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젠더와 과학기술정책의 접점을 고민하는 연구자, 우지수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21: 젠더와 과학기술정책의 접점을 고민하는 연구자, 우지수

 

햇볕이 따뜻한 어느 초 가을날, 페미회로는 서울의 한 카페에서 과학기술정책 연구자 우지수님을 만났다. 우지수 님은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진학하여 젠더와 과학기술정책의 접점을 연구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이화여대 재학 당시의 총학생회 및 총학생회장 재직 경험, 여자대학교에서 남초 사회로의 이동, 그리고 새로운 길인 과학기술정책으로 발을 딛는 과정을 들어보았다. 우지수 님의 독특한 경험이 여성과학기술인정책 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정책 전반을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고민하는 데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함께 알아보자.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우연과 희수는 회로, 인터뷰이인 우지수 님은 지수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회로: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지수: 안녕하세요, 저는 2019년부터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우지수입니다. 학부 때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젠더, 경계, 정체성, 기술과학(technoscience)(*)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여성과학기술인 정책을 보기도 하고,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의 철학적인 담론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 Technoscience는 과학기술학자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에 의해 제시된 개념으로,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이 분리되어 있다기보다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회로: <페미회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인터뷰를 요청받으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이유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지수: <페미회로>는 올해 KAIST에 진학하고 알았습니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인 이공계 내 여성 문제를 다루는 단체에서 저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다니 기뻤어요. 인터뷰를 처음 요청받았을 때는 제가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금 주저했어요. 아직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아,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거든요. 하지만 제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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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난 우지수 님. 사진: 페미회로

내 인생은 설득의 연속이었다.”

 

회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먼저 지수 님의 학부 시절 얘기부터 시작해보려 합니다. 지수 님은 2017년도 제49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셨는데요. 총학생회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무엇인가요?

지수: 총학생회장으로서 진행했던 일 중 학내 사안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총장 직선제 선거(*)였습니다. 직선제는 전국 최초였고, 해외에서도 사례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도 있지만, 대학에서 새로운 형태의 민주주의를 시도할 수 있던 기회가 제 임기 중에 있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총장 선거 당일에 학생들이 ECC(이화 캠퍼스 복합단지. 이화여대의 중심부에 위치)에서 길게 줄 서서 투표를 하던 모습, 밤늦게까지 학생, 교직원, 교수들이 모두 모여 개표하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화여대 학생들은 학사 비리에 맞서는 시위를 진행했고, 이후 이화여대 학생들은 총장 직선제를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결국, 2017년 5월 전국 대학 최초로 학생, 교수, 교직원, 동문이 모두 참여하는 총장 직선제 선거가 시행되었다. 당시 학생들은 다른 구성원들과 같은 투표 비율 반영을 주장했지만, 최종적으로 결정된 학생 투표 반영 비율은 8.5%였다.

출처: 박현철, 「대학가에 부는 총장 직선제의 바람」, 2019.05.20, 숭대시보, 링크: http://www.ssu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7170

 

회로: 그렇군요. <페미회로> 회원들이 공부하는 다섯 개 과학기술중점대학교는 각 지역에 있어 학교 간 연대가 쉽지 않고, 같은 지역에 있는 학교와도 활발히 고민을 나누기 쉽지 않은데요. 이 점에서 총학생회의 형태나 업무에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화여대의 총학생회나 동아리는 어떤 식으로 연대하고 함께 고민을 나누는지도 궁금해요.

지수: 학교 밖 연대 사안으로는 <전국대학학생회 네트워크 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어요. 2016년도 입학금 폐지와 관련해서 많은 대학의 총학생회장단이 연대하고 함께 일을 추진해본 경험으로 신뢰를 다져왔고, 그해 연말에 국정농단 이슈와 관련해서도 여러 대학이 함께 연대한 경험이 있었어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학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 있었어요. 새로운 연대체를 만들기로 한 거죠. 2016년도 촛불 시위가 ‘우리도 무언가 바꿀 수 있다’는 경험을 가져다준 것도 이런 움직임에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회로: <전국대학학생회 네트워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나요?

지수: 2017년도에 이화여대, 고려대,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모여 <전국대학학생회 네트워크 준비위원회>를 공동으로 출범하고 다른 대학 총학생회 대표자들에게 연락하고 만나기 시작했어요. 2017년 상반기에는, 제일 큰 사안이 19대 대선이었기 때문에, 후보들에게 대학생들의 요구를 정리하여 발송한 것이 주된 활동이었어요.

저희가 준비위원회로서 했던 일은 <전국대학학생회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주제로 토론하면서 정당성을 확립하고 운영 세칙을 만드는 등 기반을 다진 일이에요. 왜 새로운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그 네트워크는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구상한 거죠. (*)

 

(*) <전국대학학생회 네트워크>는 준비위원회를 거쳐 2019년 발족했다.

 

회로: 학내 사안과 학외 사안 중 무엇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총학생회의 자원을 사용할지도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지수: 둘 다 중요하기 때문에 둘 중 무언가에 좀 더 초점을 두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할 수 있는 만큼 했죠. 학내 사안 대응은 학생회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고요. 학외 사안에도 신경 썼어요.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하는 발언과 행보는 늘 한국 사회의 항상 주목받아와서요. 특히 2016년~2017년도에는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더 주목을 받기도 했고요.

 

회로: 방금 말한 것처럼 특히 지수 님이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 이화여대 총학생회가 주목을 많이 받았을 것 같습니다. 저도 당시에 이화여대 학생회를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나고요. 그만큼 부담감도 크셨을 것 같은데요, 학생회장으로 활동할 때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지수: 모든 대표자가 그러겠지만, 많은 사람을 대표한다는 점이 가장 부담됐어요. 스스로는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아는데, 공식 석상에서는 부족함을 숨기고 강하게 보여야 하니까요. 결국 제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 생각했어요. 당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은 적은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꽤 부담됐어요.

 

회로: 지수 님이 총학생회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지수: 저는 인생을 계획적으로 사는 편은 아니에요. (웃음) 어쩌다가 1학년 때 총학생회 집행부를 시작했어요. 처음부터 특별한 결심과 포부가 있지는 않았어요.

 

회로: 그렇군요. 총학생회장이 되었을 때 몇 학년이었나요?

지수: 5학년… 학생회를 하니까 학교가 6년제로 바뀌더라고요. (웃음) 3학년 때에는 자연대학 학생회장을 했어요.

 

회로: 총학생회장으로서의 경험은 지수님에게 어떤 기억인가요?

지수: 총학생회장을 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고, 많은 사람에게 감사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고 학생들의 지지와 신뢰로 가능했던 자리니까요.

대표자로서 활동하면서 ‘내가 지금 누구를 만나더라도 할 말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총학생회장이었던 때에는 지금 당장 대통령, 대학교 총장, 교수를 만나도 공적으로 말할 거리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대표자로서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일이 많은데요. 누구를 만나서 대화를 하고 내 의견을 설득해볼 기회가 많아 정말 값진 시간이었어요.

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친구들에게 내 인생은 설득의 연속이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어떤 의제에 관해 사람들과 토론하고 합의 보는 경험이 많아 저 개인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어요.

 

회로: 인생이 설득의 연속이었다니, 참 멋진 말이네요. (우연)는 지수 님이 대표자로서의 경험을 많이 해본 게 부럽기도 해요.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대표자가 되는 경험을 갖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저는 학과 학생회장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학과회장 11명 중 2명만 여자여서 아쉬웠어요.

지수: 여성들이 대표자가 되는 경험을 갖기가 보통은 쉽지 않죠. 제가 이화여대라는 특수한 환경에 있어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 이화여대에서는 꼭 대표자가 아니어도 스스로 주체가 되어보는 경험을 모두가 할 수 있어요.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결정할 때 지정 성별로 인한 고민이 없이 진짜 내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여자 대학의 가장 특별한 점 중 하나인데, 실제로 그 점이 많은 학우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사회에서는 이런 경험들을 갖기 쉽지는 않으니까요.

 

회로: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저(희수)도 생각나는 일화가 있어요. 작년에 이화여대에서 한 여성 과학자의 강연을 들었는데요. 강연 못지않게 강연장의 분위기가 기억에 남아요. 당시 강연장의 청중 대부분은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하는 이화여대 학생이었는데, 비슷한 것을 공부하는 여성들이 이렇게나 많고 함께 강연을 듣고 있다는 게 정말 기쁘고 인상 깊었어요. UNIST에서 공부할 때는 늘 수적으로 남성이 많은 자리에서 생활하는 게 당연했는데 내가 만약 이런 환경에서 공부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부 생활

 

회로: 학부 때 물리학과 철학을 전공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물리학과에 진학하게 되셨나요?

지수: 저는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이과에 진학한 대다수 여학생이 과학 선택 과목으로 생물2를 선택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물리2를 골라서, 한 반 30~40명 정도 중에서 여학생이 7명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남학생인 참사가 일어났어요. (웃음) 어쨌든, 그때 물리를 재미있게 공부해서 물리학과에 진학했어요.

 

회로: 보통 물리학과는 자연과학대학 중에서도 특히 남초과로 알려져 있고, 물리학 자체도 전통적으로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는데요. 이화여대의 물리학과는 여학생들만 공부하다 보니 그 분위기가 사뭇 달랐을 것 같아요. 직접 이화여대 물리학과에서 공부하신 경험은 어땠나요?

지수: 이 질문을 듣고서야 생각해봤는데,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물리학과가 남초과인지 아닌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자대 교수가 되신 분들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물리학자로서의 진로도 낯설지 않았고요.

 

회로: 지수 님의 말씀이 다른 의미로 충격이네요! 저희는 물리학과가 당연히 남초과라고 생각했고,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거나 기억나는 일화가 있는지 물어보려 질문을 준비했거든요. 저번에 당근님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도 그랬고, 저희 주변 사례만 들어봐도 물리학과는 남학생이 월등히 많은 과이에요.

지수: 지금 생각해보니 저는 학부 때 남학생들의 존재 자체를 크게 인식해보지 않았어요. 남자 화장실이란 게 학교에 있는지도 잘 몰랐죠. (웃음) 우리가 여성으로서 이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은연중에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이 결정을 부추기거나 망설이게 하는 요인일 수 있는데, 이화여대에서는 내가 여성이라는 점이 선택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여대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회로: 그럼 철학을 복수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수: 물리학에 흥미를 잃고…(웃음) 철학을 복수전공하게 된 거죠.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 한 켠에서는 늘, 인문계 공부를 해보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국어 선생님이셨는데, ‘너희가 글을 잘 쓰려면 좋은 글을 봐야 한다’며 사비로 <한겨레21>을 구독해 주셨어요. 심심할 때마다 <한겨레21>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비판적으로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대학에 와서 인문사회계열 쪽 복수전공을 고민하면서 철학과와 사회학과 개론 수업을 들어 보았는데, 철학이 더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철학과를 선택했어요. 한편으로는 종합대학을 다녀서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었기에 감사하기도 해요.

 

회로: 철학 수업은 보통 어떻게 진행되나요? 과학기술중점대학교의 사회학이나 철학 교양 수업에서는 젠더 이슈를 다루지 않거나, 다루더라도 보통 한 주의 주제 정도로 다루고 넘어가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화여대에 철학과에서는 무려 여성주의 철학과 같은 과목이 개설된다고 들었어요.

지수: 말씀하신 대로 철학 전공 수업 중에 『여성주의 철학』이라는 수업이 있어요. 한 학기 동안 주디스 버틀러(미국의 저명한 페미니스트 철학자. 젠더 이론, 퀴어 이론 등에 영향을 줌)만 주구장창 읽는 수업이에요. 주디스 버틀러를 다루니까, 주로 경계와 퀴어 이론을 주제로 토론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재미있는 게, 모두 같은 의견을 갖고 토론했어요. (웃음)

조별 토론을 해도, ‘섹스도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젠더의 경계가 임의적이다’라는 주제로 이야기 나눠보면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어요. 다른 주장을 설득하는 토론이었다기 보다는, 각자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토의였죠. 드랙(*)이나 퀴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었는데, 의견을 개진하다가 자신이 퀴어라고 밝히는 분도 있었어요. 그 장소가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말씀하셨겠죠. 교수님들 또한 인권 감수성이 높아서, 누군가를 배제할 수 있는 용어는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시죠.

 

(*) 생물학적 여성/남성 개인에게 기대하는 복장 등의 퍼포먼스를 반대하는 행위로, 정치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다음 글 참고. 아장맨 (2018.09.18.) “내가 드랙(Drag)을 하는 이유: ‘드랙킹’ 퍼포머의 정체성”, 일다. http://m.ildaro.com/8310

 

우지수 2

인터뷰 중인 우지수 님. 사진: 페미회로

 

대학원 생활

 

회로: 그럼 정책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수: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 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어요. 예를 들어, 이화여대에서 2015년에 교육 정책과 관련해 프라임(PRIME, Program for Industrial needs-Matched Education) 사업이 이슈가 되었어요. 학생의 입장에서 국가의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책의 중요성을 많이 느낀 것 같아요.

 

회로: 그건 지수 님이 이화여대에 다녔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점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과학기술중점대학교의 경우에는 전문연구요원 이슈 정도를 제외하고는 국가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생회의 역할 또한 복지에 훨씬 치우쳐져 있고 학생들의 권리에 대해 대표자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대학의 학생회에 비해 덜한 것 같기도 해요.

지수: 이화여대 학생회는 전통적으로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았고, 또 이화여대가 여성들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낼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어요. 학생들도 사회 현안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편이기 때문에 총학생회를 하면서도 많은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고요.

 

회로: 지수 님이 가진 문제의식을 풀어내기 위해서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는 것 말고도 사회학을 공부하거나, 여성학을 공부하는 등 다른 선택지가 다양했을 것 같아요. 왜 굳이 과학기술정책학을 공부하기로 선택했나요?

지수: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학부 때 물리학을 전공했으니까, 과학과 관련해 정책적 측면이나 사회적 측면에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과학기술정책 대학원에 지원했어요. 처음에는 과학기술정책, 과학기술 협력사업 등에 관심이 있었는데, 저에게 가장 중요하고 제가 관심이 있는 주제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젠더 문제를 떠올렸어요. 대학원에 오고 나서 젠더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과학기술과 젠더, 여성과학기술인 정책 등에 관심이 기운 셈이죠.

여성학도 고민해보았으나, 정책을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었어요. 정책이 일상에 끼치는 영향력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보니 정책을 연구하고 싶었고, 과학기술에 관련된 여성정책을 공부한다는 것이 좀 더 끌렸달까요. 장학금이나 제도 등을 고려했을 때, 카이스트에서 공부와 연구를 하는 데에 장점이 크다고 생각했고요.

 

회로: 또 다른 진로로는, 정책을 요구하고 만드는 시민단체 활동가로서의 길도 있을 것 같아요. 정책 연구를 위해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지수: 저는 전문성을 갖고서 이야기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이화여대에 있으면서 많은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도 큰 몫을 했어요. 이화여대의 교수님들이 여러 사회 현안, 특히 여성 문제에 선두적으로 목소리를 내오신 것을 봤어요. 시민단체가 아니더라도 학교에서도 충분히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느꼈어요.

대학원에 와서 좀 더 자세히 알았지만, 여성과학기술정책에도 많은 이화여대 교수님이 기여하셨더라고요. 예를 들어 낙태죄 관련해서도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에서 열심히 연구해왔고, 여성과학기술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러 여성과학자 교수님들이 열심히 활동해오셨고요. 항상 현안에 맞추어 학계에서도 노력하시는 것을 봐왔기 때문에 현장에서만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런 이화여대 분위기에서 지금의 제가 자연스럽게 빚어졌다고 생각해요.

 

회로: 그런 분위기에서 학부를 다니다가 지금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진학했는데요. 대학원에 진학하고 느꼈던 변화가 있을까요?

지수: 글쎄요, 제가 젠더 문제는 제가 직접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직 큰 불편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제가 주로 젠더 이슈에 관심 있지만, 카이스트에 와서 환경, 청년, 경영 등 다양한 이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있어, 많이 자극받아요. 결국엔 어떻게든 연결이 될 수 있는 문제들이고, 함께 나눌 고민이 많으므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고민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과학기술인정책

과학뒤켠 7호에 기고한 우지수 님의 글. 사진: 페미회로

 

회로: 요즘은 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있나요?

지수: 젠더라는 키워드로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있어요. 역사, 철학, 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요.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봤던 책은 『조선의 퀴어』라는 역사책이에요.

최근에는 포스트 휴먼(*)이라는 주제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이 주제에 과학기술학적 관점과 철학적 관점이 처한 맥락이 달라서 다양하게 보려고요. 앞으로는 경계와 정체성 문제를 연구하고 싶어요.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발행하는 《과학뒤켠》이라는 잡지에 여성과학기술인 정책에 대한 글을 기고했어요. 올해 수립된 여성과학기술 정책 4차 지원 계획을 자세하게 분석해보고 싶었거든요. 3차까지의 계획과 비교하면, 현 정부 기조에 맞추어 정책 한두 개 정도가 추가되고 비전만 바뀌었을 뿐, 세부 사항들은 변화가 적고 여전히 여성학적인 관점은 많이 부족해 보였어요.

사실 ‘인력’ 정책이 사용자의 입장에서 세워지는 정책이라서 마주하는 딜레마인 것 같긴 해요.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관점을 더 중시할 수 있어 젠더문제나, 실제로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들이 더 잘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반면에, 인력정책은 이런 점들을 다 고려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요. 젠더 문제가 더 면밀하게 다뤄질 수 있도록 과학기술계의 여성 노동자 입장에서 수립될 수 있는 ‘노동’정책과 국가 차원에서 안정적으로 인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수립하는 인력정책의 간극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성과학기술인을 과학기술의 잠재가치로 여긴다는 오래된 관점은 물론이고, 십 수 년째 여성과학기술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비슷한 노력과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이번 4차기본계획의 아쉬움이다. 여성과학기술인의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한 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기본계획의 가장 주요한 골자는 여성과학기술인들의 수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과학기술에서 젠더혁신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양성평등을 실현해내겠다고 하는 점들은 여성과학기술인 정책을 단순히 성별에 따른 인력 불균형 문제나 과학기술의 젠더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학이나 노동의 문제와 같이 더 풍부한 사회적 담론 속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함의를 준다. (우지수, 과학뒤켠 7호, 41쪽)

 

회로: 과학기술정책에서 청년 과학기술인 정책과 여성과학기술인정책은 늘 인력 정책의 관점에서만 다뤄지는 것 같네요. 지금 하고 계신 연구/공부와 관련해 고민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지수: 이러한 관심사를 어떻게 석사 논문으로 풀어낼 것인지가 제일 고민이에요. (웃음)

 

회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지수: <페미회로>라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들만의 동아리가 있다는 것을 카이스트에 와서 처음 알았는데, 정말 응원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페미회로>가 있다는 자체로 변화를 만들 가능성이라고 생각하고요. 비슷한 특성의 학교들끼리 고민을 나눈다는 것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고생이 많으십니다.

 

페미회로 회원들이 주로 생활하는 과학기술특성화대학에서는 여성이 대표자가 되는 일이나, 수적 다수가 되는 상황이 흔치 않다. 그렇기에, 흔히 남초 학과라 일컬어지는 물리학과에서 학부시절을 보내면서 한 번도 여성임을 의식해보지 않았고, 남학생의 존재를 신경 쓰지 않았으며, 대표자가 되어 타 학교와 연대를 맺은 경험을 듣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제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으로 적을 옮겨 신념과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과학기술인정책을 연구하는 지수님을 응원한다. 언젠가는 인력정책을 넘어 젠더정책으로도 여겨질 수 있는 여성과학기술인정책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020. 대학 페미니스트들, 대학 밖에서 리부트! 인터뷰, 유니브페미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20: 대학 페미니스트들, 대학 밖에서 리부트! <유니브페미>

 

페미니스트들의 모임에 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는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다. <페미회로> 결성 동기 중 하나도, 이공계 중점 대학들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다.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작년 수도권 대학 총여학생회 해산 정국에서 더 높아갔다.

 <유니브페미>는 대학 밖에서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를 실제로 구현하려는 단체다. <유니브페미>는 올해 1학기 준비모임으로 시작해 9월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유니브페미>를 창립하게 한 경험과 문제의식을 알아보았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한솔은 회로, 인터뷰이인 <유니브페미>의 노서영 님은 서영’, 양승연 님은 승연’, 윤김진서 님은 진서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우연,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회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영: 저는 이번에 <유니브페미> 대표로 선출된 노서영이라고 합니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이고, 학교 생활을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승연: 저도 <유니브페미>에서 활동하고 있는 양승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성균관대 사회학과입니다.

진서: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윤김진서입니다.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이하 ‘성성어디가’)>에서 성균관대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재건 투쟁했습니다.

 

회로: 감사합니다. 인터뷰에 응한 계기 간단하게 소개해주시겠어요?

서영: 저희가 9월 7일 창립했는데, 창립 전인 5월부터 준비모임을 했어요. 페미니스트들의 네트워크를 넘어서 하나의 단체로 기획한 건 처음인데, <유니브페미>를 널리 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서울에 저희 활동가들이 있다 보니 서울 중심적이라는 한계가 있잖아요.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의 고민을 듣고 싶기도 했어요. 페미회로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공유할 수 있는 활동이 있기를 기대해요.

 

회로: 지역의 어떤 문제들이 궁금하세요?

서영: 온라인에서 대학 네트워크나 지역 네트워크처럼 지역 단위로 활동하는 분들을 봤어요. 서로 떨어진 분들이 얼마나 자주, 어떻게 모이고, 어떤 식으로 연대하는지 궁금해요. 학교가 다르면 자주 모이기가 어렵잖아요. 지역 간 연대는 또 어떻게 가능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승연: 저도 서영 님과 비슷한 동기였어요. 저는 문과고, 주변 사람도 다 인문사회 캠퍼스에 다녀요. 저희 학교는 이과 캠퍼스와 문과 캠퍼스가 분리되어 있어(*), 자연대나 공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기 쉽지 않아요. 실제로 몇몇 자연대와 공대의 페미니스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문사회 캠퍼스보다도 더 어렵게 활동하고 더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라고 들었는데, 실제로 다른 학교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고충을 겪는지 궁금했고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 성균관대는 캠퍼스를 이원화해 운영한다. 한 캠퍼스는 서울 대학로 혜화역의 인문사회과학 캠퍼스, 다른 캠퍼스는 수원의 자연과학 캠퍼스다. 각각을 명륜 캠퍼스, 율전 캠퍼스라 부르기도 한다.

 

회로: 예를 들면 성균관대 <나은> 같은 단체 말씀이시죠?

승연: 네, 맞아요. 세미나나 집회에서 <나은> 이야기 들은 적이 있어요. ‘백래시박살대회’라고 작년 6월에 <성균관대 위드유특별위원회(이하 ‘위드유특위’)>에서 주최했던 집회가 있어요. 그 집회에서 <나은> 회원분이, 얼굴을 드러내고 발언하는 게 어려우셔서 마스크를 끼고 발언하셨어요. 학내의 백래시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말씀해주신 고충과 연대의 필요성이 기억에 남습니다.

서영: 자연과학 캠퍼스의 여성주의 모임들은 활동이 중단된 상태라고 알아요. 한창 2016~2017년에 페미니즘 학회가 많이 생기기 시작하고 왕성한 활동 하던 시기에는 서로의 활동을 보며 응원하고 연대해야 하는 사안, 예를 들어 학내 미투운동이나 총여 재건운동같은 사안이 있을 때에는 주로 율전 캠퍼스에서 저희에게 연대하러 와주셨어요. 그리고 저희가 명륜 캠퍼스나 혜화역에서 하는 행사 포스터를 율전 캠퍼스 화장실에 붙여주신다거나, 그런 식으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희는 도움받은 기억이 많아요. 율전은 저희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 포스터가 뜯겼다는 인증처럼 올라오고요(*). 명륜 활동가들도 율전의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온라인으로 퍼 나르면서 이슈파이팅했어요. 그런 교류가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때 많이 하셨던 분들이 졸업하시고 해서 자주 못 뵙게 되었어요.

 

(*) 박수지·최소연, <페미니즘 교지 몰래 버리고, 대자보 찢고…대학가 ‘여혐’ 기승>, 2017.07.23, 한겨레,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03936.html

 

<유니브페미> 전 활동

 

회로: <유니브페미> 전에는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서영: 저는 대학에 2015년에 입학해서, 학내 세월호 1주기 추모 행사를 기획하면서 처음 활동했어요. 그때 저희 학교가 소위 ‘정치적인 것’에 대한 탄압이 심해서 충격받으며 활동을 시작했어요. 강남역 사건이 터진 2016년에는 제가 국문과 학생회장이었어요. 국문과 여성주의 모임을 처음 만들어서 여성주의 책 세미나를 처음 시작했어요. 같은 해 학과의 학회 커리큘럼 책들을 다 여성주의 책으로 바꾸기도 했어요. 그리고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이 생겨서 반전·평화 활동을 했어요. 또 2018년 3월에는 저희 학교 교수 미투운동이 시작되어서, 이에 호응하려 <위드유특위>를 만들어서 활동하다가, 그해 여름에 성균관대 총여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성성어디가>라고 하는 재건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진서: 저도 세월호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를 학교에서 진행하려 했는데, 학교가 장소 대관을 안 해줘, 교문에서 바닥에서 진행했어요. 그 여름에 같이 세월호 활동하던 사람들이 탈원전 운동을 하던 삼척으로 농촌 연대 활동을 갔어요. 삼척에 있는 여성주의 공동체 만들기를 모토로 진행하는, 여성 주체 교육, 세미나 하는 걸 봤어요. 여성주의 공동체가 가능하고, 편안하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 여성주의 활동을 시작했죠. 농활 가기 직전에 강남역 사건도 있었고요.

 

회로: <성성어디가> 활동 중에 마녀행진’(*)이 기억나요.

진서: 작년 3월, 여러 대학에서 의제가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미투, 인권센터, 총여 등등. 그 의제들을 모아서, 대학 페미니스트들이 공유하는 정체성으로 모여보자고 제안했어요. 실제로 많은 단위에서, 같이 행사를 같이 주최해주셨어요. 대학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다 같은 대학 페미니스트이고, 모였을 때 더 강하다고 말하기 위해 행진했어요. 새로운 의제를 만들기보다는 각자 학교 사정을 많이 말했어요.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떤 주제가 뜨거운지 밝히려 노력했어요. 다양한 의제와 다양한 구호가 많은 행진이었죠. 대학 페미니스트들을 모아 길거리로 함께 나갔다는 점에서 상징적이었죠. 그 행사를 하고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체가 가능하리라고 기대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서영: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는 여러 대학에서 총여 운동에 실제로 참여한 사람들이 주관한 포럼이었어요. 우리가 총여 운영에 부족함이 있어, 총여가 사라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어요. 더 친절하지 않아서, 더 대중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아서, 더 열심히 하지 않아서 등등. 학우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았죠. 거기에 대답하고 싶기도 했어요. 노동, 평화 등 집중하는 의제는 저마다 달라도 지금 대학에서 대자보 붙이고, 캠페인 하면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다 페미니스트라고 말이에요.

올해 2월 설에, 안희정 전 지사의 2심 유죄 판결이 났을 때 김지은 씨가 그동안을 회고하며 한 말이 있어요(**). 그 시간의 자신을, ‘화형대에 올려져 불길 속 마녀’라고 비유했어요. 작년 2018년 한 해 동안 페미니스트들도 화형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이 말을 현장에서 듣고, 기사들로 다시 보면서, 행사 이름을 지었던 것 같아요. 저희가 부당하게 마녀사냥당하고 있고, 그런데도 살아있고,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마녀행진’을 기획했어요.

