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나만 억압당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전남대 페미니스트 모임 〈F;act〉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인터뷰 프로젝트 028: 나만 억압당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전남대 페미니스트 모임 F;act

 

〈F;act〉는 2017년부터 전남대에서 활동한 페미니스트 모임이다. 전남대의 〈사회문제연구회〉와 교지 〈용봉〉편집위원회와 함께 여러 차례 세미나를 개최했다. 또한 꾸준히 낙태죄 폐지, 탈코르셋 등 다양한 주제로 부스를 열어 일반 학우들을 만나려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최근에는 전남대 법전원 성폭력 사건에 대응해 대자보를 게시했다.

 인터뷰어 한솔이 보기에, 〈F;act〉가 페미니즘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은 〈사회문제연구회〉, 〈용봉〉과도 꾸준히 소통해온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 말고 다른 이들을 만나는 〈F;act〉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난 3월 말 〈F;act〉를 만나보았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지냥이, 한솔은 회로, F;act의 인터뷰이 말리, 비탕, 승옥 님은 말리’, ‘비탕’, ‘승옥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우연, 위선희, 한솔, 희수,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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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인 승옥, 말리, 비탕님. 사진: 페미회로

 

F;act활동 전의 승옥, 말리, 비탕

 

회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승옥: 〈F;act〉에서 활동하고 있는 승옥입니다. 철학과입니다.

말리: 〈F;act〉에서 활동하고 있는 말리입니다.

비탕: 전남대학교 페미니즘 학회 〈F;act〉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탕입니다.

 

회로: 반갑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동기를 소개해주세요.

승옥: 이번에 〈F;act〉 운영위원회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말리와 비탕 님이 대외활동하는 것이 색다른 경험이 될 거라고 제안해 주셔서 참여했습니다.

말리: 〈F;act〉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전남대에서는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곳이 〈F;act〉 말고는 거의 없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전질문지를 읽어보니 〈F;act〉가 해온 활동과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F;act〉 활동에 임했는지 정리할 수 있었어요.

비탕: 제가 원래 사람 만나기를 좋아해요. 페미니즘 이야기를 할 곳이 〈F;act〉밖에 없던 차에 <페미회로>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F;act〉를 홍보하고 지금까지의 활동을 정리하자는 의미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회로: 각자 페미니즘을 어떻게 만났는지 소개해주세요.

승옥: 고등학생 때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페미니즘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인터넷에서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어요. 살면서 불합리하다고 여겼던 것이 페미니즘으로 설명되는 게 신기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싸움과 대립이 너무 심하잖아요. 역설적이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F;act〉에 들어갈까 말까 엄청 고민했어요. 〈F;act〉에서 어느 한쪽 주장만 지나치게 할까 봐요. 그런데 〈사회문제연구회〉에 가입해 〈F;act〉에서 활동하던 말리 님께 이것저것 물어보니, 〈F;act〉가 한쪽 주장만 듣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 〈F;act〉도 거의 동시에 가입하게 되었어요.

〈F;act〉에 들어가기 두려웠던 이유는, 당시 제 표현으로는 페미니즘을 표방한 ‘혐오’가 걱정되어서였어요. 말리 님께는 이에 관해 슬쩍 얘기를 던져봤어요. 남성 학회원은 있는지, 소수자를 배제하지는 않는지 에둘러 물었던 것 같아요. F;act에 가입한 이유는 간단해요. 동아리의 목적인 소수자 배제 없는 페미니즘이 제 지향점이 같았고 배울 점이 많아 이곳에서 학습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말리: 고등학교 때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제가 다니던 대안학교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었어요. 성폭력 사건에 학교가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점에 졸업생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있었고,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재학생들 간 성폭력 사건이 있기도 했어요.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접했고, 성폭력 사건을 주제로 재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페미니즘에 더 관심을 갖고 공부했어요. 2017년에 대학에 들어오니 마침 〈F;act〉 회원모집 공고가 붙어있었어요. 한 학기 정도 고민하다가 들어왔어요. 대학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또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어요.

 

회로: 비탕 님의 경험도 듣고 싶어요.

비탕: 저는 1년에 제사 15번씩 지내는 집의 장손녀로 태어났어요. 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들이 하는 차별 아닌 차별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장손녀’인데 저보다 다섯 살 어린 남동생은 ‘장손’이 되거나, 제사상 준비는 여자들이 다 하는데, 막상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는 우리는 처음에 조상님 들어오실 때와 떠나실 때만 절하던 일이 기억나요.

원래는 그런 차별에 많이 한탄했어요. ‘내가 남동생처럼 장손으로 태어났으면 달랐을까?’하는 생각에 명예남성의 길을 열심히 걸었어요. 남자처럼 행동하고 남자들과만 어울리고 여자애들 괴롭히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아무리 이 길을 걸어도 나는 결국 남자가 못 되는데 내가 진짜 남자가 될 수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고 이상했어요. 제가 노력한다고 바꿀 수 없는 문제를 제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저 자신과 남을 상처 주던 행동들이 이상했어요. 뭔가 잘못됐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죠. 나중에는 젠더 체계와 나의 성별에 이상함을 오랫동안 느꼈는데, 이건 설명하기가 어렵네요.

