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원자력 통제 정책 연구자, 박성윤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31: 원자력 통제 정책 연구자 박성윤

2020년 6월 4일,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박성윤 연구원을 만났다. 그는 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STP)에서 석사를 마친 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에서 국제협력, 정책 업무를 하고 있다. 회사에 입사하자마자 페미니스트임을 밝혔다는 박성윤 연구원. 그에게 원자력 통제 정책이란 무엇인지, 그가 원자력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업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들어보고자 한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우연, 위선희는 ‘회로’로, 인터뷰이 박성윤 님은 ‘성윤’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선희,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회로: 안녕하세요, 박성윤 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윤: 안녕하세요, 박성윤이라고 합니다.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를 마쳤고,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석사를 받았습니다. 현재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 Korea Institute of Nuclear Nonproliferation And Control) 대외협력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 박성윤 님 (사진: 박성윤 제공)

진로와 전공

회로: 진로가 계속 바뀌었네요. 물리학과에서 과학기술정책대학원으로 진학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전공을 바꾼 이유와 그 과정을 듣고 싶어요.

성윤: 세대 별로 본인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사건들이 있어요. 최근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충격적인 사건이듯, 저에게는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제 삶의 전환점이었어요.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과학기술로 얼마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들이 못하는 걸 빨리 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아요. 저도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엘리트 과학자로 성장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과학기술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게 됐어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그 사고로 인해서 고통 받았고 아직도 받고 있잖아요. 그래서 학부 때 졸업 연구(URP*)로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소속 교수님께 지도를 받아 원전 지역주민들의 후쿠시마 사고 전후 인식 조사를 했었어요.

(*)3.11 후쿠시마 사고: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으로 인해 JMA 진도 7, 규모 9.0의 지진과 해일(쓰나미)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 1~4호기에서 발생한 사고.

(**)URP: Undergraduate Research Program, KAIST에서 학부생을 대상으로 소정의 연구비를 제공하며 학부생 스스로가 원하는 주제를 제안해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제도.

회로: 성윤 님은 물리학과에 속했는데 과학정책기술대학원 교수님이 URP 지도를 해주셨네요? URP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하면서 대학원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나요?

성윤: 네,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담당 교수님께서 흔쾌히 지도를 해주셨어요. 그때 원전 주변 지역주민의 후쿠시마 사고에 대한 인식을 인터뷰 했어요. 그렇게 논문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전공이 바뀌게 된 것 같아요. 관심사가 바뀐 거죠. 그 이후로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이 운영하던 에너지 정책 싱크탱크인 Green Korea 21에서 인턴십을 했었고,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가 개최되던 시기 아산정책연구원의 대학생 교육 프로그램인 아산서원에서 인문학적인 공부를 한 뒤에 미국에 있는 싱크탱크인 CNI (Center for the National Interest)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물리학보다 과학기술정책 쪽이 더 적성에 맞겠다는 확신이 든 것 같아요. 이 분야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게 더 많을 거라 생각해서 큰 고민 없이 과학기술정책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회로: 아산서원에서 했던 연구도 원자력 인식 연구와 연관이 있나요?

성윤: 제가 아산서원에 들어갔을 때 동기 중에 원자력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원자력 관련 인턴십에 지원자가 몰렸어요. 그래서 저는 동아시아 지역 에너지 정책과 관련한 부서에서 인턴십을 수행했습니다. 중국의 미세먼지 관련 규제 체제를 분석하거나 중국 내 에너지 비율 등 자료 조사를 수행했어요.

회로: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는 원자력 정책을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으셨네요. 어떤 연구를 하셨는지 설명 해주세요.

성윤: 대학원은 처음부터 원자력 정책을 연구하려는 목적으로 입학했어요. 학부 때 한 연구를 심화시키고 싶었죠. 안전과 대중 인식의 관점에서 원자력 정책을 더 연구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학원 입학 후 전 원자력연구소 소장이셨던 고 한필수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회고록을 쓰는 일을 지원하면서, 원자력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생각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원자력을 배우고, 연구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원자력 안전에 관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인식 격차 연구는 많이 이루어졌는데, 비확산과 통제 등 다른 원자력 이슈에 대한 전문가의 인식은 연구가 많이 안 됐거든요.