모든 구호는 공동주최 단위가 모두 모여 만들었어요. 30개가 넘는 단위가 공동주최로 참여하셨어요. 모두 시간이 되는 때 강의실에 모여서 구호를 받고 주제별로 분류했어요. 학교마다 사정이 조금씩 달라요. 어떤 학교는 미투(MeToo)가 계속되고 있고, 어떤 학교는 인권센터가 주제고, 어떤 학교는 익명 게시판이 문제고요. 통렬하고 재미있는 다양한 구호들이 있었어요.

(*) 이정실, <3.8 여성의날 대학 페미 퍼포먼스 ‘마녀행진’>, 2019.03.09, 여성신문, 링크: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6622

(**) 유설희, <김지은 “화형대 마녀로 살았던 고통스런 시간과 작별”>, 2019.02.01, 경향신문, 링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201164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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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 서영님은 15학번이고 세월호 1주기 추모 활동에 참여했다고 하셨는데, 그럼 고3이셨던 14년에도 세월호 참사에 관심 있으셨나요?

서영: 네, 그때도 관심은 있었어요. 당시 제 꿈이 다큐멘터리 PD여서 사회 문제 자체에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때는 관심 있다는 말만 하고 시간을 쏟지 못 했어요. 그래서 실제 2014년에는 추모제나 집회에 참석하는 등 행동을 거의 못했고요. 말로만 지지하고 싶다면서 아무것도 못 하고 노란 리본 하나도 제대로 못 단 죄책감이 컸어요. 대학 입학하고, 시간과 정신에 여유가 있으니까 말만 하지 말고 제대로 관심을 가져보자는 생각에 세월호 1주기가 되어서야 직접 관심을 가졌어요.

처음 시작은 기자단 활동이었어요. 전국의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이나 당시에 잊히고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는 기획 속에서 여러 사람을 인터뷰했죠. 마지막 기획이 학내에서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였어요. 그래서 유가족분들 중 그 날 시간 되시는 분들을 모시고, 참사 이후에 어떤 일들이 있었고, 어떻게 투쟁했고,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보는 간담회 자리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외부행사는 안 된다면서 강의실을 안 빌려줬어요. 결국 학교 정문 앞에서 돗자리 깔고 했죠.

 

회로: 다른 주제로 강의실 대관이 거부된 일이 또 있었나요? 

서영: 작년에 미투운동이 있었잖아요. <위드유특위> 전에, 더 즉각적으로 대응한 곳은 승연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문과대 여학생위원회(이하 ‘여학위’)였어요. 미투 피해자분들을 모시고 증언, 간담회, 집담회를 했어요. 그 행사는 정말 대관 승인까지 됐는데 돌연 취소되었어요. 외부인사라서 안된다고 해서.

 

회로: 승연 님은 어느 단체에서 처음 활동하셨나요?

승연: 저는 2015년에 입학해서 3월에 여학위에 들어가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조금 더 본격적으로 활동한 계기는 미투운동이에요. 활동 초 몇 주는 다른 일로 바빠 미지근하게 활동하다가, 미투생존자집담회를 앞두고 많은 일을 봤어요. 집담회가 3월 29일이었어요. 행사 3일 전에 갑자기 승인되었던 강의실이 반려되었어요. 당시 여학위원장이 공간 대관을 관리하는 학생지원팀에 찾아가서 싸웠는데도 끝내 답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에는 600주년 기념관 앞 커다란 야외 공터에서 진행했어요. 그 현장을 보고는, 학내에서 여성주의 혹은 정치적인 사안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깨달았고, 이후로 조금 더 여성주의 활동에 열의를 가졌어요. 그 집담회 뒤풀이에서 서영 님을 만나 지금까지 같이 활동하고 있네요.

이후에도 여학위 이름으로 활동하면 학생들이 페미니스트라는 것 자체에 반감을 품었고요. 에타(*)에서 계속 ‘여학위 왜 있냐?’, ‘여학위가 관리하던 여끔(**)은 왜 있냐?’, ‘여끔은 여학위가 점유한 공간 아니냐?’는 유언비어가 계속 올라왔어요. 여학위는 공식 기구이기 때문에 그런 유언비어들에 저희가 하나하나 친절하게,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많은 과정을 지켜봤어요.

여학위가 공식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힘은 하나도 주어진 힘은 없다고 느꼈어요. 문과대 학생회에서는 저희를 배제하려 하고, 저희 관한 유언비어와 논란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른바 ‘나대지말라’는 식의 경고도 했고요. 이 학교에서는 위원회 형태는 통하지 않고, ‘총여학생회’라는 의결권과 힘이 있는 기구들이 학교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활동의 정당성과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의결권과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기구가 필요해 보였죠. 서영 님과 만나서 얘기도 해보고 저도 <성성어디가>에 동참해 총여 재건운동에 함께했고, 지금은 <유니브페미>에 활동해요.

(*) 에브리타임. 대학마다 있는 시간표 어플. 대학별 폐쇄커뮤니티기도 하다.

(**) 이범준, <여끔vs휴머니티스 존…자치공간 갈등 빚는 성균관대 학생들>, 2019.07.24, 중앙일보, 링크: https://news.joins.com/article/23534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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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주년 기념관 앞에서 진행된 미투생존자집담회. 출처: https://www.facebook.com/feminisminskku/posts/1873475519353099?__tn__=-R

 

회로: 과거 다른 활동 경력이 지금 활동에 도움을 주신 것 같나요? 도움이 되었다면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서영: 저는 학생회를 하면서 많은 학생회 사람을 만났고, 학과 사람도 많이 만나고 알았어요. 학생회를 하면 적어도 그해에는 학생회를 하면 적어도 그 해에는 1, 2학년 학우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과 행사에서 이야기 나누기도 하니 많이 알게 돼요. 학생회를 하니 학칙이나 회칙에도 익숙해지고, 학생회의 체계 자체를 이해하고. 사업도 많이 하니까 포스터 만들고 홍보하고 모집하고 실무 역량도 이 시기에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회로: 승연 님은 여학위 활동이 도움이 되셨나요?

승연: 활동하는 동안 조금 더 정신적으로 단단해질 수 있졌어요. 물론 전대 위원장도 나름의 고민을 했을 테고, 단단하고 굳은 결의만으로 활동에 임하지는 않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그분이 항상 여학위 사람들을 다독였고, 중요한 일은 항상 앞장서서 맡아 하면서도 힘든 내색 한 번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 모습 보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여학위 활동에 공격과 비난, 조롱을 많이 받으면서 당시에는 화도 나고 상처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더 웃어넘길 수 있고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게 되었어요. 좋지만은 않은 것 같지만 불필요한 공격에 무뎌지더라고요. 이 경험이 흔들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위안이나 새로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심리적인 동력이 된 것도 있어요.

 

회로: 여학위는 문과대 산하 위원회인데, 다른 단과대 학생이 참여할 수 있나요?

승연: 네, 저도 사회대 학생이에요. 위원이 다른 단과대 학생도 상관없지만, 위원장을 문과대 학생이 아닌 다른 단과대 학생이 맡으려면 문과대 운영위원회에서 인준받아야 해요. 저는 작년에 인준 못 받았어요. 여학위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일이죠. 더는 위원회가 아니니 위원장이 어느 단과대인지는 의미가 없지만요. (*)

여학위의 일이 문과대의 배경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문과대 산하 위원회인데, 다른 단과대 학생이 위원장인 게 이상하지 않냐는 지적은 몇 번 들었어요. 그렇지만, 단과대 단위의 다른 소모임의 장은 소속이 달라도 인준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장을 맡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여학위에 부당하게 더 엄격했다고 생각해요.

서영: 문과대 여학위가 있다는 걸 아는 성균관대 모든 학생에게 여학위는, 학내 유일하게 남은 여학생 단체고, 무슨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문의해볼 수 있는 단체였어요.

(*) https://www.facebook.com/feminisminskku/posts/2423396897694289?__tn__=K-R

 

<유니브페미> 소개

 

회로: <유니브페미>를 결성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진서: 총여 재건 투쟁을 시작한 계기를 먼저 말해볼게요. 총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계기는 미투 고발이었어요. 이 고발들은, 대학이 공동체로서 실패했고 와해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잖아요. 그렇지만 대학에는 여전히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들을 위한 공동체가 필요하고요. 총여를 통해 이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는데, 결국은 실패했고, 대학을 공동체라고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동체를 대학 밖에서 만들고자 시작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공동체를 원한다는 요구는 꾸준히 나왔고요. 성균관대 총여 폐지 이후에, 동국대 총여도 폐지되었고, 연세대에서는 이듬해 1월에 총여가 회칙에서 삭제되었고요.

승연: <성성어디가>에서 진행했던 ‘마녀행진’을 보고 대학 밖 페미니스트 공동체가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어요. 여러 대학의 페미니스트 단체에 ‘마녀행진’을 공동주최를 제안했어요. 예상보다 많은 30개 넘는 단체에서 호응해주셨고, 서울 외 지역에서도 행진에 참여해주셨어요. 그때 많은 용기를 얻었고, 많은 페미니스트가 연대체를 갈망하고, 실제로 가능하다고 느꼈어요.

 

회로: <유니브페미> 회원은 몇 명인가요?

서영: <유니브페미> 회원은 150명 정도예요. 서울 지역에 있는 대학생들이 거의 대부분이에요. 극소수지만 교수님, 대학생의 가족도 있어요. 기존 여성단체 활동하는 분들이 후원자로 많이 가입해주셨어요.

승연: 경상, 전라 지역 등등 곳곳에 계시는데 인원이 많지는 않아요. 여성단체 활동하시는 분은, 저희 사무실에 같이 입주하신 분들이나, 센터 선생님들도 많이 해주셨어요.

진서: 총학생회, 동아리 등 다른 활동과 <유니브페미>를 병행하는 분도 많아요. 모이면 학교 상황을 많이 공유하죠.

 

회로: 단체를 준비하는 모임들이 특이했어요. 강령 제정 모임 오로라’, 총회 중력을 넘어등등 모임 이름이 모두 우주적이던데 어떤 뜻을 담아 이름을 지었나요?

진서: <유니브페미>에는 여러 뜻이 있어요. 우선 대학이란 뜻의 university, 우주라는 뜻의 universe, 보편적이라는 뜻의 universal도 있고요. university를 의제 공간으로 삼고, 대학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공동체, universe를 만들고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universal하게 만들자는 3가지 의미에요. 여기서 요소요소들을 따와 행사와 소모임 이름을 지었죠.

 

회로: 대학 외부 단체면 대학 안 문제에 개입하기 어렵지 않을까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진서: 중앙대 페미니스트 총궐기를 보고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어요. 중앙대 성평등위원회에서 여러 대학에 연대 요청을 보냈고, 실제로 많이 총궐기에 참여했어요. 퀴어, 여성주의 등등 다양한 성격의 단체들이 연대발언해주던 장면이 기억나요. 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내에 개입하는 게 어려우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총학생회가 학생들 의견에만 압박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아요. 언론 등 학교 밖에서도 비판을 받는 걸 의식하는 것 같아요. <유니브페미>도 열심히 비판한다면, 총학도 이 비판을 의식하겠죠.

승연: 어차피 대학 안에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도 어려우면, 밖에서라도 더 많이 모여 뭔가 도모해보는 게 더 가능해 보일 정도로, 학내가 정말 팍팍해요. 대학 밖 페미니스트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기도 했고, 대학 안 상황에 절망하기도 했고요.

 

회로: 강령(*) 만들 때 어떤 논의가 오고 갔나요?

서영: 오래된 일이네요. 오랜 기간 매주 정말 많은 논의를 했어요. 기본적으로는 포부를 어떻게 담아낼지 고민했던 것 같아요. 대학 사회의 한계를 지적하고, 학생 사회가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유니브페미>가 무엇을 할 것인지 적었어요. 어떻게 하면 모든 차별에 반대하면서 모두에게 평등한 대학을 만들자는 우리의 최종 목표를 담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여러 사람이 저희 단체를 알게 되었을 때 이걸 읽어보고 어떻게 설득해서 가입할 수 있는 멋진 단체가 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강령에는 총여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기존 여러 총여가 지켜오던 지침들을 지향점으로 삼고 쉬운 말로 담으려 노력했어요.

진서: 강령 주요 내용은 어디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포부였어요. 어디는 학교 당국, 학생회, 어떻게는 문화와 제도. 구체적인 사례가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작년 총여 폐지 사태, 그에 따른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 ‘마녀행진’, 중앙대 페미니스트 총궐기 등과 더불어 페미니즘 포럼과 컨퍼런스에서 용기를 받았던 것 같기는 해요.

 

회로: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인큐베이팅 룸이라는 사무실을 얻었다고 들었어요. 입주 지원서에 어떤 점을 강조해 적었나요?

서영: 주로 저희가 성대에서 겪은 얘기를 많이 썼어요. 9년 만에 총여를 재건하려 했지만 입후보하자마자 총여 폐지가 학생 총투표에 부쳐졌고, 보이콧 운동을 해 성공했지만, 별다른 논의 없이 투표 기간이 연장되어 결국 투표가 성사되어 총여가 폐지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우리는 ‘그 민주주의는 틀렸다’, ‘마녀행진’ 등 꾸준히 활동해왔고 앞으로도 활동할 것이라고요.

총여가 폐지되기 시작한 것은, 총여가 잘못했기때문이 아니라 총여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니, 앞으로도 이런 모임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고, 구심점이 되기 위해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죠. ‘마녀행진’에서 여러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이 함께 행사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면접에 가서는 올해 안에 회원 1000명을 모으겠다는 포부도 밝혔어요.

 

회로: 같이 입주해있는 다른 단체 분들과는 잘 지내시나요?

진서: 예, 잘 지내요. 학술적인 얘기는 정말 거의 안 하고 일상적인 얘기, 농담 주고받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요.

서영: 재미있어요. 처음 본 사람이고, 나이도 다르고, 활동 영역도 다른데,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끈끈하고 친밀하게 느껴져요. 입주 공간에 부엌도 있어서, 같이 음식을 해 먹기도 해요. 그분들 존재만으로 제게는 굉장히 힘이 되어요. 특히 40~50대 활동가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요. 제가 나이가 들면 센터에서 일을 하며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을 지원하거나, 센터에 입주해 저의 운동을 끊임없이 이어갈 수도, 센터 밖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겠죠. 어떤 모습이어도 괜찮고,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지금의 나를 한 번 더 믿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센터장님에게는 멘토링을 받을 수도 있어요. 이 인큐베이팅 룸 혜택 중 무료 컨설팅이 있거든요. 저희가 사업을 꾸며서 컨설팅을 신청하면 자문을 해주세요. 단체 등록에 실무적이고 행정적인 도움을 주신 적도 있고, 월경 공결제를 주제로 하는 토론회 등 여러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계획서를 보여드린 적도 있어요. 이런 점은 특별히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고, 저런 점에서 비판이 올 수 있으니 주의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받았어요.

 

회로: 페이스북에서 재미있는 계획을 많이 봤어요. 페미니스트 교육을 만들어보자는 기획을 더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진서: 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먼저 제안한 기획이에요. 또래 교육을 컨셉으로 구체화하는 중이에요.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말하고자 할 때, 대학생들은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나는데, 이는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로서 교육할 수 있는 내용을 만들자고 제안해주셔서 흔쾌히 응해 공동 작업 중이에요. 교육 대상으로는, 주로 대학의 페미니스트, 여성주의에 관심 있는 대학생, 대학에서 여성주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요.

 

회로: 여러 대학의 인권 축제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나요?

서영: 그 대학에 <유니브페미> 회원이 계시기도 하고, 주최 측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저희가 대학 외 단체다 보니, 학생들을 만날 기회라고 생각해 주최 측에 먼저 연락하기도 했고요.

인권 축제 부스에서는, 문제 있는 학칙을 직접 고쳐보거나, 학교에 인권 교육이 얼마나 있는지 통계를 보고 퀴즈를 풀어보기도 했어요. 여러 대학의 미투 사례를 가져와, 교수가 받은 처벌, 학생들이 싸워 바뀐 처벌 등을 다루었어요. 본인 학교가 아닌, 다른 학교의 상황을 모두 모아 보는 것 자체가 새롭다는 의견을 많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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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인권축제 ‘-ever!’에 낸 <유니브페미> 부스. <유니브페미> 제공.

 

회로: 페이스북에서 대학 성평등지수 프로젝트사업위원 모집 글을 봤어요. 외부인 위원도 모집하던데, 외부인 중에도 모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서영: 올해 11월에 각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철이 시작되겠죠. 그때 성평등한 공약이 많은지 점검해보자는 취지의 사업이에요. 학생회와 더불어 대학의 다른 한 축인 대학 본부도 살펴보고자 해요. 학교가 성평등 사업에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얼마나 많은 대상에 얼마나 정기적으로 성평등 교육을 하는지도 보고자 해요. 월경 공결제도 조사해보려고요. 기존 대학 평가에는 성평등 관련 지표가 없으니, 저희가 성평등 대학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싶어요.

외부인도 이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열어둔 이유는, <유니브페미>를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도록 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회로: <유니브페미>에는 여러 대학이 모여, 대학 간 차이를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서영: 지금까지 느낀 점만 말씀드리자면, 여대와 여남공학의 분위기와 지형이 달라요. 신학대는 학교 본부나 교단이 백래시 주체고요. 어떤 지역 대학 중에는, 페미니즘을 얘기할 공간이 없거나, 공간을 만들려 해도 지원이 잘 안 들어와 고민하고 고립된 분들이 많더라고요.

대학마다 다르다는 점을 절실히 느껴요.

 

회로: 회원들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진서: 다들 대학을 부수고 싶어서 하세요. (웃음) 창립총회 전 발기인분들을 모아 집담회를 한 적이 있어요. <유니브페미>에 왜 들어왔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 나누었어요. 다들 대학 부수고 재건하기를 꼽더라고요. 다들 지금 대학이 당연하게 여기는 상식을 뒤집고, 그 상식이 페미니즘이 되기를 욕망하셨어요. 주변 친구들 바꾸는 데에도 관심이 있겠지만, 결국 대학의 상식선을 새롭게 만들자고 말씀해주셨어요.

대학 안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분이 많아요. 대학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시작할지도 모르겠다는 분도 있었어요. 그래서 세미나에 참여하시는 분도 있더라고요. 성균관대 회원 중에는, 작년 총여 폐지 과정을 보며 여전히 공동체와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아요.

<유니브페미> 준비모임 때 세미나에서는, <유니브페미>의 지향점이 교차되는 페미니즘, 소수자를 배제하지 않는 페미니즘이길 바란다고 이야기 나누었어요. 동시에 어떻게 힘과 권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고민이고요.

 

승연: 총학생회가 페미니스트 학생의 의견을 학우의 의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페미니스트 학생들이 대학의 일원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고민도 보였어요. 어느 대학 가릴 것 없이, 정치성을 꺼리는 건 흐름인 것 같아요. 심지어 여대에서도 정치적인 사안을 다루는 것을 많이 꺼리다 보니, 오히려 페미니즘이 탈정치의 언어로 활용된다는 얘기도 들어요.

대학 안에서 활동하는 데에 호소하는 어려움은, ‘소모임을 찾을 수 없다’, ‘단체는 있는데 한계를 느낀다’ 등 다양해요. 예를 들면, 성균관대 문과대 여학위, 중앙대 성평등위원회 등 회칙이 보장하는 기구도 탄압받으니까요. 소모임은 공식적이지 않으니 불필요한 공격을 받기도 하고요. 비공식인 소모임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도 직접 나서는 데에 한계도 있죠. 학생회가 소모임의 의견을 학교에 전달해야 하는데, 학생회는 이 역할을 거부하고요.

서영: 에타에도 관심도 많아요. 페미니즘과 관련된 소수자 인권 담론, 동물권 등 다양한 주제를 페미니스트들과 나눠 보자는 의견도 나왔어요.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세미나 이름을 교차성 세미나로 정하고 커리큘럼에 관련 주제를 넣었어요.

 

회로: 세미나 이야기를 해볼게요. 세미나 주제는 회원들이 모여 정하나요?

서영: 세미나 사업 위원회에서 커리큘럼을 짜기는 하지만, 회원들 의견을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해요. 앞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학기마다 세미나를 할 텐데요, 전에 세미나에 참여했던 분들 의견을 들을 창구를 마련해 나가려 해요.

진서: 이번 세미나 커리큘럼도 준비모임 때 세미나에 참여하신 분들 의견을 많이 반영했어요. 준비모임 세미나에 참여하신 분들은, 세미나 대신 여러 사업의 집행위에 들어가거나 자기 학교에서 페미니즘 학회 등 무언가 해보겠다며 학교로 돌아갔어요. 자신이 몸담은 학회들, 위원회로 돌아가 무언가 해보겠다고 많이 말씀해주셨어요. 인권축제 아이디어를 따간 사람도 있어요. (웃음)

 

회로: <유니브페미>에서 잠깐이나마 활동하다가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셨다는 분들 이야기가 인상 깊어요. 학내 활동과 <유니브페미> 활동을 연결짓는 분들이 계신가요?

진서: 어느 대학 분을 만나든 백래시가 심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학교 본부나 학생회, 반동성애 등 외부 세력, 에타에서 시비를 건대요. 이 점은 차치하더라도, 활동을 계속할 사람이 안 모인다는 점이 힘들다고 하세요.

승연: 백래시 혹은 반발이 점점 심해지니, 페미니즘이란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단위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느끼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요. 여학위는 여러 다른 사정도 있지만, 신입 위원이 19학번 한 명 포함 총 2명뿐이었어요. 페미니즘에 관심이 늘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면서 활동하기 점점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아예 기구 존속에 위협을 느끼는 기구도 생기는 것 같아요.

 

대학이라는 공간

 

회로: 성균관대뿐만 아니라 대학 전체에서 현재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서영: 저는 대학만의 특수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회 전반의 문제일 텐데, 그중에서 대학에서 두드러지는 문제는 공간 부족이요. 물리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논의, 공감, 소통, 결정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는 게 정말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공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과 만날 공간조차 없다고 많이 느껴요. 사실 같은 의견이라는 것도 적은 경우일 것 같아요.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인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하고, 논의를 성장시켜나가거나 공동의 목표를 이루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토양이이 되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승연: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덧붙이면, 학생들, 특히 학생회가 정치적 입장을 띠는 걸 극도로 경계하는 게 큰 문제에요. 여학위를 예시로 들자면, 문과대학생대표자회의의 학생대표 25명 중 18명이 기권해서 여학위 재인준이 안 되었어요. 이 사례만 보아도 ‘입장 없음’을 드러내는 것조차도 정치적인데, 오히려 정치적 중립으로 포장되고 학생대표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으로 여기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러한 ‘중립’이 여성주의를 비롯한 소수자 의제들이 삭제되기 가장 좋은 배경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정치적인 것을 꺼릴수록, 정치 의제를 끌고 올 수밖에 없는 소수자 의제가 배제되고 지워진다고 느껴요.

 

진서: 대학에는 문제가 많아 어느 하나를 꼽기가 쉽지 않네요. 모든 문제가, 대학이라는 공간 자체의 의미가 변하면서 생겼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대학이 더 공동체로 사유하지 않고, 취업을 위한 스펙 쌓는 과정 정도로 이해하고, 아무도 공동체로 사유하지 않는 것이 다양한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총여와 여성주의 기구가 필요 없다는 말을 할 때, 내 눈에는 소수자가 안 보이고 내가 소수자가 아니기에 필요 없다는 이유를 대죠. 그 이유가, 이유일 수 있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누군가가 차별받는다는 걸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잖아요. 즉, 더 공동체로 사유하지 않기에, 청소노동자에 대한 발언이나 성소수자 혐오 발언들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사실은 누군가의 일이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두의 일이 되잖아요. 아무에게도 여기가 공동체가 아니므로,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거죠. ‘그냥 쟤는 저렇구나’ 정도로 별다른 생각 없이 넘어가고요.

 

회로: 어떤 점에서 대학이 여성주의를 공부하기에 부적절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세요? 진서 님이 해주신 답변과 연결될 것 같아요.

진서: 부적절한 공간이라기보다는 힘든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은 여성주의를 이해하고 소개하는 공간인데, 그럼에도 저희가 활동에서 겪은 어려움은, 대학이 공동체가 아니기에 활동하기 힘들어졌을 뿐이지 “대학에서는 여성주의를 하면 안 되지”라는 말은 저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서영: 저도 거의 같은 말을 하려고 했어요. 여성주의 운동을 하기에 부적절하거나 적절한 공간을 나눌 수 없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대학이 여성주의가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개개인들이 인신공격받거나, 페미니스트로 목소리를 내는 순간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해야 한다’며 페미니스트는 학생 취급조차 안 해주는 여러 경험이 있어요.

총여 재건 운동 이후 여러 연대 사업을 하면서 많은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이 저희와 비슷한 고민한다는 걸 알았어요. 대학에서 운동을 하기 힘들다는 점, 이 고민이 우리만의 고민이 아니라 여러 대학에서 많은 사람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외로움을 겪고 있는 점, 고민을 말할 곳이 없다는 점을 알았어요. 그래서 저희는 “그럼 우리 바깥에서 다시 만나보자”인 거죠. “우리 안에서 안 해”가 아니라 “우리 쫓겨났지만, 바깥에서 다시 할 거야, 그리고 다시 시작해서 침투해서 학교 바꿀 거야”라고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가며

 

회로: 개인적인 각오와 다른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진서: 안전한 공간이란 무엇일까 많이 고민해요. 모든 것을 검열하고, ‘완전한’ 페미니스트들만이 모인 공간이 우리가 바라는 안전한 공간일까, 페미니스트들에게 안전이란 어떤 의미고,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안전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이 늘었어요. 대학에서 혹은 일상에서 나의 안전한 공간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이 모여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지하철에 생물학적 여성만 모인 여성 전용칸을 만들면 안전할 것이다’, ‘동질적인 공간을 안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잖아요. 하지만 여성전용칸이 오히려 가장 취약한 공간일 수 있고요. 그럼 페미니스트로서, 소수자성을 가진 이들의 안전은 어떻게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모이면 좋겠어요.

변화는 점차 오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몰아닥치는 변화도 필요하잖아요. <유니브페미>는 대학의 상식선을 뒤흔드는 많은 일을 추진력 있게 해나가는 단체가 되리라고 기대하고,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요. 더 많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회원 1000명을 달성하고 싶습니다. 투쟁!

 

승연: 정신건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많은 페미니스트, 퀴어가 우울감에 많이 빠져 살아요. 많은 비방과 더 엄격한 도덕 잣대에 노출되어 살기도 하고, 스스로도 자기검열하거나 채찍질도 많이 하고요 이게 페미니즘을 더 나아가게 하는 좋은 과정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를 너무 소진시킬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페미니스트들이 자기 자신을 좀. 더 믿고, 동료들끼리 더 의지하고 돌볼 수 있는 페미니스트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 <유니브페미>가 더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유니브페미>가 그런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요.

서영: <성성어디가>에서 활동 정리하는 책을 쓰고 있어요. 제가 그 책 마지막에 적은 말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사실 진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계속 나아간다는 점에서요. 나아가는 길에 지칠 수는 있지만, 그치지는 않을 거예요. 그것만으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유니브페미>는 그치지 않을 테니, 많은 분이 함께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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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을 정리하는 책인 『미지수 – 투표로 지워지지 않는 존재들』은 10월까지 선주문을 받아 제작되었다. 굿바이 파티(11월 15일)에서 『미지수 – 투표로 지워지지 않는 존재들』 북 토크를 진행한다. 출처는 다음 링크 참조.  페미회로 갈무리.

<유니브페미>를 인터뷰하며 문득 깨달은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사람은 모두 어디론가 움직인다는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4년이 넘었고, 대학의 많은 페미니스트도 그때와는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 취업한 사람, 시민 단체에서 전업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 생활 공간이 달라진 만큼이나 소속도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수많은 여성주의 단체가 이합집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흩어진다고 하여 안타깝게 여길 일만은 아닌 것 같다. 학교의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다 <유니브페미>를 만든 인터뷰이들처럼, <유니브페미> 준비모임에서 활동하다 자신의 학교로 돌아간 사람들처럼, 흩어진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산다. <유니브페미>도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고 역량 있는 사람들을 배출하는, 사회에서 살아 숨쉬는 단체가 되기를 기원한다.

