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 대학 페미니스트들, 대학 밖에서 리부트! 인터뷰, 유니브페미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20: 대학 페미니스트들, 대학 밖에서 리부트! <유니브페미>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에 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는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다. <페미회로> 결성 동기 중 하나도, 이공계 중점 대학들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다.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작년 수도권 대학 총여학생회 해산 정국에서 더 높아갔다.

 <유니브페미>는 대학 밖에서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를 실제로 구현하려는 단체다. <유니브페미>는 올해 1학기 준비모임으로 시작해 9월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유니브페미>를 창립하게 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알아보았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한솔은 회로, 인터뷰이인 <유니브페미>의 노서영 님은 서영’, 양승연 님은 승연’, 윤김진서 님은 진서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우연,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회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영: 저는 이번에 <유니브페미> 대표로 선출된 노서영이라고 합니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이고,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승연: 저도 <유니브페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승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성균관대 사회학과입니다.

진서: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윤김진서입니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이하 ‘성성어디가’)>에서 성균관대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재건 투쟁했습니다.

 

회로: 감사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계기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서영: 저희가 9월 7일 창립했는데, 창립 전인 5월부터 준비모임을 했어요.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를 넘어서 하나의 단체로 기획한 건 처음인데, <유니브페미>를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서울에 저희 활동가들이 있다 보니 서울 중심적이라는 한계가 있잖아요.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고민을 듣고 싶기도 했어요. 페미회로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공유할 수 있는 활동이 있기를 기대해요.

 

회로: 지역의 어떤 문제들이 궁금하세요?

서영: 온라인에서 대학 네트워크나 지역 네트워크처럼 지역 단위로 활동하는 분들을 봤어요. 서로 떨어진 분들이 얼마나 자주, 어떻게 모이고, 어떤 식으로 연대하는지 궁금해요. 학교가 다르면 자주 모이기가 어렵잖아요. 지역 간 연대는 또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승연: 저도 서영 님과 비슷한 동기였어요. 저는 문과고, 주변 사람도 다 인문사회 캠퍼스에 다녀요. 저희 학교는 이과 캠퍼스와 문과 캠퍼스가 분리되어 있어(*), 자연대나 공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아요. 실제로 몇몇 자연대와 공대의 페미니스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문사회 캠퍼스보다도 더 어렵게 활동하고 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다른 학교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고충을 겪는지 궁금했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 성균관대는 캠퍼스를 이원화해 운영한다. 한 캠퍼스는 서울 대학로 혜화역의 인문사회과학 캠퍼스, 다른 캠퍼스는 수원의 자연과학 캠퍼스다. 각각을 명륜 캠퍼스, 율전 캠퍼스라 부르기도 한다.

 

회로: 예를 들면 성균관대 <나은> 같은 단체 말씀이시죠?

승연: 네, 맞아요. 세미나나 집회에서 <나은> 이야기 들은 적이 있어요. ‘백래시박살대회’라고 작년 6월에 <성균관대 위드유특별위원회(이하 ‘위드유특위’)>에서 주최했던 집회가 있어요. 그 집회에서 <나은> 회원분이, 얼굴을 드러내고 발언하는 게 어려우셔서 마스크를 끼고 발언하셨어요. 학내의 백래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말씀해주신 고충과 연대의 필요성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영: 자연과학 캠퍼스의 여성주의 모임들은 활동이 중단된 상태라고 알아요. 한창 2016~2017년에 페미니즘 학회가 많이 생기기 시작하고 왕성한 활동 하던 시기에는 서로의 활동을 보며 응원하고 연대해야 하는 사안, 예를 들어 학내 미투운동이나 총여 재건운동같은 사안이 있을 때에는 주로 율전 캠퍼스에서 저희에게 연대하러 와주셨어요. 그리고 저희가 명륜 캠퍼스나 혜화역에서 하는 행사 포스터를 율전 캠퍼스 화장실에 붙여주신다거나, 그런 식으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희는 도움받은 기억이 많아요. 율전은 저희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 포스터가 뜯겼다는 인증처럼 올라오고요(*). 명륜 활동가들도 율전의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온라인으로 퍼 나르면서 이슈파이팅했어요. 그런 교류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때 많이 하셨던 분들이 졸업하시고 해서 자주 못 뵙게 되었어요.

