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심장은 터질듯이 슈팅은 미친듯이, FC 우먼스플레잉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05: 심장은 터질듯이 슈팅은 미친듯이, FC 우먼스플레잉 인터뷰

 운동장에 나온 선수는 악착같이 이기고 싶다. 이기기 위해 땀을 흘리고 거칠게 부딪히고 골대까지 숨차게 달린다. 

 여성은 그런 선수의 몸이 될 수 없다는 사회. 그 시선은 철저하게 여성을 운동장 밖으로 내몰았다. 지난 2월 대전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FC 우먼스플레잉(이하 FC우플)이 창단되었다. 운동장에 나온 여성들은 보여지는 몸을 거부하고 오로지 이기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비가 내린 운동장에서 경기를 마치고 곧장 인터뷰에 응한 FC우플의 선수들은 난생 처음 경험하는 몸의 연대가 전에 없이 새롭고 단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페미회로의 인터뷰어 고다혜와 은윤혜 는 ‘회로’로, 인터뷰이인 FC우플의 멤버 권사랑님은 ‘사랑’, 지현님은 ‘지현’, 김한솔님은 ‘한솔’ , 선아님은 ‘선아’ 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멩이, 배현주, 오성진, 우연, los(이상 가나다순)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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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우먼스플레잉의 모습. FC우플 제공.

 

축구하는 여성들, FC우먼스플레잉

 

회로: FC우플은 어떤 단체인가요?

사랑: FC우플은 2018년 2월부터 카이스트 여성주의 연구회 마고(*)와 대전 여성주의 잡지 <BOSHU> (**) 가 결합해서 진행하고 있는 초급 여자 축구팀입니다. 발이 마음대로 잘 안되는 분들이 모여서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모두 아는 그 운동장을 마음껏 누려보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에서요. 단체의 전체 인원수는 약 20명 내외입니다. 강사님이 따로 계시고요.

작년에 <BOSHU>가 여성축구 원데이 클래스를 했을 때, 온 힘을 다해서 뛰어보고 공을 차본 건 처음이라 너무 재밌었어요. 한 번으로 끝내기는 참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마고에서 여성 축구팀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해서 창단했어요.

*카이스트 여성주의 연구회 마고는 카이스트 기반의 여성주의 단체이며, 페미회로와도 연대를 맺고 있다. 2016년 봄 여성주의 스터디를 위해 결성되었다. 강남역 여성혐오 범죄 피해자 추모공간 운영으로 대외 활동을 시작하여 카포전 VOK 동영상 논란 입장문 발표, 다큐멘터리 <성평등을 코딩하라> 상영 (with 페미회로), 카포전 오버워치 여학생 대회 (with 걸스로봇, 옵티머스, 포스텍 총여학생회), 생리컵 간담회 협력 (with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등을 다양한 학내 행사를 개최하고, 여성주의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다. (카이스트 여성주의 연구회 마고 페이스북 홈페이지 참조)

**<BOSHU는 대전의 여성주의 잡지이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와 주변을 위해 잡지를 만든다.” 잡지 발행 이외에도 여성 주짓수 팀을 운영하고, 페미니즘 글쓰기 강좌,  여성 운동회, 여성 연기 원데이 클래스 등을 주최한다. (BOSHU가 운영하는 브런치 참고: https://brunch.co.kr/@boshu#articles

 

회로: 각자 포지션은 어떻게 되세요?

사랑: 때마다 달라요. 골키퍼도 하고 수비도 하고 공격도 하거든요. (지현을 보며) 언니는 주로 공격을 해요.

지현: 네, 저는 주로 공격수를 하고, 사랑이는 골잡이를 해요.

사랑: 저는 미드필더도 맡아요. 이게 축구랑 풋살이랑 조금 다른데, 축구는 11:11로 한다면 저희는 한 팀에 5~7명씩 두 팀으로 나눠서 할 정도로 인원이 적고, 또 풋살 경기장은 훨씬 좁다보니까요. 그때 그때 자기가 맡는 포지션에 맞춰서 경기가 진행되는 편이에요.

 

회로: 강사님은 어떤 분인가요?

선아: 핸드폰을 떨어뜨리면 발로 한 번 튕겨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그런 분!!

사랑: 아, 저건 너무 과장입니다. 튕겨서 받는정도는 아니고요 (웃음). 엄청 섬세하고 체계적으로 코칭을 해주세요.

지현: 선수셨고, 지금은 유소년 교육도 하세요, 지금도 대덕구보라미 여성 축구단에서 선수로 활동하신다고 알고 있어요.