019: 페미니스트 여성 과학자 세라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19: 페미니스트 여성 과학자 세라

 

 이번 인터뷰에서는 화학과 대학원생 세라 님을 만나보았다. 세라 님은 포스텍 학부 생활 중 <포스텍 페미니즘>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학내 페미니즘 운동을 이끌었고, 석사과정을 졸업한 뒤 기업 연구소에 갈 예정이다. <페미회로>는 세라 님을 만나 어떻게 페미니즘 운동에 관심을 가졌는지, 여성 과학자의 꿈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어떤 미래 계획을 꿈꾸고 있는지 질문했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제이는 회로, 인터뷰이 세라 님은 세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페미니스트 세라

회로: 안녕하세요, 세라님. 반갑습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라: 제 정체성이 페미니스트와 과학 하는 여자라는 두 면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 저만의 색다른 이야기도 많은 편이라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었어요.

 

회로: 두 정체성을 주제로 인터뷰를 시작해볼게요. 자신의 페미니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세라: 저는 페미니즘을 성별 이분법적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여성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더 뚜렷하게 낼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회로: 그럼 일단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는 거네요?

세라: 네, 일단은 제가 정의하는 페미니즘이라기보다 저의 관점에서 바라본, 제 개인적인 페미니즘이에요.

 

회로: 그러면 페미니스트라는 건, 세라 님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면서 여성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네요?

세라: 저는 비교적 평범하게 남녀차별을 엄청나게 받지는 않으면서 자랐어요. 여중, 여고를 나왔고 스무 살 전까지는 남자들과 섞인 환경에서 지내지 않았어요.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여학교를 다녔고, 그런 환경에서는 여자 누구누구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으므로 성별이나 성역할에 관한 고민을 많이 못 해봤어요. 중고등학교에서는 그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운동하고 싶은 학생은 운동하고, 뜨개질하고 싶으면 뜨개질하고… ‘넌 여자니까 이거 해야 해’ 이런 이유가 붙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환경이 완전히 역전된, 남자가 굉장히 많은 공대에 오니까 여기서는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여자는 그렇지’, ‘여자니까 이렇게 해야지’ 하는 꼬리표가 달리더라고요. 나는 나 자체로 존재하고 싶은데, 나 자신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내 정체성이 여자라는 이름으로 지워지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회로: 여자로서밖에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이 있다는 것이죠?

세라: 네, 이 학교에서는 여자가 적다 보니까 제 이름은 지워지고 여자라는 성별만 남더라고요.

굉장히 낯설었어요. 저는 스무 살 전까지는 여자라는 꼬리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여학교에서는 다 똑같은 학생이고 똑같은 사람이니까 성별을 신경 쓸 여지도 없었어요. 옷차림도 행동 가짐도 자유로웠고, 성별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도 없었고요.

 

회로: 여고에도 보통 남자 교사는 있잖아요. 가끔 여학교에서 남자 교사가 성추행했다는 뉴스도 나고요. 그런 문제는 없었던 건가요?

세라: 네, 제게는 운 좋게도 그런 사건은 없었어요.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 학생인권조례와 관련된 논의가 뜨겁게 진행되었고 고등학생 때는 공포되었어요. 성추행은 당연히 안 되고, 학교는 두발 규제, 치마 단속, 야자 강제도 할 수 없게 되었죠. 또 저희 학교에는 여자 교사분이 많기도 했고요.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학생들이 신고한다던가, 학부모 귀에 들어가면 학부모도 민감하게 반응해서 학교에서도 쉽게 조치할 수 있었어요.

 

회로: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자기 정체성이 변했다고 했는데, 계기가 된 구체적인 사례가 있나요?

세라: 포스텍에 로메(*)가 있었잖아요. 저는 똑같이 즐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여자애들은 도망가니까 떨어뜨려 놓아야 한다고 얘기하더라고요. 남자애들한테는 아무도 그런 제지를 안 하는데 말이죠. 여자애들은 중간에 뭉쳐서 도망가니까, 너희끼리 노니까 떨어뜨려 놔야 한다고…

중고등학생 때는 친구들끼리 소그룹으로 노는데 ‘너는 도망가니까 여기저기 흩어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안 하잖아요. 그뿐만 아니라 술자리에서 불쾌한 신체접촉을 당하는 등의 낯선 경험이 1학년 때는 꽤 있었죠. 얼굴평가당하는 것도 능사였어요. 남자 동기에게 ‘너는 어디 고치면 더 예쁘겠다’는 이야기를 대놓고 듣기도 했죠. 2, 3학년 때도 이런 일은 있었지만 1학년 때 환경이 급격히 바뀌면서 겪은 것이라 더 충격이었어요.

(*) 로스트 메모리즈. 포스텍에서 학기 직전 새내기새로배움터 행사가 모두 마치고 술을 마시는 뒤풀이 행사. 지금은 사라졌다.

 

회로: 그런데 어떤 학생들은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참기도 하고, 당연히 이런가 보다 하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세라 님은 그게 이상하다고 느낀 이유가 무엇인가요?

세라: 저도 그 당시에 제지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지는 못했어요. 그런 상황 자체가 처음이었고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모르고 이런 상황에 처할 거라는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요.

 

회로: 1학년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라: 네, 대부분 선배에게 그런 일을 당했으니까요. 사실은 다른 여자애들도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어요. 친구들끼리 2, 3학년 때쯤 방에서 친구들끼리 술 마시고 놀고 이야기하다가 그런 일을 털어놓으면서 다 같이 공유했죠. ‘나도 당했고, 너도 당했고, 정말 이상한 일이다, 왜 우리가 그런 일을 당했을까?’ 저는 그 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고, 이런 일들과 관련해서 꽤 발언하는 편이었는데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경험을 공유하면서 알게 되었죠. 제가 학부생일 때 2015년도에는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기도 했고 2016년도에는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기도 했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본인이 겪은 일을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회로: 아까 여성으로서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는데 어떤 것인가요?

세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여성은 어떠해야 한다는 성역할을 따르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심심치 않게, 한 여자만 잘못해도 ‘여자는 어떠해’라며 여자 전체가 뭉뚱그려서 일반화하잖아요. 그런데 이 ’여자’라는 이름 뒤에는 굉장히 다채로운 개인이 있어요. 그런 개인들이 모여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은 모두 다르지만, 사회에서 여자라고 인식되기 때문에 부당한 일을 겪고 차별을 당하잖아요. 차별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룰 수 있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겪고 있는, 아니면 겪었던 부당한 일들을 공유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회로<포스텍 페미니즘>이라는 단체를 만든 데에도 그런 배경이 있나요?

세라: 네. 이런 일들을 우리만 겪는 게 아니라, 그 전부터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이나 불평등이 있었잖아요. 이것을 왜 겪는지,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앞으로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포스텍 페미니즘>을 만들 당시에는 이런 수요가 많았거든요. 그렇게 모인 사람 중에 제가 제일 행동력이 있어서 총대를 멨죠.

 

회로: <포스텍 페미니즘>을 소개해주세요.

세라: <포스텍 페미니즘>은 여성주의 연구회로, 학내 성차별, 여성혐오로부터 안전한 커뮤니티로 기능하고자 하는 단체에요. 기본적으로는 여성주의 서적을 읽고 발제한 주제로 깊은 토론을 나누는 스터디를 진행해요. 여성주의 영화가 개봉하면 함께 보러 가거나 퀴어 퍼레이드에 가기도 하고요. 포스텍 미투, 한동대 부당징계 등 부당한 일이 있으면 함께 목소리를 내고 경험 세미나, 월경컵 간담회 등 공개 행사도 여러 차례 진행했습니다.

 

회로: 혹시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으신가요?

세라: 저는 <포스텍 페미니즘>를 처음부터 쭉 같이했고 대부분의 일에 참여해서 다 기억에 남긴 해요. 그래도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2017년 1학기에 저희가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책의 서문으로 했던 오픈 세미나를 꼽을래요. 당시에 딱 봐도 공격하려고 온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작년 2018년 2학기에 포스터가 뜯겼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다른 학교에도 <포스텍 페미니즘> 같은 단체가 많잖아요. 카이스트의 <마고>나, 유니스트의 <오프코르셋> 등 요. 이런 단체들도 마찬가지로 겪는 어려움일 것 같아요. 보수적이고 좁고 남성 중심적인 학교에서 여성주의 단체를 운영한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반향일 수도 있어요. 저는 단체를 운영하는 입장이니 그런 사고들이 더욱 기억에 남아요. 처음부터 녹록치 않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실제로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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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학기 오픈세미나 포스터 2종. 사진: 세라 제공. 페미회로 갈무리.

 

회로: 당시에 찢긴 포스터는 포스텍 학생소수자 인권위원회 <모담>에서 진행한 인권주간 행사에서 전시했었죠?

세라: 네, 포스터를 전시하고 반창고를 붙이는 퍼포먼스를 했었죠.

 

회로: 아까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말씀하셨는데, 굳이 리부트라고 불리는 이유가 뭔가요?

세라: 사실 사람들이 페미니즘은 최근에 등장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늦게 잡아도 18세기 후반부터 이어져 온, 굉장히 역사가 오래된 학문이거든요.

 

회로: 1792년에 나온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권의 옹호』가 보통 최초의 페미니즘 학술 서적으로 꼽히죠?

세라: 네. <포스텍 페미니즘>에서 첫 스터디로 제가 여성주의 역사를 발표했어요. 우리나라에도 긴 페미니즘 역사가 있어요. 여성 단체의 오랜 노력 덕에 1997년에 동성동본 금혼 제도가 헌법 불합치를 받았고, 2001년에 호주제가 폐지됐죠.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었어요. 당연히 호주제나 동성동본 금혼은 따라야 하는 규범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이게 20세기의 일인데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요즘에 생겼다고 생각해요. 그 당시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썼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여성운동, 페미니즘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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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 님 발표 자료. 세라 제공. 페미회로 갈무리.

 

회로: 당시 사용하던 PC 통신에 동호회가 굉장히 많았는데 여성주의 동호회도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1997년도 대선 후보와 지금 후보들이 동성애에 관해 낸 입장을 비교한 기사 (*)도 기억나요.

세라: 맞아요, 김대중, 이회창 후보의 당시 입장을 읽어보면 굉장히 진보적이어서 오히려 나라가 퇴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아무튼 그런 역사가 있었는데 한동안 성 관련 인권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적었어요. 그러다 강남역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이 급물살을 치게 된 것을 페미니즘 리부트라고 부르는 것이죠.

(*) 손호영, <<디테일추적>’동성애’에 대한 이회창, 김대중 후보의 20년 전 대답이 화제 되는 까닭은>, 2017.04.26, 조선일보, 링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26/2017042602594.html

 

회로: 어떻게 보면 2000년대 초부터 여성운동의 영향력이 약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라: 여성민우회나 지역 여성회는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물밑에서 계속 활동해왔어요. 단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죠. 크게 수면 위로 드러날 일이 많이 없기도 했고 사람들이 여성인권에 관심 가지지 않았어요. 페미니즘 리부트가 일어나면서 그런 단체가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알게 되었죠. 지금은 어느 때보다 격동하는 시대인 것 같아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된장녀’ 같은 표현이 만연했는데 지금은 그런 말을 쓰면 큰일 난다는 걸 알잖아요.

 

회로: 저도 전문가는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경제적인 위기 때문에 인권에 관심이 줄고 국가의 경제 등에 관심이 커져서 그렇게 됐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 생겼던 여성가족부가 오히려 반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주장을 들어봤어요.

세라: 굉장히 복합적인 것 같아요. 2001년 여성가족부가 창립된 뒤 괴담이 많이 돌기도 했죠.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일자리가 찾기가 힘들어지고 먹고 살기가 힘들어졌어요. 2008년쯤에 미국에서 경제 위기가 터지고 전세계가 타격을 받았어요. 해외든 국내든 경제적 어려움을 소수자나 약자 탓으로 돌리는 일이 만연했죠. 그래서 ‘된장녀’나 ‘김치녀’ 같은 신조어도 만들어졌고요.

차별적인 문화에 대한 불만이 쌓여 강남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사회 비판이 쏟아져 나온 것 같아요. 저는 전문가가 아닌 한낱 학생이지만 제가 그 시대를 살았던 경험으로 미루어보자면 오죽 쌓이고 쌓였으면 다들 인지하게 된 시점에 한 번에 터져 나오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비슷한 시기에 대학에서 <마고>, <포스텍 페미니즘>, <오프코르셋> 같은 페미니즘 단체가 생긴 것도 관련이 있겠죠.

 

 

여성 과학자 세라

 

회로: 동시대의 청년들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고 차별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을 것 같네요.

저희가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를 나눠본 것 같으니까 이제 여성 과학자의 정체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어릴 때부터 과학자로서 꿈을 가지고 계셨는지 궁금해요.

세라: 보통은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을 잘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재미있던 과목은 수학이었어요. 다른 과목도 잘 했지만. (웃음) 수학이 굉장히 재미있었고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과학이 공통과학으로 묶여 있잖아요. 과학 아래의 세부 과목이 무엇을 다루는지는 정확히 모르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화학이라는 공부하면서 화학이라는 과목이 매우 재미있었더라고요.

저는 화학이 세상의 빛이 될 분야라고 느꼈어요. 모든 것은 화학으로 이루어져 있고 화학으로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화학을 공부하는 연구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꾸었죠. 사실 그런 꿈을 꾼 지는 얼마 안 됐어요. 한 10년 정도?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꼭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어요.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꼭 이과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주변에서 제가 수학 과학을 잘한다고 했을 때 ’여자애가 수학을 잘하네? 과학을 잘하네?‘하는 시선이 있었거든요.

 

회로: 초등학교 때부터요?

세라: 네. 그래서 오히려 반항심에 편견을 이겨내고 싶었어요. 여자도 수학을 잘할 수 있다고. 다행히 수학, 과학을 잘하고 좋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진짜로 잘하고 좋아했던 건 사회 과목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 시험을 보면 수학이나 과학은 몇 개 틀렸는데 사회는 시험과 수행평가 모두 다 만점을 받았어요. 관심사인 수학과 과학에서 몇 개 틀렸다는 사실에만 정신이 팔려 사회를 잘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한 것 같아요.

대학생이 되어 교양 과목으로 사회학을 들어보니까 제가 사회과학 지식을 잘 흡수하고 논리를 잘 펼친다는 걸 알았어요. 그제서야 중학교, 고등학교 때 기억이 나더라고요. 오히려 성평등한 사회였고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없었다면 제가 사회학과를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회로: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네요?

세라: 과학을 공부한 걸 후회하지는 않지만 약간 아쉽긴 해요. 이런 선택지도 있었는데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내가 너무 일찍 다른 선택지를 지워버린 게 아닐까 하고요. 저희 학교 인문사회학부 교수님께서 제 사회학 레포트를 보시고 “너는 사회과학대 갈 것을 공대로 잘못 온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어요.

 

회로: 대학에 와서 어떤 과목으로 사회학을 접했나요?

세라: 처음 들은 과목은 과학사회학이었어요. 과학자 사회나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 과학적 지식도 사실은 합의나 위계에 의해 성립된다는 것을 알았죠.

또 대학에 오기 전에는 입시로 바빴지만, 대학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들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알고 사회학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회로: 대학교에 들어오고 나서 진로를 바꿀 기회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원 진학을 하고 화학자로 진로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세라: 종합대였으면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종합대는 사회학 강의도 많고 다채로운 것들을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저희 학교는 수학 과학에 과목이 집중되어 있거든요. 또 사회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화학만큼 큰 확신이 있지는 않았어요. 화학은 지금도 정말 좋아하는 학문이고요.

 

회로: 화학을 공부하다 보면 실험을 재밌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잖아요. 실험을 특히 좋아하셨나요?

세라: 전 실험을 좋아해서 실험 과목의 성적이 제일 높아요. 실험을 좋아하기도 했고, 내 손끝에서 지식을 만들어나가는 느낌이 굉장히 좋았어요. 연구가 가지는 매력이라고 할까요? 이미 알려진 지식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지만 내 손끝에서 얻은 결과로 무언가를 추론하고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이 매력적이라고 느꼈어요. 사실 사회학도 비슷하긴 해요.

 

회로: 사회학과 화학이 어떤 모르는 것에 대한 이론을 찾는다는 것에서 같고, 도구를 쓴다는 것만 다른 거죠?

세라: 그렇죠. 저는 특히 실험이 재미있었고 대학원도 실험하는 연구실에 갔죠.

 

회로: 화학과 학생은 시간을 거의 실험에 쓴다고 알아요. 과학자의 삶이 어떤지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세라: 과학자를 크게 둘로 나누자면 실험과학자와 이론과학자가 있어요. 이론과학자는 책상 앞에서 책과 논문을 읽고 사고실험이나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이론을 만들어요.

저는 실험하는 과학자예요. 저는 프로젝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실험을 할지 설계하고, 실험 수행에 필요한 기기 목록과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될 때까지 실험하죠. ‘될 때까지’라고 표현은 했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아요. 어떤 실험을 하고 결과를 관찰해서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에 이게 안 되면 어떻게 수정할지 다시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는 실험 수행보다 실험 설계가 더 중요해요.

 

회로: 제가 듣기로는 10시간이 걸리는 실험도 있다고 들었어요.

세라: 실험마다 다르긴 해요. 10시간 걸리는 실험을 할 때도 보통은 하루종일 실험대 앞에 앉아있을 필요는 없어요. 어떻게 시간을 잘 분배해야 효율적으로 실험할 수 있고, 한정된 시간을 더 잘 쓸지 생각하면서 실험해요. 실험 내내 관찰할 필요는 없거든요. 중간중간에 확인만 하면 돼요. 예를 들면 실험 하나를 하고 화학 반응을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실험을 동시에 하는 식이죠. 어떻게 하면 동시에 더 많은 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지 신경 써요. 숙련되면 동시에 여러 실험도 해요.

 

회로: 그렇군요. 저는 모든 실험이 한 번에 한 실험만 진행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과학자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정체성도 중요할 것 같아요. 처음에 여성 과학자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런데 여성과 과학자도 서로 다른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이 둘이 만나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세라: 사실 실험하는 중에는 큰 영향이 없긴 해요. 가장 교차하는 때는 실험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일할 때에요. 교수와 학생, 선후배 관계에 성별과 위계가 들어가면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죠.

또 연구실이 폐쇄적 집단이니 도망갈 곳이 없어요. 굳이 남성과학자들은 겪지 않아도 될 일을 여성과학자는 겪기도 하고요. 실험실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쁜데 인간관계도 신경 쓰이고 불편을 겪죠.

대학원 생활 자체가 하루종일 실험실에만 있으니 실험실의 인간관계가 많은 영향을 줘요.

 

회로: 아까 도망갈 수 없다고 해주셨는데 정확히 어떤 뜻인가요?

세라: 부당함을 겪고 있어도 호소할 수가 없어요. 호소해도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많아요. 연구실은 교수의 절대적인 권력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교수가 성차별적인 발언을 해도 웃고 넘어갈 수밖에 없어요. 교수에게 밉보이는 순간 대학원 생활 자체를 보장할 수 없거든요.

 

회로: 또 대학원 수준에서는 학계가 좁기도 하잖아요.

세라: 네. 만약 연구실을 떠나더라도 부당함을 알렸거나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다면 소문이 돌아서 다른 연구실로 옮기기 어렵고 학계에서 낙인찍히기도 해요. 도망갈 수도 없고, 도망간다면 아예 전공을 바꾸거나 기업 연구소에 갈 수밖에 없어요. 기업에 가려면 교수 추천서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요.

 

회로: 대학원 생활에는 만족하셨나요?

세라: 저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한 사람인데 교수가 하는 성차별적인 이야기를 온몸으로 받아내기 힘들었어요. 교수가 김여사 이야기를 하는데 연구실 사람들은 전부 허허 웃고 말고, 교수가 저를 혼낸다고 “너는 나중에 애 낳고 살림이나 할 거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어요. 연구실 밖에서는 제가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바로바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텐데 연구실이라는 공간에 갇혀서 뭐라고 할 수가 없더라고요.

연구실 분위기가 위계적이고 교수가 그런 발언을 해도 제지할 방법이 없었어요. 교수가 연구실에 자주 오는 편이어서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고요. 회식도 굉장히 잦았고요.

 

회로: 대학원은 교수 능력도 중요하잖아요. 학생을 지도하는 능력도 중요하고요.

세라: 학생을 지도할 때 그런 언사들이 나오는 것이 너무 싫더라고요. 지도 내용은 차치하고 언사가 폭력적이고 저랑 맞지 않았어요.

 

회로: 제가 듣기로는 학계를 떠나신다고 들었는데 여성 과학자로서 삶을 이어나가시는 건가요?

세라: 네. 저는 사실 아직도 화학이 좋고 연구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연구실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 석사로 졸업했어요. 내년부터는 학계가 아니라 기업에서 연구할 예정이에요.

 

회로: 과학자로서 삶을 이어나가기는 하는 거네요?

세라: 그렇기는 한데 약간 맥락은 다를 것 같아요. 학계에서는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 연구하는데 기업에서는 새로운 이익 창출을 위해서 연구하니까요. 방법은 같아도 방향과 분위기는 다르겠죠.

 

회로: 대학에서는 기초과학으로서 연구하는 거고 기업에서는 이익 창출을 위해서 연구를 하는 거네요?

세라: 그렇죠. 목적이 다르니까 같은 연구라도 연구 호흡이나 방향이 다를 수 있겠죠. 대학교에서는 중요한 발견으로 이어진다면 오래 기다릴 수 있고 더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데 기업에서는 연구에서 빨리 이익이 나지 않으면 금방 쳐낼 수도 있겠죠.

물론 저도 기업에서 연구해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고 이렇지 않을까 짐작만 해요. 아무래도 학계만큼 한 연구에 긴 시간을 투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회로: 아까 말씀해주신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도 있고 여성과학자로서 정체성도 있잖아요. 그런데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이 여성과학자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세라: 제가 페미니즘을 몰랐으면 박사까지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은 인권감수성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제가 박사를 포기한 이유도 연구실 분위기나 교수의 언사를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고요.

사실 참 아쉬워요. 주변에 여자 박사들이 많지 않아요. 화학과 학부에는 여자가 정말 많은데 위로 가면 갈수록 여자가 적고 여자 박사는 더더욱 없거든요. 하나의 사례로 남고 싶었는데 이루지 못해서 아쉬워요.

 

회로: 학과에 여자 교수가 있었나요?

세라: 한 분 계셨어요. 한 명 더 부임한다고 듣긴 했어요. 교수가 총 30명 정도인데 그중 여자가 한 명이에요. 그분도 10년 전에 부임하셨거든요. 10년 동안 한 명도 늘어나지 않았어요.

박사님도 대부분 남자예요. 많이 보여야 그만큼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더 많이 알 수 있고 다양한 꿈을 꿀 수 있잖아요. 제가 학계에 남아 그런 사례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했는데 못 해서 아쉽죠.

 

회로: 과학자 사회가 참 보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변화하기도 어렵고, 교수의 힘이 굉장히 세고, 과학자 사회가 폐쇄적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여자 박사도 없고 여자 교수가 없는 상황이 변하려면 한국 사회가 변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네요.

세라: 생명과에 그나마 여자가 많아요. 한 번은 대한화학회에 갔는데 여학생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근데 PI(Principal Investigator, 연구책임자)는 여자가 극히 드물었어요. ‘이렇게 여자들이 많은데 어째서 교수들은 다 남자일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계와 교수사회는 굉장히 남성 중심적으로 돌아가는 거 같아요. 밤늦게 술 먹고 골프 치고… 이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여자 교수는 끼기가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혹여 있는 여자 교수님은 술 잘 먹고 괄괄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요.

 

회로: 그 이야기도 생각이 나네요. 대학원생들이 보통 담배를 피우면서 연구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래서 남성들끼리는 연구 이야기가 자주 오가지만 여성들은 자주 소외당한다고 말을 들은 것 같아요.

세라: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던 제 친구도 그런 분위기 때문에 포기하고 회사에 갔어요. 더 좋은 연구자, 과학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많은데 그런 분위기 때문에 떠난다는 게 안타까워요. 제 연구실에서 나가는 분들도 대부분 여자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서 나갔거든요.

 

회로: 학교를 떠나셨던 이유가 연구실 분위기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세라: 없어요. (웃음) 연구실 분위기만 아니었어도 박사까지 했을 것 같아요.

 

회로: ESC에서도 활동하신다고 들었어요. ESC를 소개해주시겠어요. ESC에 활동하게 된 계기도 대학원에서의 생활하고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세라: ESC는 Engineer and Science for Change의 약자로, 우리말로 하면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라는 뜻이에요.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추구하기 위해 직업 불문하고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다채로운 활동을 하고 있어요. 과학정책, 과학문화, 과학교육, 청년과학기술인, 과학기술계의 젠더/다양성, 기후위기 등 굵직한 주제로 정기모임,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연구, 제주남방돌고래 후원을 위한 클라우드 펀딩과 같이 뜻깊은 활동도 하고 있답니다.

ESC에 활동하게 된 계기는, 말씀해주신 게 맞아요. 제가 ESC에 들어갈 때도 제 미래를 많이 고민할 때였어요. 제가 학교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굉장히 한정적이었어요. 저는 나중에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연구도 계속하고 싶었는데 학교에는 제 바람을 실제로 이룬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었어요. 일단 학교에는 여자 교수도 없는 편이고요. 그래서 좀 더 큰 단체에 가면 더 많은 역할모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가입했어요.

 

회로: ESC에 가입하고 세라 님의 바람을 이룬 분을 만나, 참고하기도 하셨나요?

세라: 네, 역할모델을 아예 못 만난 것과 한 명이라도 아는 건 달라요. 아무도 모를 때는 이 바람을 이룰 수 있는지 의심하고 불안해해요. 그런데 역할모델을 한 명이라도 알면 바람을 이룰 수 있다는 걸 알고 믿음이 생기죠. ESC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분들을 만나고 저도 순간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면 그런 삶을 꾸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됐죠.

 

회로: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 과학자 후배들에게도 ESC 가입을 권해드릴 수 있겠네요?

세라: 네, ESC에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진취적인 것들을 이루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많아서 삶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요. 고민들을 함께 하면서 내 삶은 어떻게 꾸릴 수 있을지 생각할 수도 있고요.

 

회로: 여성과학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경력단절이죠. 결혼, 출산, 양육으로 커리어에 갭이 생기잖아요. 경력단절로도 고민하셨나요?

세라: 많이 했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대학생활과 미래설계’라는 과목이 있었어요. 당시에 선배와의 대화라고 학교에 있는 포스코 국제관을 빌려서 선배들을 초청해서 강의를 듣고 강의실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거기서 저는 화학과를 졸업한 선배에게 결혼과 출산 계획을 물어보기도 했죠.

포스텍 총여학생회에서 주관하는 여대생 커리어 관련 프로그램에도 참여했어요. 해당 행사에 지금은 문재인 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인 문미옥 선배님이 오시기도 했었어요. 실제로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분에게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시는지 물어봤어요. 경력단절은 지금도 고민이고 기업에 지원할 때, 채용설명회 갈 때도 육아휴직에 관해 물어봤어요. 아이를 낳을 계획이라면 큰 고민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회로: 남편의 육아휴직이 열흘로 늘어난다는 기사(*)를 봤어요. 육아휴직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아이 키우는 데에 열흘은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세라: 아이가 열흘 만에 크면 정말 좋겠죠.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 이상은 육아휴직은 분위기에 따라 쓰기 어려울 수 있어요. 아마 권고에 불과할 거예요.