 

(*) 박수지·최소연, <페미니즘 교지 몰래 버리고, 대자보 찢고…대학가 ‘여혐’ 기승>, 2017.07.23, 한겨레,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3936.html

 

<유니브페미> 전 활동

 

회로: <유니브페미> 전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서영: 저는 대학에 2015년에 입학해서, 학내 세월호 1주기 추모 행사를 기획하면서 처음 활동했어요. 그때 저희 학교가 소위 ‘정치적인 것’에 대한 탄압이 심해서 충격받으며 활동을 시작했어요. 강남역 사건이 터진 2016년에는 제가 국문과 학생회장이었어요. 국문과 여성주의 모임을 처음 만들어서 여성주의 책 세미나를 처음 시작했어요. 같은 해 학과의 학회 커리큘럼 책들을 다 여성주의 책으로 바꾸기도 했어요. 그리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이 생겨서 반전·평화 활동을 했어요. 또 2018년 3월에는 저희 학교 교수 미투운동이 시작되어서, 이에 호응하려 <위드유특위>를 만들어서 활동하다가, 그해 여름에 성균관대 총여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성성어디가>라고 하는 재건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진서: 저도 세월호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학교에서 진행하려 했는데, 학교가 장소 대관을 안 해줘, 교문에서 바닥에서 진행했어요. 그 여름에 같이 세월호 활동하던 사람들이 탈원전 운동을 하던 삼척으로 농촌 연대 활동을 갔어요. 삼척에 있는 여성주의 공동체 만들기를 모토로 진행하는, 여성 주체 교육, 세미나 하는 걸 봤어요. 여성주의 공동체가 가능하고, 편안하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 여성주의 활동을 시작했죠. 농활 가기 직전에 강남역 사건도 있었고요.

 

회로: <성성어디가> 활동 중에 마녀행진’(*)이 기억나요.

진서: 작년 3월, 여러 대학에서 의제가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미투, 인권센터, 총여 등등. 그 의제들을 모아서, 대학 페미니스트들이 공유하는 정체성으로 모여보자고 제안했어요. 실제로 많은 단위에서, 같이 행사를 같이 주최해주셨어요. 대학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다 같은 대학 페미니스트이고, 모였을 때 더 강하다고 말하기 위해 행진했어요. 새로운 의제를 만들기보다는 각자 학교 사정을 많이 말했어요.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주제가 뜨거운지 밝히려 노력했어요. 다양한 의제와 다양한 구호가 많은 행진이었죠. 대학 페미니스트들을 모아 길거리로 함께 나갔다는 점에서 상징적이었죠. 그 행사를 하고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가 가능하리라고 기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서영: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는 여러 대학에서 총여 운동에 실제로 참여한 사람들이 주관한 포럼이었어요. 우리가 총여 운영에 부족함이 있어, 총여가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어요. 더 친절하지 않아서, 더 대중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아서,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등등. 학우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았죠. 거기에 대답하고 싶기도 했어요. 노동, 평화 등 집중하는 의제는 저마다 달라도 지금 대학에서 대자보 붙이고, 캠페인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 페미니스트라고 말이에요.

올해 2월 설에, 안희정 전 지사의 2심 유죄 판결이 났을 때 김지은 씨가 그동안을 회고하며 한 말이 있어요(**). 그 시간의 자신을, ‘화형대에 올려져 불길 속 마녀’라고 비유했어요. 작년 2018년 한 해 동안 페미니스트들도 화형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이 말을 현장에서 듣고, 기사들로 다시 보면서, 행사 이름을 지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부당하게 마녀사냥당하고 있고, 그런데도 살아있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마녀행진’을 기획했어요.

모든 구호는 공동주최 단위가 모두 모여 만들었어요. 30개가 넘는 단위가 공동주최로 참여하셨어요. 모두 시간이 되는 때 강의실에 모여서 구호를 받고 주제별로 분류했어요. 학교마다 사정이 조금씩 달라요. 어떤 학교는 미투(MeToo)가 계속되고 있고, 어떤 학교는 인권센터가 주제고, 어떤 학교는 익명 게시판이 문제고요. 통렬하고 재미있는 다양한 구호들이 있었어요.

(*) 이정실, <3.8 여성의날 대학 페미 퍼포먼스 ‘마녀행진’>, 2019.03.09, 여성신문, 링크: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6622

(**) 유설희, <김지은 “화형대 마녀로 살았던 고통스런 시간과 작별”>, 2019.02.01, 경향신문, 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1164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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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 서영님은 15학번이고 세월호 1주기 추모 활동에 참여했다고 하셨는데, 그럼 고3이셨던 14년에도 세월호 참사에 관심 있으셨나요?

