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원자력 및 양자공학 전공자 위선희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23: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위선희

 

 2019년 페미회로의 마지막 인터뷰이는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서 의료영상과 의학물리를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 위선희 님이다. 위선희 님은 카이스트에서 만난 언니들을 통해 페미니즘에 눈을 떴고, 현재는 여러 사회·정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엔지니어로서 성불평등격차, 여성폭력 데이터 등을 뜯어 보며 페미니즘을 고민했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우연, 희수는 회로, 인터뷰이 위선희 님은 선희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멩이,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회로: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선희: 안녕하세요, 저는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서 의료영상 및 의학물리를 전공하고 있는 박사과정 5년 차 위선희입니다. 일 년 전쯤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는 거절했는데, 지금은 여성으로서 세상에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 응하게 됐습니다.

 

회로: 학부 때 원자력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꼭 전공하고 싶은 분야가 있었나요?

선희: 원래는 물리학과에 가고 싶었어요. 제가 중학생 때부터 물리를 좋아했거든요. 모교인 강원과학고에서도 유일한 실험 물리 동아리에서 활동했고요. 실험 물리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과학전람회(*)에 출품할 장비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카이스트에 입학해서 고급물리 과목을 듣다가 ‘이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싶더라고요. 물리를 잘하는 사람들만의 언어가 있는데 그걸 못 따라갔어요. 그런데 물리를 계속하고는 싶어서 원자력 공학과에 가서 핵물리를 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 과학전람회는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전국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주최하는 과학 연구 대회다. 지역 대회와 전국 대회로 구분된다. 전국 대회에는 광역 지자체 단위의 지역 대회를 통과한 작품이 출품된다. 지역 대회는 광역 지자체 교육청이 주최한다.

 

위선희 1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위선희 님. 사진: 페미회로

 

회로: 그럼 처음부터 의료영상을 염두에 두고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 진학하지는 않았네요.

선희: 네. 카이스트에서는 2학년에 진급할 때 학과를 정해요. 제가 2009년에 학과를 정할 때는 지금 지도교수님이 학교에 아직 부임하지 않으셨어요. 나중에 지도교수님 수업을 듣고 대학원 전공을 정했습니다. 그래도 의학물리 지식이 필요한 의료영상 소프트웨어를 연구하기에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하고 싶었던 연구와 아주 멀지는 않아요.

의료영상 자체가 카이스트 원자력 공학과에서 주된 분야는 아니에요. 보통 원자력 공학과 연구실들에서는 주로 방사선, 핵분열, 핵융합을 연구해요. 의료영상을 데이터로 다루는 연구실은 저희뿐이에요. 의료영상을 찍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랩은 따로 있고요. 그래도 카이스트 전체에서는 의료영상을 연구하는 연구실이 꽤 많아요. 바이오 및 뇌공학과, 전산과, 전자과, 수학과에도 있어요. 그 연구실들이 의료영상연구회를 만들어서 함께 연구하기도 하고요.

 

회로: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요?

선희: 학부는 작아요. 학부생 수는 한 학년에 많으면 25명이에요. 요즘에는 원자력 쪽이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5명도 안 되는 학번도 있고요. 제 동기는 8명이었어요.

저희 과는 대학원생 그룹이 커요. 교수님이 16분 계시거든요. 학부생 수는 매년 편차가 크지만, 대학원에는 다른 대학에서 많이 와서인지, 대학원생 수는 편차가 거의 없어요. 저희 연구실은 매년 석사 신입생이 4명 정도 들어오고, 학과 전체로는 대학원에 매년 40명 정도 입학하는 것 같아요.

 

회로: 방사선 의료영상 소프트웨어 분야를 연구한다고 하셨는데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선희: 제가 최근에 마무리 지었던 과제는 C자 모양 팔 CT(Mobile C Arm CT)를 저선량으로 만들기 위해 여러 알고리즘을 적용해보는 것이었어요. CT는 아마 많이 들어보았을 텐데요, 컴퓨터 단층 촬영(Computerized Tomography)의 약자에요. 병원에서 동글동글 원형으로 도는 장비에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는 것 보신 적 있죠? 그건 기계 자체가 움직이지 않는 진단용 CT에요. 저는 동그란 모양이 아닌 C자 모양의 팔이 달린 기계에 들어갈 소프트웨어를 코딩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이런 CT는 보통 진단용이 아닌 중재시술에 쓰여요.