그 뒤로는 두루두루 어울리고 ‘여성스러운’ 취미도 많이 가졌어요. 그런데 또 여자라고 무시당하기는 싫었어요. 그래서 남자들이 저를 무시하거나 얕볼 수 없게 소위 말하는 조폭 마누라, 당찬 여성, 걸크러쉬의 길을 걸었죠. 그렇게 언어가 없이 살다가, 여러 문제 겹쳐지면서 힘들어서 휴학했어요. 당시에는 페미니즘을 몰랐기 때문에 저의 행동들을 ‘걸크러쉬’나 ‘당찬 언니’같은 단어로 수식하는 것에 거부감이나 의문은 없었어요. 오히려 그런 말을 들을수록 뿌듯함을 느꼈고요.

복학할 때쯤 강남역 살인사건이 터졌고 페미니즘이라는 언어를 얻었어요. 그렇게 언어를 얻고 복학했는데 화장실에서 페미니즘 동아리가 생긴다는 공고를 봤어요. 그때 한창 미러링이 심할 때여서 처음에는 저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동아리에 들어갔더니 닭발 뜯으면서 ‘한국남자들 죽어라, 그러고 있으면 어떡하지?’ (웃음) 저는 폭력적인 상황과 혐오표현들을 불편해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사람들도 다들 너무 좋고 체계화된 텍스트를 읽고 있어서 지금까지 〈F;act〉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F;act〉를 처음 만든 분은 졸업하셨어요.

 

회로: 서로 다른 사회운동 분야지라도 사람은 어느 정도 겹치곤 하는데, 다른 운동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로 페미니즘 운동에서 덕을 보기도 했나요? 다른 운동 경험이 페미니즘 운동에 도움이 된다고 느끼시나요?

비탕: 저는 중학생 때부터 인권동아리에서 활동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공부하느라 많이 활동하지는 못했지만 5.18 관련 행사에 개인으로 참여하기도 했어요. 대학에 와서는 사회운동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대학 로망처럼요.

어쩌다 보니 1학년 때 풍물패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풍물패에서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서슴지않았어요. 이에 문제제기하면 “너는 그걸 왜 농담으로 못 받아들이냐”는 분위기였어서 풍물패 활동을 접었어요.

이렇게 사람을 많이 만나면서, 동아리나 단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사업이 어떤 맥락으로 이어져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많이 배운 것 같긴 해요. 동아리나 학회에서 세미나를 진행할 때 어떤 흐름을 어떤 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알기 어려운데, 말하자면 커리큘럼 짜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요. 제가 활동했던 풍물패는 매월 농민 연대에서 경제, 경제에서 노동 운동으로 잇는 식으로 1년 단위의 주기가 있었어요. 이런 주기를 그대로 쓰지는 않고 변형해 〈F;act〉 활동에도 잘 적용하고 있습니다.

 

회로: 말리 님의 이야기도 더 들어보고 싶어요.

말리: 〈F;act〉에 들어갈 때 거의 동시에 〈사회문제연구회〉에도 들어갔어요. 〈F;act〉와 활동이 계속 겹쳤죠.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여성만의 문제에만 관심 있다고 생각하곤 하죠. 〈F;act〉에서도 여성만의 문제를 다루지는 않지만, 경제나 노동을 공부하기에는 <F;act> 만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문제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배운 것을 다양한 여성들의 상황에 연관 지어 분석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제 분석 틀이 넓어졌다고 느껴요. 여성문제를 다루며 부족한 논리를 〈사회문제연구회〉에서 한 공부로 메꾼 거죠. 두 활동을 병행하면서 좀 더 풍부하게 알아간다고 느꼈어요. 지금은 〈사회문제연구회〉를 졸업했지만, 사회와 떨어진 여성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공부해 나가고 있어요. 사회에서 여성들은 어떤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까 이런 것들을 폭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은 것 같아요.

 

회로: 사회문제연구회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문제를 다루기도 하나요?

말리: 네. 그런데 〈F;act〉는 활동하는 사람이 적은 동아리다 보니 대부분 사람이 계속 같이 활동해 오면서 쌓인 통일된 의견이 있는데, 〈사회문제연구회〉는 〈F;act〉에 비해 여성문제에 관해 통일된 의견이 적어,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접했어요.

 

회로: F;act사회문제연구회와 같이 세미나를 진행한 적이 있나요?

말리: 2017 전남대학교 사이다포럼(‘대학생, 사회를 이야기하다’), ‘2018 제7회 대학생 사회포럼 in 광주’ 등 2017년부터 약 2~3년 동안 연말에 합동 세미나를 진행했어요. 〈F;act〉는 성별임금격차에 관한 연구, 〈사회문제연구회〉는 플랫폼 노동자(*)에 관한 연구 등 각 학회에서 1년 동안 중점적으로 연구한 것을 발표했어요. 〈용봉〉도 합동으로 참여했어요.

승옥: 저도 비슷한 시기에 〈F;act〉와 〈사회문제연구회〉에 가입해 동시에 활동했어요. 〈사회문제연구회〉는 사회문제를 다루다 보니 여성 의제와 떨어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학습하면서 모든 것이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회문제연구회〉에서 얻은 게 많아요. 최근에는 전공인 철학책을 읽는데, 여성 및 소수자는 철학과도 연결되어 있어요. 현대에 들어서서는 주체를 강조했던 근대와 달리 그것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으니까요. 소수자 운동과 철학을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이 흥미로워요.