사랑: 코치님이 진짜 인내심이 대단하세요. 저희가 진짜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였을 때도 잘 한다고 계속 다독여 주셨어요. 뭘 잘하는지 알려주고 칭찬해주세요. 오늘은 패스가 좋았다거나, 어시스트가 괜찮았더거나. 그런 식으로 구체적인 칭찬을 해주셔서 좋아요. 다그치기보다는 격려해서 저희 실력이 늘게 도와주시는 멋진 코치님입니다.

 

회로좋은 강사님을 만나셨군요! 아마 이 글을 읽는 분 중 풋살을 잘 모르거나 해보지 않은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풋살 처음 시작할 때 얘기가 궁금해요.

지현: 처음에는 공을 한 번 차면 폐가 터질 거 같았어요. 진짜 오분만 지나도 ‘아, 나 죽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었어요 (웃음). 근데 점점 버티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눈에 보여요.

또, 새로운 친구들이 계속 오잖아요. 예진이라는 친구가 새로 왔을 때, 골키퍼가 아닌데 자기도 모르게 막 손으로 공을 막은 거예요.

선아: 근데 자기가 너무 잘 막은 줄 알았다고(웃음).

지현: 그냥 공이 오니까 손으로 탁 멋지게 잡고, 사람들도 막 소리를 질렀는데 알고 봤더니 골키퍼가 아니었던 거죠 (웃음).

 

회로: 아무래도 처음 축구나 풋살을 하면 규칙을 잘 모르기도 하겠네요. 그러고 보니 새로 오는 멤버들은 어떻게 FC 우플을 알고 오는지 궁금한데요, 보통 어떤 경로로 들어오시나요? 

사랑: <BOSHU> 가 홍보를 열심히 해서 <BOSHU> 독자 분들이 좀 오세요. <BOSHU>가 충남대 사람들과 같이 충남대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그 동아리에서 소식을 듣고 오신 분들이 좀 많은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이 참여하시는 거 같아요.

지현: 친구가 하는 거 구경 왔다가 그 다음주에 가입한 친구들도 좀 있고요.

사랑: 자기가 하다가 여동생도 함께 한 자매도 있어요. 지인들이 계속 모인다는 자체가 활동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뜻인 거 같아요. 정말 너무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지현: 또, FC우플 포스터를 제작해서 여기저기 많이 붙여놓아요. 사람들이 많이 갈만한 장소나 아는 술집 같은 데다가 붙이는데 그걸 보고 오는 분도 있어요. 대흥동에 있는 술집 어디서 홍보 포스터를 보고 왔다고 하시면서. 그랬을 때 기분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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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운동. FC 우플 제공

회로: 이야기를 듣다보니 세 분 케미가 너무 좋아요. 말도 척척 주고 받으시고요. 세 분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되었나요? FC 우플이 계기가 되었나요? 

사랑: 아, 저희는 <BOSHU> 멤버예요.

지현: 사랑이가 에디터, 저는 사진, 선아는 디자인을 맡아요. 근데 <BOSHU> 팀원들이 FC우플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다들 다쳐서 그만두고 주로 저희 3명만 나오는 것 같아요.

사랑: 축구를 하다 보면 진짜 빨리 친해져요. 저희도 이런 저런 모임 하면서 굉장히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지만, FC우플에서 만난 분들이랑 정말 빠르고 돈독해진 것 같아요. 회식도 자주 하고 매일 술 먹고 집에 놀러 가요. <BOSHU> 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해도 같이 축구 하는 분들이 많이 와주셔서 너무 고맙고 든든해요. 저희가 굉장히 아쉬워하는 게, 여성이 팀 스포츠를 제대로 즐길 기회가 잘 없다는 점이에요. 팀 스포츠를 하게 되면 내부 결속도 단단해지고, 재미도 있는데 그런 기회가 우리는 없었다는 거죠.

충남대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자는 얘기도 FC우플 활동할 때였어요. FC우플에서 매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잖아요. 여기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확신이 있고.

 

여자와 축구가 만났을 때

회로: 축구를 7개월 째 하고 있는데, 몸과 행동의 변화가 궁금해요.

선아: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 수 있는 운동이 전혀 없었어요. 자전거도 못 타고, 수영도 못 하고. 그러니까 FC우플에서 처음 운동을 접한 셈이죠. 아직 많이 서툴고, 다른 팀원들에 비해 느는 속도도 느리지만 전보다 조금씩 나아진다고 느껴요.