회로: 그러면 ‘핵비확산’을 연구하신 건가요?

성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핵비확산 주제를 유의 깊게 보다가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2004년 미신고 핵물질 실험 사건을 접했어요. 우리나라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더욱 강화된 안전조치 접근법인 추가의정서를 도입할 당시에, 우리나라의 핵활동에 관해 확대된 정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과거 허가받지 않은 농축도의 핵물질을 사용한 실험을 진행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에요. 이 사건을 연구하면 우리나라 핵비확산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국내에서 핵비확산을 잘 이행하기 위한 제도와 인프라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를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연구 주제가 괜찮다는 지도교수님의 조언도 있었고요.

성윤 님의 졸업 논문 초록.

회로: 인터뷰를 하기 전에 성윤 님의 논문을 읽어보았어요. 논문에 ‘핵 투명성’이라는 용어가 주로 등장하던데요, 구체적으로 ‘핵 투명성’은 무엇을 지칭하나요?

성윤: 핵 투명성(Transparency)과 정보의 개방(Openness) 정도가 다른 개념이라는 게 제 논문의 핵심이에요. 사람들이 두 개념을 혼동하고 종종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핵 투명성은 정보 개방 그 자체보다 좀더 정치적이고 정책적인 용어입니다. ‘얼마나 투명해야 국제기구에서 요구하는 대로 투명한가’라는 질문을 물었을 때, 단순히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을 많이 주는 것이 핵 투명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보다는 어떤 나라의 핵 비확산 의지와 역량에 관한 종합적인 신뢰를 뜻합니다.

그래서 저는 ‘핵 투명성’이 기구, 제도, 정책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어떻게 이식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사례 연구로서 2004년 전후로 대한민국이 정치적 선언 등을 통해 투명성에 관한 의지를 천명하고, 독립적인 원자력 통제 기관과 그 기관을 컨트롤할 수 있는 정부 부처를 설립하고, 핵 비확산 이행 전문성을 쌓아 나갔는지 서술했습니다.

회로: 그렇군요. 핵 투명성 개념을 좀 더 설명해주세요. 그럼 정보 개방과 투명성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나요?

성윤: 개방 정도는 단순히 정보를 얼마만큼 공개할 건지 그 척도를 얘기하는 거예요. 정보의 양이나 질에 관한 건 절대적으로 평가가 가능한 영역이니까요. 그런데 투명성은 정보를 주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받는 사람의 평가가 내포된 용어에요. 정보를 받는 사람의 선입견이나 신뢰도 등이 포함된 개념이죠. 즉 핵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보를 많이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보를 어떻게 생산하고 보여줄 것인지를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해요.

회로: 핵 투명성이 높아진다는 건 대중이 핵을 잘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인가요?

성윤: 여기서 투명성은 정책의 투명성은 아니에요. 국제 핵 비확산 레짐 하에서 한 국가가 원자력을 얼마나 평화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를 국제사회에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투명하다는 거예요.

회로: 그럼 정보 수혜자가 국제사회가 되는 거고 정보제공자는 국가가 되는 거네요.

성윤: 그렇죠. 국제원자력기구(IAEA;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를 대표로 하는 국제사회가 평가를 하는 거에요.

국제원자력기구의 공식 로고

회로: 정보를 공개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군요. 그럼 한국의 핵 투명성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거 같나요?

성윤: 제가 일하고 있는 기관의 목표가 한국의 핵 투명성을 제고하는 거에요. 핵 비확산 체제의 근간은 핵 비확산조약(NPT; Treaty on the Non-Proliferation of Nuclear Weapons)이에요.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조약으로, 핵무기를 가지고 있던 기존의 국가들만 핵무기를 가지고 앞으로는 핵무기의 양을 더 늘리지 말자는 게 NPT의 핵심입니다.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핵 보유국에서 핵 미보유국으로 넘기지 않고 원자력은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하자는 조약이에요.

그러면 그 조약을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검증하고, 이것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의 문제가 남죠. NPT 3조(*)에 따라 그 검증을 국제원자력기구가 합니다. 사찰관들이 각 국가를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방문해요.