 

(*) 플랫폼 노동은, “웹 사이트나 모바일 앱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그때그때 일감을 얻어 고용계약을 맺지 않고 일의 수행에 대해서 보수를 받는 노동”(「플랫폼노동 종사자 인권상황 실태조사」(2019))이다. 익숙한 플랫폼 노동자로는 배달앱 서비스 라이더가 있다.

대부분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http://www.redian.org/archive/140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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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사이다 포럼 행사 장면. 말리가 ‘여성, 임극격차 그리고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 비탕 제공

 

회로: 어떤 철학 분야를 읽고 계세요?

승옥: 다양한 책을 읽고 있어서 정확히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임마누엘 레비나스의 『존재와 다르게-본질의 저편』은 타자에 대한 윤리성, 근대에 있었던 주체의 개념 등을 이야기해요. 그 책은 주체를 정립할 때에 타자가 있으므로 주체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하고, 타자는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에 주체는 주체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해요. 책을 읽고, 주체는 타자 없이는 주체일 수 없고, 주체 자신만으로 세계를 살아가면 자기 자신으로 돌돌 말려버리기 때문에 타자는 세계를 여는 희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현 사회랑 소수자를 어떻게 연결 지을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F;act의 활동

 

회로: 단체를 결성한 계기를 소개해주세요.

비탕: 다들 목말라 있었던 거죠. (웃음) 초대 회장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몰랐는데 지금은 알게 된 사람.

말리: 저도 모르는 분이었어요. 초대 회장님께서 2017년도에 혼자 회원모집 포스터를 붙이고 다녔어요. 이거 할 테니까 와라, 같이 책 읽으면서 이야기하자. 15명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왔어요. 무슨 사건이 터져 우리 한번 모여보자는 건 아니었어요.

 

회로: 단체 구성이 어떻나요?

말리: 겹치는 학번이 없어요.

승옥: 인문대생이 많고, 이과는 물리학과 한 분 있어요. 인원은 4~5명 정도이고, 성비는 따지는 게 민망할 정도예요. 남성 학회원이 한 분뿐이거든요. 학번은 다양하고 학부생으로만 구성되어 있어요.

비탕: 재작년 말, 작년 초까지는 8-10명이었어요. 그분들이 다 고학번이셔서 졸업하셨는데 신입회원 유입이 없다 보니 이렇게 적은 수가 남았고요. 그때는 남성 회원도 많았어요. 8명 중에 3명 정도가 남성분이셨고, 초대 회장도 남성이세요. 지금은 학부생들만 남았지만, 대학원생분들이 활동하시기도 했거든요. 교수나 직원분들은…. 와주시면 감사합니다. (웃음) 저희가 포스터를 붙일 때 항상 “남녀노소 상관없이”라는 문구를 넣어서 홍보하거든요. 붙이면서 “교수님한테 연락 오면 어쩌지?” 이런 농담 자주 해요.

말리: 가끔 학교 바깥 분들도 오세요. 다른 대학이라던가 학교 밖 분들이 트위터를 보고 오세요.

 

회로: 비회원이 와서 일회성으로 참여하기도 하나요?

비탕: 그런 경우는 거의 없어요. 참여하는 사람 대부분 세미나나 모임에 오시면 몇 달 정도는 활동하시고요.

 

회로: 페미니즘 단체에 따라 일상에서 낙인찍히는 문제로 신원 노출을 꺼려 단체 외부인이 오는 것을 경계하기도 하는데요, F;act는 개방되어있다고 답변해 주셨어요. F;act안에서 외부인 참여를 꺼리는 목소리는 없나요?

비탕: 지금까지는 없었어요. 말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2017년과 2018년 외부행사에 마스크를 쓰고 오시는 분들이 있긴 했어요. 무서워서.

말리: 〈F;act〉가 처음부터 공개적으로 시작했잖아요, 알음알음으로 모이지 않고. 그래서인지 당연하게 우리 원래 안전불감증? (웃음) 외부인을 경계하는 분위기는 없고요. 항상 누가 온다고 하면 “안티페미 오는 거 아니야?” 걱정하면서도 “기대된다. 무슨 얘기 할까?” 해요. 한 번도 온 적은 없지만. 크게 외부인 참여를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회로: F;act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보니 부스를 자주 여시더라고요. 부스와 토론회를 열면 다른 F;act외부인을 자주 만날 것 같아요. 외부인들과는 주로 어떤 얘기를 나누나요?

비탕: 기억나는 대화가 있어요. 저희가 2017년에는 낙태죄에 대해 알리고 낙태죄 폐지 여론을 만들고자 부스를 열었고, 2018년에 폐지 서명을 받으려고 학교에 부스를 열었어요. “낙태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포스트잇 붙이는 것도 하고, 손도장 찍는 것도 했어요. 2018년 부스에서는, 어떤 분이 포스트잇 대신 자기 연습장을 꺼내서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본인의 입장을 엄청 길게 써주신 거예요. 그분하고 이야기하고 이게 대중 지형이고 우리가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통 부스에 들르면 응원하러 오지 반대의견을 내려고 부스에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그분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걸 쓰시고도 30분간 이야기를 나눴어요.