기업 설명회에서 제 육아휴직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육아휴직은 보장되는지도 물어봤어요. 배우자의 육아휴직을 인정하는 회사면 여성에게 어떤 입장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 이영재, <‘배우자 출산휴가’ 내일부터 ‘사흘→열흘’ 대폭 늘어난다>, 2019.09.30, 연합뉴스, 링크: https://www.yna.co.kr/view/AKR20190930010100004?section=search

 

회로: 세라 님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후배 여성 과학자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세라: 저는 학계에 남지는 않을 테니 학계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조언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내년에 결혼하고 저와 배우자 모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 아이를 가지려고요. 자리를 잡지 못 한 채 아이를 낳았을 때는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에 커리어를 어느 정도 쌓아놓고 출산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늦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회로: 커리어가 중단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세라: 그래서 저는 일부러 대기업에 갔어요. 법이 정한 육아휴직 등이 보장되어 있는지, 안전망이 되어있는지 확인했고요. 지원하기 전에도 회사 다니는 사람들에게 어떤 분위기인지 직접 물어보기도 했고 화학과다 보니 회사를 결정할 때도 좀 더 안전한 물질을 다루는지 봤어요.

 

회로: 결혼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세라: 이 사람과 인생을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제 애인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사람인데 둘 다 공통으로 했던 고민이 결혼이라는 제도가 우리에게 꼭 필요한지였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결혼만이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도더라고요. 한 사람이 응급실에 가는 등 비상상황에서 의사를 대신 만날 때, 보호자로 인정받는 방법이 결혼밖에 없었어요. 법적 안전망을 구축하다 보니 자연스레 결혼을 생각하게 됐어요. 결혼 외에 법이 인정하는 동반자가 되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중점적으로 고민했을 것 같아요.

 

회로: 이영 감독님의 불온한 당신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일본의 어떤 레즈비언 부부가 커밍아웃하기로 한 사건이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동일본 대지진 때. 파트너와 연락이 두절되었는데, 주변 누구도 부부가 파트너라는 사실을 모르니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관계를 알려야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커밍아웃을 결심했다고 해요. 세라 님의 결심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요.

세라: 맞아요. 비상시에 보호자가 필요하고, 둘이 함께하면서 비상상황이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죠. 저는 또 사례를 만들고 싶기도 했어요.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페미니스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고 가정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회로: 비혼을 선택하시는 분들도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결혼을 택한 세라 님은 비혼을 선택하는 분들과는 대척점에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라: 그럴 수 있죠. 결혼을 준비하다보니 결혼이 우리나라 사회에서는 단순히 두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라는 말이 와닿더라고요.

 

회로: 결혼에는 관점이 다양하잖아요. ‘결혼을 안 하고서 어떻게 같이 살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고요. 반대로, 결혼은 국가가 재생산을 위해 만들어낸 시스템이라 생각해, 이 시스템에 저항해서 비혼을 결정하시는 분들도 있고요. 세라 님은, 이 시스템 안에서도 우리가 뭔가 해낼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세라: 맞아요. 운동을 하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비혼 말고 다른 선택도 있죠. 저는 결혼 제도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제도에서 완전히 굴복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결혼하고도 페미니스트로 살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들고 싶어요. 오히려 제도 안에서 어떻게 반항하고 제도를 전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거죠.

 

회로: 삶을 실험적으로 사시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한계를 어떻게 밀어낼 수 있을지, 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고정관념에 저항하면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세라: 평범하게 살고 싶진 않아요. 다양한 사례가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는 데에 도움이 될 테고요. 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사회가 바뀔 수도 있고요. 세상을 바꾸면서 살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회로: 저희가 슬슬 인터뷰를 정리하면서 마무리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공부하시면서 자신의 삶을 다르게 상상하게 된 점이 있을까요?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이전과 공부하기 이후에 삶을 인식한 것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세라: 저는 페미니즘을 배우기 전부터 저항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이후에는 더욱 전투적으로 저항하며 산 것 같아요. 저는 고민하고 방황하는 시간도 많았기에 다양한 사례로 남고 싶어요. 페미니즘의 키워드가 다양성이잖아요. 조금이라도 더 다양한 삶을 보여주려고 삶의 선택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요.

 

회로: 일상생활에서도 변한 것이 있을까요?

세라: 사소하지만, 애인과 물건을 나눌 때 저는 파란색, 애인에게는 빨간색 물건을 주는 등 일부러 성별 역할을 깨보려고 해요. 보통 여자는 빨간색, 남자는 파란색 이런 식으로 구분짓잖아요.

 

회로: 또 금속 빨대를 쓰신다고 알아요.

세라: 맞아요. 사실 그전에도 환경에 관심이 많긴 했어요. 화학을 전공한 이유 중 하나도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어요.

화학 실험을 하다 보면 처치 불가능한 쓰레기들이 많이 만들어져요. 조금이라도 일상에서 환경을 보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과 스테인리스 빨대를 공동구매하여 사용하거나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드는 행위를 줄이는 등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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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리스 빨대. 사진: 한솔 제공.

 

회로: 재난이나 환경 관련 문제가 생기면 소외 계층이 가장 먼저 피해를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세라: 포항 지진 때, 계속 밀려오는 여진에, 안경을 쓰고 자야 하나 벗고 자야 하나 하는 고민에 밤잠을 설쳤어요. 저는 안경을 벗으면 10cm 떨어진 물체만 겨우 볼 수 있거든요. 안경을 쓰면 불편해서 잠을 못 자겠고, 안경을 벗으면 대피 전에 안경을 찾기도 어렵겠고요. 안경을 쓴 사람의 상황이 이러면, 청각 시각 장애인은 지진 상황 파악도 어렵겠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지진에 대피가 어려워 사회에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해요. 폭염도 노인 같은 에어컨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냉방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피해를 받아요. 환경 문제에 신경 쓰는 건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회로: 한국 사회 이야기도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사회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것을 세 가지 정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세라: 뭐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단 방금 이야기한 환경 문제가 중요한 이슈라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상당히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국가에요. 일상만 살펴보아도, 상품의 과다 포장, 일회용 배달 용기 사용 등 우리는 매일 매일 환경을 파괴하고 있죠. 제가 거주 중인 포항만 해도 내년에 쓰레기 매립지가 포화될 예정이라고 해요. 우리 코앞까지 다가온 일들인데 주변에서 실감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성 문제, 젠더 문제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죠. 이제는 제가 학교를 떠나 사회생활을 하기에 경력단절, 양육 문제 등의 이슈가 더욱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직장은 물론이거니와 사회 전반에서 여성이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삶은 매우 다양하고 촘촘한데 법적인 장치는 성긴 것 같아요. 사회 전반의 인식 공유도 부족하고요.

마지막으로 다양성과 관련된 고민을 보다 진지하게 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했어요. 몇년 전부터는 전국 각지에서도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요. 저는 올해 서울과 대구의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는데, 퍼레이드를 따라오며 반대 피켓을 들고 소리치던 사람들이 생각나요.

왜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저 선입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볼까요? 모두 다 같은 사람일 뿐이잖아요. 다양성 고민 부족은 이뿐만이 아니죠. 오늘도 제가 고속버스를 타고 포항에 내려왔는데 ‘휠체어를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도시 간 이동을 해야 할까?’하는 고민이 들더라고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휠체어를 탄 사람들도 자유롭게 버스에 타고 내렸거든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많은 고민이,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그래도 해야만 해요. 다 같은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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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퀴어문화축제 피켓. 사진: 세라 제공

 

회로: 세라 님의 정체성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면서, <페미니즘의 도전>이 머리말에서 소개하는 현재 자신의 정체성에 기반을 두면서도 그것을 본질화하지 않는 횡단의 정치(*)가 생각났어요. 자신을 무언가로 규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어디엔가에 속하게 하는 정체성 개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질문이 될 것 같은데, 저희 인터뷰 목적이 여성 과학자의 롤모델을 만드는 거예요. 그래서 후배 여자 과학자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과거의 자신에게 어떤 조언을 하시겠어요?

세라: 좋은 교수를 골라라. (웃음)

(*) 정희진, 『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13, 31쪽

 

회로: 현실적인 조언이네요.

세라: 농담이고요. 저는 과거를 딱히 후회하지는 않아요. 그 순간에 항상 최선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 선택으로 또 다른 나를 찾았으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저는 충분히 고민하는 사람이라서요.

 

회로: “너는 잘 해내고 있어” 라고 말씀하시면 되겠네요.

세라: “무슨 선택이든 미래의 네가 알아서 할 거야.” (웃음) 저는 늘 미래의 제가 지금의 저보다 나으리라 믿고 또 그러려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그 당시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선택이 미래에서 봤을 때는 최선이 아니었더라도 현재에서 선택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거예요.

 

회로: 저희가 굉장히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눠본 것 같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고,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와 함께 살아가면서 역사에 영향을 받고, 또 동시에 우리의 삶을 통해서 역사를 변화시켜나간다. 세라 님이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포스텍 페미니즘>을 만들고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로 결정했던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결정이 아닌,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인권에 대해서 침묵했던 수년간의 역사, 그간에 쌓여온 분노의 목소리, 그것이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터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세라 님은 이제 삶 자체를 사회를 변화시키는 운동의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편견에 저항하기 위해 이과를 선택했던 것, 역할모델로서 여성 박사를 꿈꾸었던 것, 페미니스트로서 결혼을 고민하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해 일상생활의 습관을 바꾸어 나가는 것, 이런 개개인의 사소한 행동이 우리 사회를 바꿀 것이라 믿는다. 이런 사람들이 나섰을 때 우리 사회가 바뀔 모습을 기대해본다.

 

018: 전북대라는 페미니즘 황무지를 갈다, 인터뷰 (2부)

(1부 보고 오기. 링크)

 

1부에서는 <전페넷>과 회원들의 활동을 알아보았다.

2부에서는 <전페넷>이 뿌리 내린 전북대의 환경과 <전페넷>이 관계 맺은 다른 여성주의 단체를 더 자세히 알아본다. 전북대가 미투에 대처하는 데에 부족했던 점, 미투 국면에서 <전페넷>이 해온 활동, <전페넷이 >전북대에 바라는 점을 알아본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지냥이와 한솔은 ‘회로’로, 인터뷰이 권화담 님은 ‘화담’, 신재영 님은 ‘재영’, 헤카 님은 ‘헤카’, MI 님은 ‘MI’로 표기했다. 교정은<페미회로>의 우연,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교내 분위기와 사건들

 

회로: 학교 분위기는 어때요?

헤카: 2017년부터 <동행>에서 캠페인을 해왔는데, 2017년에는 학교가 너무 조용하고 평화로웠어요. 미투가 벌어진 2018년에는 미투 관련 플랑카드를 붙이지 말라는 말도 듣고, 총학은 ‘중립을 지키겠다’고 했고요. 학교 분위기는 미투가 벌어진 줄도 모르더라고요. 인터넷에서 본, 다른 대학들의 시끄러운 소식들은 차라리 부러웠죠. 미투가 알려지고, 총여학생회(이하 ‘총여’)를 두고 투쟁하고, 어쨌거나 싸움은 된다는 뜻인가요.

요즘은 그래도 페미니즘의 ‘페’자를 들으면 화를 내거나 대자보를 찢기도 하죠. 전북대라는 자갈밭을 갈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황무지는 아닌 것 같아요.

화담: 전북이 사회운동하기 불모지인 것 같아요. 교수님께 들은 얘기가 있어요. 사회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공무원이 됐대요. 그 사람들은 다시 후배들을 자기 기관으로 끌어들였대요. 그러니 새로운 사람들이 운동 단체에 계속 들어가는데도, 명맥이 끊기죠.

헤카: <동행>이 원래는 학생 운동의 인재들을 발굴해 상근 단체에 연결해주던 조직이었대요. 그 얘기를 듣고, 전 세대와 저의 운동방식의 차이를 느꼈어요. <동행>이 80년대부터 있었다고 알아요. 그 시대에는, 같이 먹고 자며 살 부딪히며 활동했지만, 제게 맞는 방식은 아니에요. 그리고 그게 남성 중심적이었다고도 생각해요. 통금이 있는 여학생도 많고, 아무 곳에서나 자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니까요. 이런 방식은 지금 시대에는 이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회로: 총학생회는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편인가요?

화담: 작년 선거에서 자궁경부암 예방 주사를 맞을 수 있게 병원과 제휴를 맺겠다던 선거운동본부가 있었어요. 그 선거운동본부에 투표했어요. 공약이 실현되리란 기대를 하지 않으면서도, 그 공약이 표가 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투표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네요.

올해 7월에 총학생회에서 교수 비리 규탄문(*)을 냈어요. 여러 교수의 사건이 엄청 많은데(**), 그중 몇 개가 성폭력, 몇 건은 연구 부정, 몇 건은 뇌물, 몇 건은 음주운전, 몇 건은 대필이에요. 성폭력까지 여기에 퉁쳐서 “비리”라고 썼어요. 솔직히 어이가 없죠. 여러 교수를 그걸 퉁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문제 교수”라고 하던가. 그리고 저희 학교에서 《인권의 이해》 수업(***)이랑 인문대 학장(****) 이런 사건들을 포함해서 총학에서 입장 내야 한다고 할 때마다 했더니 사법기관의 판단이 나와야 한다며 행동을 자제했고요. 대필처럼 사법기관의 판단이 딱히 나지 않았던 사건에는, 뉴스 뜨자마자 바로 대학 본부 규탄한다고 해버렸으면서, 성폭력 사건은 그렇게 질질 끌었다는 게 화도 엄청 많이 나요.

헤카: 피해자 학생이 미투를 해도 가시화가 많이 안 돼요. 그래서 저희가 계속 성평등 기구를 빨리 전문적인 인력 배치하고 독립적인 기구로 만들라고 말하죠. 여성학 교수님께서 듣고 충격받은 말이 있어요. 학생 피해자분들은 신고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 신고를 잘 안 한대요. 물론 신고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요. 학내에 인권센터가 있긴 한데, 학생들이 인권센터에 신고하지 않고 여성학 교수님께 상담받는대요. 진짜 화나더라고요. 인권센터는 홈페이지 하나가 없고요. 인권센터에 대해 알아볼 방법은, 문의 전화와 Q&A 게시판(*****)뿐이에요. 지역거점국립대가 뭐 하는지 싶어요.

 

(*) 전북대 총학생회 규탄문. https://www.facebook.com/jbnuch/photos/pcb.2463041000590640/2463037720590968/?type=3&theater

(**) 임송학, <성추행·음주운전·사기… ‘교수 비리 백화점’ 전북대>, 2019.06.18, 서울신문, 링크: https://go.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619014004

(***) 박슬기, <‘전북대 미투’ 그 이후>, 2018.03.10, 전북교육신문, 링크: http://jben.kr/liguard_bbs/view.php?code=li_news&number=12806

(****) 하태민, <전북대 교수가 외국인 여교수 성추생 … 학교는 쉬쉬>, 2019.05.30, 한국일보,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5301814374556?did=NA&dtype=&dtypecode=&prnewsid=

(*****) https://www.jbnu.ac.kr/kor/?menuID=60

 

회로: 기사화된 학생 미투는 있었나요?

헤카: 언론에 잘 알려지기보다는 주로 대나무숲(*)이나 에타나 알리죠. 교수님께 털어놓기도 하고요. 기사화된 사건이 있긴 한데, 너무 안 좋은 케이스에요. 전북대 신문사에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를 받은 가해 추정 학생을 인터뷰해서 실었어요(**). 기사 끝에 피해 학생에게도 연락했지만,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고 써놓았어요. 그게 그냥 사람들이 보기에는 ‘얘가 진짜 무고하게 한 사람 잡고, 뒤가 구려서 안 나왔다’고 생각하기 쉽죠. 그래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요. 그 기사가 전북대 신문 홈페이지 메인창에 올라갔어요. 그래서 정말 어이가 없어서. 굉장히 좀 아이러니한 게, 학내에서 활동하다 보면 그렇게 가해 추정자들을, 걱정해 주더라고요. 심지어 교직원이 2차 가해라는 말을 가해 추정 학생을 보호할 때 써요. 징계위원회가 언제 열리냐고 물어보니, ‘아직은 알려드릴 수가 없다’, 왜 못 알려주냐 물으니  ‘신변을 보호해야해서’래요.

서울에서는 징계위 열리는 날 학교 앞에서 액션 하고 그러던데.

 

(*) 페이스북 페이지의 일종으로, 익명 혹은 실명으로 제보를 받아 익명으로 글을 게시하는 페이지다. 특정 단과대, 캠퍼스, 대학교, 과정(대학원 등), 직군(간호사, 요리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대나무숲이 있다.

(**) 임다연, <교내 성추행 사건,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 2018.12.05, 전북대신문, 링크: https://www.cb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10

 

회로: 학과마다 분위기는 어때요?

재영: 화학교육과는 성비는 남초나 여초는 아니에요. 이학과목의 교육과라서 그런 것 같아요. 화교과에는 사람이 적어요. 매년 십수명 정도 입학하고 교수도 6명뿐이에요. 교수가 출석 안 부르고 출석 체크할 수 있을 정도에요. 교수마다 화학 실험실이 있고, 실험실에 대학원생, 학부생 모두 있죠. 학부생들은 주로 조용한 공부 공간 찾아 연구실에 가는 것 같아요. 연구실 선배에게 모르는 걸 물어보기도 하고 실험 보고서 족보를 얻기도 해 같은 연구실의 대학원생들과 학부생들은 친해요.

어떤 실험실에서 한 자리가 비어, 저와 같은 학년 여자인 친구에게 실험실에 오겠느냐고 제의를 했어요. 그 연구실이 회식이 많고 동기가 더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 같아 제가 양보했어요. 술 좀 마시는 학생을 뽑는다는 얘기도 들리고요. 그 연구실의 학부생은 그 여동기 1명에 복학생 4명이죠. 그 동기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안 가길 잘 했다고 생각해요. 그 동기가 복학생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거든요.

화교과에서 편하게 페미니즘 얘기하기가 쉽지 않아요. 다만 누가 해도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이 하려 노력해요. 학과에서 이 사람 페미니스트가 아닐까 싶은 경우는 없었어요. 동기 언니 중 페미니스트라는 분이 있긴 한데, 트위터에서만 활동해요.

화교과 어떤 여동기들이 기숙사 같은 방을 쓴 적이 있어요. 그 방에서 술 마시며 노는데, 페미니즘 관련 이슈가 잠깐 나왔는데, 그 트페미(트위터 페미니스트) 언니랑 제가 그 이슈로 말을 많이 해서, 그 친구들과도 많이 얘기했어요. 그 언니랑은 짠 것도 아니었는데요. 저는, 마주하는 일상과 페미니즘이 많이 분리되어있어, 답답한 마음에 가까운 친구들에는 되도록 많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려 해요. 누가 들어도 옳은 이야기를 많이 하죠. 동기들은 대부분, 무관심하거나, 관심 있고 시도해보려 하고, 반감이 있어도 대놓고 드러내진 않아요. 남동기들은 다 군대에 있네요.

화담: 사회과학대에 성소수자 동아리 <열린문>이 있어요. 작년에 <열린문>이 사회대 동아리에 등록하려는데, 내야 하는 동아리 등록 서류에 각 회원 거주 형태도 있어요. 기숙사 사는지, 통학인지, 버스로 통학인지 적으래요. 이 정보는 성소수자들에게는 아웃팅 위험이 있는 아주 민감한 정보잖아요. 그래서 원래 서류를 대체할 수 있는 제반서류를 내고 등록했어요. 그런데 이듬해인 올해에는 같은 방식으로는 등록이 안 된대요. 사회대 행정실에서는 그 서류로 처리할 수 있다고 했는데도, 학생회가 부학장을 찾아가 가능하냐고 다시 물어봤대요.

전북대에서는 대자보를 붙일 때 단과대 학생회 도장을 받아야 해요. 붙이려는 건물을 쓰는 단과대 학생회 도장을 받아 정해진 게시판에 붙여야 해요. 그래서 어느 단과대에서 <전페넷> 대자보를 철거한 적도 있죠. 게시판은 학생회 소관이니 빈 벽에 붙인 적이 있는데, 단과대 행정실에서 환경 미화를 이유로 뗐다는 거예요.

제 이름이 특이하고, ‘인류학과 메갈’ 하면 딱 저뿐이니 원래는 활동명을 쓸까 고민도 했어요. 굳이 활동을 알리고 싶지도 않았고요. 후배들은 그래도 알아서 자제하는데, 동기들은 아예 쌩까거나, 어떤 선배들은 이런 글 올리지 말라는 카톡 보내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활동하고 싶어하고 도움 구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눈에 더 띄려 본명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고학년이 되니, 아무도 활동에 뭐라 안 하는 게 편해요.

재영: 보통 주변에서 그러듯이, 화교과도 후배들은 선배들에게 존댓말하고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반말해요. 제가 2학년이 되고 신입생들이 들어와서, 저는 신입생들에게 꾸벅꾸벅 인사를 다 했어요. 그런데 저도 과 활동을 해야 하니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예요. 결국 포기하고 지내다 3학년이 되었어요. 4학년들은 임용고시 준비하느라 과 활동을 거의 못하고, 사실 3학년이 최고참 행세를 할 수 있거든요. 3학년이 되니, 제가 상호 존대를 강제할 수 있게 되었죠. 존댓말을 듣는 후배들이, ‘저 언니는 왜 내게 존댓말 할까?’ 한 번이라도 고민해주었으면 좋겠어요.

 

회로: 학번 문화가 대학 내 페미니즘 전파에 이점인 것 같네요.

화담: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여선배가 고학번이면 전파에 도움이 되겠죠, 그런데 군 문제로 고학번은 주로 남학생이니까요.

헤카: 단체에서는 학번이 중요한 주제도 아니고, 알 필요도 없었던 것 같아요. 친해지고 나서, 친해지려 서로 물을 수 있겠죠.

MI: 그러나 학번이 관계에 영향을 끼치진 않고요.

재영: 여성주의 하는 사람들끼리는 학번 알아도 서로 반말하고, 학번 경계가 없다고 느껴요. 누가 몇 학번이라고 의식하면서 대화하지 않아요.

 

회로: 전북대에서 여성주의를 하는 <전페넷> 회원 아닌 분도 있나요?

헤카: 저와 <전페넷> 회원, <리본> 회원이 대자보 전시회를 한 적이 있어요. 불법 촬영, 낙태죄, 비혼, 페미니스트로 사는 삶, 행복한 페미니스트 되기 등 다양한 주제를 담은 자보와 그림들이었어요. 그냥 대자보를 붙이면 학교에서 다 떼니까, 하고 싶은 말들을 써서 전시회로 만들어보았어요. 4~5일을 운영했는데, 평과 피드백을 많이 남겨주셨어요. 그때 페미니스트 분들이 많다고 느꼈어요. 대자보 전시회를 응원해주시거나, 미투 때 붙였던 대자보가 찢기자 페미니즘 스티커를 붙여 치료해주신 분을 보면 각개전투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 모임으로는, <물결>이라는 심리학과 페미니스트 소모임이 있어요. <물결>에는 행사도 꾸준히 알려드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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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 전시회 홍보 포스터, 전시물, 응원 포스트잇. 헤카 제공. 페미회로 갈무리.

 

 

회로: 전북대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헤카: 저는 대학 본부라고 생각해요. 성폭력 이슈를 심각하지 않은 사소한 문제로 여겨요. 그나마 최근에는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리며, 총장이 압박을 느꼈는지 입장문을 냈네요.

MI: 저는 혐오발언을 쉽게 하는 분위기를 꼽을래요. 에타에서 성소수자, 채식주의자 등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발언을 너무 쉽게 하고, 모든 소수자를 못마땅해해요. 혐오발언을 쉽게 뱉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해요.

화담: 인문대 학장 사건이 터지고 붙인 <전페넷>이 붙인 대자보에 남학생들이 ‘페미 묻었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 있으니, 혐오발언이 비단 온라인 커뮤니티만의 문제는 아닐 거에요.

재영: 교수들부터 잘 교육받으면 좋겠어요. 화학 교육을 배우니, 강의실에는 혐오발언이 주제로 오르내리지 않고, 행해지지 않아요. 학과에서도 페미니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많고, 감수성이 낮은 편이에요. 교육학과의 교직 과목의 교수, 강사는 대부분 여성인데도, 혐오발언이 더 적으리라는 기대와는 딴판이에요. 제 또래의 행동을 적절히 제지해야 하는 교수도 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수강평을 남길 때 공백까지 없애가며 꽉 채워 수업 중 불편했던 얘기를 항상 남겨요. 수업 때 이런 발언들이 이러므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예시를 나열하고, 교단 설 지금 사범대 학생들의 영향력을 언급하면서 혐오와 차별, 고정관념의 재생산 여지가 있는 말을 조심해달라고요. 조금이라도 교수가 바뀌기를 기대하면서요. 교수가 바뀌면 학생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꽤 크리라 생각해요.

 

회로: 교수들이 정기적으로 들어야 하는 인권 교육이 있나요?

화담: 성폭력 방지 성교육을 들어야 한다고 들었어요. 특정 연도 이후 임용된 분들은 필수로 이수해야 하나, 그 전에 임용된 분들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임용 시기와 무관하게 교육을 필수로 바꾸고, 1년 몇 번씩 듣도록 해야 해요.

재영: 학생들도 성폭력 방지 교육을 의무로 들어요. 화교과에서는, 조교가 학생들을 모아 동영상을 잠깐 멈추고 사진만 찍고 끝내기도해요 . 이렇게 진행하면 성폭력 방지 교육이 무의미하죠. 이렇게 성폭력 방지 교육을 대충 하는 게 큰 문제인데, 문제제기된 적은 없고, 그 자리에서도 학생들이 ‘조교님이 센스 있다~’는 식으로 반응해요. 흔히 학과 일은 조교를 먼저 찾아가니, 이런 문제는 어디에 알려야 할지도 잘 모르겠어요. 창구는 개인이 열심히 찾아봐야 할 것 같아요.

화담: 화학교육과 사례 얘기를 들으니 순간적으로, 교육 내용을 시험을 보게 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한 학기 한 학점씩, 매주 1시간이라도 장애인, 성폭력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는 인권 수업을 꾸준히 이수토록 해야 해요.

 

회로: 몇 년 전 GIST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서는, 술 게임에서 소수자를 희화하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교육을 해주었어요. 새내기 분반에서 어울리면서도,소수자를 희화하는 발언이 나오자 이를 제지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스스로 되돌아보는 사람도 있었고요.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서의 교육이 중요하고, 이런 교육을 여러 대학에서 하면 좋겠어요.

헤카: 에타가 단순한 커뮤니티가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인 대학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 위험해요. 대학에 혐오 문화를 뿌리니까요. 신고 시스템도 문제에요, 단순히 비추천이 많이 걸리면 계정이 정지돼요. 경고가 누적됨에 따라 징계도 수년까지 늘어나고요.

화담: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에타에요. 자정도 안 되고, 내부 글을 외부로 유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으로만 운영되어서는 안 되죠.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친목질을 금해요. 그런데 오히려 물리적 공간을 바탕으로 하는 에타는, 실제 물리적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이걸 방조하고요. 에타 홈페이지에 따르면(*), 관리자가 게시글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가 게시판을 모니터링 하면서 게시글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금지어가 게시되면 신고처리가 진행되며 게시글이 삭제되어요.

 

(*) 커뮤니티이용규칙(https://everytime.kr/page/rules) 참고.

 

교내 기구들

 

회로: 어떤 대학에서는 소수자 정치를 위해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학소위’),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등 학생 자치기구를 두는데요, 전북대는 어떤가요?

화담: 전북대에는 총여와 학소위 모두가 없어요. 총여에는 <전페넷> 회원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아요. 해야 한다는 의견, 총여 선거를 준비하기엔 <전페넷>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견, 굳이 필요하냐는 의견도 있겠죠.

