이 바뀔 수 있다고 인정하는 당연한 과정을 거쳤어요. 사실은 지금 4년차까지 그렇게까지 이견이 있었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애당초 활동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익숙한 사람끼리 활동하다 보면 의견 합일이 잘 되기 때문에요. 이게 장점인 것 같진 않아요. 치고 박고 싸우지는 않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나와야 좋을 텐데.

<여명>이 운이 좋았죠. 다른 단체에서는 행사 중 일이 크게 있었던 적도 있고요. 회원 몇 분이 싸움을 하시다가 일방적으로 할 말만 하고 단톡방을 나가신 적도 있고. 저희 동아리는 아직은 그런 일은 없어서 드릴 말씀이 많지는 않네요. <여명>에서는, 새 회원이 가입할 때마다 모든 혐오를, 소수자혐오를 지양한다는 회칙을 설명하기 때문에 더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부산과 부산대 속 <여명>

 

회로: 외부 단체를 찾아 가기도 하나요? 부산여성회라든가.

해인: 외부 단체에서 많이 지원받지는 않아요. 지금은 사라진 부산대 총여학생회 출신 졸업생분들과 연락하기는 해요. 그분들 중 몇 분은 부산대 여성주의 단체 활동 내력을 모으기도 하고요. 아니면 교수님들이 연대해주세요. 바깥 단체에서 많은 도움을 받지는 않는 것 같아요.

 

회로: 지자체나 진흥원에서 시민 단체에 재정 지원 사업을 벌이기도 하는데요, 알아보신 적이 있나요?

해인: 한두 번 해봤는데, 모두 떨어졌어요. 부산, 경남이라 그런가봐요. 물론 떨어진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죠. 그런데, 저희 생각에는 여성 모임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청년 사업은 많이 봤는데, 여성 사업은 못 봤어요.

보경: 부산외국어대학교 여성주의 동아리 <여세>가 부산 지역 여성주의 모임 지도를 만들겠다고 인터뷰를 왔어요. 거기는 지원을 받아 지도를 만드는 것 같았어요.

해인: <여세>는 청년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고 기억해요. 사업 지원을 받는 데에 주제로는 타협하고 싶지 않아요.

 

회로: 그럼 회원들에게 걷은 회비로만 행사를 진행하나요?

해인: 네, 회비 안에서만 행사를 하고 있어요. 교내 동아리라 교내에서 하면 돈이 크게 들지도 않고, 동아리방에서 행사를 진행할 수도 있고요. 동아리방이 있어서 매주 정기 집회(*)에도 장소 값이 안 나가죠.

보경: 동아리방에서 신입생 OT도 진행했어요. 무료로 대관할 수 있는 부산콘텐츠 코리아랩도 있고, 강의실을 이용하기도 하고요.

(*) 동아리 정기 모임. 부산대에서는 정기 집회라고 부른다.

 

회로: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장단점을 소개해주세요.

해인: 정말 말할 장점이 없네요. 부산의 특징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에요. 서울만 가도 의식이 많이 깨어 있죠. 반면 부산에서는, 이번 부산퀴어문화축제도 장소 문제로 취소되었고요. 그래서 항상 이 도시 전체가 여성과 퀴어를 온몸으로 거부한다고 느껴요. 원래는 이 도시에 별 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에 퀴어문화축제가 취소되는 상황을 보고, 이 도시가 내 존재를 거부한다고 크게 느꼈어요.

 

회로: 캠페미 네트워크를 소개해주세요. 캠페미 네트워크가 다른 단체와 교류할 때도 도움이 되나요? 캠페미 네트워크 활동을 보며 자극을 받기도 하나요?

해인: 캠페미 네트워크에는 부산 지역 대학 여성주의 모임이 소속된 단체에요. <여명>도 소속되어 있고요. 교류에 도움이 되죠. 작년에 캠페미 네트워크가 끝장집회라는 집회를 꾸준히 열었는데, 정당 등 여러 단체에서 같이 연대해주었죠.