말리: 사실 그런 분들은, 자기 얘기를 하고 네 얘기를 한번 해보라고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주기라도 하는 사람인데, 지나가면서 “쟤네 뭐야, 꼴페미들 아냐?”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비탕: 지나가면서 사진 찍고.

말리: 공개된 장소에서 페미니즘으로 세미나를 하면 저희 쪽으로 카메라를 돌리는 것이 느껴져요. 우리를 찍는 건지 핸드폰을 보는 건지 물어보기도 애매하고. 저희의 피해의식일까요? 보통은 〈용봉〉, 〈사회문제연구회〉, 〈F;act〉 셋이서 하는 것이 많아서, 보통은 그 두 단체에서 많이 오셔서 얘기하거든요. 그래서 외부인을 그렇게 많이 만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회로: 부스는 보통 어떤 내용으로 꾸미세요?

비탕: 어떤 주제냐에 따라 많이 달라요. 낙태죄 폐지 촉구로 서명받는 부스를 연 적이 있어요. 낙태죄 헌법불합치가 작년에 결정됐잖아요. 그전에 사람들에게 이 이슈를 좀 더 알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재생산권이 무엇이고, 어떻게 재생산권이 억압받는지 설명하는 부스를 열었어요. 부스 주제에 맞게 꾸미는 것 같아요. 탈코르셋에 대해서는 “탈코르셋이 개인의 의지로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판넬을 붙여놓는다든지, 사회가 여성에게 어떻게 미(美)를 강요하는지, 경제가 여성에게 어떻게 미를 강요하는지 이런 것을 써서 붙여놓는 편이에요. 퀴즈나 빈칸 채우기도 하고.

기억에 남는 것은 손도장이에요. 현수막 천에 청테이프로 “낙태는 죄가 아니다.”라고 써놓은 다음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감으로 손도장 한 번만 찍어달라고 해요. 테이프를 떼면 다양한 색깔 속에서 글자가 나오게 만드는 활동도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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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폐지 지지 손도장들. 사진: 비탕 제공.

 

회로(한솔): 뉴스 클리핑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보통 학회라고 하면 책만 읽곤 하는데, 저는 시사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이 활동에 관심이 가요. 최근 뉴스 클리핑한 주제들을 알려주세요.

말리: 이번 주에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1주년을 맞이해서. 낙태죄에 관한 논의들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소수자의 재생산권은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지거나 압박받고 있는지 이야기했어요. 전에는 N번방 사건,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사건 등 주제를 다뤘었어요.

시사 중에서도 젠더 문제와 관련된 주제를 많이 다뤄요. 회원들에게는 아무 주제나 가져와도 젠더 문제와 연결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래도 관심 가는 주제가 다들 젠더라서 그런지 젠더 문제와 관련된 주제를 많이 가져오시는 것 같더라고요.

비탕: 가끔은 진짜 아무거나 가져오시기도 해요. (웃음) 언젠가 플랫폼 노동을 주제를 다룬 적이 있었어요. 그리고 노동 문제라면 일반 노동자 남성의 문제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안에서 여성 노동의 구조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톨게이트 수납원 해고와 관련된 뉴스를 클리핑하기도 했어요.

2019년 여름방학 때 한일 관계가 안 좋았잖아요. 위안부 문제 말고도 다양한 문제가 얽힌 것이 한일 관계인데, 한일 관계를 어떻게 페미니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지 이야기했는데 아주 재밌었어요. 주제를 기획하신 분이 전전 회장님이었는데, 지소미아를 파기하려는 흐름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지, 지소미아 파기가 어떻게 전쟁과 연관되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페미니즘으로 볼 수 있을지에서, 반전(反戰) 평화 세미나로도 이어졌어요.

말리: 여성들이 주도하는 반전 평화 시위가 많은데, 여성들이 어떻게 반전 시위를 하게 되었는지, 여성과 평화, 반전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가 공부했어요. 여성들이 왜 반전 평화를 주장하는지, 단순히 여성이 더 평화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여성들이 피해받기 때문에, 전쟁이 소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등등…. 사람이 죽는 문제인데 경제나 국가 논리로만 치환돼서 생명은 시야에서 사라지는 문제에 페미니즘은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나,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뻗어갔던 것 같아요.

 

회로: 올해에는 어떤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나요? 올해는 어떤 목표가 있나요?

말리: 단체 재생산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작년에 신입회원이 많이 들어왔는데, 졸업 등으로 들어온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나갔어요. 〈F;act〉에 한 7~8명은 있으면 좋겠어요. 〈F;act〉 사람들끼리는 이미 익숙하다 보니 같은 이야기가 빙빙 돌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시각을 넓히고 싶어서 다양한 분이 들어오면 좋겠어요.

이번 1학기 세미나 주제가 퀴어와 페미니즘이에요. 지난 가을에 트랜스젠더 분들의 이야기로 핫했잖아요. 페미니즘은 그런 트랜스젠더 이슈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퀴어는 뭐지? 같이 갈 수 있나?’ 시의적절하게 나름대로 계획해봤고요. 제 목표는 모든 억압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모두가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이에요. 나만 억압당하지 않거나 나만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것을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사실 요즘 트위터 페미니즘 등 넷페미니즘에서는 여성만 챙겨야 한다는 말도 많은데, 그런 건 가능하지 않다고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어요.

 

회로: 회원들은 페미니즘을 어떤 이유로 시작했다고 하시나요?