 

회로: 진단용 CT는 본 적 있는데 중재시술에 쓰이는 C자 모양 팔 CT는 처음 들어봐요.

선희: 개복하지 않는 수술에서는, 수술 중에 수술 도구가 환자의 몸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야 할 때가 있어요. 평소에는 수술 도구 위치를 알기 위해 평면(2D)으로 찍는데, 입체로 파악해야 하면 그 C자 팔을 360도로 돌리면 돼요. 핏줄이 많은 간, 신장 등 장기를 시술할 때 도움이 되죠.

제가 한 건 옮길 수 있는 CT를 만들었던 거에요. 기존의 C자 모양 팔 CT는, 천장에 붙어 있어서 수술 방마다 하나씩 들어가기 때문에 비싸고, 일반수술장에서는 못 써요. 그런데 만약 옮길 수 있는 CT 장비가 있다면 일반수술실에서도 쓸 수 있겠죠. 이미 상용화된 옮길 수 있는 C형 팔 모양 CT 장비는 있는데, 저희는 국산화하는 동시에 기기의 성능을 높이는 과제를 맡아서 진행했었어요.

제 꿈은 심장마비를 완벽하게 진단할 수 있는 영상기기를 만드는 거예요. 지금은 정확하게 예측을 하려면 조영제라는 약물을 복용해야 해요. 아무리 좋은 기기를 써도요. 그런데 조영제의 부작용이 생각보다 심해요. 부작용 비율이 0.03~0.1%정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회로: 왜 꼭 심장인가요?

선희: 심장병 말고 다른 병들은 요즘 거의 다 진단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심장병을 진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영제 없이도 찍을 수 있는 영상 기기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조영제 없이는 모세혈관과 그 외 조직을 구분할 수 없어요. 조영제는 혈관 안을 하얗게 보이게 해, 의사가 혈관 안은 구분할 수 있지만 혈관벽은 여전히 옆의 조직과 구분하기 힘들어요. 그렇다 보니, 혈관벽 두께가 중요한 진단 기준인 질병을 진단하기에 조영제는 여전히 단점을 가졌어요. 부작용 확률이 낮지 않은 것도 큰 문제고요. 그래서 조영제를 쓰지 않고도 심장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영상기기를 개발하고 심장 질환 진단에 도움 주는 진단 영상기기를 연구하고 싶어요.

 

회로: 아까 지도 교수님 수업을 듣다가 의료영상 분야에 발을 디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수업이 어떤 면에서 흥미로웠나요? , 수업이 아닌 연구를 시작했을 때 특별히 재미있거나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선희: 카이스트에서 처음으로 재미를 느낀 수업이었어요. 학점도 처음으로 A를 받았고요. 다른 전공 수업은 그냥 버틸 만했지 재미있지는 않았어요. 당시 학문에 흥미가 전반적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의료영상 수업을 듣고 동력을 얻었어요.

어려웠던 점은… 의료영상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려면 코딩을 무척 잘해야 해요. 차라리 학부 때 전산을 전공하고 이쪽으로 진학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너무 코딩이 안 될 때 저는 가끔 컴퓨터와 대화해요. ‘왜 내 말을 안 듣니’하고요. (웃음) 또 다른 의미로 어려웠던 점을 하나 더 얘기해드리면, 의료영상직이 고생하는 만큼 잘 대우받지는 못해요. 방문 연구차 미국 존스홉킨스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그곳은 워낙 의대가 세다 보니 생명과학 연구원만 실내에서 연구하고, 실험하지 않는, 저 같은 대학원생은 복도에서 연구하더라고요. 논문 쓰고, 데이터 정리하고, 코딩하는 건 다 복도에서 했죠. 제가 뒷전으로 밀린다고 느꼈어요.

의료영상 분야가 왜 재미있는지는 설명 못 하겠어요. 그냥 너무 재미있어요. 분야가 다양해서 건드려보고 싶은 주제도 많고요. 그리고 의료 쪽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요. 엔지니어는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어야 해요. 어떤 문제를 연구해보고 싶다고 다 되는 게 아니라, 내가 궁금한 문제를 다른 사람들도 궁금해야 하고, 시기도 잘 맞아야 하죠. 그런데 의료영상은 수요도 있고 풀어야 하는 숙제도 많으니까 저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회로: 조금 시기를 바꾸어서, 선희님의 현재에서 과거로 가보겠습니다. 강원과학고 시절에 실험 물리 동아리에서 활동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활동을 주로 했나요? 과학고는 남성 대 여성 성비 차가 크다고 하던데, 동아리에 여성은 몇 명이었나요?