재윤: 캠페미네트워크는 부산이라는 공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페미니스트가 연대해 더 큰 활동을 벌여보자, 싶어서 결성하게 된 연합체에요. 현재 동아대학교 <더치페미>, 신라대학교 <링크>, 부경대학교 <페미실린>, 부산외국어대학교 <여세>, 부산대학교 <여명> 및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 참여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무래도 서로 고민들이 비슷하니까 서로 조언을 나누기도 하고, 다른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때면 자극도 많이 받죠. 서로의 행사에 서로가 꼭 가고 서로 만나는 경험들이 굉장히 힘이 많이 되고 응원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회로: 학교에서 사건이 벌어지면 주로 어디를 많이 찾아가세요?

해인: 일단은 교내 인권센터에 많이 찾아가요. 인권센터가 잘 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어요. 저희가 인권센터를 많이 규탄하기도 했죠. 그래도 인권센터에서 저희랑 연대를 많이 해주세요. 저희는 일개 동아리이기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 일을 하려면 인권센터를 거치지 않고서는 안되는 것 같아요.

 

회로: <여명>에서 연 행사들 소개해 주시겠어요?

해인: 제일 최근에 연 행사가 ‘페미니즘 무비 나잇’입니다. 「더페이버릿」이라는 영화를 상영했어요. 곧 ‘페미톡’이라는 페미니즘 잡담회를 열 거에요. <여명> 단독으로 주최하는 행사는 이렇게 두 개예요. 비정기적으로는, 그때그때 이슈에 맞춰서 정문에서 피켓시위를 하기도 하고 교내 집회를 하기도 하고 대자보를 쓰기도 해요.

보경: 이 두 개가 대중사업인데, 대중사업은 중앙동아리 자격에 따르는 의무에요.

해인: 제가 이 활동 때 <여명>에 있지는 않았지만 몰카 탐지 사업이 <여명>의 가장 큰 활동이라고 들었어요. 이 활동으로 <여명>의 ‘악명’이 생겼죠. 활동 뒤에 악플러와 관심, 그리고 응원도 많아졌어요. 그래도 화장실마다 비명감지기가 설치되었어요.

재윤: 부산대 화장실 몰카 탐지 사업하던 때를 다시 생각하니, 정말 그걸 어떻게 했나 싶네요. 2017년 8월 쯤에 여자화장실 내 불법촬영 문제가 이슈가 되었죠. 그러면서 동아리원들이 학교에도 있지 않을까 두렵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리고 학교 대나무숲에도 이 이야기가 나왔고요. 그래서 정말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한번 직접 탐지 활동을 해보자고 계획했어요. 탐지기를 금정경찰서에서 빌렸는데, 굉장히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금정경찰서에서는 ‘탐지기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으니 빌려주지 않겠다’는 게 첫 대답이었거든요. 그래서 부산여성회 선배에게 연락해서 공문서를 경찰에 보내 압박했죠.

그러니까 ‘경찰을 대동하면 빌려주겠다’고 태도가 바뀌었어요. 탐지기를 빌려서 학내 화장실을 돌았는데, 그 경찰분이 ‘어차피 학교에는 안 나올거다. 학교엔 휴대폰으로 찍는 사람이 더 많다’면서 ‘나오지도 않을텐데 왜 고생을 하냐’고 계속 면박 줬어요. 그래서 저희는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고, 이 공포에 응답하는 사람이 누구 한 명은 있어야 한다. 그게 경찰의 임무다.’라고 맞받아치면서 서로 계속 으르렁거리면서 탐지활동을 했어요. 어떤 회원분은 ‘우리가 피해자일지도 모르는데, 잠재적 피해자가 이렇게 화장실을 탐지한다는 게 너무 화나고 슬프다’고도 하셨어요.

탐지를 마친 화장실에는 혹시 또 다른 구멍이 생기고 불안할 수 있으니 구멍을 막을 수 있도록 스티커를 배부하고, 탐지를 마친 화장실이라는 걸 알리는 종이를 붙였어요. 이 활동으로 많은 여학우들이 <여명>을 알고 감사도 표현하셨어요. 물론 어떤 분들은 ‘남자화장실은 왜 탐지 안하냐’셨지만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남자화장실을 들어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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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의 행사가 적힌 캘린더. 사진 촬영: 페미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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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이 지금까지 해온 행사의 포스터들. 사진 촬영: 페미회로

 

회로: 페미니즘 무비나잇이나 페미톡에 참여하는 비회원들과도 많이 대화하나요?