비탕: 다들 비슷해요. 그저 살다 보니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대요. 남성분들이 이유가 더 다양한 것 같아요. 어떤 분은 군대에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느꼈대요. 어떤 분은 안티페미였는데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웃음) 페미 까려고 공부하다가 보니까 맞는 말 같아서 들어왔다는 분도 있고. 여성학회원들보다 남성학회원들의 이유가 더 다양한 것 같아요.

 

회로: 그럼, 책이나 뉴스 클리핑할 때 어디에 관심을 많이 가지나요? 어떤 이유로 책을 골랐다고 이야기한다던가, 주로 그럴 때 어떤 이야기가 나오나요?

말리: 요새는 성매매 혹은 탈코르셋이라는 이슈가 책이나 세미나 주제 고를 때 자주 나와요. 세미나를 할 때는 어떤 주제를 다룰지 많이 이야기하거든요. 주로 시의성을 가진 주제를 많이 이야기해요. 요즘엔 여러 사상가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알아보고 그걸 현실 세계에 적용해보자고 주제를 가져오곤 해요. 딱히 뚜렷한 주제를 가졌다기보다는 사회를 페미니즘으로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고 싶어 해요.

비탕: 제 생각에는 회원분들이 다들 잡식성이신 것 같아요. (웃음) ‘이거 꽂혔으니까 이거만 볼 거야’라기보다는, ‘이걸 보다 보니까 저것도 너무 궁금한데?’라는 느낌이에요. 과학철학에 관심 있는 분들도 계시고, 저는 페미니즘과 퀴어의 연결고리와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는데, 그 주제에 특출나게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잡식성인데 ‘여기서 좋아하는 반찬을 꼽으라면 약간 이거?’ 이런 정도에요.

 

전남대 여성주의 단체의 현주소

 

회로: 전남대에는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있나요?

비탕: 모임이 있어도 찾기 힘들어요. 저희는 홍보지를 붙여서 회원을 모집했지만, 다른 단위들은 지인 통해서 알음알음 가입하는 게 대부분인 것 같아요. 이미 있던 모임들도 많이 사라지는 추세고요. 그리고 소위 ‘래디컬’이라고 하는 단위가 교내에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단위와는 연락이 닿아도, 서로 생각과 길이 너무 달라 함께 활동하기는 어렵죠.

페미니즘 단위보다도 다른 것들도 하면서 여성도 다루는 단위와 교류가 많아요. 아까 말했던 〈용봉〉, 〈사회문제연구회〉처럼요. 같이 많은 사업을 하다 보니 친하기도 하고, 사람이 좀 겹치기도 하고요.

말리: 친해서 좋기는 한데, 인력이 너무 적다는 건 문제죠.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니까요.

 

회로: 전남대의 가장 큰 문제로, 교내에 여성문제를 제기할 공간이 없다는 점을 말씀해주셨어요. 인권센터는 잘 운영되고 있지 않나요?

말리: 우선 인권센터는, 학생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적어도 제게는 미지의 기구였어요. 그리고 전남대 법전원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가 인권센터에 알렸는데 인권센터가 취한 조치가 적절하거나 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성폭력 사건을 잘 처리해주리라는 믿음 가는 공식 기관이 없어요.

비탕: 인권센터는 교수님과 학교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학생들은 이런 구성보다는 학생들로 이루어진 기구에 좀 더 친밀과 신뢰를 느껴요. 그런데 전남대에는 총여학생회가 없어요. 총여학생회가 있다면 성폭력 사건에 관한 여론을 형성해야 할 때,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알리기 쉽겠죠? 총여학생회 자체가 다양한 학과의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총여학생회가 공론화해야 개인이나 동아리에서 공론화할 때 보다 각 단과대나 학생회와 연계하기도 더 쉬우리란 생각이 듭니다. 총여학생회는 회칙으로는 남아있는데, 공석인지 3~4년 됐어요.

 

(*) 강석영, 「전남대 로스쿨 성추행, 검찰과 학교는 ‘가해자 보호’에 급급했다」, 2019.11.25, 민중의소리, 링크: http://www.vop.co.kr/A00001450240.html

 

회로: 법전원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어떻게 보호받지 못했나요?

말리: 관련해서는 성명문을 준비 중이에요. 간략하게만 설명해볼게요. 우선 피해자가 인권센터에 사건을 신고했어요. 인권센터는 절차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 ‘신고가 들어왔으니, 피해자에게 할 말이 있으면 우리를 통하라’고 연락했고, 가해자는 연락받자마자 주변인에게 신고자가 누구인지 캐묻고, 술에 취한 상태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녔나 봐요. 가해자 지인들은 허위로 진술했대요.

인권센터에서 법전원 학생과에 징계 요청서를 보냈지만 학생과에서는 징계를 보류했어요. 징계가 보류되니 피해자는 가해자를 계속 마주칠 수밖에 없었죠. 피해자가 마주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고 인권센터와 법전원 학생과에 요청하니, 인권센터는 징계 요청서 보냈으니 역할을 다했다고 하고, 학생과는 관련된 규정은 없다고 했어요. 피해자가 교수에게 요청해 수업에서는 가해자와 분리됐지만, 교수는 피해자의 요청을 들어주면서도 2차 가해를 하기도 했고요. 이런 점에서 피해자 보호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어떤 두 교수가 인권센터와 법전원에 피해자 보호 조치를 이행하라 요청하니, 어떤 교수는 그 두 교수를 모함하는 메일을 보내고 이 사건을 주제로 공개토론회를 열자는 말도 했어요. 1, 2학년 학생들과 교수들, 피해자, 가해자, 가해자 지인들을 모아놓고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는 거에요. 그러면서 허위진술을 반박한 피해자 지인들은 안 부르겠다는 거예요.