선희: 실험 물리 동아리는 제가 입학했을 때 처음 생겼어요. 그때 부원 3명 중 저만 여자였어요. 저와 함께 입학한 학생은 60명이고, 그중 여학생은 20명이었고요. 동기 중에 물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몇 없었는데, 실험 물리는 더더욱 없었어요. 주파수 같은 개념은 직접 눈 혹은 손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굳이 그걸 직접 해보고 싶었어요. 알루미늄이나 구리를 톱으로 자른 뒤 손으로 튕겨, 주파수 재본 기억이 나요. 같이 실험했던 부원들은 겁이 많아서 톱으로 하는 건 다 제가 했어요. 금속에 구멍 뚫어서 실로폰도 만들어보고요. 톱질을 워낙 많이 하다 보니 한쪽 팔만 두꺼워졌던 기억이 나네요. 성적도 포기하고 실험해 결국에는 전국 전람회에서 특상을 받았어요. 아마 그 상이 대학 진학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끝이 아니라는 걸 배웠어요. 실험 결과가 엉망이어도, 그래프는 그리고, 이론대로 식을 세워 실험 보고서를 써야죠. 그렇게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저희를 담당했던 선생님이 열정적이고 똑똑하셔서, 학생들도 소화할 수 있는 주제를 주셨어요. 실험에 들이는 노동은 길었지만 재미있었죠.

과학고에서 과학의 날에, 지역 초중고생에게 학교를 오픈하고 각종 과학실험 시연하는 행사를 했는데, 저희 부스가 인기가 많았어요. 와인 잔을 두고, 와인 잔의 고유 진동수에 맞는 음파를 들려주면 잔이 흐물흐물해지다가 깨져요. 와인 잔을 무작정 많이 깰 수는 없으니까, 한 시간에 한 번씩 “이제 와인 잔 깹니다!”하고 방송하면 방문한 학생들이 다른 데에서 다 모여요. 신기해하는 얼굴을 보는 게 좋았어요.

 

회로: (희수)도 고2 때 과학실험대회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저희가 딱 해보고 싶은 실험을 부산에 있는 대학에서 실험을 했던 걸 알게 됐어요. 그곳에 찾아가서 실험을 어떻게 했는지, 재료를 어디에서 샀는지 물어봤던 기억이 나네요. 혹시 동아리 관련해서 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선희: 그때 밤을 많이 샜어요. 전람회 준비한다고 하면 야간자습을 다 빼 줘요. 자습 시간을 모두 써도 시간이 부족해서 새벽 3시까지 실험하다가 들어가곤 했어요. 진짜 문제는 새벽 3시에 여자 기숙사를 잘 열어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여자 기숙사가 1층이고 남자 기숙사가 2~3층이었는데, 여자 기숙사는 밖에서 쇠문으로 잠가 놨어요. 기숙사 소등 시간 넘어서 밖으로 나갈까 봐 그랬던 것 같았는데, 사감 선생님이 1층은 절대 안 열어줘서 3층까지 올라갔다가 1층으로 내려갔던 기억이 나요.

 

언니들을 통해 페미니즘을 만나다

 

회로: 이제 본격적으로 페미니즘 관련 질문을 해볼게요. 어떤 계기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선희: 13년도인가 14년도에 여성주의라는 단어를 당시 룸메이트에게 처음 들었어요. 그때는 여성’주의’라고 하니까 너무 사상 느낌이 나고, 왜 남성을 배제하나 싶었어요. 룸메이트가 여성민우회에 가입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니까 더 이상하기도 했고요. 그 친구가 ‘너에게만 이야기하는 거다’하니까 ‘왜 숨어서 해야 하는 걸 하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고 반감이 생겼죠. 그래서 알던 언니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언니들에게 엄청 혼났어요.

 

회로: 왜요?

선희: 저도 여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때 저는 낙태에 반대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한 안티페미니스트였던 것 같아요. 요즘 말로는, 거의 이퀄리스트(*)에 가까운? 다른 친구가 육아휴직 1년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도 왜 그런 식으로 보상해주냐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언니들이 보여준 여성폭력 데이터를 보고 이 세상에 눈을 떴어요. 그전까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가끔 뜨는 기삿거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언니들이 보여주는 데이터를 보니까 제 생각보다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 그 언니들이 데이터 폭격을 시작하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깨달았어요.