해인: 외부에서 많이 오지는 않아요. 포스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에브리타임 등 많은 방면으로 홍보했는데도요. 홍보에 어려움이 많아요. 우선 돈이 부족하고 포스터를 붙여도 잘 안 보고요. 온라인으로 그렇게 많이 홍보한 뒤에, 꼭대기에서 정문까지 다 붙였어요. 그런데 하루 지나니 포스터는 뜯기고, 에브리타임 게시물은 신고를 많이 받았는지 내려갔어요. 한편으로는 이런 모습 때문에 행사에 신청하기 꺼리는 것 같기도 해요.

수도권과 분위기가 달라요. 참여를 꺼리는 것과는 별개로 이 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여학우, 남학우 구분 없이요. 외부 인원이 적은 점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회로: 포스텍도 비슷한 상황이에요. 회원 모집 포스터가 뜯긴 적이 있고, 페미니즘이 드러나는 행사에서는 확실히 외부인이 적게 와요. 반면에 페미니즘을 드러내지 않은 채 기록을 위해 진행하는 여성 경험, 커리어, 연애를 주제로 한 강연과 세미나에는 많이 와요. 인터뷰 시작 전에, 대학에서 심각한 여성 문제로 여성들의 롤모델이 없다는 점을 꼽아주셨어요.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해인: 복학생들의 연대가 있겠죠. 부산대 국어교육과에는 교육청에서 일이 많이 들어와요. 교육청에서 들어오는 일거리는 편하고 안전할텐데, 여학생들은 교육청에서 일거리가 온다는 사실을 전혀 몰라요. 저는 과CC를 하고 있었어서 알게 되었어요. 조교가 복학생 중 한 명을 소위 대표로 정해서, 일이 들어올 때마다 대표에게 전달하고, 대표는 일에 참여할 다른 복학생들을 알아보는 식으로 참여자를 모아요. 복학생이 모두 안 되면 미필들에게 물어보고요.

조교가 정한다는 그 대표는 학생 전체 대표가 아니라 군필자들의 대표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학과 사무실에서는 남학생들에게 ppt 만들기같은 무급 노동을 시켜요. 남학생들은 학과 사무실에 화내기보다는 여자애들을 원망하고 ‘너희는 과사 일도 안 하니까 우리가 교육청 일을 가져가는 건 당연하다’는 식으로 말해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어교육과에는 여자가 훨씬 많고 남학생은 소수였어요. 그래서 국어교육과남자모임이 있었어요. 매 학번 신고식을 치렀고 다음에 여학우들 얼평해서 1등부터 꼴등까지 줄을 세우는 게 전통이었대요. 제 학번부터 사라졌대요.

보경: 동아리 전체 회의나, 분과 회의에 나가면 전부 남학생이에요.

 

회로: 정말 남성 커뮤니티가 만들어져있군요.

해인: 맞아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깨졌어요. 그래도 지금은 지금 조교가 여자고, 생각 있는 페미니스트 남학생이 대표가 되어 많이 달라졌어요. 이 남학생이 다른 남학생에게 대표 자리 넘길 때에도 카르텔이 끊기도록 잘 넘기길 기대해요.

 

회로: 아까 여성심포지움이 매학기 열린다고 하셨는데요, 여성심포지움에 여러 번 참여하셨나요?

해인: 네, <여명> 회원이 발제자로 참여하지 않아도 <여명>에서 매번 들으러가요.

재윤: 부산대 사회학과 김영 교수님의 제안으로 부산대학교 성평등 네트워크 심포지움에 참여해 발제했습니다. 당시 심포지엄 주제가 ‘페미니스트, 만나다’였는데 80년대부터 여학생운동을 하셨던 선배들과 현재 학내의 페미니스트가 만나는 자리였죠. 그래서 저는 <여명>의 활동에 대해서, 부산대학교와 부산의 페미니즘 활동들을 소개했어요.

 

회로: 교수님 도움을 어떻게 받나요?