헤카: 여러 학교 학소위에 관심이 많아요. 학소위 활동이 눈에 띄었어요. 페이스북 페이지에 활동 이력을 카드뉴스 형태로 제작해서 올려놓고 하시는데, 딱딱한 느낌이 아니고 정말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느낌이었어요. 학교 축제에 부스를 내서 비건 음식을 판매하는 등 문화적으로 많이 다가가고요. 카드뉴스를 만들어서, 예를 들면 5.17 아이다호(IDAHO, 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데이 관련 지식을 정리해준다거나. 저는 이게 딱딱하지 않고, 학내에서 일어나는 일 빠릿빠릿 처리한다기보다도 되게 재밌어 보였어요.

 

회로: 전북대에는 학소위가 어떤 점에서 필요하나요?

헤카: 가장 큰 이유는, 인권센터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현실이에요. 인권센터 외에도, 성평등 문화 조성 안 되는 것이 큰 문제고요.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운동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계가 뚜렷해요. 학교가 나서지 않으면, 운동에 화살이 집중되고, 인권이 찬반의 대상으로 다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가 나서고 성평등 기구가 있으면, 학생들도 학교를 더 안심하고 안전히 다닐 수 있고, 혐오세력이 덜 활개 치지 않을까 기대해요. 학생들이 고생하기보다는 학교에서 책임지고 직접 나섰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학교가 나서는 것뿐만 아니라 학생이 주체로 나설 공론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제도권에 들어가는 데에는 유의할 점이 있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회로: 인권센터는 상황이 어떤가요?

헤카: 인권센터는 많이 열악해요. 학내 인권 활동의 중심이 되어야 함에도, 홈페이지조차 없어요. 전주의 전주대와 비교하면, 전주대에서는 미투가 일어나자마자 이 입장문을 냈어요. 전주대 인권센터 홈페이지가 있고요. 반면 전북대에서는 작년부터 미투가 여러 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6월 말에야 총장이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고 인권센터를 독립시키겠다고 했고요. 6월 학기말 총장 뉴스레터가 인권센터 독립, 피해자 보호 및 지원 매뉴얼 재정비, 성폭력과 성희록 방지 교육 확대 등 많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개강을 앞둔 지금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어 막막해 보입니다. (화담: 원래 학생과 밑에 인권센터가 있었는데, 상담 센터와 통합해 대학본부 직속 기관으로 독립하는 계획이라고 알아요.)

인력과 예산이 없어 인권센터 활동이 힘들다고 하니, 학교가 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죠.

인권센터가 활발한 곳은 서울대와 중앙대뿐이에요. 두 학교는 인권센터 웹페이지도 꾸준히 관리되는 것 같고, 저희가 살펴본 인권센터에 한해서는 인권 강의, 포럼, 토론회 등 인권 관련 행사를 가장 활발히 주최했어요.

MI: 제가 헤카 님과 함께 전국 대학의 인권센터를 조사했어요. 홈페이지라도 있으면 다행이고, 10년 넘게 방치된 홈페이지도 있었고, 심리 테스트 수준의 심리 검사를 제공하는 곳도 많았고요.

헤카: 전북대 인권센터 개별 사건 처리 경과가 못마땅해요. 경과도 인권센터에서 알리지 않아, 직접 전화로 질문해 알아보았어요. (화담: 사건 처리 결과가 공지될 인권센터 페이지가 없어요.) 학교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으니 사건 경과를 알려줄 수 없대요. 이해하지만, 학생들이 문제를 인지하기 위해서라도, 결과 정도는 공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건이 한두 번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재발 방지 대책 혹은 문화 조성에 힘써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 사건만 반복되네요.

인문대 학장 사건에서는, 그 학장이 가해자라고 생각했다면, 적절한 조치를 내리고 사건 파악에 힘썼을 텐데, 언론에 알려지기까지 몇 개월 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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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 총장 입장문. <전페넷> 제공. 페미회로 갈무리.

 

 

지역에서 여성운동하기

 

회로: <전페넷>이 전북 지역의 다양한 여성단체와 함께 낸 성명문을 봤어요.

화담: 인문대 학장 사건 관련한 자보를 빨리 준비하고, 연서명이 필요하니 여성연구소의 교수님께 연락했어요. 사건 대강 설명해 드리고, 교수님이 아는 단체들에는 다 연락이 돌아갔죠. <전페넷> 회원 통해서도 몇 다리씩 건너 아는 단체들이 연서명해주었고요. 다리를 조금만 건너면 대부분 단체가 연결되는 점 덕에 전북대의 다양한 여성주의 단위가 뭉쳐, <전페넷>을 결성할 수 있었죠. 하지만 단점인 것 같기도 해요. 한 단체에서 갈등이 생기면 다른 단체로 너무 빨리 퍼질 수 있다는 점에서요.

헤카: 지역 풀뿌리 단체 장점인 것 같아요. 지역 사회가 좁아서 몇 다리만 건너면 거의 다 아는 사이에요. <전북여연>이 전북 여성운동의 구심점인 것 같아요. 여기 연락하면 관련 단체들 소개해주고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화담: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안전하다고 느끼고요.)

 

회로: 전주에서 활동해서 느끼는 장점이 더 있나요?

화담: 전주라기보다는 전북대라서 느끼는 장점은, 새롭게 시도해볼 수 있는 활동이 많다는 점이요. 아직 아무것도 없으니 마음껏 해볼 수 있죠. 당장 떠오르기로는, 학과 단위 성교육 진행토록 강사 정보 등 관련 정보 안내, 성폭력 방지 교육, 가해 방지 교육. 성평등 분위기 조성 캠페인이 떠오르네요.

헤카: 인식 개선, 문화 개선. 대학을 변화시키는 데 집중하고 싶어요. 학교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계속 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활동이 새롭고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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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대 학장에 낸 성명문. <전페넷> 제공.

 

 

회로: 서울의 여성운동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화담: 서울의 여대에는 탈코(*) 논쟁이 많다고 들었어요. 다양한 입장이 많고, 모두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엄청나게 논의된다는 게 부러웠어요. 서울은 더 빠른 것 같아요. 탈코를 해야 하냐가 주제가 아니라, 무엇이 탈코인가가 주제고요. 또 부러운 건, 페미니즘 소모임이 적어도 두 개씩 있는 학교가 많다는 거요. 자보에 연서명에 소모임 2개 넣는 게 너무 부러워요.

헤카: 인프라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올해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당시, 서울의 여성단체들은 헌법재판소로 갔지만, 전주의 여성단체들은 전주지방법원에 가서 기자회견을 했어요. 상징성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고, 축제 분위기를 내기는 힘들었죠. 지역에는 활동가의 절대수가 부족하기도 할 테고요.

 

(*) 탈코르셋 운동. 가부장제가 강요한 ‘여성적 취향’을 코르셋에 비유하고, 코르셋을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운동.

 

회로: 각자 관심 있는 다른 페미니즘 단체가 있나요?

헤카: <페미당당>이요. 처음 페미니즘 활동을 시작할 때, 전북대에는 거의 없어서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을 알아봤어요. 그때 처음 본 단체가 <페미당당>이었어요. 인스타그램을 봤는데,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페미나(*)나 퀴어퍼레이드 행진 모습도 그렇고요. 그런데, 어떤 일을 하던 멋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불꽃페미액션>은 노브라 시위, 브래지어를 태우는 시위를 멋있게 하는 것 같아요.

페미당 창당 모임의 구성원들이 속한 대학 사정도 크게 안 달라 놀랐어요. 서울 유명 대학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대학 간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페넷>이 전북대 안 네트워크에 초점을 두고 활동을 했다면. 전북권의 다른 대학들과도 네트워크를 하고 싶습니다. 가깝게는 전주대가 있는데, 전주대 상황을 몰라 아직 엄두가 안 나네요.

<전페넷>은 아직도 만들어지는 중인 단체인 것 같고, <페미당당>은 단체라기보다도 개인들의 액션 모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내부 구조는 잘 모르지만, 친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그 사람을 보러 더 많은 분이 모인 모임 같았어요. 행사 열면, 활동 단위가 많은 서울이라 사람들이 쉽게 모였어요. 그래서 더 재미있어 보였어요. <동행>이나 <전페넷>에서 여는 행사에 오는 사람들이 너무 적고 오는 분들이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에요.

재영: 작년 연말에 <리본> 지인을 통해 <나쁜페미니스트> 분들을 만났어요. <나쁜페미니스트> 분들이 ppt로 단체를 소개해주셨어요. 사진을 굉장히 많이 찍으셨더라고요. 많이 부러웠어요. 사진을 모아놓으면 어떤 활동에 열심이었고, 어떤 활동은 부족했다는 걸 쉽게 볼 수 있을텐데요. 기록으로 남기기기를 즐기는 것 같았어요.

<나쁜페미니스트>는 <리본>과는 달리 책만 읽는 게 아니라 대외 활동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나쁜페미니스트는 지치지 않고 계속 활동하는 게 부러웠어요. 나쁜페미니스트 분들은 애정과 소속감이 커 보였어요.

(화담: 재영 님은 페미니스트 교육학에는 관심 없으세요? 마중물샘(**)이라든가.) 초등교육과에서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데, 사범대에서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페미니스트를 공부하는 사범대학생으로서 책임감이 있어요. 우선 가깝게는 당장 내년에 ‘내가 교생을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교사가 되어 ‘화학(나아가 과학)과 페미니즘을 어떻게 연결해볼 수 있을까?’, ‘담임교사/교과 교사로서 학생들의 인권 감수성을 어떻게 키우고 넓혀줄 수 있을까?’, ‘내가 학내 불이익을 감수하고 나의 신념을 굽히지 않을 수 있을까?’ 등등 아직은 설레발인 많은 고민을 품고 있습니다.

화담: 저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요. 페미니스트 디자인 소셜 클럽(***)이라는 단체가 있어요. 내부에서 교육, 친목, 팟캐스트도 하세요. 대부분 회원이 프리랜서라, 프리랜서들이 주의할 점, 프리랜서 계약 문화, 단가 후려치기와 성희롱에 대처하는 방법을 공유해요. 디자이너 역량 교육도 하고요. 전문가로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역량을 키울 수 있는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이라 무척 부러워요. 페미니스트 디자인 소셜 클럽은 <전페넷>과 달리 물리적인 공간을 기반으로 한 모임은 아니에요. 대부분 프리랜서기 때문에 회사가 아니라 소셜 클럽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서울대에 비슷한 분야의 대학원생들이 모인 페미니스트 모임이 있다는데, 학회 정보 자료를 공유하고 일상적인 대학원 생활을 나눈대요. 여성인류학 학회를 꾸리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과정생이니 꾸리기는 힘들 것 같아요. 교수님과 나이 차가 있다 보니 위계가 생겨 어려운 면도 있을 것 같고요.

 

(*) <페미당당>에서 운영하는 페미니즘 세미나.

(**) 이재덕, <[단독] ‘페미니스트’ 최현희 교사 인터뷰 “이 아이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페미니스트 교사를 만나고 있다는 심정으로 대화”>, 2019.10.30, 경향신문, 링크: http://photo.khan.co.kr/khan_index.html?artid=201710301634001&code=940100

(***) 양으뜸, <이것이 여성 디자이너들이 생존하는 방법이다!>, 2019.06.09, 일다, 링크: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8481&section=sc2&section2=

 

회로: <전페넷>은 전북의 다른 여성주의 단체와는 관계가 있나요?

헤카: <전페넷> 회원이 주로 다른 단체에서 활동해온 사람들로 이루어져, <평화와인권연대>, <전북여연>, <언니들의 병원놀이>, <전주여성의전화> 등 다른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안면이 있죠. 전주시 사회혁신 센터에서 성평등 플랫폼이라는 공간 임대를 포함하는 지원 사업을 운영해요. 플랫폼을 중심으로 다양한 단체가 모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후로도 꾸준히 만나면 좋겠고요.

어제는, <전페넷> 회원이 아니어도 전북권에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라면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킹 파티를 열었어요. <전페넷> 분들과 익산 이리여고의 <미스리딩>의 회원들이 모였어요. <미스리딩>에서 활동했던 <전페넷> 회원이 계시거든요. 여성주의 활동이 네트워킹도 자주 하는 즐거운 활동이면 좋겠어요.

 

나가며

 

회로: 인터뷰 막바지네요. 앞으로는 2학기에는 어떤 활동 계획이 있나요?.

헤카: <전페넷>이 성평등 플랫폼에서 사업 지원비를 따왔어요. 2학기에는 《페.바.시.》 2회차, 원데이 클래스,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목표는 월간 정기회의를 꾸준히 만나고 싶어요. 세미나가 없으니, 회의 핑계로라도 자주 만나고 싶습니다. 정기 친목 모임도 많이 갖고 싶어요. 원데이 클래스는, 회원이나 강사를 초빙해 무언가를 배우는 행사에요. 단체에서 무언가 배우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더라고요.

사업 지원비를 따올 때는 저희의 고민을 담아 지원서를 냈어요. ‘학내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사비를 들여가며 학내 페미니즘 운동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만, 이는 한계가 분명하고 우리는 지속가능한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며 지원 사업을 통해, 활동가들이 지속가능한 페미니즘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어요.

 

회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과 각개전투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헤카: 저는 <전페넷> 활동을 계속할 것 같아요. 졸업 학번이 왜 계속 활동하냐는 분들도 있어요. 저는 대학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제 성에 찰 정도 학교가 바뀌지 않았어요. 그다지 바뀌지 않았는데, 이렇게 나가는 건 패배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페넷> 사람들이 편하기도 하고요.

개인 활동과 단체 활동 균형을 맞추고 싶어요. 페미니즘 활동이 꼭 단체를 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대자보 전시회도 개인으로 한 일이고요. 각개전투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꼭 단체가 있어야 활동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에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페미니즘 방식으로 활동하면 그게 페미니즘 활동인 것 같아요. 예술일 수도 직장 문화 개선이 될 수도 있고요. 작은 활동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하고 큰일이라고 생각해요. 작은 활동들을 기록하고 싶어 영상을 꾸준히 남기고 있습니다. 전주 퀴어문화축제 기획단에서도 활동 중인데요, 다음 제3회를 잘 준비하고 싶습니다.

MI: <전페넷>과 제 생활 안정에 집중하고 싶어요. 단체와 개인의 관계를 다르게 생각해보고, 제 상태를 천천히 되짚어보려고요. 지금 저와 같이 이 순간을 살아가는 페미니스트들이 활동을 포기하지 말고 계속하면 좋겠어요. 활동하다 보면 편한 분위기의 단체에 들어갈 수도, 개인 사정으로 단체에서 나갈 수도, 혹은 맞지 않는 단체에 들어서 활동을 그만두고 싶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계속 활동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영: <리본>에서 『그건 혐오에요』를 읽었어요. 동물권, 장애인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는데요, 그 책을 읽는 동안 하루 1식 비건도 해봤어요. 그때 제 지평이 넓어진다고 느꼈어요. 그렇게 제 관심사를 꾸준히 넓혀가고 싶습니다. 각개전투하는 분들에게는, 제가 대자보 전시회를 관람하고 남긴 후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서로의 존재만으로 힘이 된다”

화담: 제가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대학원에서는 학업과 연관 짓고 싶어요. 교수님을 <전페넷>에 뿌리내리게 하고 싶네요. 연구자로서 역량을 키우고 꼭 논문을 투고하고 싶어요. 중학교 때부터 택견을 해왔는데,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네요. 다른 분들도 운동 꾸준히 해 건강 챙기시길 바라요. 건강해야 활동도 계속할 수 있어요. 운동exercise도 하시고 운동movement도 하시길 바라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전페넷>이 다른 단체들과 연결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 전북대와 전주에는 서로의 존재를 알던 여러 여성주의 단체가 있었다. 이들이 전북대 미투라는 사건을 계기로 전북대 여성연구소 교수님의 제안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교수님이 연락을 시작해, 아는 단체가 다른 단체를 소개하는 식으로 모였다. 이렇게 알음알음 시작할 수 있던 이유는, 회원들끼리는 이미 안면이 있거나 단체 단위로 같이 행사 꾸며보았기 때문이다.

<전페넷>은 미투 사건에 연대해 공동 대응하고자 출발했다. 출발할 수 있던 조건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는 않았던 연결망이었다. 연결망을 이미 갖추고 있어 연대할 수 있던 것이다.

또 단체 재생산과 대안적 운동 모델을 마련하려는 고민도 눈에 띄었다.

<전페넷>의 고민을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친다.

017: 전북대라는 페미니즘 황무지를 갈다, 인터뷰 (1부)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17:
전북대라는 페미니즘 황무지를 갈다<전북대학교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인터뷰(1)

 

이번 인터뷰에서는 <전북대학교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이하 ‘전페넷’)>를 만났다.

전북대에도 많은 미투 사건이 있었고, 이에 대응해 <전페넷>은 대자보, 서명 운동, 기자 회견 등 작년부터 활발히 활동해왔다.

무더운 8월 <전페넷>을 만났다.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 결성하자마자 활발히 활동할 수 있던 환경은 무엇일까? 단체를 운영하며 어떤 고민을 안고 있을까?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지냥이와 한솔은 ‘회로’로, 인터뷰이 권화담 님은 ‘화담’, 신재영 님은 ‘재영’, 헤카 님은 ‘헤카’, MI 님은 ‘MI’로 표기했다. 교정은<페미회로>의 우연,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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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장.  페미회로 제공.

 

회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헤카: 저는 <전페넷>에서 활동하고 있는 헤카입니다. <전페넷> 전에 페미니즘 학회 <동행>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아직 졸업 안 한 수료생이에요. (웃음) 학생 페미니즘 단체들이 열심 활동하는데, 많은 시간과 돈, 노력을 들이니, 많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주변 활동가들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MI: <전페넷> MI입니다. <전페넷> 전부터 <정치하는페미>라는 단체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전페넷>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직 졸업까지 시간이 좀 남은 문헌정보학과 학부생입니다. 앞으로 전북대에 들어올 많은 분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인터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재영: 안녕하세요. 저는 <전페넷> 소속은 아니지만, 전주 여성주의 독서 모임 <Re:Born(이하 ‘리본’)>에서 활동했습니다. 전북대에서 화학교육과(이하 ‘화교과’) 재학 중이고 휴학 생각은 없으니 차차 졸업하겠죠? (웃음)

화담: 저는 전북대학교 고고문화인류학과 졸업을 1주일 앞둔 <전페넷> 권화담입니다. 제 얘기하는 걸 좋아해 인터뷰 제의가 반가웠습니다.

 

<전페넷> 소개

 

회로: <전페넷>은 어떤 계기로 결성되었나요?

헤카: 2018년에 전북대에도 미투 사건이 있었어요. 교내에 여러 여성주의 단체는 있었는데, 구심점이 없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전북대 여성연구소의 한 교수님이,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단체와 개인을 모아 집담회를 열었어요.

이 자리가 귀한 자리이니,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면 이런 연대체로 공동대응하자는 의견이 나와 <전북대학교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를 결성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각개전투하면 상시활동에는 좋지만, 역량을 집중하기 어려우니 연대체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인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전페넷>이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났던 활동은, 학내 성평등 문화 정착을 위해 학교에 건의하려 서명을 받은 활동인 것 같아요. 학내 성평등 문화를 얘기하면서 학교에 세 가지를 요구했어요(*). 젠더 감수성 항목을 교수 평가항목에 포함하라, 여성학 강의를 필수 교양으로 지정하라, 성평등 전담 독립 기구를 만들라. 그냥 요구하면 한 귀로 듣고 흘릴 것 같아서, 1,200~1,300명의 서명을 받은 후 요구했죠(**). <전페넷> 회원분들이 많은 강의실을 돌아다니며 서명을 받아주셨고, 교수님들도 많이 서명해주셨어요. 그 덕에 실제로 학교 인권센터, 총장과 면담했지만, 반영된 요구는 단 하나도 없어요.

MI: 홍보는 학교 교수님, 스티커, 포스터로 주로 해왔어요. 스티커에는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 등 페미니즘 관련 문구를 쓰고 거기에 <전페넷> 홍보문구를 적는 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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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 포스터와 홍보 스티커. MI 제공. 페미회로 갈무리.

 

(*) 서명 운동 본문:
https://docs.google.com/forms/d/1LTETWtevVzvNaalK9IZnw3COIKgrZBijlwBo01kknuQ/viewform?edit_requested=true

(**) 김현표, <교내 성폭력 방관 규탄>, 2018.06.06, 전북중앙, 링크: http://www.j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6383.

 

회로: <전페넷>은 세미나가 없어서 회원들을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

MI: 번개 모임을 하거나, 전체 회의와 MT를 진행했습니다. MT에서는 각자의 고충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는데, 몇몇 사람이 나가서 담배를 피우러 나가더니 하나둘씩 모여서는 <전페넷>의 미래를 논의하더라고요. (웃음) <전페넷> 회원 중 많은 수가 다른 단체에도 속해, <전페넷>이 상시 활동을 하기 어려워요. 이걸 어떻게 보완할지도 논의했어요.

헤카: MT에서 전페넷에 모인 분들의 생각과 목적이 각자 다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활동을 하고 싶어서, 커뮤니티로 다른 페미니스트들과 교류하기 위해, 그냥 소속을 두려 등등 여러 목적이 있더라구요. 또 각자 처한 현실적인 여건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활동을 많이 하실 수 없는 분들도 계셔요. 이걸 안지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는데, 그 전에는 좀 서운한 감정이 들기도 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대화인 것 같아요. 카톡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는 감정을MT에서 나눈 것 같아요. 서로를 더 잘 알고 정이 쌓였어요.

 

회로: 회원은 얼마나 많나요? 전북대학교 학생이나 출신이 아니어도 <전페넷>에 참여할 수 있나요?

화담: 여성연구소 교수님 3명을 포함해 24명이에요. 교직원도 없고, 대부분 전북대 학부에 다니는 패싱 여학생이에요. 저만 곧 대학원생 회원이 되겠고요. 헤카 님은 수료생으로 계시네요. 교수님 한 분은 인류학과, 나머지 두 분은 사회학과에요. 19학번 분들이 6명이나 들어왔어요.

교수님들에게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학생들이 알기 어려운 학교 이야기를 전달해주시기도 하고, 강의실 대관에도 도움을 주세요.

헤카: 전북대학교 학생이나 출신이 아니어도 <전페넷>에 참여 가능해요. 다만 <전페넷>이 대학 내 성평등 문화 조성 등의 운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아무래도 대학 관련 일이 나와는 별개라는 분은 활동하기 힘드시겠죠.

구성원들이 <전페넷>에 바라는 상이 모두 달라요. 이름을 보고, 열심히 액션하길 기대하는 분들도 있고요. 커뮤니티에 있는 것만으로 만족하거나, 상시활동을 원하는 분들도 있고요. 모든 기대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죠.

 

회로: 집담회 얘기를 더 해볼까요? 집담회는 어떤 취지로 열렸나요?

헤카: 전북대 여성연구소의 교수님들이 제안해 주셨어요. 학내에서도 미투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같이 모여서 공동 액션을 해볼 수 있는 장을 열자고 먼저 제안하셨어요. 그 당시에 저도 다른 분들도 <리본>, <동행>, 성소수자 동아리 <열린문> 등 전북대에 여러 여성주의 단체가 있다고는 알았는데, 단체 간에 교류가 너무 없었어요. 연대활동도 해오긴 했지만, 그 활동이 끝나면 못 보잖아요. 전북 지역에서 여러 단체가 활동하는데 서로 정기적인 교류가 없어 아쉬웠고, 미투와 같은 공동 사안에 좀 더 유연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에 결성했습니다.

 

회로: 집담회에는 어떻게 연락받으셨나요?

헤카: 저에게는 개인 메시지로 왔어요. 아무래도 <동행>에서 1년 넘게 활동했으니 시민단체 사람들도, 페미니즘 활동가들도 알음알음 알고 연락처도 알아서요. 교수님께서 <전북여성단체연합(이하 ‘전북여연’)>에 계셨다고 알이요. <전북여연>에서 제 번호를 얻으셨나 봐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받아 참여했죠. <리본>, <정치하는페미>, <열린문> 등등 여러 단체 사람들도 집담회에 왔어요.

MI: <정치하는페미>가 집담회에 참여했지만, 제가 참여하지 않았어요. 집담회 이후 <전북대미투운동공동행동>이라는 톡방이 생겼어요. <정치하는페미> 회장님이 저를 톡방에 초대해주었습니다. 회장님은 <정치하는페미>를 결성한 사람이고, 나름대로 다양한 방면으로 활동해와 헤카 님과 비슷한 방법으로 연락을 받았을 것 같아요. 모임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교수님이 알고 계셨을 거고.

재영: <리본>도 비슷하게 원래 알던 사람을 통해 연락받았다고 알아요. <전페넷>이 생긴다니 여유와 의지가 있던 분들이 <전페넷>에 함께하셨던 것 같아요.

 

회로: 집담회에서는 어떤 얘기가 오갔나요?

헤카: 그 자리에서 이름도 정했고. “전북”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전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전북대학교”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아니면 그냥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로 할지 고민했어요. 다들 전북대 중심으로 살고, 전북, 전주 라기에는 너무 거창해서 “전북대학교”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로 정했어요.

 

회로: 집담회에 회사원도 계셨나요? 그분들은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헤카: 그때 계셨던 회사원분들은 지금 다 활동을 안 하해요. 하지만 그분들도 다 학내 페미니즘 단체가 만들어지길 바랐던 것 같아요. 회사원 한 분은 전북대 소속이 아니고 전주대를 나오신 분이긴 한데 그 전에 <동행>에서 활동하셨어요. 그분은 그냥 같이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다들, 뭔가 하고 싶지만 그럴 판이 없었으니, 판을 짜보자는 제안 자체가 반가운 시기라고 느꼈던 것 같아요.

 

<전페넷> 전 활동들

 

회로: 전에 속해 있던 단체들과 처음 읽기 시작한 책을 소개해주겠어요? 누구와 함께 읽었는지도 궁금해요.

헤카: 제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2016년에는 전북대에 페미니스트 단체가 거의 없었어요. 당시는 메갈리아라는 사건이 한창 터진 뒤 조금은 식은 뒤였어요. 메갈리아는 제가 여성으로서 느껴온 불평등의 집약체였어요. 그때는 제가 느껴온 불편함이 진짜라고 알게 될까 공부하기가 두려웠어요. 그래서 메갈리아가 잠잠해진 뒤에서야 여러 자료를 찾아봤어요. 그간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해온 주장들이 제가 여태껏 느껴 온 불편함, 불평등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고 공부를 시작했죠

그렇게 <동행>에 들어갔어요. 제가 들어오기 전까지 ‘학술공동체’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인권이나 사회운동에 관해서 세미나 하고, 같이 행동하고, 시민단체와 연대활동도 하던 곳이에요. 페미니즘 세미나를 한다고 해서 갔는데 이미 그 세미나는 끝났고, 화물 노조에 관한 세미나를 하고 있었어요. 제가 페미니즘 세미나를 하고 싶어서 들어갔다고 하니까 다시 페미니즘 세미나를 만들었어요. 이름도 ‘학술공동체’에서 ‘페미니즘 학회’로 바꿨고요. 제가 들어갈 때<동행>은 3명이었어요. 그런데, 페미니즘을 같이 공부하며 낙태죄 폐지 활동하고 사람들이 더 모였죠.

<동행>에서 세미나 하기 전에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같이 이야기를 나누거나 페미니즘을 공부하려고 하면 인터넷에서 찾기에는 자료가 너무 방대해서 찾기가 힘들었어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책으로 공부하니 안심되는 기분이었어요. 이론서까지는 아니지만 책으로 페미니즘을 만나는 게, 내가 진짜 공부하는 것 같았어요. 설레고, 같은 주제로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전에는 같이 얘기할 사람들을 찾지 못했는데 이제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죠.