서영: 네, 그때도 관심은 있었어요. 당시 제 꿈이 다큐멘터리 PD여서 사회 문제 자체에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때는 관심 있다는 말만 하고 시간을 쏟지 못 했어요. 그래서 실제 2014년에는 추모제나 집회에 참석하는 등 행동을 거의 못했고요. 말로만 지지하고 싶다면서 아무것도 못 하고 노란 리본 하나도 제대로 못 단 죄책감이 컸어요. 대학 입학하고, 시간과 정신에 여유가 있으니까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관심을 가져보자는 생각에 세월호 1주기가 되어서야 직접 관심을 가졌어요.

처음 시작은 기자단 활동이었어요.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나 당시에 잊히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기획 속에서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죠. 마지막 기획이 학내에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였어요. 그래서 유가족분들 중 그 날 시간 되시는 분들을 모시고, 참사 이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떻게 투쟁했고,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간담회 자리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외부행사는 안 된다면서 강의실을 안 빌려줬어요. 결국 학교 정문 앞에서 돗자리 깔고 했죠.

 

회로: 다른 주제로 강의실 대관이 거부된 일이 또 있었나요? 

서영: 작년에 미투운동이 있었잖아요. <위드유특위> 전에, 더 즉각적으로 대응한 곳은 승연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문과대 여학생위원회(이하 ‘여학위’)였어요. 미투 피해자분들을 모시고 증언, 간담회, 집담회를 했어요. 그 행사는 정말 대관 승인까지 됐는데 돌연 취소되었어요. 외부인사라서 안된다고 해서.

 

회로: 승연 님은 어느 단체에서 처음 활동하셨나요?

승연: 저는 2015년에 입학해서 3월에 여학위에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조금 더 본격적으로 활동한 계기는 미투운동이에요. 활동 초 몇 주는 다른 일로 바빠 미지근하게 활동하다가, 미투생존자집담회를 앞두고 많은 일을 봤어요. 집담회가 3월 29일이었어요. 행사 3일 전에 갑자기 승인되었던 강의실이 반려되었어요. 당시 여학위원장이 공간 대관을 관리하는 학생지원팀에 찾아가서 싸웠는데도 끝내 답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에는 600주년 기념관 앞 커다란 야외 공터에서 진행했어요. 그 현장을 보고는, 학내에서 여성주의 혹은 정치적인 사안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깨달았고, 이후로 조금 더 여성주의 활동에 열의를 가졌어요. 그 집담회 뒤풀이에서 서영 님을 만나 지금까지 같이 활동하고 있네요.

이후에도 여학위 이름으로 활동하면 학생들이 페미니스트라는 것 자체에 반감을 품었고요. 에타(*)에서 계속 ‘여학위 왜 있냐?’, ‘여학위가 관리하던 여끔(**)은 왜 있냐?’, ‘여끔은 여학위가 점유한 공간 아니냐?’는 유언비어가 계속 올라왔어요. 여학위는 공식 기구이기 때문에 그런 유언비어들에 저희가 하나하나 친절하게,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많은 과정을 지켜봤어요.

여학위가 공식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힘은 하나도 주어진 힘은 없다고 느꼈어요. 문과대 학생회에서는 저희를 배제하려 하고, 저희 관한 유언비어와 논란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나대지말라’는 식의 경고도 했고요. 이 학교에서는 위원회 형태는 통하지 않고, ‘총여학생회’라는 의결권과 힘이 있는 기구들이 학교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활동의 정당성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의결권과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기구가 필요해 보였죠. 서영 님과 만나서 얘기도 해보고 저도 <성성어디가>에 동참해 총여 재건운동에 함께했고, 지금은 <유니브페미>에 활동해요.

(*) 에브리타임. 대학마다 있는 시간표 어플. 대학별 폐쇄커뮤니티기도 하다.

(**) 이범준, <여끔vs휴머니티스 존…자치공간 갈등 빚는 성균관대 학생들>, 2019.07.24, 중앙일보, 링크: https://news.joins.com/article/23534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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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주년 기념관 앞에서 진행된 미투생존자집담회. 출처: https://www.facebook.com/feminisminskku/posts/1873475519353099?__tn__=-R

 

회로: 과거 다른 활동 경력이 지금 활동에 도움을 주신 것 같나요? 도움이 되었다면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서영: 저는 학생회를 하면서 많은 학생회 사람을 만났고, 학과 사람도 많이 만나고 알았어요. 학생회를 하면 적어도 그해에는 학생회를 하면 적어도 그 해에는 1, 2학년 학우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과 행사에서 이야기 나누기도 하니 많이 알게 돼요. 학생회를 하니 학칙이나 회칙에도 익숙해지고, 학생회의 체계 자체를 이해하고. 사업도 많이 하니까 포스터 만들고 홍보하고 모집하고 실무 역량도 이 시기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회로: 승연 님은 여학위 활동이 도움이 되셨나요?