(*) NPT 3조

3조

1. 핵무기 비보유 조약당사국은 원자력을, 평화적 이용으로부터 핵무기 또는 기타의 핵폭발장치로 전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본 조약에 따라 부담하는 의무이행의 검증을 위한 전속적 목적으로 국제원자력기구규정 및 동 기구의 안전조치제도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와 교섭하여 체결할 합의사항에 열거된 안전조치를 수락하기로 약속한다. 본조에 의하여 요구되는 안전조치의 절차는 선원물질 또는 특수분열성물질이 주요원자력시설내에서 생산처리 또는 사용되고 있는가 또는 그러한 시설외에서 그렇게 되고 있는가를 불문하고, 동 물질에 관하여 적용되어야 한다. 본조에 의하여 요구되는 안전조치는 전기당사국 영역내에서나 그 관할권하에서나 또는 기타의 장소에서 동 국가의 통제하에 행하여지는 모든 평화적 원자력 활동에 있어서의 모든 선원물질 또는 특수분열성물질에 적용되어야 한다.

2. 본 조약 당사국은, 선원물질 또는 특수분열성물질이 본조에 의하여 요구되고 있는 안전조치에 따르지 아니하는 한, (가) 선원물질 또는 특수분열성물질 또는 (나) 특수분열성물질의 처리사용 또는 생산을 위하여 특별히 설계되거나 또는 준비되는 장비 또는 물질을 평화적 목적을 위해서 여하한 핵무기 보유국에 제공하지 아니하기로 약속한다.

3. 본조에 의하여 요구되는 안전조치는, 본 조약 제4조에 부응하는 방법으로, 또한 본조의 규정과 본 조약 전문에 규정된 안전조치 적용원칙에 따른 평화적 목적을 위한 핵물질의 처리사용 또는 생산을 위한 핵물질과 장비의 국제적 교환을 포함하여 평화적 원자력 활동분야에 있어서의 조약당사국의 경제적 또는 기술적 개발 또는 국제협력에 대한 방해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4. 핵무기 비보유 조약당사국은 국제원자력기구규정에 따라 본조의 요건을 충족하기 위하여 개별적으로 또는 다른 국가와 공동으로 국제원자력기구와 협정을 체결한다. 동 협정의 교섭은 본 조약의 최초 발효일로부터 180일이내에 개시되어야 한다. 전기의 180일 후에 비준서 또는 가입서를 기탁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동 협정의 교섭이 동 기탁일자 이전에 개시되어야 한다. 동 협정은 교섭개시일로부터 18개월 이내에 발효하여야 한다.

회로: 그럼 사찰관들이 미리 말하지 않고 각 국가를 방문하는 건가요?

성윤: 그게 되게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판옵티콘(*) 개념이 규제 체계에도 점점 적용이 되가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사찰관이 정기적으로 신고된 시설에만 갈 수 있었다면, 지금은 신고되지 않은 시설도 볼 수 있는 권한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무통보 사찰’도 있어요. 간다고 미리 알리지 않고 가도 사찰관이 2시간 전에만 통보하면 해당 기관을 공개해야 해요.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그게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안전조치라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사찰 기구에 좀더 강력한 접근 권한을 줌으로써 국가가 항상 긴장하고 있게 만드는 거죠.

사찰 기구의 권한과 국가의 주권이 배치되는 면도 있어요. 그래서 새로운 안전조치 접근법을 적용하기 이전에 먼저 각 국가들의 동의를 받아요. 특정 국가가 불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이사회에서 상호 논의를 통해 고치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안전조치 접근법의 시도와 교훈은 중요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솔선수범하는 편이에요. 한국은 다양한 원자력 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사찰 방법이 복잡해서 국제원자력기구 시찰관을 대상으로 훈련을 제공하기도 하고요.

안타까운 점은 한국의 일부 원자력 연구자들은 원자력 물질이 얼마나 국제적으로 민감하게 규제되는지 모른다는 거에요. 혹시 선희 님은 원자력을 대학원 과정까지 전공하면서 해당 내용을 학교에서 배운 적 있으세요?

(*) 판옵티콘(panopticon): ‘모두’를 뜻하는 접미사 pan과 ‘본다’는 뜻의 opticon을 합성한 말로, 소수의 감시자가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도 모두를 감시할 수 있는 감옥 형태를 말한다. 영국의 철학자 제레미 밴담이 고안했으며,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적 감시 체계로 그 개념을 확장하였다.