 

4

인터뷰 후 〈F;act〉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된 성명문. 출처: https://www.facebook.com/jnufeministaction/photos/a.1877614775792671/2549677091919766/?type=3&__tn__=-R

 

 

회로: 형식적으로라도 피해자를 지지할 사람들도 오게끔 하지 않았나요?

말리: 안 그랬던 것 같아요. 광주여성민우회가 법전원에 공문을 보내고, 사건이 기사화된 후에야 토론회를 무기한 연기했고 지금도 안 열렸어요.

본 사건은 2018년도 말에 일어났어요. 1년이 넘도록 피해자는 계속 가해자를 마주칠 수밖에 없고, 학교와 인권센터의 대처 방식이 소위 ‘중립적’이었어요. 그래서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고요. 언론 보도 후에도 대처가 개선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F;act〉에서도 자보와 국가인권위에 탄원서를 쓰고 있어요.

비탕: 인권센터가 정말 최소한의 역할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분에게 듣기로는, 징계 요청서 전달까지 합의 기간 1달이 있었는데, 피해자분은 이를 전혀 전달받지 못했고 가해자에게만 전달됐대요. 피해자가 인권센터에 문제를 제기하니 ‘피해자에게는 알려줄 의무가 없다’고 답변했다고 하고요. 피해자를 돕는 두 교수가 받은 모함도 인권센터에 인권침해라고 신고하니, 돌아오는 답변은 ‘두 교수가 법전원과 공동체의 질서를 흩트렸기에 사과문을 써야 한다.’였어요. 두 교수님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문제를 제기하니 절차상 실수라며 그 대목을 삭제하고 다시 공문을 보내겠다고 응답했고요.

인권센터에 배정된 사람이 워낙 적다 보니 인권센터의 고충도 어느 정도는 이해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하면 안 됐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말리: 인권센터도 처음에는 무언가 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은데, 갈수록 이해할 수 없어요.

 

회로: 총학생회는 어떻게 대응했나요?

비탕: 총학생회가 없어요. 비상대책위원회는 있는데, 어떤 의견을 냈는지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말리: 전대(전남대)에서는, 총학생회가 정치적인 의견을 내는 것을 반기지 않아요. 비상대책위원회라서 의견을 내기 더 어렵겠죠.

비탕: 몇 년 사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총학생회가 형식적으로라도 의견을 냈던 것 같은데, 학생들이 ‘학생자치기구가 마음대로 의견을 내도 돼?’라는 식으로 워낙 뭐라고 하니 의견을 못 내죠.

 

회로: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을 만나보면,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에서 논의 지형을 많이 파악하더라고요. 전남대 에타 상태는 어때요?

비탕: 저희 회원들이 사실 에타를 잘 안 쓰거든요.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개강이 연기되면서 부스사업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에타에 게시한 홍보글을 게시했는데, 게시물에 신고가 누적되어 삭제되는 일이 반복되어 지금 인터뷰하는 3명이 다 계정 정지당했어요. 삭제된 게시물에 달렸던 댓글이 진짜 가관이에요. “쿵”, “쾅,” “혹시 언냐들 뷔페미니즘 하세요?” 이런 거 진짜 많이 달리거든요.

말리: 사실 댓글은 그러려니 하는데 저희가 작성한 페미니즘 게시물이 내려가는 게 가장 아쉽죠. 계속 띄우고 홍보해야 하는데 신고 누적으로 내려가니까. 그리고 신고를 먹어서 한 달 동안 글과 댓글을 못 써요. 제대로 홍보할 수 없는 게 제일 아쉬워요.

 

회로: 학생들은 변하지 않았는데, 학생회는 누구의 눈치를 보나요?

비탕: 축제에서 경영대학 축제기획단 주막에서 메뉴판 컨셉과 음식 이름을 굉장히 선정적으로 꾸몄어요. 〈F;act〉에서 이를 두고 대자보를 썼어요. 이런 식으로 자꾸 공론화를 시키고 귀찮게 하니까 그 부분은 신경 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회로: 어떤 학교에서는 새내기새로배움터나 학과에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기도 하는데요, 전남대는 어떤가요?

말리: 제가 새내기 때 학과에서 교육 들은 기억이 나요. 그런데 교육도 ppt로 10~20분 정도였고, 내용도 되게 별로였어요. 교육한 조교도 ppt 내용이 좀 별로라는 식으로 말했으니까요. 17년도까지만 해도 그리 효용성 있지도 여성친화적이지도 않았어요.

비탕: 저 신입생 때는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의 ‘ㅍ’자도 나오기 전이었으니까요. 학과마다 차이가 크다고 느껴요. 저희 과는 아직 아무 교육이 없어요. 같은 인문대라도 철학과나 사회과학대학의 사회학과에서는, 젠더를 이유로 느낀 불평등을 학과 임원들에게 말하면 도움 주겠다고 OT에서 말한다고 들었어요. 형식적으로든 실제로든 천천히 바뀌고는 있다고 느껴요.