그때 고른 책이 『빨래하는 페미니즘』이에요. 표지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그 책에는 당시 제 고민과 겹치는 내용도,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었어요. 페미니즘이 아직 뭔지 모르는 아리송할 때였죠.

『빨래하는 페미니즘』에서 제가 가늠하기 힘들었던 내용은 저자가 결혼생활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들이었어요. 저는 비혼인이거든요. 그래서 아직 경험 못 해본 것도 있지만, 동시에 저희 엄마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고도 생각했어요. 엄마가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았고요. 이후 한 몇 년 동안 계속 페미니즘을 엄마에게 나름 설득해보려 했는데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 잘 되진 않았어요. 그런데 언제인가 엄마가 독서모임에서 그 책으로 세미나를 하시더라고요. ‘내가 그 책 그렇게 읽으라고 할 때는 안 읽더니… (웃음) 읽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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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하는 페미니즘』 표지. 출처 민음사. http://minumsa.minumsa.com/book/7494/

 

 

회로: 많은 기대를 품고 <동행> 활동을 시작하신 것 같아요.

헤카: 페미니즘을 새롭게 알게 됐으니까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할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취지로 만든 <동행> 속 프로그램이 무비먼트 에프(무비+무브먼트+ Feminism) 영화 세미나 모임이에요. 제가 사실 좀 더 관심 있는 매체는 책보다는 영화거든요.

발제자가 영화를 선정하면 참여자들이 다 영화를 보고 와요. 발제자의 발제에 따라서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어요. 여성영화는 혼자 보면 굉장히 나중에 끝이 슬프거나 하면 기분이 너무 찝찝하고 혼자 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여성영화를 사람들과 같이 보고 이야기라도 나누면, 조금 더 좋은 이야기도 나누고, 세미나도 저절로 되고, 많은 이야기가 생길 수 있을 테니 기획했어요.

실제로 꽤 잘 됐어요. <동행>에서 가장 처음 시작해서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프로그램이었어요. 또 책 세미나에서는 페미니즘 역사를 많이 봤어요. 구성원이 대부분 아무래도 페미니즘을 모르고 저조차도 좀 배워야 해서, 논문이나 여성운동사를 많이 읽었죠. 옛날을 되짚어보는 『넷페미사』, 『페미니스트모먼트』와 같은 책들로 세미나를 했고요.

 

회로: 어떤 영화를 선정해서 같이 보았나요?

헤카: 무비먼트 에프에서 선정한 영화 중에는, 리메이크된 『고스트버스터즈』, 『죽여주는 여자』, 『안토니아스 라인』, 『꿈의 제인』, 『우리들』, 『서프러제트』,『빵과 장미』가 기억에 남네요. 『안토니아스 라인』은 정말 최고작입니다. 『안토니아스 라인』은 1995년 작품이에요. 이성애 로맨틱, 남성중심의 히어로 액션물들이 판치던 때 나왔죠. 영화 자체는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긴데, 가부장제를 전면적으로 부수고, 대안을 고민하는 내용이에요. 가부장제를 넘어선여성 공동체 혹은 대안 공동체에 대한 내용이라 더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무비먼트에프에서는 영화를 거의 20편 가까이 봤어요. 재미있었던 게, 영화들이 다루는 주제가 다양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면 『죽여주는 여자』에서는 노인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성을 사고파는 일, 『우리들』에서는 여성 청소년에 관한 이야기, 『빵과 장미』에서는 여성과 노동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죠.『고스트버스터즈』는 원작의 액션물의 성별을 완전히 전복했잖아요. 전복에서 오는 쾌감을 같이 공유하고 서로의 소감을 얘기하는 좋은 프로그램이었어요. 왜냐하면, 사실 세미나를 하면 세미나 하는 과정에서 서로 친해지고, 서로 이야기를 하여튼 많이 하는 것이 좋잖아요. 세미나의 매체보다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중점이 되는 느낌이라서 그게 되게 좋았던 것 같습니다.

책은 좀 더 전문적인 느낌이었죠. 진짜 뭔가 배우려고 온 분들이 많았고, 그리고 그땐 좀 더 통계자료와 숫자들 덕에 새로 얻고 자신의 머릿속에만 들어있던 생각이 체계화되는 느낌도 꽤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MI: 저는 페미니즘을 트위터로 시작했어요. 계속 트위터에서 ‘트위터에서 페미니즘 하지 마라’는 얘기를 듣고는, 이미 현장 담론을 접하고 조금씩 소화하던때, 책을 집어 들었죠. 특히 사람들이 SNS에서 배우지 말라는 이유는, 자신의 의견이 잘 생기지 않고 다른 의견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처음으로 사 본 책이 『우리에게는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이하 『입트페』)에요. 그 책은 이론서라기보다는 실전서죠.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서라서 이론에 기초하기보다는 간단한 사이다 화법을 알려주는 책이었고, 그래서 내용이 잘 기억나지는 않아요. 그래도 책을 읽어 담론 이해에 어느 정도 도움받았죠.

쉬운 실전서든 두꺼운 이론서든 같이 책을 읽으면서 활동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해요.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고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저는 특히나 지방 학교라 페미니즘 동아리도 없었고 특성화고이기도 해서 요리 동아리 외에 동아리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어요. 주변에 같이 페미니즘 공부할 만한 친구는 한 명 정도 있었는데, 그때는 그냥 여러 얘기 정도 나눌 수 있어서 괜찮았지만, 지금은 그 친구와 못 보게 되었습니다.

 

회로: MI 님은 <정치하는페미>에서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셨나요?

MI: <정치하는페미>는 2018년 2월쯤에 전북대 학생 1명, 사회인 2명이 결성한 전주권 동아리에요. 처음에는 대학에 홍보해 대학생 중심으로 모집했어요. 성별은 전원 여자였고, 인원이 10명이 조금 넘었어요. 주로 나오는 분들은 서너 명이었지만요.

다양한 활동을 했어요. 열쇠고리와 팔찌를 만들어서 전북대 구정문에서 팔고, “Me Too With You”, “피해자다움, 그게 뭔데” 등 판넬을 이용해 미투와 관련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고요. 또, 전주에서 제1회 월경 페스티벌을 진행했어요. 풍남문에서 작게 진행했고 오는 사람도 많지 않고 지나가면서 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죠. 대부분 지인이 부스에 왔어요.

부스 참여행사에서는, 카드뉴스 전시, 퀴즈, 생리 용품 전시를 했어요. 카드뉴스는 세계 월경의 날 날짜, 월경이 한 번에 지속되는 기간, 월경의 원인을 다루었고, 준비한 카드뉴스에서 몇 글자를 빼서 퀴즈를 맞히는 식으로 진행했어요. 생리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상식도 퀴즈 주제였어요. 와 주신 분들이 전시와 참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즐거웠어요.

행사 끝나고는 자유발언도 했었어요. 행사에 가는 길에 구정문을 지나오는데, 월경 페스티벌 포스터를 두고 남자들이 하는 대화를 들었어요. ‘이런 거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리를 입에 담으면 안 된다는 투로 말하더라고요. 저도 이 대화를 자유발언에서 소재로 썼어요. 왜 제대로 생리를 입에 담지도 못하면서 말을 얹느냐고요.

2018년 1학기 말에는 책을 읽으면서 스터디도 했어요. 『백래쉬』를 읽었는데, 책이 너무 두꺼워 원활히 진행되지는 못했어요. 대부분 전북대 근처에 있는 한 카페에서 방을 빌려서 진행했었어요. 2018년 2학기부터는 개인 사정이 많이 생겨서 단체가 쉬다가 지금까지 모임이 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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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하는 페미>의 미투 캠페인 모습. MI 제공. 페미회로 갈무리.

 

 

회로: 홍보에는 어떤 말을 쓰셨나요?

MI: 단체 이름이랑 “정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간략하게 한두 줄 정도 썼어요. “정치한다”는 이름을 주제로 모임에서 얘기 나눈 적이 있어요, 여성이 정치를 해야, 정책이 바뀌고 사회가 크게 발돋움하고,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에, 우리가 하는 이 페미니즘 활동도 다분히 정치적이고, 이를 의식하면서 활동해야 해 ‘정치하는페미’라고 생각했어요.

재영: 저도 고등학교 때 트위터에서 페미니즘을 접했어요. 이후 강남역 사건이 일어나고, 친구들과 페미니즘 관련 주제로 대화를 하기도 했지만, 공부하고 페미니즘으로 사람을 사귀는 건 대학교 와서였어요. <리본>에 가입했죠. 저는 학교 들어와서 1학년 때 사범대 새터에 가는 버스를 탈 때, <리본> 사람이 나눠주는 리플렛을 받았어요. <리본>과 <리본> 강연을 소개하는 내용이었어요. 리플렛에 독서 모임 얘기도 있어서, <리본>에 가입했어요.

처음으로 완독한 페미니즘 책이 『입트페』나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는 당연한 얘기들뿐이라, 느낀 점도 남는 것이 하나도 없네요. 『입트페』는, ‘어흑, 갓띵문(명문)’ 이러면서 신나게 읽었고, 엄청 웃고 띠지 붙여가며 읽었어요. 트위터에서 이렇게 팟팟 터지는 자극적인 말에 중독되어있다 보니 그랬던 것 같아요.

<리본>은 운영위원회(이하 ‘운영위’) 포함해서 톡방에 회원 40명 정도 있어요. 봄학기, 가을학기 중 세미나에는 20명 정도 참여하고, 방학 중에는 10명 정도 참여해요. 제가 <리본>에서 재작년부터 작년 여름까지 1년 좀 넘게 활동했다가, 이후로는 저는 세미나 참여를 아예 안 했어요. 이후로 참여자가 더 줄었을 것 같아요. 운영위가 세대교 체가 안 되어 올해 초에는 이번 활동 운영위를 꾸릴 사람이 생길 때까지 8월 중순인 지금은 잠정적으로 멈췄어요.

<리본>의 활동 중단 전 마지막 활동은 작년 연말에 다른 단체와의 교류였어요. 전주의 <언니들의 병원놀이>, <비혼여성협동조합>, <열린문>, 대구의 <나쁜 페미니스트> 등 여러 단체와 각각 약속을 잡아 서로 알아가기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어요. <리본>의 공간에 다른 단체 분들을 소개받았죠.

화담: 저는 <리본>의 초창기에 활동했다가, 당시에 활동할 만한 상태가 아니어서 한 학기 뒤에는 안 했어요. <리본> 초창기에는 진짜 사람이 많았어요. <리본>에는, 전주교육대 분들, 전북대 분들, 전주대 분들, 회사원분들도 있었어요. 여성이 많았고 남성분들도 가끔 있었어요. 주로 20대였어요. <비혼여성협동조합>에서 중년분들도 한 번 오신 적 있어요. 그분들 오실 때쯤 제가 <리본>에서 또 나가 이후는 잘 모르겠네요.

재영 님이 리플렛을 받았다는 때까지는 제가 <리본>에 있었어요. 전북대학교 신입생들 위주로 젠더교육이랑 아르바이트 관련된 노동 관련 교육을 신입생들에 맞춰서 꾸렸던 적이 있어요(*). 교육 홍보를, 신입생분들이 많이 가는 OT, 새터 출발하기 전 아니면 직접 새터 가서, ‘얘들아… 오지 않을래? 이상한 선배가 아니야…’ 라고 홍보했죠. (웃음)

<리본> 처음 꾸렸던 친구들이랑 친구여서 <리본> 소식은 전해들었죠. 4~5명 조로 4~5개 있었거든요. 그때 단체가 엄청 컸어요. <리본> 거쳐 간 사람들도 매우 많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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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새학기 인권학교 “다시 만난 세계” 홍보 자료. <전페넷> 제공. 페미회로 갈무리.

 

 

(*) 2017 새학기 인권학교 “다시 만난 세계”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cW_WGv7cUIwaa7uyVboVsm8mxDZbaEcVQQHn2nU0V_dGJQlg/viewform

 

회로: 리본이 정말 큰 단체였네요. 리본 얘기를 더 듣고 싶어요.

화담: 얼마 전에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는데, 이런저런 얘기하다 보니 그 친구도 <리본>에 있었대요. 규모가 진짜 컸어요. 진짜 몇 다리 건너면 다 <리본>이고. 헤카 님도 계셨죠?

헤카: 저는 톡방엔 있는데 뒷풀이만 한 번 간 적 있어요. (웃음) <리본>은 <동행>과도 연대활동이나 이런 게 잦아서 사실 세미나에 안 나갔어도 <리본>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화담: <리본>이 외부인들을 꺼리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페미니즘 처음 관심 갖는 사람들도 왔고요. 초창기에는 <리본>을 부수려고 온 사람이 있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남자분이 <리본>에서 페미니즘 공부를 먼저 하고 계셨는데, 그분의 친구분이 비장하게 왔어요. 조끼리 앉아있었어요. 저는 새로운 분과 다른 조였어요. 그 공간이 넓지 않아 다른 조에서 하는 얘기가 다 들리는데, 얘기 끝나면 그분이, ‘그럼 이건요?’ (웃음) ‘그럼 군대는요?’, ‘그럼 이거는요?’ 그렇게 끝나지 않더라고요.

재영: 저는 화담 씨랑 <리본> 활동 시기가 겹치진 않아요. 제가 활동했을 당시 <리본> 분위기를 굳이 말하자면, 교차성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작년에 운영위 위주로 <리본> 내규를 만들었어요. 세미나 인원도 많고, 페미니즘 담론에 익숙한 정도 차이가 있다 보니까 어떤 사람은 혐오발언이라고 생각하는 말을 다른 분들이 하는 등 불편한 상황이 계속 쌓이고 쌓이다가, 운영위 위주로 해서 학교, 나이, 외모 등등에서 혐오발언을 하지 말자 하자는 얘기했어요.

그 논의에서 이어져, 위계나 차별이 생길 수 있는 주제에서 말을 조심하자는 내규를 확실하게 하고 책상에 붙여놓으니, 서로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세미나에서 본인이 스스로 얘기하지 않으면 나이, 성별을 묻지 않아요. 서로 이름만 알아요. 활동명으로도 활동할 수 있고요. 나이나 학교 등을 파악하는 분위기가 화담 씨가 <리본> 활동했던 때에 비해 저희 때는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고요. 여러 젠더를 가지신 분들이 있었고요. 저는 성별이분법에 반대하니까 이렇게 딱딱 나눠서 얘기해 드리기에는 불편한 것도 약간 있었어요.

<리본>이 SNS와 대학가에 포스터로 홍보해 대학생이 많긴 했지만, 고등학생도 있었고 비 대학생분들도 꽤 많았어요.

 

회로: <리본>은 어떤 활동을 했나요?

화담: 이민경 님, 은하선 님 강연도 열었죠. 그때도 재미있는 일이 있었죠. 은하선 님 강연에서는, 어떤 남자분이 강연을 듣다가 5분도 안 앉아있다가 나갔어요. 그러곤 강의 내용이 마음에 안 든다고 환불해달라고 했어요. 복잡해지기 싫어서 환불해주고 말았죠. 이후로 에타(*)에, <리본> 애기를 하면서 ‘은하선이라 하는~ 아주 문란한~ 사람을 초청해가지고 강연을 했더라~’는 글이 올라온 거에요.

책은 다양하게 읽었어요.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가 기억나요. 논문도 읽고요. 김주희 교수님의 논문 「한국 성매매 산업 내 `부채 관계`의 정치경제학」을 읽었었는데 되게 인상깊었어요. 마에깡(前金) 대출 연이율 3650% 퍼센트.

연세대 김주희 교수님에 따르면, 어떤 지역에서는 성매매 여성이 남성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성형이나 옷 등에 들이는 돈을 업소에서 대주는데 그돈을 마에깡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마에깡 대출을 지역의 은행에서 해 줬다는 거에요. 대출 상품 팜플렛에는 당연히 없는데 포주와 결탁해 대출해줬대요. 은행의 연이율에 결근비 등을 포함해서 포주의 이자까지하면 연 3650%가 되는데, 절대 갚을 수 없는 액수죠. 이게 세미나 하면서 제일 소름 돋았던 내용이에요.

헤카: <동행> 함께 5.17 강남역 사건 추모문화제 행사를 작년까지 총 2회 진행했어요. 올해는 아쉽게도 진행하지 못했어요. 작년에는 행사 제안서를 <리본>에서 작성해주셔서 <동행>, <열린문> 분들이랑 TF팀이 꾸려져서 같이 진행했죠. 꽤 컸고, 페미니즘 주제로 하는 행사가 전주에는 없었던 터라 중요한 연대활동이었어요.

행사는, 공연과 자유발언, 행진 순으로 진행했어요. 자유발언은 사전지원자를 섭외해서 진행했고, 공연은 저희가 직접 팀을 꾸렸어요. 마지막으로는 달빛시위(**)에서 본뜬 행진을 했어요. 작년 2회차 행진에서는 전북대 구정문 삼각지에 트럭을 무대로 크게 진행했어요. 행진한 후 페미니즘, 퀴어 활동과 페미니스트와 퀴어가 확 가시화된다고 느꼈어요. 행진 한 번 하면 에타도 행사 앞뒤로 활발해지고요. 저는 가시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행진 후에 무척 흐뭇했습니다.

행진은, 전북대에서 출발해 덕진광장 쪽으로 가서, 종합경기장이 있는 사거리로 갔다가 신정문으로 돌아왔는데, 경찰분들이 잘 협조를 해주지는 않아서 사실 많이 위험하기도 했어요. 행진 중 멈춰서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고 이를 미리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당일에 행진할 때 안 된다고, 그냥 빨리빨리 가라고 해 근데 퍼포먼스도 못 했고요.

 

(*) 에브리 타임. 각 대학마다 있는 시간표 어플. 대학별 폐쇄 커뮤니티이기도 하다.

(**) 박길자, <부활한 달빛시위 “성폭력 통념에 항거한다”>, 2016.08.06, 여성신문, 링크: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6474.

 

회로: 화담 님은 페미니즘을 어떻게 접했나요?

화담: 저는 중학생 때부터 인권 전반에 관심이 많았고, 그때 읽은 책들이 페미니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그때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책을 읽었어요. 영화들을 소재로, 병역거부, 장애, 여성, 성소수자, 검열 등 여러 주제를 전반적으로 다룬 책이었는데 거기에서 여성 파트가 있었거든요.

대입 이후, 메르스 갤러리가 한창 활발할 때, 아는 언니가 메르스 갤러리 글을 따온 스크린샷들을 웃긴다며 퍼나르셨거든요. 미러링 글도 올라오지만 인상 깊은 글들을 보고는, 다양한 책을 읽었어요. 그때 처음 읽은 책은 『젠더와 사회』이에요. 혼자 읽다가 나중에 <리본> 세미나 책으로도 읽고, 학교 수업교재로도 사용되어 다시 또 읽었고요. 그 이후에도 여러 번 읽었어요. 제 전공인 문화인류학 교재에 중에도 여성인류학 파트가 있고요. 요즘은 대학원 준비 때문에 논문을 더 많이 읽어요. 그리고 석사 학기 말 과제 페이퍼 주제를 여성인류학으로 잡으려고요.

학교 밖 얘기를 하자면, 미스핏츠 필진으로 활동 중인데, 여성주의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스핏츠를 통해 여러 지역의 여성문화와 관련된 행사에 가거나 다양한 생각을 가진 필진들의 글을 읽고 직접 만날 수 있었어요.

 

회로: 화담 님은 문화인류학이라는 본인 전공이 본인의 페미니즘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화담: 인류학은 쉽게 말하자면 미시적인 분야를 연구하곤 해요. 인류학이 식민 시대 때 원죄가 있어, 자기반성을 하던 때 소수민족이나 여성, 장애, 성소수자 등이 중심 주제였어요. 저희 과에도 여성인류학 교수님들이 계시고, 저도 구술생애사 기법도 많이 써요. 구술생애사로 과제도 한 번 했고, 이번 학기말 레포트도 구술생애사로 쓸 생각이에요.

전공으로 여성주의와 밀접한 주제와 방법을 계속 접하니까, 여성주의에 관심을 놓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관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는 학과를 잘 선택했죠.

저는 특히 무형문화재, 그 중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여성의 노동에 관심이 많아요. 예를 들면, 모시짜기나 침선류 등 흔히 말하는 규방작업들이요. 이 무형문화재들이 잘 전승되지 않는대요. 집안 대대로 전승되다가 며느리나 딸이 없으면 끊기고 잘 전승이 안 되니까 우리 여기서 그만하자는 분들도 있고요. 왜 전승이 안 되고 여성의 노동이 어떻게 포장이 되는지에 관심이 많아서 이번 학기 페이퍼를 무형문화재분들 인터뷰로 해보려합니다.

 

회로: 전공자로서 다양한 논문을 많이 읽다 보면 아는 것들이 많아질 것 같은데, 너무 아는 게 많아서 힘들 때는 없으신가요?

화담: 너무 아는 게 많진 않은 것 같아요. (웃음) 논문 중에서는 핀트가 나간 것들은 드물어요. 남성 연구자가 쓴 논문들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은 하고 있고요. 특히 당사자가 당사자로서 연구를 하기도 하는데, 그 연구에서는 핀트가 틀릴 수 없죠.

그리고 인류학 자체도 절대적인 기준을 정하는 학문이 아니에요. ‘이 현상은 이것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아’ 정도라서 딱히 아는 게 많아 엄청 힘들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제가 아직 깊이 공부하지는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접하면서 당연히 일상생활이 힘들기는 하죠. 그런데 전공자로서는 아닌 것 같고, 페미니즘을 접해서죠. 왜냐하면 학과에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교수님은 없거든요. 저희 과에서 문화인류학뿐만 아니라 고고학도 같이 배우는데, 고고학 교수님들도 별로 부정 안 해요. 꽉 막힌 분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 문제가 있지는 않고, 눈치를 살살 보고요. 문화인류학 교수님들은, 당연히 옛날보다 여자가 살기 좋아진 건 맞지만 어쨌든 아직은 사회에서 약자이고 사회의 가부장제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요.

 

단체

 

회로: <전페넷>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며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 같아요.

헤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어요. 연대체이기때문에, 단체장이 있어야할지, 조직 형태, 모임, 정기 활동은 어떻게 할 지, 단체의 회원은 자동 가입인지, 단체 단위 가입인지, 많이 고민했죠. 아직도 계속 연습 중이에요. 어쨌거나 시행착오 과정에서 모임을 총괄하던 두 분이 힘들어서 나가셨어요.

요즘 시대에는 운동의 흐름이 달라졌다고 느껴요. 전에는 개인이 단체에 포함되고, 그 단체에 자신의 노력과 시간을 들였잖아요. 그게 당연했고요. 단체장의 결정에 구성원이 모두 따르고 단체 단위로 만났죠. 지금은 단체가 활동체가 아니라 커뮤니티 내지는 집합체라고 생각해요. 단체에 속해 활동하기보다 개인 단위로 활동하는 사람도 더 많고요. 이는 여성학 교수님도 공감하세요. 새 흐름에 맞춰 <전페넷>이 어떻게 발맞춰 나갈지 <전페넷>도 저도 많이 고민해요.

앞서 총괄이라 말했지만, 거창한 역할이 아니라 일정을 리마인드해주고 먼저 얘기 꺼내는 게 주된 일이에요. 이게 사소하지만, 총괄하는 사람의 일상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해요. 제가 <동행>에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으니, 지금 총괄이라는 역할에 별 감흥이 없어요. 다만, 내가 졸업하거나 생업에 바빠지면, <전페넷>이 어떻게 운영될지 걱정되어요. 단체에 올인하기보다 개인의 활동 영역을 넓혀야 더 오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체여야만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지만, 활동이 단체의 흥망에 의존한다던가 하는 문제도 있어요. 개인이나 프로젝트 그룹으로 활동할 수 있게끔 창의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음 페미니스트들을 길러내기 위해서, 페미니즘 활동이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 예술, 시위, 언론 등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페미니즘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는 매력적인 활동이라고 보여주고 싶어요.

 

회로: 두 총괄이 연달아 탈진해 활동을 쉰다니 안타까워요. 그런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어요.

헤카: 2018년도에는 미투운동이 전북 지역에서도 터지면서 <전페넷>이 생겨났기 때문에, 그때는 활동 중심이었어요. 어떤 단체를 결성해서 어떻게 만들지 중요하지 않고 앞서 닥친 활동들을 빨리빨리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단체가 생겼다고 하니까 인터뷰 요청도 들어오고, 같이 무언가 해보자는 제안도 들어왔기 때문에 단체를 정비할 여유가 없었어요. 그렇게 빡세게 한 학기 활동했더니 이제 그 이후로 우리가 이런 단체로 계속 활동을 할까, 아니면 그냥 파할까 계속 고민했죠. 그때 모였던 분들이 모두 계속 활동하자고 뜻을 모아서 그때부터 정비를 생각해보았어요. 그때 저도 단체가 하는 활동에 관해서 계속 고민했거든요. 이미 있던 단체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전혀 없이 <전페넷>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꾸며나가야 하잖아요. 그게 큰일이더라고요, 정말. 회칙도 만들어야 하는지 아닌지, 의결 과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표가 있을 건지 아니면 그냥 수평적인 관계로 갈지, TF(Task Force)는 어떻게 할지 등 많은 고민에 작년 2학기 활동은 쉬었고, 올해 초에, ‘우리 다시 해보자’는 뜻을 모아 지금 하나하나 닦아 나가고 있어요. 근데 올해는 작년은 달리 다들 그런 생각을 한 거죠. ‘아, 우리가 정말 불나방도 아니고 활동만 이렇게 보고 갔다가는 정말 빠르게 소진될 수 있겠다.’ 지속 가능한 활동을 고민하다 보니까 활동도 그렇게 무리하지 않았고요. 그리고 다들 건강도 챙겨주고 서로 더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MT도 다녀오고, 나름의 학내 활동도 진행을 하고 언론 등 외부에서도 주목해 주니 <전페넷>이 그동안의 시행착오에서 조금 뭔가 발전한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단체가 명확한 틀을 갖추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활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뜻을 모아야 단체가 안정되어요. 그걸 올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회로: 안정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꾸준히 나오나요? 갑자기 안 나오는 사람이 없고요?

헤카: 저희는 활동 위주에요. 활동이 세미나같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8월에는 뭘 해야겠다, 9월에는 뭘 해야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달성을 해 나가서 누군가 계속 나온다거나, 계속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 맞지 않아요. 얘기도 거의 톡방에서 하고, 활동도 원하시는 분들이 자유롭게 참여해요. 그런데 톡방에 보면 유령회원 분들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근데 2019년도에 들어서는 그런 분들이 확실히 줄고, 서로 더 좀 친해져서 좀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회로: <전페넷>에서는 어떤 활동을 해왔나요?

헤카: 《페.바.시.》라고 줄여부르는 《페미니스트가 바꾸는 시간》라는 강연회를 열었어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처럼,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고, 대중들에게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들리고 가시화되길 바라며 강연회를 열었어요. 보통 강연에선, 유명한 강연자가 말하고 보통 사람들은 듣잖아요. 그런데 《페.바.시.》에서는 저희가 강연자가 되어서 저희 이야기 들려주었어요. 올해 5월 17일에 제1회를 진행했고, 2학기 중에 제2회를 할 계획이에요.

제1회 《페.바.시.》는 원래, 전북대의 강연장 같은 강의실을 빌려서 진행을 하려고 했는데요! 학교가 안 빌려줬어요. 강의도 없는 저녁 시간에 전북대생들 위주로 교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라고 설명했는데도, 담당자는 ‘강의실은 강의가 목적이고, 그 이외 행사는 안 된다’고 연락해서는 계속 행사 주최를 물어봤어요. 주최를 계속 물어보시길래, 대관을 포기하고 여성연구소 교수님의 도움을 받아 조그마한 강의실을 빌려 진행했죠.