회로(선희): 아니요. 실험실에서는 핵물질을 다루려면 필요한 조건(RI 자격증, 방사선 종사자 교육)정도만 주로 배웠던 것 같아요. 원자력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 공대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보통 그런 교육을 하지 않죠.

성윤: 안전하게 취급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계량되고 있는지, 농축도 관련 규정은 어떻게 되는지 등은 안 배우니까 2004년의 사건이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국가차원에서는 국제원자력기구에 협조를 잘하고 있는데, 연구자나 대중 인식은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학교와 회사

회로: 이제 주제를 약간 바꾸어서 성윤 님이 다니고 있는 회사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성윤 님이 근무하는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은 주로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성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은 핵비확산과 핵안보를 이행하는 기관이에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원자력 안전을 규제하고 핵물질을 통제하는데, 이 중 통제 관련 업무를 위탁 받은 전문기관이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입니다.

회사가 하는 일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1) 첫 번째는 안전조치로, 핵물질이 핵무기 또는 기타 핵폭발 장치 등의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계량, 격납, 감시, 사찰 등 일련의 활동이에요. (2) 두 번째는 수출입통제, 즉 핵무기 개발 의도를 가진 국가가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핵물질, 장비, 기술 등에 국제 거래를 통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하는 활동이에요. (3) 세 번째는 물리적방호, 즉 핵물질 및 원자력 시설에 대한 국내외 위협을 사전에 방지하고 위협이 발생한 경우 불법행위를 저지하는 한편, 사고가 발생한 경우 이를 최소화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해요. (4) 마지막은 사이버보안으로, 즉 핵안보를 위협하는 사이버 공격을 예방, 탐지, 대응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하고 있어요.

오바마 정부 이후 물리적방호와 사이버보안 등 핵안보 관련 국제사회 관심이 특히 높아졌습니다. 9.11 테러 때 원자력 발전소를 폭파시킬 계획도 있었다는 게 밝혀졌어요. 이때 국가가 핵무기를 만드는 것을 통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원자력 발전소를 악의가 있는 행위자로부터 보호하는 것도 또한 중요하겠다는 인식이 생기며 핵안보라는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이러한 맥락에서 저희 회사는 사업자들이 원자력 발전소를 물리적 공격과 사이버 테러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하고 그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거죠.

원자력 발전소를 처음 지으려고 하는 나라나 새로 시설을 지은 지 얼마 안된 나라에 규제 역량 강화를 위해서 전문성을 이전해주는 업무도 하고 있어요. 한국이 원자력 활동을 얼마나 잘 규제ㆍ통제하고 있는지를 국제 사회에 알리는 방안으로 파트너 국가들과 우리의 규제 경험을 공유하는 거죠.

회로: 통제와 안전이 다른 업무인가요?

성윤: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지키는 게 안보라면 안전은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안 나도록 지키는 것에 가까워요. 통제는 우리나라에 핵물질이 얼마나 있는지, 적합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 등을 관리하는 거고요. 물론 안전과 통제가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안전과 통제를 연계하여 연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요.

회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을 직장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성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은 2004년 사건을 계기로 원자력을 통제하기 위한 독립적인 기구로서 설립되었어요. 제 석사논문이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의 역사는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기관이 창립되고 정착하기까지의 과정과 관련이 많아요. 또, 원자력 업계가 외부인이 접근하기 쉬운 곳은 아니다 보니 항상 업계 내부가 궁금했어요. 그러던 차에 원자력 정책 관련 부서에서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이 들려서 이 기관에 지원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입사했을 때가 딱 기관 10주년이어서 입사하자마자 기관의 역사를 썼습니다. 나름 전공을 살린 거죠. (웃음)

회로: 지금 성윤님이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설명 해주세요. 이전 인터뷰(POKAS-ON)를 보면 대학원생 때 배운 내용과 현재 하는 일이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지는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럼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시나요?

성윤: 첫 번째는 국제협력 업무에요. 국제협력 업무는 단순히 ‘우리는 핵무기 안 만들고 있어, 잘 하고 있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많은 국가가 우리를 신뢰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국제원자력기구라거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그리고 우리나라 원전을 수입한 아랍에미리트와 협력을 긴밀하게 하고 있어요.