승연: 활동하는 동안 조금 더 정신적으로 단단해질 수 있졌어요. 물론 전대 위원장도 나름의 고민을 했을 테고, 단단하고 굳은 결의만으로 활동에 임하지는 않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분이 항상 여학위 사람들을 다독였고, 중요한 일은 항상 앞장서서 맡아 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 모습 보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여학위 활동에 공격과 비난, 조롱을 많이 받으면서 당시에는 화도 나고 상처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웃어넘길 수 있고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좋지만은 않은 것 같지만 불필요한 공격에 무뎌지더라고요. 이 경험이 흔들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위안이나 새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심리적인 동력이 된 것도 있어요.

 

회로: 여학위는 문과대 산하 위원회인데, 다른 단과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나요?

승연: 네, 저도 사회대 학생이에요. 위원이 다른 단과대 학생도 상관없지만, 위원장을 문과대 학생이 아닌 다른 단과대 학생이 맡으려면 문과대 운영위원회에서 인준받아야 해요. 저는 작년에 인준 못 받았어요. 여학위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일이죠. 더는 위원회가 아니니 위원장이 어느 단과대인지는 의미가 없지만요. (*)

여학위의 일이 문과대의 배경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문과대 산하 위원회인데, 다른 단과대 학생이 위원장인 게 이상하지 않냐는 지적은 몇 번 들었어요. 그렇지만, 단과대 단위의 다른 소모임의 장은 소속이 달라도 인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장을 맡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여학위에 부당하게 더 엄격했다고 생각해요.

서영: 문과대 여학위가 있다는 걸 아는 성균관대 모든 학생에게 여학위는, 학내 유일하게 남은 여학생 단체고, 무슨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문의해볼 수 있는 단체였어요.

(*) https://www.facebook.com/feminisminskku/posts/2423396897694289?__tn__=K-R

 

<유니브페미> 소개

 

회로: <유니브페미>를 결성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진서: 총여 재건 투쟁을 시작한 계기를 먼저 말해볼게요. 총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계기는 미투 고발이었어요. 이 고발들은, 대학이 공동체로서 실패했고 와해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잖아요. 그렇지만 대학에는 여전히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들을 위한 공동체가 필요하고요. 총여를 통해 이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은 실패했고, 대학을 공동체라고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동체를 대학 밖에서 만들고자 시작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공동체를 원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나왔고요. 성균관대 총여 폐지 이후에, 동국대 총여도 폐지되었고, 연세대에서는 이듬해 1월에 총여가 회칙에서 삭제되었고요.

승연: <성성어디가>에서 진행했던 ‘마녀행진’을 보고 대학 밖 페미니스트 공동체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어요. 여러 대학의 페미니스트 단체에 ‘마녀행진’을 공동주최를 제안했어요. 예상보다 많은 30개 넘는 단체에서 호응해주셨고, 서울 외 지역에서도 행진에 참여해주셨어요. 그때 많은 용기를 얻었고, 많은 페미니스트가 연대체를 갈망하고, 실제로 가능하다고 느꼈어요.

 

회로: <유니브페미> 회원은 몇 명인가요?

서영: <유니브페미> 회원은 150명 정도예요. 서울 지역에 있는 대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극소수지만 교수님, 대학생의 가족도 있어요. 기존 여성단체 활동하는 분들이 후원자로 많이 가입해주셨어요.

승연: 경상, 전라 지역 등등 곳곳에 계시는데 인원이 많지는 않아요. 여성단체 활동하시는 분은, 저희 사무실에 같이 입주하신 분들이나, 센터 선생님들도 많이 해주셨어요.

진서: 총학생회, 동아리 등 다른 활동과 <유니브페미>를 병행하는 분도 많아요. 모이면 학교 상황을 많이 공유하죠.

 

회로: 단체를 준비하는 모임들이 특이했어요. 강령 제정 모임 오로라’, 총회 중력을 넘어등등 모임 이름이 모두 우주적이던데 어떤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나요?

진서: <유니브페미>에는 여러 뜻이 있어요. 우선 대학이란 뜻의 university, 우주라는 뜻의 universe, 보편적이라는 뜻의 universal도 있고요. university를 의제 공간으로 삼고, 대학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공동체, universe를 만들고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universal하게 만들자는 3가지 의미에요. 여기서 요소요소들을 따와 행사와 소모임 이름을 지었죠.