 

회로: 전남대에 F;act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요?

비탕: ‘떼쓰는 애들’? (웃음) ‘페미니즘이란 정신병에 걸린 애들’? 딱 이 정도인 것 같아요. 전남대 상대 무지개벽이라고 있어요. 대자보 핫플레이스인데, 거기에 붙인 〈F;act〉 자보를 보고 공감하고 칭찬하는 분들도 있어요. 어떤 분은 〈F;act〉 대자보를 보고 멈춰서더니 발차기를 하시더라고요. 전대 학우들이 생각보다 〈F;act〉에 많은 사랑을 보내주고 있고, 자기의 시간을 할애해준다는 것을 알았죠 (웃음). (말리: 대자보도 떼어주고.)

그리고 부스를 열면 대놓고 사진 찍고 가기도 하고요. 학생회와 같은 공식 단체에서는 눈치를 보려는 것 같아요. 그러면 학생들도 바뀌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그러지 않네요. 학생들이 수업 중 하는 발언은 달라지지 않았고, 교수들도 신경 쓰이는 말을 많이 하고요.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고, 일상적인 반응들로 분위기를 느껴요. 전 같았으면 〈F;act〉 행동에 반응이 거의 없었을 텐데, 요즘엔 〈F;act〉가 하지 않은 일도 〈F;act〉가 했다고 착각하곤 해요.

 

회로: F;act와 직접 관련된 마지막 질문일 것 같아요. F;act를 동아리로 등록하려다 좌절했다고 들었어요. 등록 과정을 알려주시겠어요?

비탕: 총동아리연합회(이하 ‘총동연’) 소속 정식 동아리가 되려면 동아리 분과회의에서 심의 후, 동아리 전체회의에서 인준받아야 해요. 〈F;act〉는 서류나 활동도 미비하지 않았지만 분과회의에서 인준안이 부결되었어요. 그 회의에서 부결된 동아리가 〈F;act〉와 영어 회화 동아리 그렇게 2개뿐이었어요. 그런데 영어 회화 동아리는 서류를 기한 안에 제출하지 못했고요. 〈F;act〉는 등록회비도 다 냈고, 서류도 제시간에 냈어요.

〈F;act〉는 분과회의 결정에 납득할 수 없다고 말하니, 서류 내용이 미비하다는 말만 반복했어요. 그래서 전동대회(전체동아리회의)에 가서 피켓팅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짧게 발언할 기회를 얻었어요. 동아리 등록 재심사를 하려면 전동대회에서 재심사 안건이 통과가 되어야 했는데, 회의 중간에 이미 많은 대표자가 퇴장한 상태라서 안건을 올릴 수 있는 정족수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안건을 상정할지 투표도 못 해보고 전동대회가 끝났다고 들었어요.

문제는 다음인데요, ‘총동연은 재고하라’며 구호를 외쳤는데, 〈F;act〉 회원이었던 분이 도와주러 왔다가 구호를 논란의 소지가 있는 단어로 바꿔 외친 거예요. 저희 진짜 몰랐거든요. 처음에 커뮤니티에서 이 얘기가 올라온 걸 보고 모함인 줄 알았다가, 구호 외친 분이 고백한 뒤에야 상황을 파악했으니까요. 물론 저희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은 인정해요. 그 논란의 소지가 있는 단어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어요. 에타, 페이스북 대나무숲에, ‘〈F;act〉가 이런 단어를 썼다더라’, ‘쟤네 완전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떼쓴다’는 얘기가 올라왔죠. 그때부터 떼쓰는 동아리가 됐죠. 18년 3월 얘기가 아직도 나와요.

후에도 동아리로 등록하기 위해, 부결 사유를 알려달라고 대자보도 붙이고 페이스북 메시지도 보냈어요. 처음에는 총동연 회장과 부회장이 서로 엇갈리는 의견을 주다가, 결국 온 공식 의견은 총동연은 정치적인 견해를 가진 동아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거였어요.

 

회로: 처음에 서류 미비라고 한 것과도 다른 사유네요. 분과회의에서 어떤 의견이 오갔나요?

비탕: 당시 대표가 지금은 〈F;act〉에 안 계셔서 들은 얘기를 전할게요. 분과회의에서 ppt로 동아리를 소개해야 하는데, ppt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구두로 발표했고, 동아리 대표자들의 질문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질문은 〈F;act〉의 지향을 묻기보다는 “남자가 들어갈 수 있느냐?”, “페미니즘이라니 너무 여성에게 치우친 것 아니냐?”와 같은 사상검증에 가까웠어요. 〈F;act〉가 지향하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요.

 

마치 여성처럼 주변화되는 지역

 

회로: 광주에는 광주여성민우회가 있는데, 같이 사업을 기획하기도 하나요?

비탕: 예전 회장님이 민우회에서 열심히 활동하셨어요. 그렇게 민우회와 잠깐 연이 닿았고, 광주여성민우회 행사에 초대받기도 했었죠. 같이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대표적으로는 ’성폭력 피해에 공감하는 첫사람 프로젝트‘가 있네요. 회장님이 〈F;act〉를 나가시고 나서는 점점 같이하는 빈도수가 줄어들었고, 지금은 연결이 거의 없어요. 저희가 소극적이었나 싶기도 하고, 아쉽죠.