두 번째로 원자력 통제와 관련한 정책연구를 하고 있어요. 국제 사회의 변화나 최근 떠오르는 이슈를 빠르게 입수해서 정리하고 공유하기도 하고, 이행에 필요한 부분을 선제적으로 연구하기도 합니다.

회로: 지금 하는 일에는 어떤 종류의 전문성이 필요한가요?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더라도 대학원에서 배운 것 중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성윤: 저는 정책 부서나 총괄 부서, 협력 부서에 있었기 때문에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훈련 받은 기본적인 능력들, 즉 잘 읽고 잘 정리하고 잘 쓰는 능력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저희 회사에 다니는 분 중 30%는 원자력과 졸업생이지만, 그 분들이 학교에서 핵비확산, 핵안보 개념을 전공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원자력을 전공했더라도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고 오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저는 졸업 논문 쓸 때 국제원자력기구의 정책 변화를 공부했던 게 업무를 하면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이행을 주 업무로 하시는 분들은 이행에 필요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서 교육과 훈련을 많이 받으세요. 법과 규정에 근거해서 이행을 하기 때문에 법과 규정을 우선적으로 숙지하시고요. 또 사업자들에게 저희가 어떤 기준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이 합리적인 기준인지 연구하느라 외국 사례도 많이 참고합니다. 시뮬레이션도 돌려보고 하면서 합리적인 규제 기준을 제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로 알아요.

회로: 회사에서 새로 배운 스킬은 무엇이 있을까요?

성윤: 눈치가 많이 는 것 같아요. 저는 눈치가 없는 편이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눈치와 사회성이 많이 늘었어요. 이상하게 술은 줄었어요. 아쉬워요. (웃음)

또 회사에 와서 영어가 늘었어요. 제가 살면서 영어로 밥 벌어 먹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 영어를 쓸 일이 생각보다 많아요. 출장 다니다 보면 영어로 속기를 해야 할 때도 있고요. 예전과 비교하면 영어가 좀 편해진 거 같아요.

업계의 여성 문제와 페미니즘

회로: 성윤 님이 속했던 다양한 집단 내 성비 차이에 관해 묻고 싶습니다. 카이스트 물리학과 08학번은 40명 중에 여성이 4명뿐인데 반해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은 성비가 약 1:1인데요. 성비가 각 집단의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 있나요?

성윤: 저는 성비가 1:1이었던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속했을 때가 물리학과에 있었을 때보다 편했는데요, 이게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 분위기가 좋은 곳이어서 편했던 건지 아니면 성비가 맞아서 편했던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서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성비가 달라지면 직장 문화가 획기적으로 달라진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성비가 낮으면 불편한 건 있어요. 예를 하나 들자면, 물리학과 학부 때는 MT를 가는데 학생들이 이화여대 물리학과와 합동 MT를 가고 싶었나 봐요. 전적으로 남학생들의 희망이 반영된 거였죠. 그런데 동기들이 MT가기전에 여학생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안 와줬으면 좋겠다고요. MT가 학과 공적인 행사는 아니어서 웃어 넘겼지만, 성비가 균등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죠.

회로: 먼저 오지 말라고 했군요.

성윤: 그런 일들이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어요. 근데 이게 성비 때문에만 일어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들 스무 살, 스물 한 살 정도로 어리고 서툰 나이였으니까요. 지금 직장은 여성 성비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공적인 관계다 보니까 서로 더욱 조심하죠.

회로: 지금 근무하고 있는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의 성비는 어떻게 되나요?

성윤: 제가 입사할 무렵에는 전체 직원 100명 중 여직원 수가 20명이 안 됐어요. 12명이었나? 그런데 제가 입사하고 다음 해부터 역량 있는 여성분들이 많이 지원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어요. 예를 들면 여대에 가서 채용 설명회를 여는 거죠. 그래서 어떤 해에는 신입 직원 중 여직원 비율이 70~80% 되기도 했어요. 2018년에는 위셋(WISET,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에서 여성과학기술인력 채용목표제 우수기관으로 수상하기도 했고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 여직원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어요. 부서별로 골고루 있기도 하고요. 지금은 기관 내 여성 비율이 20%가 조금 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회사에서 위셋과 연계해서 여직원 간담회, 여직원 리더십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필요한 일이고 좋은 변화라고 생각은 하지만, 더 욕심을 내 보자면, 교육을 넘어서 제도적인 영역에서 조금 더 여성친화적인 문화가 회사 내에 자리잡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 회사는 여성친화적이라기보다는 가정친화적이에요. 남성 직원도 눈치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쓰는 편이에요. 관련 제도에 관한 자료집도 제공하고요.