 

회로: 대학 외부 단체면 대학 안 문제에 개입하기 어렵지 않을까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진서: 중앙대 페미니스트 총궐기를 보고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중앙대 성평등위원회에서 여러 대학에 연대 요청을 보냈고, 실제로 많이 총궐기에 참여했어요. 퀴어, 여성주의 등등 다양한 성격의 단체들이 연대발언해주던 장면이 기억나요. 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내에 개입하는 게 어려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총학생회가 학생들 의견에만 압박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아요. 언론 등 학교 밖에서도 비판을 받는 걸 의식하는 것 같아요. <유니브페미>도 열심히 비판한다면, 총학도 이 비판을 의식하겠죠.

승연: 어차피 대학 안에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도 어려우면, 밖에서라도 더 많이 모여 뭔가 도모해보는 게 더 가능해 보일 정도로, 학내가 정말 팍팍해요. 대학 밖 페미니스트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고, 대학 안 상황에 절망하기도 했고요.

 

회로: 강령(*) 만들 때 어떤 논의가 오고 갔나요?

서영: 오래된 일이네요. 오랜 기간 매주 정말 많은 논의를 했어요. 기본적으로는 포부를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대학 사회의 한계를 지적하고, 학생 사회가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유니브페미>가 무엇을 할 것인지 적었어요. 어떻게 하면 모든 차별에 반대하면서 모두에게 평등한 대학을 만들자는 우리의 최종 목표를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사람이 저희 단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걸 읽어보고 어떻게 설득해서 가입할 수 있는 멋진 단체가 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강령에는 총여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기존 여러 총여가 지켜오던 지침들을 지향점으로 삼고 쉬운 말로 담으려 노력했어요.

진서: 강령 주요 내용은 어디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포부였어요. 어디는 학교 당국, 학생회, 어떻게는 문화와 제도. 구체적인 사례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작년 총여 폐지 사태, 그에 따른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 ‘마녀행진’, 중앙대 페미니스트 총궐기 등과 더불어 페미니즘 포럼과 컨퍼런스에서 용기를 받았던 것 같기는 해요.

 

회로: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인큐베이팅 룸이라는 사무실을 얻었다고 들었어요. 입주 지원서에 어떤 점을 강조해 적었나요?

서영: 주로 저희가 성대에서 겪은 얘기를 많이 썼어요. 9년 만에 총여를 재건하려 했지만 입후보하자마자 총여 폐지가 학생 총투표에 부쳐졌고, 보이콧 운동을 해 성공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투표 기간이 연장되어 결국 투표가 성사되어 총여가 폐지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우리는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 ‘마녀행진’ 등 꾸준히 활동해왔고 앞으로도 활동할 것이라고요.

총여가 폐지되기 시작한 것은, 총여가 잘못했기때문이 아니라 총여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니, 앞으로도 이런 모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고, 구심점이 되기 위해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죠. ‘마녀행진’에서 여러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면접에 가서는 올해 안에 회원 1000명을 모으겠다는 포부도 밝혔어요.

 

회로: 같이 입주해있는 다른 단체 분들과는 잘 지내시나요?

진서: 예, 잘 지내요. 학술적인 얘기는 정말 거의 안 하고 일상적인 얘기, 농담 주고받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요.

서영: 재미있어요. 처음 본 사람이고, 나이도 다르고, 활동 영역도 다른데,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끈끈하고 친밀하게 느껴져요. 입주 공간에 부엌도 있어서, 같이 음식을 해 먹기도 해요. 그분들 존재만으로 제게는 굉장히 힘이 되어요. 특히 40~50대 활동가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요. 제가 나이가 들면 센터에서 일을 하며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을 지원하거나, 센터에 입주해 저의 운동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도, 센터 밖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겠죠.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고,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지금의 나를 한 번 더 믿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센터장님에게는 멘토링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 인큐베이팅 룸 혜택 중 무료 컨설팅이 있거든요. 저희가 사업을 꾸며서 컨설팅을 신청하면 자문을 해주세요. 단체 등록에 실무적이고 행정적인 도움을 주신 적도 있고, 월경 공결제를 주제로 하는 토론회 등 여러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계획서를 보여드린 적도 있어요. 이런 점은 특별히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저런 점에서 비판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받았어요.