뛰는 걸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어요. 학교에서 체육 수행평가를 칠 때는, ‘다른 애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사람들이 내 뛰는 모습을 어떻게 볼까?’하고 계속 보여지는 몸으로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의 시선을 인식하지 않는 단계에 온 거 같아요.

지현: 일단 몸이 좋아져요. 몸이 가벼워졌고, 체력이 점점 좋아지는 느낌? 처음에 공을 찼을 때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근데 이제 내가 한 패스가 골로 이어지고 하면서 점점 자신감을 얻고 그게 일상생활로도 이어지는 거예요. 운동하면서 되찾는 게 많아요.

예전에는 축구하러 간다고 하면 ‘사람들이 여자가 축구를 하러 간다고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 시선이 되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축구하러 간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할 수 있고. 오히려 유니폼 입고 돌아다닐 때, ‘우리는 운동하는 여자이다’ 이렇게 드러내는 게 너무 좋아요.

한솔: 맨 처음에 경기를 할 때 8분을 뛰었어요. 2분을 골키퍼를 하고 6분을 뛰었는데 제가 얼마나 뛸 수 있는지를 모르니까 그냥 주어진 시간 동안 공만 보고 맥시멈으로 아무 생각없이 달렸어요. 어디부터 어디까지 뛸 수 있는지를 모르니까. 그랬더니 팔분 뛰었는데도 경기 끝나고 숨이 안 멈추는 거예요. 집에 갈 때까지 너무 헐떡여서 매우 당황스러웠어요. 체력이 안 좋았던 이유도 있지만, 사실 제가 뛰어본 적이 없어서 내 한계를 전혀 모르니까 그 극한으로 저를 밀어 넣었다고 생각해요.

체력이 많이 늘어서 10분, 20분 뛸 수 있게 된 것도 있지만, 이제 제가 얼마나 뛸 수 있는지, 어느 정도해야 집에 온전히 돌아갈 수 있는지 알게 된 것도 큰 결실이에요.

사랑: 저는 선아랑 다르게 제 운동신경을 되찾았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 운동장에서 혼자 공 차고 놀았는데 그 때 막 사람들이 웃었거든요, “아, 여자애가 공차네.” 그 때 저는 공을 차는 게 너무 재밌었는데, 수업시간에 단 한 번도 축구를 시켜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하려니 애들은 그렇게 축구를 원하지 않고, 그래서 뭔가 아쉬운 환경에서 컸어요.

대학생 되고 나서는 그냥 완전 집에만 있는 사람이 됐어요. 그러다 보니 체력과 정신 모두에서 힘이 빠진 사람이었는데 축구를 시작하고 다시 엄청 활동적인 사람이 됐어요. 남자애들은 분명히 자기 체력을 그렇게 기를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중학교 때도 다같이 축구하고 농구하고,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고.

 제가 몸을 쓰는 방식도 달라졌어요. 움직임이 좀 커지고, 과감해지고. 복장도 맨날 타이트한 바지를 입다가 이렇게 편한 바지를 입어보니까 완전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원래는 축구하는 날 갈아입을 옷 챙겨서 나왔었는데, 이제는 그냥 이렇게 나오고 들어가요. 그리고 이제는 땀을 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됐어요. 항상 냄새 안나야 하고, 화장 지워지니까 땀난 얼굴이면 안 되고 이랬는데 이젠 땀이 나면, ‘그래, 움직이는데 당연히 땀이 나지.’ 이렇게 느꼈어요.

지현: 냄새는 나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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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모습. FC 우플 제공

 

회로: 아직까지 여학생들이 축구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해요. 어른들이 여학생들에게 어릴 때 운동을 시키지 않고 여학생들은 운동장에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한솔: 저는 고정관념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분홍색, 파랑색, 공주님, 왕자님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게 보통 여자애들은 피구를 하고 남자 애들은 축구를 했었어요. 그 중에 남자 애들 사이에서 축구를 하는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어요. 벤치에 앉아있는 우리들은 그 여자아이가 너무 이상한거예요. ‘쟤는 여자인데 왜 남자 아이들 사이에 껴서 축구를 하지?’ 심지어 그 친구가 축구를 하다 골을 넣고 웃통을 벗었어요.  그때는 그 장면을 보고 경악하고 아이들끼리 수군수군댔어요. 게다가 선생님들이 남자 아이들한테만 축구를 시키니까 제가 스스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선아: 축구는 남자스포츠라고 딱 정해놓은 것 같아요. 얼마전에 ‘천방지축 하니’라는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는데 하니가 축구를 되게 하고싶어해요. 그런데 축구 팀원인 남자애가 축구는 여자가 하는 운동이 아니라서 들어올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명확한 이유 없이 축구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여기는 거죠.