 

(*) 이퀄리스트(equalist): ‘이퀄리즘(equalism)’을 지향하는 사람. ‘이퀄리즘’이나 ‘이퀄리스트’는 학술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딴죽의 일종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으며, ‘-ism(-주의)’이라는 단어를 붙일 만큼 학계나 사회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거나 사상적 깊이가 있는 개념은 아니다. ‘평등주의’ 정도로 번역될 수 있으며, 이퀄리즘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이퀄리즘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내용이니 이퀄리즘이 페미니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여성이 현실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지우고, 여성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의 실천적인 성격을 희석한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페미위키 – ‘이퀄리즘’ 항목 참고. https://femiwiki.com/w/이퀄리즘/)

 

회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선희: 여성이 데이트폭력이나 가정폭력으로 죽는다는 데서 큰 충격을 받았고, 그게 수치화된 데이터로 기록되는 것에 또 놀랐어요.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에는 화가 났고요. 남녀가 같이 입사했으면 같은 돈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저는 여성이 워낙 적은 이공계에 있으니까, 여성이 적은 분야에는 이런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초등학교 교사같이 여성이 많은 집단에서는 여자도 고위직으로 올라가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닌 거예요. 여자가 다수인 집단에서도 여자는 고위직으로 올라가지 못했어요. 돌이켜보니 살면서 본 교장, 교감 선생님 대다수가 다 남자였다는 걸 깨달았어요. 요리는 여자의 역할이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요리를 직업으로 하는 셰프들 중에 유명한 사람들은 또 남자고요.

성평등지수를 보면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에서 발표한 수치와 유엔(United Nations)이 발표한 수치가 차이가 커요(*). 유엔 수치에서는 한국의 점수가 아주 높은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순위가 낮아요. 저는 엔지니어니까 데이터를 중요시해서, 이 두 지수에서 왜 차이가 나는지 데이터를 뜯어봤어요. 보니까 유엔은 남성과 여성의 평균 수명, 교육 수준 등을 중요하게 보고 세계경제포럼에서는 임원의 여성 비율 등을 중요하게 보더라고요. 평균 수명이나 교육 수준 등에서는 평등이 이뤄졌는데, 노동시장에서는 성평등이 이루어지지는 않은 거죠.

마지막으로 보고 놀랐던 데이터는 여아선별 낙태 지수였어요. 저는 사실 ‘여아낙태’가 용어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87년부터 90년까지 엄청 자행됐더라고요. 세 번째 아이 성별을 비교하면 남자 대 여자가 거의 3:1이 될 정도로? 이건 제노사이드(genocide)라고 봐야 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제가 딱 그 시기에 태어났으니 우리 부모님 세대가 여아낙태를 선택한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아직 사회가 변한 것 같지는 않아요. 회사에 들어가도 우리 부장님은 여전히 남성을 우대할 수도 있으니까요.

(*) 박기묵·김나연, 「[팩트체크] 한국 성평등, 118위 vs 10위… 진실은?」, 2018.10.09, 노컷뉴스, 링크: https://www.nocutnews.co.kr/news/5041598

 

통계자료

1990년 출생성비. 첫째, 둘째, 셋째, 넷째로 갈수록 성비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KOSIS

 

회로: 많은 페미니스트가 동료 여성에게 영향을 받아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 같아요. 요즘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가 있나요?

선희: 요즘에는 여성주의 관점에 입각한 법안을 만들거나 재해석해서 현행법을 개정하는 활동에 관심이 있어요.

저는 페미니즘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법을 제정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첫 시작은 낙태죄 폐지였어요. 정말 낙태죄가 폐지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올해 초에 됐잖아요(*). 낙태죄가 아예 폐지된 것은 아니지만 법이 바뀌는 걸 눈앞에서 보니까 희망이 생겼어요. 낙태죄가 폐지됐으니, ‘양육비 강제집행제도’(**)를 개선하고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두 법안은 반드시 통과되면 좋겠어요.