 

회로: 페이스북에서 재미있는 계획을 많이 봤어요. 페미니스트 교육을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더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진서: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먼저 제안한 기획이에요. 또래 교육을 컨셉으로 구체화하는 중이에요.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말하고자 할 때, 대학생들은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나는데, 이는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로서 교육할 수 있는 내용을 만들자고 제안해주셔서 흔쾌히 응해 공동 작업 중이에요. 교육 대상으로는, 주로 대학의 페미니스트,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대학생, 대학에서 여성주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요.

 

회로: 여러 대학의 인권 축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서영: 그 대학에 <유니브페미> 회원이 계시기도 하고, 주최 측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저희가 대학 외 단체다 보니, 학생들을 만날 기회라고 생각해 주최 측에 먼저 연락하기도 했고요.

인권 축제 부스에서는, 문제 있는 학칙을 직접 고쳐보거나, 학교에 인권 교육이 얼마나 있는지 통계를 보고 퀴즈를 풀어보기도 했어요. 여러 대학의 미투 사례를 가져와, 교수가 받은 처벌, 학생들이 싸워 바뀐 처벌 등을 다루었어요. 본인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의 상황을 모두 모아 보는 것 자체가 새롭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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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인권축제 ‘-ever!’에 낸 <유니브페미> 부스. <유니브페미> 제공.

 

회로: 페이스북에서 대학 성평등지수 프로젝트사업위원 모집 글을 봤어요. 외부인 위원도 모집하던데, 외부인 중에도 모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서영: 올해 11월에 각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철이 시작되겠죠. 그때 성평등한 공약이 많은지 점검해보자는 취지의 사업이에요. 학생회와 더불어 대학의 다른 한 축인 대학 본부도 살펴보고자 해요. 학교가 성평등 사업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얼마나 많은 대상에 얼마나 정기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는지도 보고자 해요. 월경 공결제도 조사해보려고요. 기존 대학 평가에는 성평등 관련 지표가 없으니, 저희가 성평등 대학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싶어요.

외부인도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둔 이유는, <유니브페미>를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회로: <유니브페미>에는 여러 대학이 모여, 대학 간 차이를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서영: 지금까지 느낀 점만 말씀드리자면, 여대와 여남공학의 분위기와 지형이 달라요. 신학대는 학교 본부나 교단이 백래시 주체고요. 어떤 지역 대학 중에는, 페미니즘을 얘기할 공간이 없거나, 공간을 만들려 해도 지원이 잘 안 들어와 고민하고 고립된 분들이 많더라고요.

대학마다 다르다는 점을 절실히 느껴요.

 

회로: 회원들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진서: 다들 대학을 부수고 싶어서 하세요. (웃음) 창립총회 전 발기인분들을 모아 집담회를 한 적이 있어요. <유니브페미>에 왜 들어왔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 나누었어요. 다들 대학 부수고 재건하기를 꼽더라고요. 다들 지금 대학이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을 뒤집고, 그 상식이 페미니즘이 되기를 욕망하셨어요. 주변 친구들 바꾸는 데에도 관심이 있겠지만, 결국 대학의 상식선을 새롭게 만들자고 말씀해주셨어요.

대학 안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이 많아요. 대학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시작할지도 모르겠다는 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세미나에 참여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성균관대 회원 중에는, 작년 총여 폐지 과정을 보며 여전히 공동체와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아요.

<유니브페미> 준비모임 때 세미나에서는, <유니브페미>의 지향점이 교차되는 페미니즘,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페미니즘이길 바란다고 이야기 나누었어요. 동시에 어떻게 힘과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고민이고요.

 

승연: 총학생회가 페미니스트 학생의 의견을 학우의 의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페미니스트 학생들이 대학의 일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고민도 보였어요. 어느 대학 가릴 것 없이, 정치성을 꺼리는 건 흐름인 것 같아요. 심지어 여대에서도 정치적인 사안을 다루는 것을 많이 꺼리다 보니, 오히려 페미니즘이 탈정치의 언어로 활용된다는 얘기도 들어요.

대학 안에서 활동하는 데에 호소하는 어려움은, ‘소모임을 찾을 수 없다’, ‘단체는 있는데 한계를 느낀다’ 등 다양해요. 예를 들면, 성균관대 문과대 여학위, 중앙대 성평등위원회 등 회칙이 보장하는 기구도 탄압받으니까요. 소모임은 공식적이지 않으니 불필요한 공격을 받기도 하고요. 비공식인 소모임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직접 나서는 데에 한계도 있죠. 학생회가 소모임의 의견을 학교에 전달해야 하는데, 학생회는 이 역할을 거부하고요.