해인: 행사 기획, 장소 대관에 도움을 주세요. 학생도 강의실을 빌릴 수는 있지만, 조건이 까다롭고 학과마다 대관 기준이 다 달라요. 그런데 교수님이 과사에 한 마디하면 간단히 빌릴 수 있죠. 사회대 여성교수님들이 모두 여성연구소 소속이라서 행사를 많이 기획해주세요. 영화 상영회를 2번 했는데, 그 행사도 앞장서서 기획해주셨고, 저희 행사에도 많이 참여해주세요. 작년 회장님, 재윤님은 교수님들과 가깝게 지내요.

보경: 학생이 직접 빌릴 때도, 뭔가 잘못되면 우리 탓이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빌려줘요.

재윤: 여성학에 관심이 있는 교수님들께 ‘<여명>에서 활동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더니 굉장히 저를 반겨주시더라구요. 교류라기보단 예쁨받았죠. 해인씨가 말씀하신 것처럼 강의실을 대여하거나, 행사를 기획할 때 원고를 봐주시기도 하세요.

 

회로: 교수나 전에 부산대에 활동하던 졸업생 등 선배 활동가들에게 언제 지지받는다고 느끼시나요?

해인: 항상 느껴요. 아까 말했듯이, 작년말부터 <여명> 회원들이 소진되지 않는 방향으로 바꾼 것도 그 분들의 ‘망해도 괜찮아’, ‘할 수 있는만큼만 해도 괜찮아’라는 말을 들은 뒤였어요.

재윤: 선배들이 저희를 처음 만났을 때 저희가 하는 활동들을 항상 다 지켜보고 계셨다고 하셨어요. 그 뒤로 항상 뭘 할 때마다 따스한 눈빛을 받는 느낌이 들고 허리가 저절로 쫙 펴지더라구요.

 

회로: 부산대에서 있었던 젠더 이슈 중 하나를 꼽아, 부산대 안팎의 여러 여성주의 단체가 어떻게 호응해주었는지 소개해주세요.

해인: 가장 큰 이슈는 미투를 꼽아야겠죠. 부산대 안에서는 교수님과 저희가, 포스트잇 액선, 피켓 시위, 자보 등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어요. 부산대의 인권센터, 다른 여성주의 단위와도 서로 연대했고요. 사건이 워낙 컸던지라 인터뷰 요청도 많이 왔어요.

 

회로: 사회학과 여성주의 모임 <보스>, 부산대 여성주의 대모임 <해쳐>와는 어떻게 교류하고 계시나요?

보경: 같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해요. ‘Not My PNU’라는 연합세미나도 같이 했어요.

해인: 세미나 주제가 통일되지는 않았고, 각 단체에서 여러 주제로 준비했어요. <여명>에서는 미투를 주제로 준비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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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My PNU’ 행사 포스터. 이미지 제공: 여명

 

회로: 학교에서 페미니즘에 대표성을 부여받은 듯한 시선을 받기도 하나요? 그럴 때는 어떤 생각을 하나요? 주변에서 넌 페미니스트니까, 이것에 너의 의견을 말해봐라는 식의 말을 듣는 사람도 많이 봤어요.

해인: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렇게 <여명>을 찾아요. ‘이런 사건이 있는데, <여명> 뭐 하냐’는 식으로요. 개인적으로는 본인들이 직접 행동하라고 대응하곤 했는데, 이젠 일일이 대응하지 않아요. 답하지 않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여명>이 뭔가 행동한 사건에도 <여명> 뭐하냐고 하기도 하고요.

 

회로: 포스텍과 카이스트에는 페미니즘 모임이 하나뿐이고 학교가 작아서, 낙인찍힐까 두려워하는 회원이 많아요.

해인: <여명>에도 그런 회원이 많아요. 아직 활동을 숨기는 분도 있고요. 저는 안 느끼더라도 회원들은 느낀다고 해요.

재윤: 사실,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내세우는 게 쉽지 않죠.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드러냈을 때 어떻게 변하는지 눈으로 지켜보는 건 꽤나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이 술자리에서 ‘게이샷’, ‘레즈샷’을 외치니까 그 옆에 계시는 분이 ‘지금 <여명> 회장님 계시는데 뭐하는 짓이냐!’며 면박을 주며 말리시더라구요. 진짜 웃겼어요. 저 한 명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술자리의 분위기가 변한다는 게.