 

(*) 대한민국 형법은 제2편 각칙 제27장에서 낙태를 한 자, 낙태하게 한 자, 낙태 수술을 집행한 의사 등에 대한 ‘낙태의 죄’를 규정하고 있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우생학적, 윤리적, 범죄적, 보건의학적 사유에 따른 임신중절수술의 허용 한계를 정하고 있지만, 이 허용 사유의 범위가 매우 좁으며, 기본권의 하나인 생식의 자유에 해당하는 임신중절권,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일었다. 이에 2016년 검은 시위, 2016년-2017년 BWAVE(Black Wave) 시위, 2017년 낙태죄 폐지 청와대 국민 청원, 2017-2019년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등 낙태죄 폐지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결국 2019년 4월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으로 헌법불합치 판정이 났다. (장수경, 「더 이상 낙태죄는 없다: 판을 뒤집어엎은 여성들의, ‘낙태죄 폐지’까지 여섯 장면」, 한겨레 21, 2019.04.21., 링크: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46944.html

(**) 양육비 강제집행제도는, 가사소송법 제 63조의 2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해야 할 채무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경우, 가정법원이 양육비채권자의 신청에 따라 채무자에 대해 정기적 급여를 지급하는 고용자에게 채무자의 급여에서 양육비를 공제해 채권자에게 직접 지급하도록 명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현행 제도에서는, 양육비 지급 의무자가 무직이거나 자영업자, 또는 급여 근로자가 아닌 형태로 소득을 벌어들일 때는 이용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조하영, 「[조하영 변호사의 법률칼럼] 이혼 후 일방적인 양육비 미지급,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스타데일리뉴스, 2019.08.22., 링크: http://www.stardail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1936)

(***) 결혼과는 다른 형태로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들을 법적으로 동반자로 인정해 권리를 보장하고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 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법률혼 등 법적 가족이 아닌 가족을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아,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채 공동생활을 하는 이들이 주위의 부정적 시선에 시달리거나, 정부 혜택 및 서비스에서 차별을 겪는 문제가 있다. 유럽을 비롯한 국외에선 생활 공동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가 존재하며, 프랑스가 1999년부터 시행한 공동생활약정(PACS, 팍스)가 대표적이다. (박현정, <지금 함께 사는 사람과 법적 가족이 될 순 없는 걸까요?>, 한겨례, 2018.11.21,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71195.html)

 

회로: 해당 주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선희: 언젠가 한국 남성의 콘돔 사용률이 겨우 10%를 조금 넘는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어요. (*) 상황이 이래서는 여성이 아무리 오래 교육받아도 여자가 독립적일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성생활에서 남녀가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첫 단계가 낙태죄 폐지라고 생각해요. 생활동반자법은 제 주위에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을 만나면서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어떤 분들은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가는데, 동성애를 싫어하는 문화권을 피하는 신혼여행 계획을 짜주는 에이전시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생활동반자법이 비혼을 선택한 여성에게도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해요. 제가 수술받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보호자로 서명해줄 수 있다는 건 중요한 문제죠. 성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서로의 생명을 책임져 줄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사회가 좀 유연하게 변했으면 좋겠어요.

(*) 한국의 콘돔 사용률을 2015년 기준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11.5%다.

(이한호, 「“여성 요구 반영한 콘돔… ‘밝히면 헤프다’ 편견 깨야죠”」, 한국일보, 2019.1.22,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1211404016376?did=NA&dtype=&dtypecode=&prnewsid=)

 

회로: 저는 페미니스트가 자신의 삶을 즐겁게 꾸려가기 위해서는 안전하고 편안한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선희님은 주변 사람들과 페미니즘 이야기를 자주 하나요? 페미니스트로서 느끼는 갈증을 어떻게 해소하나요?

선희: 요즘은 페미니스트로서 말을 못해서 느끼는 갈등은 거의 없어요. 사실 저는 대놓고 말하는 편이에요. 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도 페미니즘 관련 사진 걸어 놓고. 그래서 주위 사람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어요.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제 의견을 다 알고요.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거죠. 제 SNS 피드가 아주 깨끗합니다.