서영: 에타에도 관심도 많아요. 페미니즘과 관련된 소수자 인권 담론, 동물권 등 다양한 주제를 페미니스트들과 나눠 보자는 의견도 나왔어요.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세미나 이름을 교차성 세미나로 정하고 커리큘럼에 관련 주제를 넣었어요.

 

회로: 세미나 이야기를 해볼게요. 세미나 주제는 회원들이 모여 정하나요?

서영: 세미나 사업 위원회에서 커리큘럼을 짜기는 하지만, 회원들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해요. 앞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학기마다 세미나를 할 텐데요, 전에 세미나에 참여했던 분들 의견을 들을 창구를 마련해 나가려 해요.

진서: 이번 세미나 커리큘럼도 준비모임 때 세미나에 참여하신 분들 의견을 많이 반영했어요. 준비모임 세미나에 참여하신 분들은, 세미나 대신 여러 사업의 집행위에 들어가거나 자기 학교에서 페미니즘 학회 등 무언가 해보겠다며 학교로 돌아갔어요. 자신이 몸담은 학회들, 위원회로 돌아가 무언가 해보겠다고 많이 말씀해주셨어요. 인권축제 아이디어를 따간 사람도 있어요. (웃음)

 

회로: <유니브페미>에서 잠깐이나마 활동하다가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셨다는 분들 이야기가 인상 깊어요. 학내 활동과 <유니브페미> 활동을 연결짓는 분들이 계신가요?

진서: 어느 대학 분을 만나든 백래시가 심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학교 본부나 학생회, 반동성애 등 외부 세력, 에타에서 시비를 건대요. 이 점은 차치하더라도, 활동을 계속할 사람이 안 모인다는 점이 힘들다고 하세요.

승연: 백래시 혹은 반발이 점점 심해지니,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단위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요. 여학위는 여러 다른 사정도 있지만, 신입 위원이 19학번 한 명 포함 총 2명뿐이었어요. 페미니즘에 관심이 늘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활동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예 기구 존속에 위협을 느끼는 기구도 생기는 것 같아요.

 

대학이라는 공간

 

회로: 성균관대뿐만 아니라 대학 전체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영: 저는 대학만의 특수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회 전반의 문제일 텐데, 그중에서 대학에서 두드러지는 문제는 공간 부족이요.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논의, 공감, 소통, 결정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는 게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공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공간조차 없다고 많이 느껴요. 사실 같은 의견이라는 것도 적은 경우일 것 같아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인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하고, 논의를 성장시켜나가거나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토양이이 되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승연: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덧붙이면, 학생들, 특히 학생회가 정치적 입장을 띠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게 큰 문제에요. 여학위를 예시로 들자면, 문과대학생대표자회의의 학생대표 25명 중 18명이 기권해서 여학위 재인준이 안 되었어요. 이 사례만 보아도 ‘입장 없음’을 드러내는 것조차도 정치적인데, 오히려 정치적 중립으로 포장되고 학생대표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으로 여기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중립’이 여성주의를 비롯한 소수자 의제들이 삭제되기 가장 좋은 배경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인 것을 꺼릴수록, 정치 의제를 끌고 올 수밖에 없는 소수자 의제가 배제되고 지워진다고 느껴요.

 

진서: 대학에는 문제가 많아 어느 하나를 꼽기가 쉽지 않네요. 모든 문제가,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의 의미가 변하면서 생겼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대학이 더 공동체로 사유하지 않고, 취업을 위한 스펙 쌓는 과정 정도로 이해하고, 아무도 공동체로 사유하지 않는 것이 다양한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총여와 여성주의 기구가 필요 없다는 말을 할 때, 내 눈에는 소수자가 안 보이고 내가 소수자가 아니기에 필요 없다는 이유를 대죠. 그 이유가, 이유일 수 있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누군가가 차별받는다는 걸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잖아요. 즉, 더 공동체로 사유하지 않기에, 청소노동자에 대한 발언이나 성소수자 혐오 발언들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누군가의 일이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두의 일이 되잖아요. 아무에게도 여기가 공동체가 아니므로,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그냥 쟤는 저렇구나’ 정도로 별다른 생각 없이 넘어가고요.

 

회로: 어떤 점에서 대학이 여성주의를 공부하기에 부적절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세요? 진서 님이 해주신 답변과 연결될 것 같아요.