해인: 저도 학과 대표이기 때문에 주변에서 많이 조심해요. 저는 페미니스트 티를 팍팍 내거든요. 그것도 제가 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해서요. 적어도 제 존재를 기억하죠. 저는 제 대표성을 활용하고자 해요.

 

회로: 대학교에서 인권이 의제로 떠오르지 않는 현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해인: 세상이 변해간다는 사실은 저희 세대 안에서는 잘 못 느껴요. 저희와는 다른 학생이 워낙 많으니까요. 제가 아까도 말했 듯, 저는 고등학생들 접할 기회가 많잖아요. 고등학교는 분위기가 달라요. 저 고3 때와 지금이 겨우 몇 년 차이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고 느낄 수 있어요. 대학교에서는 여학우들끼리 있어도 실망할 일뿐이에요. 제 영역 안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많이 실망하고 제 활동에 많은 회의가 들어요. 그럴 때마다 저보다 어린 세대를 보면서, 세상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고 위안 삼아요. 어린 세대를 보며, 제가 교단에 서서 더 많은 것을 바꾸겠다고 다짐해요. 그래도 비율로는, 저희 과에는 저희 같은 사람이 학교 전체보다 많아요. 교육과기때문인지 여학생이 더 많고, 페미니즘 담론에 관심있는 여학우도 많고, 응원을 보내주는 여학우도 있어요. 16학번에서 19학번 학생들이 교단에 설 때 교사들이 많이 바뀌리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때는 전체 대학생 중 30%는 페미니스트가 아닐까요?

 

회로: 인터뷰가 거의 막바지네요. 어떤 때 <여명>에서 활동하기 잘 했다고 생각이 드나요?

해인: 활동하는 모든 순간에요. 제가 지금은 쉬고 있지만, 운영위원으로 꾸준히 참여해왔어요. 그러면 행사에 많이 참여하게 돼요. 참여할 때마다, ‘내 목표대로, 계획한대로, 내가 할 수 있는만큼 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죠. 사소한 활동이라도 참여할 때마다 가입하길 잘 했다고 느껴요.

제가 외모 강박이 심했어요. 아는 사람 만날 것 같으면 도망가고, 엘리베이터도 못 탔어요. 엘리베이터에 거울이 너무 많은데, 제가 제 얼굴을 못 쳐다봐서요. 그런데 <여명>에 가입하고, 외모 강박이 사라졌어요. 저는 탈코르셋 운동(*)이, 자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예시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명> 회원들이 생얼로 잘 다니는 걸 보고, ‘나도 저렇게 해도 되겠다. 나도 저 사람들과 같은 무리잖아’라고 생각했죠. 지금은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보경: 고민을 나눌 공간이 생겼고,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생각 맞는 사람도 많이 만났고요.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가입했는데, 실제로 뼈를 묻게 생겼네요. 솔직히 활동이 힘들어요. 인력도 부족하고, 소수 운영위원이 대부분의 일을 처리해야해서요. 지금처럼 인터뷰같은 행사가 생겨 받아 회원들에게 알려도, 대부분 운영위원만 참여하고요.

(*) 탈코르셋 운동. 가부장제가 강요한 ‘여성적 취향’을 코르셋에 비유하고, 코르셋을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운동.

 

회로: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해인: 인터뷰 요청 감사합니다. 말을 많이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보경: 이 인터뷰를 보는 분들은, ‘쟤도 하니까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활동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활동할 수 있어요.

재윤: 페미니스트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어요. 용기 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용기낼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아요. 당신이 제일 소중해요.

 

여명인터뷰에서는, 보경 님, 재윤 님, 해인 님의 다양한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또 몰래카메라 탐지, 여성 건강권 등 여성 이슈를 발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였다. 여성학자와 여학생회 선배 등 이전 세대와도 드물지만 꾸준히 교류하는 모습 보았다.

여명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 중 가장 관심 갔던 이야기는, 여명이 동아리로 등록했다는 이야기였다. 인터뷰에도 직접 언급했지만, 이공계 중점 대학의 페미니스트 모임들은 회원들이 일상에 위협을 느껴 동아리 등록을 꺼리곤 한다. 하지만 여명이 들려준 동아리 등록 계기는 예상 외였다. 오히려 동아리연합회가 방파제가 되어 주기도 했으며, 대중 사업 의무도 동아리에 꾸준히 활동력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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