이런 고정관념이 정말 억울할 때가 종종 있어요. 저희가 사용하는 운동장에서 종종 가족끼리 와서 대여섯살 남자애가 아버지랑 공을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그걸 보니까 너무 억울한 거예요. 지금 저는 7개월만으로도 축구 실력이 점점 는다고 느끼는데 나도 5살 때부터 축구를 했다면 20년 지난 지금은 얼마나 잘 찰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구요.

선아: 저희가 회원 모집 포스터를 만들면서 외국의 여성 축구 역사를 찾아보았어요. 포스터에 사용한 사진이 인기 많았던 해외 여성 축구팀이었어요. ‘요즘 여성 축구는 못해서 재미없고 남성 축구는 잘해서 인기가 많다. 그래서 남성 축구 시장이 커졌다’고 얘기하잖아요. 사진 속 여성 축구팀이 활동할 당시에는 여성 축구 경기가 남성 축구 경기보다 관객이 훨씬 많고 여성 선수가 축구를 잘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FIFA에서 공식적으로 여성 축구 경기를 금지했어요. 그런 방식으로 여성 축구 시장 성장을 경계하고 여성 축구 역사를 잘라냈어요. 현재 여성 축구 시장  규모가 더 작은 현실을 단지 신체적인 차이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사랑: 사회가 여성을 고정관념에 가두는 것 같아요. 여자 아이들은 땀 나는 것을 싫어할거야. 하지만 그런 고정관념은 기득권층인 남성과 사회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해요. 남성적인 시선에서 여성들은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싫어한다고 바라보는 것 같아요. 교육과정도 여자들끼리 팀플레이 할 기회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고. 그리고 여자들이 경쟁을 할 때 이기고 싶어하는 마음조차 억압받는 느낌이 있어요. 승부욕을 보이거나 너무 의욕적이면 기가 세다, 남자를 이기려고 든다라는 반응이 있거든요.

 

회로: 축구를 한다고 말했을 때 주변에서 부정적인 시선은 없었나요?

지현: 저는 축구를 겨울에 장대동 실내풋살장에서 시작했거든요. 퇴근 후에 축구를 하기 때문에 회사 사람들은 금요일 퇴근 후에 제가 약속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축구를 한다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남자들이랑 하는 줄 알고 있다가 여자들과 팀을 만들어서 축구를 한다는 걸 듣고 “너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아?”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이후로 더 이상 축구 얘기는 못하겠더라고요.

선아: 저는 축구를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너 페미니스트야?라고 물었어요. 너무 웃기지 않아요?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축구를 할 수 없다는 건지. ‘너 완전 그 쪽으로 간 거야?’라는 의미였어요.

사랑: 제 경우는 부모님이 제가 오빠보다 공차는 걸 좋아하고 오빠보다 운동을 잘하는 걸 아셨어요. 그걸 계속 보셔서 저를 독려하셨어요. 그런데 특유의 말투가 있어요. ‘아이고, 축구~ 그래. 축구 너가 해야지’라는 미묘한 뉘앙스였어요. 기분이 나쁘더라구요.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제가 속해있던 동아리에 남자들 축구 소모임이 있었어요. 그 때 장난 삼아서 여자들끼리 연습게임을 시킨 적이 있어요. 여자들이 진지하게 경기에 임했는데 그런 저희의 모습을 보고 웃더라구요. 여자가 축구하는 모습을 가소롭게 보고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조롱거리가 되요. 사실 지금 카이스트에서 축구할 때도 기분 나쁜 순간이 많거든요.

지현: 선아가 골키퍼를 할 때였어요. 그 때 트랙을 돌던 남자들 중 하나가 골키퍼 예쁘다고 번호 따자고 저희 경기 중에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한 적도 있어요. 그리고 풋살장이 여러개라 저희 말고 다른 팀들도 와서 축구를 하거든요. 저희가 축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팀에서 신입으로 들어온 남자한테 ‘야, 여자애들도 너만큼 하잖아’라고 말하는거예요. 우리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저도 모르게 위축되고 시선이 느껴지는 거에요. 단순히 우리를 쳐다보는게 아니라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쟤네는 축구 못하는데 왜 해?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여자들이 그렇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남자들만 유독 크게 말하더라고요.

한솔: 저희 선생님은 선수로도 활동하시는 분인데, 저 사람은 좀 잘한다고 말하더라고요.