진서: 부적절한 공간이라기보다는 힘든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은 여성주의를 이해하고 소개하는 공간인데, 그럼에도 저희가 활동에서 겪은 어려움은, 대학이 공동체가 아니기에 활동하기 힘들어졌을 뿐이지 “대학에서는 여성주의를 하면 안 되지”라는 말은 저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서영: 저도 거의 같은 말을 하려고 했어요. 여성주의 운동을 하기에 부적절하거나 적절한 공간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대학이 여성주의가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개개인들이 인신공격받거나, 페미니스트로 목소리를 내는 순간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해야 한다’며 페미니스트는 학생 취급조차 안 해주는 여러 경험이 있어요.

총여 재건 운동 이후 여러 연대 사업을 하면서 많은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이 저희와 비슷한 고민한다는 걸 알았어요. 대학에서 운동을 하기 힘들다는 점, 이 고민이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라 여러 대학에서 많은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외로움을 겪고 있는 점, 고민을 말할 곳이 없다는 점을 알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럼 우리 바깥에서 다시 만나보자”인 거죠. “우리 안에서 안 해”가 아니라 “우리 쫓겨났지만, 바깥에서 다시 할 거야, 그리고 다시 시작해서 침투해서 학교 바꿀 거야”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가며

 

회로: 개인적인 각오와 다른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진서: 안전한 공간이란 무엇일까 많이 고민해요. 모든 것을 검열하고, ‘완전한’ 페미니스트들만이 모인 공간이 우리가 바라는 안전한 공간일까, 페미니스트들에게 안전이란 어떤 의미고,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안전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이 늘었어요. 대학에서 혹은 일상에서 나의 안전한 공간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이 모여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지하철에 생물학적 여성만 모인 여성 전용칸을 만들면 안전할 것이다’, ‘동질적인 공간을 안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잖아요. 하지만 여성전용칸이 오히려 가장 취약한 공간일 수 있고요. 그럼 페미니스트로서,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의 안전은 어떻게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모이면 좋겠어요.

변화는 점차 오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몰아닥치는 변화도 필요하잖아요. <유니브페미>는 대학의 상식선을 뒤흔드는 많은 일을 추진력 있게 해나가는 단체가 되리라고 기대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요.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회원 1000명을 달성하고 싶습니다. 투쟁!

 

승연: 정신건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페미니스트, 퀴어가 우울감에 많이 빠져 살아요. 많은 비방과 더 엄격한 도덕 잣대에 노출되어 살기도 하고, 스스로도 자기검열하거나 채찍질도 많이 하고요 이게 페미니즘을 더 나아가게 하는 좋은 과정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를 너무 소진시킬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들이 자기 자신을 좀. 더 믿고, 동료들끼리 더 의지하고 돌볼 수 있는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유니브페미>가 더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유니브페미>가 그런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요.

서영: <성성어디가>에서 활동 정리하는 책을 쓰고 있어요. 제가 그 책 마지막에 적은 말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사실 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계속 나아간다는 점에서요. 나아가는 길에 지칠 수는 있지만, 그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것만으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유니브페미>는 그치지 않을 테니, 많은 분이 함께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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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정리하는 책인 『미지수 – 투표로 지워지지 않는 존재들』은 10월까지 선주문을 받아 제작되었다. 굿바이 파티(11월 15일)에서 『미지수 – 투표로 지워지지 않는 존재들』 북 토크를 진행한다. 출처는 다음 링크 참조.  페미회로 갈무리.

<유니브페미>를 인터뷰하며 문득 깨달은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사람은 모두 어디론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4년이 넘었고, 대학의 많은 페미니스트도 그때와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 취업한 사람, 시민 단체에서 전업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생활 공간이 달라진 만큼이나 소속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수많은 여성주의 단체가 이합집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흩어진다고 하여 안타깝게 여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학교의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다 <유니브페미>를 만든 인터뷰이들처럼, <유니브페미> 준비모임에서 활동하다 자신의 학교로 돌아간 사람들처럼, 흩어진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산다. <유니브페미>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역량 있는 사람들을 배출하는, 사회에서 살아 숨쉬는 단체가 되기를 기원한다.

020. 대학 페미니스트들, 대학 밖에서 리부트! 인터뷰, 유니브페미”에 대한 2개의 생각

  1. 핑백: 030: 경남에서 페미니스트들을 기록하기, 경상대 페미니스트 모임 〈수요일의 페미니즘〉 | 페미회로 아카이브

  2. 핑백: 030: 경남에서 페미니스트들을 기록하기, 경상대 페미니스트 모임 〈수요일의 페미니즘〉 | 페미회로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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