제가 기대보다 많은 이 와주셔서 공간이 더 아쉬웠어요. 행사 진행한 강의실이 정말 강의실처럼 생겼거든요. 정말 강연이니 홀 같은 곳에서 진행했으면 좀 더 강연 같고 그럴듯했을 텐데 못해서 속상했어요.

화담: 지난 《페.바.시.》 강연 제목은, 〈나의 삶에서 페미니즘이 가지는 의미〉, 〈모두에게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 〈점이 모여서 선이 되듯이〉, 〈모일수록강해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었네요. 마지막으로, 헤카 님이 〈다시 시작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라는 강연을 하셨네요.

헤카: 활동가들의 삶과 소진이 주제였고, 활동가의 생활이 소진과 재출발의 반복이라고 생각해, 다시 출발하려는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담았어요.

 

1부에서는 <전페넷>과 회원들의 활동을 알아보았다. <전페넷>은 전북대 미투 사건을 계기로, 전주의 다양한 여성주의 단체들이 만든 단체로, 단체를 만들어가는 데에 많은 시도를 하는 중이다. <전페넷>과  관련 단체인 <리본>의 회원들은 전페넷 결성 전부터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했고, 지인을 통해 <전페넷> 결성에 참여하거나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전페넷>이 뿌리 내린 전북대의 환경과 <전페넷>이 관계 맺은 다른 여성주의 단체를 더 자세히 알아본다.

 

(2부 보러가기. 링크.)

016: 차이를 드러내기, 인정하기, 그리고 함께하기, 관악여성주의학회 학회장 황강한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16: 

차이를 드러내기, 인정하기, 그리고 함께하기, 관악여성주의학회 <달> 학회장 황강한 님 인터뷰

 

이번 페미회로 인터뷰에서는 서울대의 관악여성주의학회 <달>의 학회장 황강한 님을 만났다. <달>은 2013년부터 시작한 서울대에서 가장 오래된 여성주의학회다. 매 학기 공개 세미나를 진행해왔고, 서울대 안팎의 여러 미투 운동에 연대해왔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많은 대학에서 여성주의 모임이 생겨났지만 이내 사라진 모임도 적지 않다. 반면 페미니즘 리부트 전부터 이어져 온 모임 중에도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져 온 모임도 많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던 때부터 꾸준히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모임들의 조건’들’은 무엇일까?

많은 궁금증을 안고 7월 7일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집회 날, 황강한 님을 만났다. 서울대에서 여성주의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한솔과 <마고>의 D는 ‘회로x마고’로, 인터뷰이 황강한 님은 ‘황강한’ 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우연,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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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4월 2일 A교수 파면 요구 집회. 사진: 황강한 제공.

 

<달>에 발을 내딛다

 

회로x마고: 안녕하세요, 황강한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황강한: 안녕하세요.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의 학회장 황강한입니다. 부모 성을 같이 써서(*) ‘황강’한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14학번 사회과학대(이하 ‘사회대’) 사회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입학한 2014년 여름부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달>에서 진행했던 좌파 페미니즘 관점에서 성소수자를 보는 세미나가 활동 계기였습니다. 2016년 봄 학기 개강부터 5월까지 3달간 임시회장을 맡았습니다. 이후 공군에 입대해 2018년 5월 제대하고 활동을 재개해 이번 학기부터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 부모 성 같이 쓰기 운동은, 호주제 폐지 운동의 일환으로 1997년 3.8 여성의 날에 제안되었다. 2008년 호주제가 폐지된 후에도, 많은 여성학자와 여성운동가들이 부모 성을 같이 쓰고 있다.

 

회로x마고: 인터뷰에는 어떤 계기로 응하셨나요?

황강한: 페미회로의 주요활동이 인터뷰와 기록인 것 같았습니다. 서울대가 서울 외진 곳에 있어 서울에서도 고립된 면이 있어요. 서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다른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에게 손을 먼저 내미는 경우도 적었습니다. 이 인터뷰가, <달>을 다른 대학에 알리고, 교류할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회로x마고: 어떤 계기로 <달>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황강한: 활동 동기는 언제 질문을 받아도 참 대답하기 힘들어요. 고교 시절 남자 분반에서 남초 문화에 큰 위화감 없이 지냈지만, 그러면서도 종종 인터넷에서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키보드 논쟁을 했습니다. 어쩐지 활동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네요. 군대에서 비남성으로 정체화하면서, 페미니즘이 저 자신을 설명해줄 수 있는 언어라고 느꼈어요.

페미니즘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세상과 화해해나가는 투쟁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청소년, 퀴어 활동했어야하는 사람인데, 말 잘 듣는 성격이어서인지 그때는 활동하지 않다가, 대학에 들어와서야 늦바람이 든 게 아닌가 싶어요.

 

회로x마고: 학회 공부가 본인 문제의식으로 이어진 일이 있나요?

황강한: 저 자신의 여성주의를 본격적으로 만들어나갈 때부터 <달>이 함께했어요. 제가 신입회원일 때 <달> 활동을 활발히 하시던 분들이, 여성주의에서 어떤 질문들이 중요하고, 어떻게 답해나갈 수 있을지, 문제틀을 마련해주었어요. ‘내 문제의식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이 기존 사회 변혁적 정치와는 어떤 관계일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신입회원이었던 2014년 학회에서는, 맑스주의 페미니즘(*)을 많이 고민했습니다. 맑스주의 페미니즘에는 보충해야할 점이 많지만, 맑스주의 페미니즘이 던지는 질문인 ‘가부장제란 무엇인가?’, ‘가부장제의 물적 기반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유효했다고 생각해요. 제2 물결 페미니즘(**)이 여성만의 고유한 문제를 인정하면서 시작된 것 같아요. 맑스주의 페미니즘은 특히 제2물결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데에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 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사유재산과 계급 모순이 여성 차별을 만들었다고 보는 페미니즘.

(**) 투표권과 재산권 같은 법적 평등에 초점을 맞추었던 제1물결 여성운동에서 더 나아가, 가족, 재생산 권리, 사회문화적 불평등의 문제로 담론을 확장시킨 페미니즘

 

회로x마고: 선배들과 어떤 책 읽었나요?

황강한: 한 권의 책을 통째로 읽기보다는, 논문이나 여러 단행본의 챕터들을 발췌해서 읽었어요. 이론적인 텍스트를 많이 접했던 것 같아요. 주로 페미니즘 사상사를 읽었죠. 다양한 페미니즘 사상에 어떤 배경과 의의가 있는지 공부했어요. 예를 들면, 제2 물결 시기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자본주의-가부장제의 이원론적 접근(*)의 의의를 공부했죠. 그 외에도 래디컬 페미니즘과 정신분석학적 접근도 봤어요.

반성폭력 운동을 꽤 깊게 공부했어요. 그 때나 지금이나 <달>에는, 반성폭력 운동은 대학 여성주의 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공감대가 있었어요. 반성폭력 운동의 맥락, 성과, 문제의식, 한계를 계속 고민했어요. 당시 세미나 운영하시던 분들은, 반성폭력 운동을 공부하면서 좀 더 이론적으로 학습해온 것들을 녹여보려 노력했어요. 요즘 말로는 피해자와 가해자 이분법을 어떻게 고민할 수 있을지, 여성 당사자성은 무엇인지 고민한 거죠.

보다 구체적으로는, ‘피해자중심주의’를 대체하는 대안으로서 ‘성인지적 객관성’을 고민해보는 활동을 했어요. 저는 지금은 거기에 약간은 유보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성폭력 운동 내에서 꾸준히 이어져온 고민의 직접적 연장선상에 있었다고는 생각해요.

(*)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각각 자율적 영역이고 여성 억압에 대한 이해관계 역시 각각의 영역에서 별개로 다루어야한다는 주장”((사)여성문화이론연구소, <페미니즘의 개념들>, 동녘, 2015, 17쪽)

 

 

<달>에서 만난 사람들

 

회로x마고: <달>을 소개해주세요.

황강한: <달>은 2013년도부터 활동해왔어요. 이름은 <달>은 가부장적 이분법 구도인 태양-달이 남-여를 비유하고 상징하는 것을 뒤집자는 의미에요. 학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세미나 위주로 활동해왔어요. 어떤 페미니즘이 바람직한지 공부해왔습니다. 학회의 기조를 잡았던 분들이 굉장한 사회주의자여서, 좌파,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페미니즘 이론들을 공부해왔어요.

반성폭력 이론을 예로 들면, 반성폭력 이론에 사회주의, 마르크스주의 관점을 어떻게 더할 수 있을지 고민해왔죠. 최근에는 마르크스주의를 잘 보지는 않지만, 그래도 교차성 페미니즘(*)을 살펴보고 연대활동에 참여하는 등 비판적인 기조를 어느 정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학회에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집행위원회(이하 ‘집행위’)를 두려고 합니다. 작년 2학기부터 집행위를 두었지만, 사실상 저와 직전 학회장 친구가 운영해왔고 그 친구가 입대한 뒤로는 저 혼자 일을 하더라고요. 저야 얼마든 수고를 들일 수 있지만, 혼자 수고를 들이는 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요. 활동하시는 분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같이 <달>의 활동 기조와 양태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더 현실적으로는 단절 없이 재생산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집행위를 꾸렸습니다.

또 대중적 페미니즘 활동의 필요성을 느껴, 중앙동아리 가입을 고민 중입니다.

(*) 젠더뿐만 아니라, 민족, 계급 등 다양한 모순을 함께 고려해야한다는 페미니즘

 

회로x마고: 체계 문제로 고민하는 다양한 학생 단체들이 떠올라요. 단체 단위로 어느 집회에 깃발을 든다던가, 연서명 한다든가 하는 간단한 의사결정도 투표를 거치면 구성원이 피곤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체계가 자칫 구성원들의 피로로 이어질 수 있을 텐데, 집행위를 두기로 한 이유가 있나요?

황강한: 체계 잡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체계 잡는 것은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체계를 만드는 것은, 단위를 같이 만들어간다는 의식을 심어주고, 서로 조금씩 다른 의견 차이를 조율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회로x마고: 매 학기 다양한 주제와 책을 다루는데, 주제는 어떻게 선정하는지 궁금합니다.

황강한: 집행위를 꾸리기 전에도, 활동을 더 열심히 하는 분들 2~3명이 학기 말부터 어떤 주제를 할지 대강 정한 뒤, 다른 회원들과도 그 주제를 공유하고 더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가 함께 토론해 정해왔어요. 주제 선정은 모든 회원이 의견 조정을 하면서 학회에 참여하는 활동이었던 것 같아요.

전에는 대주제와 소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는 텍스트를 가져가 논의해왔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니 진입장벽이 높고 세미나에 관심 갖는 사람이 적을 것 같더라고요. 2학기 계획은 회원들이 관심 있는 주제별로 개별 세미나를 열어서 진행하려 해요.

 

회로x마고: <달>의 회원이 몇 분인가요?

황강한: 활동하는 회원은 매 학기 10명 내외에요. 학회가 사회대에서 시작해서인지 사회대 학생이 많아요. 2014년, 2015년에는 사회대 학생회 사람도 많았고요. 회원이 적어 일반화해 말하긴 어렵지만, 2016년 이후로는 공대처럼 학생회가 비교적 덜 활발한 학과 분들이 많이 들어와 지금은 다양한 학과의 분들이 계세요. 전부 학부생이에요.

 

회로x마고: 가입한 회원들은 어느 정도로 페미니즘 이론을 익히고 들어오나요?

황강한: 대체로 어느 정도 페미니즘 논의에 익숙한 사람이 많이 들어와요. 어려운 텍스트를 다룰 때에는 저와 전 학회장이 맥락을 설명해주거나 교안을 따로 써왔어요. 그런데 회원 대부분 주제에 익숙해요. 예를 들면, 흔히 생각하는 교차성 페미니즘 대 래디컬 페미니즘의 구도에서, 각각이 어떤 주장을 하고 어떻게 평가받는지 기본적인 논의 지형을 이해하고 가입하는 것 같아요.

이번 학기에는 <교차성x페미니즘>이란 제목으로 세미나를 진행해서인지 주제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가입했어요. 항상 사회비판적인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페미니즘과 사회비판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고요.

올해 3월에는 <달>을 홍보하는 데에 집중했어요. 대학생 새내기가 많이 관심 갖길 바라며, 오픈동방처럼 새맞이 집담회를 진행했어요. 새맞이 집담회로 들어온 사람도 많아요. 집담회 제목은 <너,혹,페>(너 혹시 페미니스트?)였어요. 대학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학 미투, 에타(*) 혐오발언 이슈를 전달하고, 페미니스트 공동체가 왜 필요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해봤어요. 새내기분들이 많지는 않았고, 17학번 전후 학생이 많이 왔어요.

(*) 에브리 타임. 각 대학교마다 있는 시간표 어플. 각 대학의 익명 폐쇄 커뮤니티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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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답회 모습. 사진: 황강한 제공

 

회로x마고: 대학 입학 전부터 여성주의 이슈에 관심을 가졌던 회원이 많나요? 고교 동아리로 페미니즘을 공부한 회원도 있나 궁금해요.

황강한: 15년 이후부터는 입학 전에 여성주의 이슈에 관심을 가졌던 분들이 들어왔어요. 다양한 sns를 통해 페미니즘 이슈를 접하고, 그 이슈에 입장을 정하고 싶은 분들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 때 페미니즘 동아리에서 활동한 회원은 아직 못 봤어요.

고등학교 때 청소 노동자 투쟁을 했던 회원이 있긴 해요. 그 분은 정말 특별한 경우죠. 새맞이 집담회를 준비할 때, 대학 입학 전에 페미니즘을 어떻게 페미니즘을 공부했을까 고민해봤어요. 현실적으로 인터넷 외에 페미니즘을 접할 경로가 없더라고요.

 

회로x마고: 회원들끼리 경험을 많이 공유하는 편인가요?

황강한: 경험은 주로 뒷풀이 자리에서 많이 이야기 해요. 주변과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을 얘기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많이 이야기하죠. 개인적인 경험은 뒷풀이 자리나 개인적으로 만나 하소연이나 토로하듯 말하곤 하죠.

세미나에서는 연대 요청, 자보 작성, 사업 진행을 논의하고, 정세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것들, 주변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을 다루고요. 학과 공동체에 기대를 잃은 분들이 <달>에 많이 오시는 것 같아서, 학과 얘기를 자주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회원들은 에타도 잘 안 해요. 1, 2학년까지는 과에서 생활하지만, 조금 고학번이 되어서 학과 얘기를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제가 경험을 공유하도록 유도하는 경우는 있었어요. 세미나에 필요한 경우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예를 들면, 안희정 전 지사 관련 사안에 주변 반응이 어땠는지 묻기도 하죠.

 

회로x마고: 회원들이 토론에 활발히 참여하나요?

황강한: 네. 쟁점이나 입장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세미나 주최자들이 많이 말하게 되긴 하죠. 그런데 거기에 본인의 평가나 코멘트, 느낌, 현실 적용하는 면에서는 기존 회원이나 문제의식이 아주 많이 깊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활발히 논의하는 것 같아요. 발언권을 균등하게 나누려 계속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요.

 

회로x마고: 신입회원들이 <달>에 익숙해지려 어떻게 노력하시나요?

황강한: 우선 세미나 주제를 정할 때 신입회원들 의견을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려고 노력해요. 세미나에서도 신입회원이 더 많이 말할 수 있도록 주최자가 노력하고요. 집행위를 두는 것도 한 노력인 것 같아요. 한두 사람에게 일이 몰리니까 권위가 생겼던 것 같고, 해소가 안 됐던 것 같아요.

 

회로x마고: 공부하지 않는 시간은 회원끼리 주로 어떻게 보내시나요?

황강한: 친한 회원끼리는 연락하죠. 단톡방은 공지 위주로 운영되고요. 성토도 안 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성토가 피로하게 만드는 면도 있을 것 같고요. 공부하지 않는 시간은 주로 뒷풀이인 것 같아요.

올해 1학기에는 한강 번개 모임을 했어요. 집회 공지를 하지만 참석률이 높지는 않아요. 세미나나 단톡방에서 공유하고 같이 가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 학회 단위로 의사 결정을 했다고 모두 집회에 가야하고 으쌰으쌰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요.

강연 정보를 공유하기도 해요. 사회 비판, 정의 전반을 다루는 강연에 가기도 하지만, 공유하는 내용은 주로 여성학 강연 같은 행사에요. 서울대에서 열리는 경우도 많고, 외부 행사를 각자 참석하기도 해요. 그런 외부 행사는 제가 더 열심히 알리려 노력하는 편이에요.

 

회로x마고: 회원들 관심사가 무엇인가요?

황강한: 회원마다 조금씩 달라요. 이론적인 것, 여성으로서의 커리어, 여성주의 외에도 사회비판적인 전반적인 것에도 관심이 있어요.

서울대에서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강하지 않아요. 없지야 않겠지만 별로 보지 못했어요. <달>에서도 탈코르셋 운동이 주요 관심사나 쟁점까지는 아니에요. 저는 블랙핑크를 좋아하니, ‘블핑 너무 멋있어’ 같은 정도로 공유하는 게 주인 것 같아요. 감수성이 맞으면 그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죠. 승리 게이트(*)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본격적으로 토론해보지는 않았어요. 공감대가 너무 분명해서 따로 말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두말하기 입 아팠죠. 블랙핑크가 YG에서 빨리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인 버닝썬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에 시작된 게이트. 버닝썬 게이트라고도 불린다. 경찰과 유흥업계가 유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마약, 성매매 및 성매매 알선 등 범죄가 드러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남성 연예인들이 단톡방에서 주고받은 불법 촬영물 문제가 드러났다.

 

회로x마고: 서울대에 여성학협동과정이 있다고 들었어요. 여성학협동과정에서도 강연을 많이 여나요?

황강한: 여성학협동과정에서 학부와 대학원을 이으려 학부생 연구발표회를 매년 열어요. <달> 회원분들이 발표자로 참여했어요. <달> 회원이 참여한 발표 제목은, 「강화직물공장에서 일했던 두 여성의 생애사」, 「한국언론의 미투 운동 보도 담론 분석」이었어요. 생애사를 다룬 에스노그라피는 사회학 연구실습을 여성학에 엮은 발표였어요. 보도 담론 분석은 한국 언론의 가해자 중심주의를 다룬 발표였고요

 

회로x마고: 농대나 공대에서 학생들이 온다고 하셨는데, 농대나 공대 회원들은 사회과학 논의 전반에 익숙한가요?

황강한: <달> 세미나에서 사회과학적 배경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가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세부 전공으로 젠더 퀴어를 공부해보니, 사회과학과 여성학이 겹치기도 하지만, 여성학은 여성학만의 고유한 문제의식과 문제틀, 질문이 있어요. 논의를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죠.

<달>에서는 페미니즘 내부의 쟁점 가지고 이야기를 해와서, 사회과학적 배경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페미니즘을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죠. 누구는 사회과학으로, 누구는 정신분석으로, 누구는 철학으로 하기도 하고요. <달>에는 운동 담론도 있고, 각자 고유해서 세미나 때마다 달랐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미투의 정치학』은 운동 담론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사회과학적 베이스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회로x마고: 이공계열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젠더 논의에서 하는 과학비판 때문에 젠더 논의를 잘 안 받아들이는 경우들이 있던데 어땠나요?

황강한: 답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런 면이 있어요. 젠더와 섹스는 어디까지 실체인가와 같은. 성별에 관해서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하기도 하고 해체적으로 접근하기도 하죠. 페미니즘 비판이라고 하나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여러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울대에서 여성운동하기

 

회로x마고: 서울대는 여성주의 운동하기에 어떤 환경인가요?

황강한: 학생회가 활발하다는 배경에는 장단점이 모두 있는 것 같아요.

서울대에 백래시(backlash)가 있지지만, 다른 서울권 대학만큼 강하거나, 자주 보이거나, 세력화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학생운동이 살아있으면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운동하는 학생들도 기본적으로 ‘서로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서울대의 이 특수한 조건이 사람이 어느 정도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사람마다, 상황마다 차이는 있겠지만요.

서울대 분위기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인권 문제에는 쉽게 동의해요. 여학생 휴게실의 필요성에 반대하지도 않고요. 백래시 세력이 조직력, 논리력을 갖추지 못한 이유이기도 할테고요.

예컨대, 퀴어 페미니즘 자보를 걸어도 찢기는 경우는 드물어요. 그 점에서는 다른 대학들과 확연히 달라요. 비권인 총학생회(이하 ‘총학’)(*)도 소수자, 인권 문제에 동의가 높아요. 인권 가이드라인을 만든 총학생회가 비권이었어요. 서울대 학생사회가 소수자정치에 친화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권 친화적인 건 맞아요. A교수 문제를(**) 페미니즘 문제로 다뤘다면 총학이 부담스러워했을 텐데, 인권 문제로 다뤘죠. 적극적이라고는 못하겠으나 앞에 나서고, 책임지려 하고요. 근데 다른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문제의식이 살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딜레마죠.

(*) 정치적인 색을 띠기보다는 학생들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학생회.

(**) 참고: 이유진·이주빈, <서울대, ‘제자 성추행 의혹’ 서어서문과 교수 해임 결정>, 2019.09.01, 한겨례, 링크: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07921.html#csidxf9ef9c4a6bc0ffda1c7517c24d71fd2

 

회로x마고: 학생회가 여성주의를 접하는 배경이면서도, 학생회에 먼저 소속감을 느끼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장단점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황강한: 교수 성폭력 문제에서는, 당장 모든 페미니즘 관점을 선명하게 전달하는 것은 좀 타협하더라도, 대중적인 기획들을 추진하고 대중적인 경험들을 만드는 게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젠더가 아닌 인권으로 이야기 했던 것인데, 양면성을 지닌 전략이죠. 서울대에서 사건을 인권 의제로 다뤄, 학생 총회도 열고 인권 개념 자체가 확장되는 효과도 있었다고 생각해요. 오늘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인권침해 해결을 위한 집회’를 처음 제안한 총학들 중 하나가 서울대 총학이기도 했고요. 그런 것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소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활동 역량은 학생회 했던 사람들이 훨씬 안정적인 것 같아요.  활동 역량을 길러온다던가 이런 것도 긍정적이라 생각해요.

 

회로x마고: 그럼 <달> 아니더라도 서울대 다른 페미니즘 단위가 단과대나 총학과 같이 일 한 적이 있나요?

황강한: <달>이 있기 이전에도 <관악여성주의자모임>에서 , 인문대 학생회와 함께 공동 사업을 벌인 기록들이 있어요. <달> 역시도 이전에 사회대 학생회와 몇 번 공동사업을 벌인 적이 있다고 기억해요. 최근에는 경영대 교수 사건이(*) 있었어요. 9시 뉴스 타고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때 <달>과 총학이 같이 대응했어요. 총학에서도 인권국이 있어 관련 이슈를 모니터링하고, 대응을 고민하는 모양이더라구요. 인권국이나 총학에서 <달>이나 비건 단위, 장애 인권 동아리와 같이 활동해야겠다는 고민이 있어 보여요.

(*) 참고: 남라다, <서울대 총학 “‘성추행 의혹’ 경영대 교수, 즉각 파면하라”>, 2015.04.27, 아시아투데이, 링크: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50427010017608
박주희, <여제자들 수년간 성희롱 서울대 경영대 교수 파면>, 2015.04.27, 한국일보,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6091920163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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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6일부터 7일까지 진행한 여성의 날 맞이 학생인권주간 부스 전시. 총학 산하 학생인권특별위원회, 사회대 학생회, <달>과가 참여했다. 사진: 황강한 제공.

 

회로x마고: 학과 별로 학생의 성비는 어떤가요?

황강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인문, 사회, 사범대에는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에요. 그 단과대 학생회는 좀 더 진보적이고, 여성주의에 좀 더 친화적이에요. 반대로 공대는 남성비율이 압도적이고, 페미니스트들이 학생회를 가기 쉽지 않고 따로 모임을 꾸리는 것 같아요.

사회대 페미니스트 모임은 굳이 만들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예요. 모임이 아니더라도 학생회에서 쉽게 페미니스트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어울릴 수 있으니까요. 같은 단과대에서도 과마다 조건이 아주 다르죠. 사회학과는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에요. 여성 비율이 좀 더 많으면 더 활동한다는 경향은 있다고 생각해요.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요. 예를 들면, 사회학과에서는 학과 분반 단위로 페미니즘 활동을 할 수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경제학과는 남성 비율이 좀 더 높죠.

 

회로x마고: 공간 활용이 편한 편인가요? 세미나 장소는 어떻게 빌리고, 자보는 어떻게 붙이시는지 궁금해요.

황강한: 도서관 공간을 예약해 세미나를 해왔어요. 단과대 교실도  각 단과대 학생이 빌릴 수 있어요. 단과대 사무실에서 활용 목적을 쓰고 허락을 받기는 해야 하는데, 공간 사용 허가 문제로 트러블 생긴 적은 없어요. 그냥 세미나라고 쓰고 사용하고 있어요.

한동대를 예로 들면, 페미니즘  강연이 기독교 건학 이념에 반한다는 이유로, 페미니즘 강연 주최 학생에 무기정학 징계를 내린 한동대에서는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죠. 제가 아는 한 서울대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었어요.

자보도 대부분 벽에 허가 없이 붙일 수 있고, 언제까지 떼겠다는 철거일을 적을 필요도 없어요. 청소노동자분들이 주기적으로 철거를 하시기는 하는데, A 교수 피해자가 고발한 자보같은 중요한 자보는 2월에 붙어 7월인 지금도 아직 대부분 붙어있어요. 보통의 자보도 1-2주는 붙어 있는 것 같아요.

 

회로x마고서울대학교 중앙 동아리 등록을 고민 중이라고 하셨어요. 대중적 페미니즘의 필요성이 동아리 등록을 고민한 이유라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필요성을 느꼈나요?

황강한: 숨은 페미니스트들이 <달>에서 활동하면 좋겠어요. 제가 2018년 복학하고 페미니즘 판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학생운동이 죽었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교수 성폭력 문제를 갖고 전체학생총회가 열리는 것에서처럼, 꼭 페미니즘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사회비판적인 운동 전반에서 페미니즘이 중요한 매개체가 된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묶어내는 일이 학생사회 전반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회로x마고: 동아리로 등록 한다면 어떤 이유로 사람을 더 끌 수 있다고 생각했나요?

황강한: 동아리 등록이 목적이었다기보다, 체계를 다지고, 사람을 더 모으고, 행사와 세미나 홍보도 잘 하고, 회원들도 더 잘 붙여내려는 전략이 중앙 동아리 등록이었어요. 페미니즘 중앙 동아리가 필요하고 같이 만들어가자고 대중 조직을 하면, 나름 반향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요. 동아리 등록은, 그 자체로 이슈거리가 되겠고, 멀리 보면 동아리 방 제공, 동아리 지원금과 같은 이점이 있죠.

 

회로x마고: 동아리 등록은 긴 과정이겠네요. 동아리 등록에서 어떤 점을 고려하시나요?

황강한: 중앙 동아리를 대중적으로 추진할 때 어떤 백래시가 들어올지 모르고 정신적으로 소모될지 모른다고 우려해요. 동아리 연합회 지형이 좋지 않다고 들었어요. 이번 서울 퀴어퍼러이드 참여 여부를 논의한 학생 자치 단체 중에서 유일하게 부결시켰다는 소문이 있더라구요. 서울대에 백래시 세력이 가시적이거나, 결집하지는 않았어도, 중앙 동아리 추진 과정에서 그들이 결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른 한편으로는, 회원들이 학회에 거는 기대, 이해가 모두 다른 상황에서 같은 백래시를 받는다고 해도 체감하거나 느끼는 내용이 다를 거예요

 

회로x마고: 중앙 동아리 등록 추진에, QIS(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처럼 동아리방에 명패를 붙이지 않거나 익명으로 명단을 낼 수 있는 점도 동아리 가입을 고민한 동기였나요?