이 일을 담당하고 계신 인사 담당자께서 정말 열정이 넘치세요. 남성분이신데, 여대에서 채용설명회를 하고, 위셋 사업을 유치하는 등 변화에 적극적이세요. 한 사람의 열정이 조직을 많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느껴요. 개인적으로는 그 분의 인사 담당자로서의 철학이 참 궁금해요.

회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인사담당자님이 일을 잘 하시는 것도 한 몫 하는 것 같네요. 한 분이라도 젠더 관점으로 직장 환경을 변화하려 애쓰시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성윤: 네. 저희 회사는 육아휴직을 할 때 눈치를 주지 않습니다. (웃음)

회로: 페미회로가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단체다 보니 인터뷰를 요청할 때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있으세요. ‘여성’ 과학자가 아닌 ‘과학자’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분들도 있고요.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성윤: 공감합니다. 회사에서 여성과학기술인 대상으로 교육하는 자리에서도 그걸 느껴요. 위셋 지원으로 성공한 여성과학기술인 선배님들이 오셔서 강의를 해 주실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런데 페미니즘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때때로는 그 강의들이 기성 세대 사고 방식에 갇혀 있다고 느껴요. 커리어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서 오셔서는 강의를 듣고 있는 후배 과학자들이 입고 있는 옷을 지적하세요. ‘그렇게 입고 다니면 직장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라고 얘기를 하신다던지. 직장 내에서 어떻게 하면 더 성공하고, 더 빠르게 남들보다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평가와 잣대가 남성 중심적인 가치로 굳어져 있는 상황에서 쉽게 해결되지 않는 부분인 거죠.

한편으로 개인다움을 존중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직장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도 남성들처럼 공격적으로 직장 생활을 해서 더 많은 여성이 임원직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죠. 두 방향의 조화는 어려운 일이지만 공존을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회로(선희): 저도 학회에서 여성과학기술인 분들이 결혼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가지고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결혼을 하지 말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절대 아이를 낳지 말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다른 분들은 결혼은 해야 한다, 다만 두 배, 세 배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조언해 주시더라고요. (웃음)

성윤: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면 좋을 거 같아요. 기존 사회 문법에서 더 많은 여성들이 성공하게 된다면 그 또한 여성주의 향상에 기여하게 될 거에요. 다른 한편으로는 성공한 삶의 정의를 바꾸기 위한 일도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회로: 직장에 새로 입사했을 때 페미니스트인 걸 밝히기 조차 힘드셨을 것 같아요.

성윤: 아니오. 저는 이미 수습 때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웃음)

회로: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읽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성윤: 얼마 전에 빈곤 여성의 삶을 그린 ‘신을 기다리고 있어’라는 일본 소설을 읽었어요. 빈곤은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의지할 사람이 없는 거라는 책의 메시지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들었어요. 저는 빈곤하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첫째이기 때문에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시행착오를 하거나, 지름길로 갈 수 있는데도 돌아간 경험이 많아요.

페미회로의 이 인터뷰 프로젝트가 ‘선배들이 이렇게 했으니 너희도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같은 백그라운드를 전공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이고, 개인이 물려받은 조언자 외에도 내가 살면서 만나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조언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터뷰이 성윤 님. (사진: 박성윤 제공)

성윤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직의 의지에 따라 조직 내 여성과학자, 공학자의 자리가 적극적으로 마련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느꼈다. 우리는 유리천장을 부순 ‘최초’ 여성과학기술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여성이 여러 명인 과학기술조직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그래서 한 명의 슈퍼우먼의 강연을 듣기보다는 평범한 여성과학자, 공학자들이 바글바글 모여 직접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여성들이 그리는 미래가 더 다양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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