 

회로: 주변 반응 중에서 페미니즘과 축구를 연결지어 생각하는 부분이 인상깊었어요. 페미니즘과 축구의 연결고리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현: 저희 FC우플이 큰 호응을 받은 이유가 답이 될 것 같아요. 여성 축구 단체는 사실 찾아보면 많이 있거든요. 그런데 저희 FC우플이 많은 호응을 받아서 신기해요. 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단체가 몇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홍보해서 그런지. 어떤 분이 지역 구마다 여성 축구단이 있는데 왜 거기 들어가지 않고 FC우플을 만들었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사랑: 서울에서 축구 원데이 클래스를 했었어요. 그 곳에서 이야기했는데 이미 결성된 구단은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춰야 들어갈 수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처음부터 아마추어 축구팀으로 홍보해서 큰 호응을 받은 것 같아요.

아까 FIFA의 사례처럼 여성이 축구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잖아요. 여성의 팀스포츠가 자연스럽지 않고 성 고정관념이나 불평등 때문에 여성이 축구를 못했던 거잖아요. 그래서 비전문 여성이 축구를 하는 활동 자체가 페미니즘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하지 못했던 것, 금기시하던 것을 하는 것이 페미니즘을 실천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여성이 축구를 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성주의 시선을 갖지 않은 보통 여성이 축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 축구하는 여성을 대단하게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라 축구를 좋아하고 취미로 갖는 여자로 바라보는 세상이요. 카이스트라는 개방된 공간에서 여자가 축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아직도 목마르다

 

회로: 지금까지 FC우플 활동하면서 느낀 점과 FC우플이 앞으로 하고싶은 것이 있는지 궁금해요.

지현: 코치님께서 연습게임을 하자고 하셔서 정림중학교 여자축구부와 경기를 몇 번 했는데요, 그 팀이 공식적으로 대전 전체에서 1등을 하고 전국대회에 진출했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기분이 좋았고, 저희 FC우플도 잘해서 다른 여성축구팀과 경기하고 싶어요. 하루는 코치님 통해서 여성 풋살 협회장님을 본 적이 있는데 정식 팀을 만들어서 공식대회에 나가보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은 여성 축구 팀이 별로 없어서 대회를 열기 어렵지만 앞으로 저희 팀이 잘 되어서 공식적인 대회도 많이 나갔으면 좋겠다는 조언을 하셨어요. 협회장님 말씀대로 실력을 갖춰서 전국대회도 나가고 메달도 따고 싶어요.

선아: 경기 시작하기 전 묘한 긴장감이 있거든요. 그런 긴장감을 외부에 다른 팀과 경기하거나 외부 대회에 나가서 느껴보고 싶어요. 너무 긴장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떨림을 느껴보고 싶어요. 그리고 먼 훗날 이야기지만 대회 하나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요.

사랑: 저희가 2월부터 시작해서 축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지만 많이 성장했어요. 그만큼 저희가 잘하고 의지가 엄청나거든요. 골 한 번이라도 더 넣고 싶어서 미쳐 날뛰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축구한 날 일기를 쓰면 축구를 한 순간을 되돌아봐요. 그 시간이 일주일에서 가장 평화롭지만 가장 치열한 시간이에요.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기에 집중면서 아무런 걱정도 스트레스도 없이 운동장을 달리고 공을 찼어요. 동료들도 모두 공감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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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칭하는 모습. FC 우플 제공

 

회로: 축구를 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사랑: 축구를 할 때는 내 승부욕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어요. 서로 골 넣고 싶어서 아득바득해도 아무도 뭐라고 지적하지 않아요. 저희 FC우플에 들어 올까말까 고민하시는 분들께 얘기하고 싶어요. 여기가 당신이 있어야 할, 안전한, 즐거운 곳이라고요.

지현: 다들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경기 중에 서로 치고 다녀요. 그만큼 축구를 좋아하고 즐기고 있기 때문에 치열하게 경기하고 승부욕이 생겨요. 그리고 저희와 축구를 하면 찝찝하지 않은 땀을 흘릴 수 있어요. 다같이 땀 흘리고 걸어가는 기분이 좋거든요. 그런 느낌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혹시 축구 초보라서 고민하신다면 저희 코치님이 잘 가르쳐 주시니 걱정 말고 들어오시면 됩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FC우플에서 팀을 결성한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들고, 그 속에서 느낀 감정, 그들의 끈끈함을 볼 수 있었다. 새롭고 신선했다. 그리고 많은 여성들이 아직 겪지 못한 경험이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여성이 축구를 취미로 가져도 이상하지 않을,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마음껏 날뛰어도 아무 비난받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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