 

회로: 서울과 광주의 가장 큰 차이로 물리적 거리를 꼽아주셨어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겠어요?

말리: 물리적 거리가 문제가 된다는 것 자체가 서울 중심성을 보여주죠. 광주에서는 더 많은 내용을 보여주거나 사람을 모을 수 없어서 물리적 거리가 문제가 되죠. 광주의 여성 문제는 여성 문제라기보다도 지역의 문제로 다뤄지고요. 여성 이슈 말고 다른 이슈에서도 서울 밖 문제는 서울 밖 전체의 문제로 얘기되기도 하고요. 인적 자원도 부족하죠. 서울엔 사람도 많고, 좀 더 개인적인 도시라고 생각해요. 서울에는 타지에서 온 사람이 많은 반면, 광주에는 원래 광주 살던 사람이 많으니 다양성에 관한 고려가 조금 부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요약하면 지역은 여성들처럼 주변화되죠. 지역에서 일어난 문제는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의 문제로, 중요하지 않게 다뤄져요.

예를 들면 금호타이어 문제(*)를 두고 지역이 망한다고 하지 대한민국이 휘청거린다고 말하진 않잖아요. 점점 인구가 서울에 집중되다 보니 저부터도 지역의 일에는 관심을 덜 갖고요.

동덕여대 교수가 수업 중 성희롱 발언한 사건(**), 홍대 미대 몰카 사건(***)은 굉장히 큰 이슈가 됐잖아요. 전남대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법전원 사건 그리고 미대 몰카 사건이 있었거든요. 사건들을 단순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서울권 사건들과는 확실히 주목도가 달랐죠. 내 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듯, 뭔가 소외당하는 기분마저 느꼈어요. 이런 얘기를 하면 ’피해의식 아니냐‘, ’너도 서울로 오라‘고 얘기하기도 하고요.

인프라 차이는 퀴어퍼레이드에서 느껴요. 광주 퀴어퍼레이드 자원봉사를 간 적이 있어요. 청소년이 굉장히 많았어요. 청소년들이 서울 쿼어퍼레이드를 못 가서 지역 퀴어퍼레이드에 많이 오고, 이게 퀴어퍼레이드가 중요한 이유라는 얘기도 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지역에 가려지고 지워지는 존재가 많다고 생각해요.

 

비탕: 말리 님이 본인부터 지역 일에 관심 안 갖게 된다는 말에 정말 공감해요. 법전원 사건이 2018년에 일어났어요. 그런데 제가 이 사건을 안 건 불과 3달 전이에요.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이슈를 접하다 보니, 크게 공론화되는, 결과적으로 서울중심적인 정보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지역, 학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보다도요.

 

(*) 한산, 「금호타이어 비정규직 노조 광주공장 점거…”해고 철회”」, 2019.01.07, 뉴스1. 링크: http://www.news1.kr/articles/?3518613

(**) 문예슬, 「검찰, ‘제자 성추행’ 혐의 동덕여대 하일지 교수 기소」, 2018.12.17, KBS, 링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096521&ref=A

(***) 손정빈, 「[종합]’홍대 미대 몰카’ 女모델 징역 10개월 선고…”피해 회복 불가”」, 2018.08.13, 뉴시스, 링크: http://newsis.com/view/?id=NISX20180813_0000389218&cID=10201&pID=10200

 

회로: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비탕: 건강을 잘 지키자! 페미니즘을 하다 보면 다른 이에게 공감해서 본인 정신건강에 해가 되기도 하고, 주변 시선, 댓글 하나에 상처받고 주춤하기도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한편으로는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요. ‘내가 한 것도 없는데, 겨우 이런 말로 주춤해도 되나?’ 예전에는 상처받는 말들과 자괴감으로 괴로웠는데, 지금은 ‘현재의 나를 돌볼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나도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건강을 잘 지킵시다!

말리: 저도 비슷해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너무 상처받지 말고, 아프지 말고, 자신을 잘 돌보자고요.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처럼 보이죠. 동아리도 안 되는데 세상이 바뀌어? 꾸준히 균열을 만들려는 사람들 덕에 세상이 무너졌다 세워지기를 반복한다고 생각해요. 비록 그 과정이 너무 느려 안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바꾸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승옥: 저는 앞으로도 계속 공부하고 싶어요. 요즘은 과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많은 분야를 접하고 그것을 사회 변혁과 연결하고 싶기도 해요. 이렇게 하나하나가 조금이나마 연결될 때 공부하는 쾌감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책도 많이 읽고 공부 열심히 하려고요.

 

나만 억압당하지 않거나 나만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말리 님 말씀이 인터뷰를 정리하는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넘어선 사회에 관한 인식틀이므로,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와 페미니즘 외 다른 이와 다른 세계관에 무관심해서는 페미니즘이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F;act는 이 점을 잘 이해하고 더 많은 이에게 공유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말리 님 말씀이 잊히지 않는 것은, 단지 그 말 한마디 때문이 아니다. F;act가 여성과 무관해 보이는 문제를 여성과 연관 지으려는 노력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페미니스트 조직이 더 널리 주변과 소통하기를 바라며 인터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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