제가 FC우먼스플레잉(이하 우플)을 하면서 축구도 하고 주짓수도 하는데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모두 페미니즘을 앞세우지는 않아요. 그래도 운동이라는 남성들의 전유물을 뺏는다고 느껴서 좋아요. 올해 우플에서 대전 남성 축구 동호회 팀과 게임을 했는데, 이제 제가 패스하고 골을 넣을 수 있으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이길 거에요. 축구나 주짓수에서 혼성 게임을 하면 여자가 남자에게 민폐가 되리란 편견이 있는데, 그 경기를 통해 편견을 깰 수 있어서 좋았어요. 운동을 하면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전체적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좋고요. 그리고 주짓수를 하면서 신기한 건, 세게 맞아도 제 몸은 제 생각보다 훨씬 잘 버틴다는 사실이었어요. 멍이 생각보다 쉽게 들지 않아요. 저는 요즘 그래서 심심하면 제 가슴이나 배를 때려요. 좀 단단하게 만들고 싶어서요. 그러다 보니 겁이 좀 없어졌어요. 자신감은 엄청나게 상승했죠. 이 좋은 걸 이제까지 남자들만 하고 있었다니!

 

위선희 3

당당한 선희님. 사진: 위선희 제공

 

회로: 아까 인간관계를 정리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경험을 좀 듣고 싶어요.

선희: 처음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는 화가 많이 났어요. 그래서 주위 남성 친구들에게 계속 화를 냈어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할 때마다 화를 내면서 뭘 읽어보라고 줬어요. 그래서 지금 주위에 원래 알고 지내던 남자애들이 아무도 안 남았어요.

페미니즘을 알고 나서 생각해보니 예전에 남성 친구들과 했던 대화가 생각나는 거예요. 친했던 한 남성 친구는 다른 여성들 가슴 순위를 매겼다는 이야기를 저에게 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때는 잘 몰랐는데, 여성에게서 ‘가슴’만 따와서 그렇게 순위를 매기는 의미를 알고 나니까 너무 짜증이 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짜증 나서 막 욕을 했더니, 그 애가 하는 말이, “너도 그때 같이 웃어 놓고 왜 그러냐”는 거에요.

 

회로: 그런데 공대는 남성의 비율이 높잖아요. 그 환경에서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나요?

선희: 제가 지금 남성과 함께 일해야 하는 공간은 연구실뿐이에요. 과학고 동문 모임은 안 나가면 그만이고요. 그래서 연구실에서는 최대한 페미니즘 이야기를 안 해요. 이미 프로필 사진에 페미니즘이 있어서 사람들이 알고 피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요. 지도교수님은 굉장히 좋은 분이고 여성 차별적인 발언을 거의 안 하세요. 그래서 학생들도 덩달아 안 하는 것 같아요. 연구실 내 여학생 비율이 다른 연구실에 비해 높기도 해요. 박사 후 연구원 포함 14명 중 5~6명이 여성이거든요.

제가 복이 좀 많은 것 같아요. 그 외에 제가 활동하는 정당(정의당), 시민단체(마고, 페미회로, ESC 등등) 모든 곳에서 페미니즘이 보편적 정서로 깔려있어요. 그래서 참 인간관계를 넓혀 나가기 쉬운 것 같아요. 또 제가 술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학연, 지연보다 흡연이라고 흡연자여서 인간관계를 흡연으로 관리하는 것 같네요.(웃음)

 

회로: 감사합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선희: 마지막으로 꼭 이 해가 가기 전에 꼭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고 설리, 고 구하라 님을 짧은 기간 동안 보내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페미사이드(*)를 집중해서 보고 있어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그 많은 시위와 폭로가 이어진 뒤 이 사회가 변하긴 한 걸까요? 저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혜화역 시위를 분노에 차 참석하면서 결의를 다지곤 합니다. 여전히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제가 보고 있는 데이터가 전부 조작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페미니즘 활동가로 만난 한 분이 제게 물으셨어요. “여성긴급전화 1366(**)에 한 달에 몇 통이 걸려올 것 같아요?” 저는 머리를 굴려봤습니다. 그리고 답했습니다. “하루에 한 5명 정도면 한 달이면 150명 정도가 되겠네요.” 돌아오는 답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쓴웃음) 1500통이 걸려 와요. 이거 심각한 문제예요.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예요. 이 사회는 바뀌어야만 합니다.” 저는 페미니스트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명의 목숨이라도 지켜내기 위해서는 하루 빨리 목소리를 내고 싸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에서 꼭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지면과 시간을 제게 할애해주셔서 감사해요. 페미회로!

 

*페미사이드는 여성(female)과 살해(cide)의 합성어로 여성혐오적 살해, 동기와 이유가 여성이라는 점만으로 살해당하는 것을 뜻한다.

**여성긴급전화 1366은 가정폭력, 데이트폭력에 심하게 노출되어 신변이 위험할 때 신고를 하는 그야말로 긴급연락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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