황강한: 그렇게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고민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동아리로 등록할 필요가 있나, 혹은 등록 과정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를 주로 고민했어요.

 

 

다른 여성주의 단체들과 함께하기

 

회로x마고: 매 학기 세미나 할 책을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개하고 세미나 참여자를 모집하던데, 회원이 아닌 분들도 많이 오나요?

황강한: 일상적인 세미나는 공개지만 비회원분들이 많이 오지는 않아요. 비회원 참여자가 오는 건 간혹 회원들이 자신의 친구를 데려오는 정도에요. 오픈 세미나를 대중 행사로 열거나 다른 단위들과 합동으로 진행하기도 했어요. 2016년에 강남역 사건을 주제로 오픈 세미나를 했고, 2017년에 맑스주의 연구회 <맑음>과 여성 노동을 주제로 합동 세미나 오픈으로 했어요.

 

회로x마고: 서울대에는 어떤 여성주의 단체들이 있나요?

황강한: 서울대 전체를 대상으로 한 단체는, <관악의 페미들>이 활동 했으나 지금은 활동하지 않아요. 단과대에서 몇 군데 소개해드리면, 인문대 <여담>, 경영대 <여파>, 공대 <공해>가 있어요. <공해>는 지금 활동을 쉬고 있지만요.

또 페미니즘 연극 동아리 <메두사>가 떠오르네요. <달>과는 목적과 운영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총학에 학생소수자인위권위원회가 있고, 인문대, 자유전공학부, 농대, 경영대에는 인권위원회가 있어요.

인문대 <여담>이 학회가 빡세요. 이번 학기에는 매주 모여서 세미나를 했고, 텍스트도 도나 해러웨이 같은 어려운 텍스를 읽는다네요. <여담>과는 올해 5월 합동 세미나를 같이 열기도 했어요. 교차성 페미니즘을 주제로 진행했고, 끝나고 함께 강남역 3주기 집회에 참석했어요.

서울대에서는, <달>이 그나마 유명하고 가장 오래된 모임이니, <달>이 은근히 기대를 받곤 해요. 실제로 <달>에서도 더 많이 연대 행사를 기획하려 노력하기도 했고요. 작년 11월 서울대 페미니스트 집담회를 <달>이 주최하기도 했어요.

집담회에서 어떻게 페미니즘 운동을 해나갈지 운을 띄우려 시도했어요. 서울대에 페미니즘 단체도 많고 안전한 공간도 부족하다 할 수는 없지만, 사실 페미니즘 운동을 어떻게 진전시키려는 고민은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를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역량 부족으로 실현하지는 못했어요. 네트워크를 꾸려나가는 데에는 역량이 굉장히 드니까요.

모든 대학을 연결해보자는 고민과도 맞닿은 고민이에요. 많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전국 대학에서 페미니즘을 해나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네트워크를 어떻게 운영할지는 고민이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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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페미니스트 집담회 포스터. 사진: 황강한 제공.

 

회로x마고: 집담회에는 어떤 분들이 많이 오셨나요?

황강한: 집담회에는 50명 정도 참여해주셨어요. 거칠게 말하면 학생회 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아예 그런 학생사회 밖에 있던 사람으로 어느 정도 양분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학생사회의 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 그리고 다양한 규모의 단체들을 비롯한 학내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모아보고자 노력했었어요. 단체를 하시는 분들은 학생사회를 어느 정도 경험해온 분들이 많았고, 개인 자격으로 오신 분들은 소속이 없으셨던 분들이었어요.

 

회로x마고: 학생회 경험 유무에 따라 발언이 달랐나요?

황강한: 차이가 조금 있었어요. 학생회 활동을 해본 사람들은 ‘학생회 활동을 어느 정도 여성주의적으로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냐’, ‘학생회가 여전히 중요한 거점이 아니겠느냐’는 고민들을 했던 것 같아요.

개인으로 오신 분들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학생회 활동만으로는 포괄 안 되는 영역이 많다’, ‘학생사회 밖 여성주의 단위들을 포섭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대학 내 여성주의 운동에서의 학생회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쟁점이 됐던 것 같아요. 학생사회 밖 여성주의 단위들은, ‘트위터 등 인터넷 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대상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었어요.

 

회로x마고: 학교에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 등 페미니즘을 공유할 수 있는 많은 분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나요?

황강한: 대학원생분이 오셔서 이야기해주셨어요. 대학원생들끼리 모여서 만든 페미니스트 모임이 있다, 만약에 네트워크를 꾸릴 거라면 같이 해볼 수도 있으니 연락달라고 말씀을 주셨어요.

 

회로x마고: 학생회 하면서 여성주의 고민하시는 분들은 경험이 있으니 구체적인 여러 가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떤 이야기가 나왔나요?

황강한:  학생회가 아무래도 민주적 대표성도 있고, 사람들 결집시키는 힘도 있으니까 학생회를 통해서 여성주의 메시지들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게 가능한 전략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집담회 할 때가 딱, 서울권 대학에서 총여학생회(이하 ‘총여’)가 폐지되던 때에요. 서울대에서 학생회로 어느 정도 여성주의적인 일을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단과대는 인문대, 사회대, 사범대 정도에요. 이들 단과대에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 실현됐고요. 단과대 학생회 집행부 MT에서 여성주의 학습을 하는 경우가 있어요.

사회대에서는, 각 <달>마다 3월에는 여성, 4월에는 노동자, 5월에는 장애인, 6월에는 퀴어라는 주제를 정해 학생회실 옆에 라운지에서 전시전을 하는 기획도 있어요. 사범대, 인문대, 특히 사회대에서 이런 기획들을 많이 추진해왔고 사회비판적인 학생회가 꾸준히 성립되는 것을 보면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로x마고: 학생회가 페미니즘에서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께서는 지금 현황을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황강한: 실제로 학생회 밖에서 활동하셨던 분들이 이번 학기에 <달>에서 많이 활동하고 계세요.

집담회 당시에는, 서울대의 특수한 가능성일지도 모르지만, 많은 분이 진보적 학생회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동력으로 삼는 대학 내 여성주의 운동의 가능성을 봤어요. 하지만 아무리 힘이 있는 기구이더라도 학생회는 대중적 민주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수자 정치나 당사자성이나 해체적인 문제의식을 학생회가 온전히 담아낼 수 없죠. 예를 들어서 탈코르셋 운동(*)을 주제로 학생회 예산을 쓰기가 쉽지 않죠.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회가 주가 되어야한다거나 학생회 밖 사람을 끌어들여 한다는 두 의견 모두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 가부장제가 강요한 ‘여성적 취향’을 코르셋에 비유하고, 코르셋을 적극적으로 거부해야 한다는 운동.

 

회로x마고: 교내 여성주의 단체들과 연결되려 많이 노력해오셨네요. 학교 밖 다른 단체들과도 같이 활동해오셨나요?

황강한: 여러 대학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미투 사건에 많이 연대해왔어요.

작년에 서울대 내외의 여성주의 단체들과 공동회의를 열자는 제안서를 돌린 적이 있었어요. 집담회가 서울대 안에서 어떻게 페미니즘 운동을 벌일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자리였다면, 공동회의를 준비하면서는 대학간 페미니스트들이 어떻게 연대를 구축하고 어떤 방식과 활동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공동회의에는 배경이 있었죠. 연대 총여 재개편, 성대 총여 폐지, 동국대 총여 폐지, 연대 총여 폐지 맥락에서, 페미니스트들이 결집은 하는데, 동시에 수세에 몰리고 상황을 타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위기의식에서 소집해보자고 했어요. <달> 안에서도, 더 넓게 판을 벌여야한다고 생각하는 회원들이 있어요. 이런 회원들이 다른 대학의 페미니스트들도 머리를 맞댈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습니다.

흐지부지됐지만 여러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을 모아 매니페스토를 작성하려 했어요. 대학가 페미니스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들을 담아서요. 백래시 양상이 많이 유사한데, 이에 어떻게 대응해나갈지, 총여학생회는 어떻게 풀어나갈지, 이런 문제들을 같이 고민하려 했어요. 총여 폐지로 대두된 소수자 정치를 어떻게 해나갈지요.

올해에도 이슈가 많죠. 중앙대 총학생회에서 FOC(Feminism Organization in Chung-Ang University) 사업도 중단하려 했고(*), 성균관대 여학생휴게실도 사라지게 생겼고요(**).

 대학 페미니즘 안에도 래디컬 페미니즘과 교차성 페미니즘 등 여러 의견이 공존하죠. 그런 차이들을 몇 번의 회의, 몇 건의 문건, 몇 개의 기조로 다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이들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목소리를 내려 했어요. 페미니스트 대표자의 역할과 정세가 쟁점화되어야 할 시기가 각 대학 학생회 선거철이겠죠. 선거철이 시작될 때, 학내 정치에 문제의식이 있는, 지금 우리가 요구하는 공동체와 대표자들의 역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네트워크가 아니더라도, 여러 학교의 페미니즘 단체들이, 작게라도 같이 사업하고 논의해나가는 경험을 만들 수 있도록 <달>에서 함께 도울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회로x마고: 대학가가 아닌 다른 여성주의 단체와 같이 활동하기도 했나요?

: 교외 여성단체와는 접점이 없었는데 개발할 필요를 느껴요. 서울대 안에 학생회 단체, 노동 의제 단체들과 많이 연대해왔어요. 그게 참 애매해요. 페미니즘 단체의 경우에 다른 단체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건 연대를 어떻게 구축해 나가는지의 문제겠지요. 대학 페미니즘의 경우에는 서로 현장이 달라도 그 나름의 고유한 활동 자장, 공통된 문제들이 있는 것 같아요.

다른 페미니스트 단체들과도 그 자장 안에서 관계를 맺어가겠죠. 성균관대에서 총여 재건 운동을 했던 분들이 제시한 문제의식이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학내에서 소수자 정치를 어떻게 벌이고, 페미니스트 대표자가 누구이고 어떻게 필요한지 하는 문제의식들이요. 그런 문제의식들과도 연대해나가겠죠. 계속 만나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회로x마고: 대학의 많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어 하는데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역량이 더 생길까요?

황강한: 페미니즘 기본 단위로 자조 모임과 같은 모임이라도 있는 것만으로도 임파워링(empowering)받을 수 있겠죠. 임피워링은 페미니즘과 별로 친하지 않을 수 있는 대중을 만나며 활동하면서는 얻기 어려운 점이고요. 그걸 학내에서 하면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인맥이 생기고, 사건이 생기면 같이 해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걸 네트워크 형태로 하면 좀 더 확장된 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이면 전국에서 많이 이런 모임을 한다고 알릴 수도 있을테고요.

저는 사실 네트워크가 응집력 있게 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필요할 때마다 활동을 공유하고 현안 있을 때 긴밀하게 같이 대응할 수 있는 정도의 효과가 생길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총여들은 각개격파가 됐는데, 네트워크가 있었다면 조금 더 많은 것을 해볼 수 있었겠죠. 꼭 기조가 합치될 필요는 없지만, 네트워크가 있다면 지금은 이런 이야기를 같이 해보자는 담론화 작업을 훨씬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회로x마고: 긴 시간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황강한: 서울대 페미니즘을 부흥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페미니스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꾸준히 있는 것 같아요. 네트워크의 이상적인 모습이나 네트워크가 할 수 있는 사업도 많이 말하지만, 우리가 서로 연결되는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네트워크 같은 이야기로 모이는 것 같아요. 교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의식들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누구고,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언어를 새로 만들어내고 있는지 자의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런 페미회로의 인터뷰 같은 것들이 좋은 계기가 될 것 같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강한 님과 인터뷰하며, 서울대라는 환경, 서울대를 넘어선 대학 페미니스트들의 연대, 여성주의 조직에 대한 황강한 님의 절실한 고민을 느낄 수 있었다.

 황강한 님은 인터뷰 내내 서울대의 특수한 조건을 전제로 말했다. 학생운동이 살아있는 것이 장점이면서도 단점이라고 했다. 서울대의 조건은, 대학 미투에서 총학생회가 열심히 움직이게 하기도 했지만, 사건을 교육권 이슈로 한정지었다고도 한다.

 작년 총여학생회가 연이어 사라진 사태를 두고 여러 대학이 공동으로 대응했으면 상황이 좀 낫지 않았을까 아쉬워하기도 했다. 많은 대학이 비슷한 문제에 처해있다고 말하면서도, 대학 내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차이를 의식하고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이를 의식하는 점은 조직 운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달>에서 각 회원이 걸음걸이를 맞추도록 노력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터뷰에는 담지 못했지만, 회원들의 차이에 주의를 기울이기고, 회원들이 학회에 애정을 갖도록 고민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동아리 등록을 고민할 때는, 각 회원이 견딜 수 있는 무게와 직면할 상황을 이해하는 방식이 제각각일 것이라는 점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사람들과 조직들이, 각자의 차이를 드러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함께 오래 갈 수 있다. 함께 가기 위해 차이에 귀 기울이자는 황강한 님의 생각을 곱씹으며 인터뷰를 마친다.

 

015: 소수자 친화적인 KAIST를 향하여,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15: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인터뷰

 

이번 페미회로 인터뷰에서는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이하 ‘학소위’)를 만났다. 보다 더 소수자 친화적인 KAIST를 위해 학소위는 어떻게 노력하고 있을까? 인터뷰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어, 인터뷰이로 예정되지 않았던 다른 학소위원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다.

 

<페미회로>의 인터뷰어 넙죽이와 한솔은 ‘회로’로, 인터뷰이 김신엽, 엽록체, 이종서, 프로작, 줄무늬뱀 님은 ‘신엽’, ‘엽록체’, ‘프로작’, ‘줄무늬뱀’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산들, 우연,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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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제공.

 

회로: 안녕하세요, 학소위원 여러분.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종서: 대외협력 팀장 새내기 이종서입니다. 이동권(right to mobility), 성소수자 인권, 노동권에 관심 갖고 활동 시작했습니다. 활동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여성주의는 막연하게 공부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들어오고 나서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신엽: 18학번 전산학부 김신엽입니다.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 갖고 활동 시작했습니다. 제주도 예멘 난민 이슈 이후로 난민 인권 문제에 관심 갖고 있습니다.

엽록체: 새내기 엽록체입니다. 여성주의, 여성인권에 가장 관심이 많습니다. 이동권, 식이소수자에 대해 알아가고 있습니다.

프로작: 새내기 대학원생 프로작입니다. 처음 들어올 때 여성주의와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요즘은 주거 소수자, 병리 소수자 차별에 관심 가지고 있습니다.

 

회로: 인터뷰에 어떤 계기로 응하셨나요?

종서: 페이스북에서 페미회로를 자주 봤어요. 페이스북 친구 중에도 페미회로 회원이 있거든요. 어떤 단체일까 많이 궁금해 하던 때, 절묘하게 인터뷰 제안을 받았어요. 최근 포스텍 총여학생회 인터뷰를 잘 봤습니다.

신엽: 특별한 계기가 있지는 않았지만, 인터뷰 요청 전부터 익숙한 단체였어요. 재작년 KAIST 인권주간에서 ‘이공계 내 성차별 아카이빙 프로젝트’ 발표를 듣고 페미회로를 알았습니다. 인터뷰 요청을 받고는 ‘그 때 거기네’ 했습니다. 다음 학기 스웨덴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어 이 인터뷰가 학소위원으로 마지막 활동입니다.

프로작: 원래 이공계 분야 내 여성의 입지에 생각이 많았어요. 페미회로라는 단체를 알게 된 건 불과 한두 달 전이지만, 단체 로고를 보니 이전부터 제가 페이스북에서 자주 봤던 익숙한 로고였어요.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했던 글도 있구요. 저도 모르게 꽤 자주 접해왔던 단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모집 기간에 가입해야지 생각하던 차에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회로: 학소위에 언제부터 참여하셨나요?

종서: 입학하자마자 올해 3월부터 참여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대학생이 되면 자유롭게 인권 관련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마침 KAIST에 학소위가 있어 활동을 시작했죠. 고등학교 때는 노동권을 많이 공부하지는 못했지만 신문에서 많이 접하기도 하고, 퀴어 퍼레이드에 가보기도 했습니다.

신엽: <피의 연대기> GV(Guest Visit, 감독과의 대화), 인권 주간 등 학소위 행사에 자주 참여했어요. 하지만 막상 학소위에 직접 참여하기는 두려웠어요. 일이 힘들까봐요. 제 친구 중에 활동이 힘들다며 학소위를 그만 둔 친구가 있거든요. 또, 제가 활동을 주저한 데에는 주변 시선도 한 몫 했죠. 그러다 작년 말, 다른 친구를 따라 학소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들어오길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엽록체: 입학할 무렵만 해도 학소위가 있는지도,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오픈 학소위(학기 초, 학소위에 관심있는 학우들을 사무실로 초대해 다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에서 학소위 소개를 듣고 들어가기로 결심했어요. 고등학생 때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보호받지 못했지만, 학소위는 단체니까 보호받으며 목소리를 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프로작: 돌이켜보면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던 중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직접 활동을 시작한 건 많이 늦네요. 대학교 5학년 1학기에서야, 첫 인권 관련 활동으로 학소위를 시작했어요. 학소위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지만 지켜보기만 하다가, 이제 마지막 학기니 뭐가 되든 졸업하기 전에 한번 해 보자 하는 마음을 먹고 들어올 수 있었어요. 다행히 학부 졸업 이후에도 준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학소위원은 정위원과 준위원으로 나뉜다. 학부총학생회(이하 ‘총학’) 정회원인 위원은 정위원으로 활동하고, 그 외 위원은 준위원으로 활동한다. 준위원은 의결권이 제한되지만, 대부분 영역에서 똑같이 활동할 수 있다.

 

학우들 만나기

 

회로: 학소위가 많은 활동을 한다고 들었어요. 활동 영역을 소개해주세요.

줄무늬뱀: 학소위는 총학, 동아리연합회 등 여러 자치단체와 진행 사업 등을 논의합니다. KAIST 성 소수자 동아리 <EQUEL>과도 함께 사업을 진행할 때도 있어 협력 관계를 맺고 있어요. 동아리들이나 다른 총학 산하 단체들과는 아직 협력할 기회가 없어서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반 학우분들은 거의 저희와 직접 만나보지 않으셔서, 대부분 학소위에 특별한 의견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아요. 물론 학소위가 조금이나마 학생 사업에 관여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주장하다보니 학소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죠. 하지만 저희 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는 고마운 분들도 많아요! 이 자리를 빌어 그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네요.

학소위 활동은, 인권 주제보다는 활동 성격으로 구분해요. 크게 4가지로 구분하는데요, 학생 사회 모니터링, 학내 인권 감수성 증진 사업, 총학 혹은 학교 당국에 새로운 정책 논의 혹은 건의, 마지막으로 학내 행사 또는 사업에 배제되는 소수자가 생기지 않도록 자문하기가 있죠.

 

종서: 인권 감수성 증진 사업의 일환으로 매년 4번의 인권행사를 열어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인권주간이에요. 여성주의, 식이소수자, 성소수자 등 전반적인 인권을 주제로 다뤄요.

올해 5월 인권행사는 혐오 표현을 주제로 부스를 진행했습니다. 부스에서는, ‘위치’ 체험 프로그램(*)을 열었어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여러 질문이 주어지고, 각 질문마다 해당된다면 앞으로 혹은 뒤로 한 칸씩 이동합니다. 모든 질문을 받은 뒤 참가자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앞에 선 사람을 비난하거나 중간에 모으려는 게 아니라 그 ‘위치’를 만들어내는 ‘차별’을 강조하고 싶었죠.

그 외에도, 교내 카페에 비건 두유를 사용하도록 요청했어요.

(* 참고 영상) 권영인·김혜지, <소셜실험…청년들에게 당신은 보통사람인지를 물었다 / 소셜실험 ‘너라면?’>, 2017.05.19, SBS뉴스,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AaLZ3bmCb_k

 

줄무늬뱀: 인권행사는 2017년 학소위 탄생부터 계속해왔지만 주제가 겹친 적은 없어요. 인권의 범위가 넓어서요. 아직 주제가 겹치지는 않았지만, 주제에 우선순위를 두지도 않아요. 학소위가 ‘태스크 포스(TF; Task Force)’ 제도로 운영되기 때문에 위원 한 명이 좋은 주제를 제안하면, 그 주제로 행사 기획하고 진행해왔어요.

신엽: 2년 밖에 안 되었으니 다루지 못한 분야가 많고, 새로운 분야를 찾아 나가고 싶어요.

 

회로: 올해 인권 주간은 어떻게 계획중인가요?

줄무늬뱀: 아직 정하진 않았어요. 작년과 재작년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인권 주간을 운영했어요.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부스를, 월요일과 금요일에는 강연을 열었어요. 다만 시간도 너무 길게 잡고, 부스와 강연 장소를 띄엄띄엄 너무 멀리 떨어진 장소에 잡아 관심을 끌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3일로 행사를 줄이더라도 집약적으로 진행하자는 의견이 있어요.

 

회로: 인권행사 외 어떤 활동들을 하시나요? 학내 행사 또는 사업에 소수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자문하거나, 총학 혹은 학교 당국에 새로운 정책을 논의하거나 건의한 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줄무늬뱀: 학교와 직접 만나기도 하죠. 축제 기간에는 배리어 프리존(*) 을 설치하기도 했어요. 학교의 시설팀과 학생생활처장님을 만나 경사로 문제를 논의하는 등 이동권 확보를 위해 노력했어요.

저는 새내기 새로배움터 (이하 ‘새터’)기획단과도 일을 같이 일을 하며 프락터(새터 분반을 인솔하는 선배) 인권 교육을 했어요. 친목 게임에서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소수자를 희화화하지 않도록 게임에 쓰이는 말과 주제를 모니터링하고 피드백했어요. 새터에 프락터가 새내기들과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학교 밖에서 밥을 먹는 시간이 있어요. 그래서 교육 때 KAIST 인근의 비건 식단, 비건 카페를 안내했습니다. 원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식당으로 가거나 원하는 메뉴를 구해서 주도록 했고요. 비건 샌드위치를 주문하기도 했네요.

 카이누리(KAIST 홍보 자치단체)가 돕는 새터 행사인 캠퍼스 투어에서는, 휠체어 사용자가 같은 캠퍼스를 같은 동선에서 볼 수 있도록 동선을 체크하고 피드백했어요.

*Barrier Free Zone, 장애인이나 노인이 이동하거나 시설을 이용할 때 물리적, 심리적 장벽이 없도록 만든 공간 

신엽: 총학에 인권 사업을 건의하거나 같이 진행하기도 합니다. 선거철에는 총학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들에게 인권 면에서 신경 써야할 점을 제안하기도 해요. 총학, 새내기 학생회, 과학생회 선거 등 선거 때마다 각 선본에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페이스북에 공개해요. 유권자인 학우 분들이 학생 사회에서 일할 분들이 인권의 여러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알 수 있도록 공유합니다.

 

회로: 공개 질의서는 어떻게 만드나요?

신엽: 성소수자 단체, 여성주의 단체 등 학내 소수자 단체들 입장에서, 선본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대신 전하기도 해요. 작년 총학 선거 때는, 소수자 단체들에 총학 선본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있냐고 메일로 여쭤봤어요. 다른 소수자 단체들과도 연계해 소수자 관련 질의가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종서: 인권 관련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도 있고, 공약에 인권 관련 공약이 있으면 더 자세히 질문하기도 합니다.

 

회로: 선본들에 보내는 공개 질의서를 작성할 때 이슈들에 영향을 받기도 하나요?

신엽: 이전 학기에 특별히 이슈가 되었던 내용이 있었다면 그와 관련된 질문을 추가적으로 넣었어요.

줄무늬뱀: 예를 들어드릴게요. 작년 퀴어 퍼레이드 논의 때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연대 논의를 해서 총학 차원에서 연대하기로 의결했어요. 그런데 학우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의견 수렴 과정에서 부족함이 있었다는 의견이 있었고 당시 총학의 신뢰도가 떨어졌어요. 그래서 올해 총학 선거 선본 질의서에, 인권 이슈에서 다수의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힐 때는 어떤 식으로 할지 묻는 질문을 넣었습니다.

 

회로: KAIST 이슈가 아닌 다른 학교나 일반 사회의 이슈를 질의에 반영하기도 하나요? 이를테면 타 대학에서 총여학생회가 없어지는 사태 등요.

줄무늬뱀: 구체적인 사례 자체가 질의서에 들어가지는 않아요. KAIST가 공과 대학이라는 점, 기숙사 학교라는 점 때문에 학생 사회가 다른 학교에 비해 폐쇄적인 편이에요. 따라서 학교 밖 이슈가 직접 학내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관련 이슈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는 하죠. 커뮤니티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학우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의견을 가졌는지 간접적으로 드러나다 보니 이슈가 간접적으로 질의서에 반영은 되어요. 하지만 말했듯, 특정 사례를 구체적으로 질의서에 넣지는 않았어요.

 

회로: 카대전(카이스트 대신 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인권 침해 사례 글에 학소위가 댓글을 단 걸 본 적이 있어요.

종서: 학내 인권 침해 사건 발생하면 KAIST인권윤리센터에 연결해줘요. 또래 상담도 운영합니다.

줄무늬뱀: 상담 담당 위원이 있어요. 학내 인권윤리센터에서 교육을 받아 어느정도 지식과 자격을 갖춘다면, 상담 위원이 될 수 있거든요. 또래 상담은, 학내 처리를 원하면 인권윤리센터에 연결해드리고, 학교 밖으로 해결하고 싶으면 인권윤리센터와 협력해 학교 밖 다른 대응 기관과 학우분을 연결해드립니다. 직접 인권윤리센터에 가기 꺼려하면 상담 위원이 상담해줍니다. 비슷한 나이와 경험을 가진 또래와 상담하는 또다른 옵션이 있는 거죠.

신엽: 그 외에도 학소위원들은 학기마다 인권윤리센터에서 상담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교육받아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모든 위원이 받아야하는 교육이에요. 상담 목적, 기본 원칙과 같은 이론적인 내용과 피해자 혹은 행위자와 상담할 때 주의할 점 등 실질적인 내용을 모두 배워요.

종서: 인권윤리센터와는 한 달에 한 번 만나 점심을 먹으며 논의해요. 학내 여러 소수자 인권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이나 새터 인권 교육같은 구체적인 사업을 논의하기도 해요. 이 자리는 학생의 관점과 직원의 관점을 교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죠.

예를 들어, 새내기 필수 과목인 ‘신나는 대학 생활’에서의 인권 교육 프로그램에 관해 잠깐 논의 했던 적이 있어요. 이 때 실제로 교육을 수강하거나 수강했던 재학생의 관점과, 교육을 준비하고 디자인하는 교직원의 관점을 교환할 수 있어 좋았어요.

 

회로: 학기 중 평일 저녁에 학소위에서 상근을 한다고 들었어요. 상근 시간에 학생들이 많이 오나요?

종서: 학소위실에 인권도서관을 운영하는데요, 학소위원이 아닌데 사실상 학소위원인 ‘학소위 고인물’들이 도서관 이용하러 와요.

신엽: 편하게 인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어요. 상근 시간은 그저 아무나 편히 올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싶어 기획했거든요. 편안하게 누워서 책을 보다가 가셔도 좋아요. 학소위실 방문에 부담을 안 가졌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는 상근 시간을 더 많이 홍보하려고요.

줄무늬뱀: 책을 빌릴 수도 있는데, 기본 2주에 연장할 수도 있어요. 비공식으로는 1.5 학기 빌린 사람도 있습니다.

종서: 인권도서관에 KAIST 정재승 교수님이 100만원어치 책을 기부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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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인권도서관. 사진: 페미회로

 

캠퍼스에서 학우들과 부대끼며 인권 공부하기

 

회로: 학소위 안에 스터디가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운영하나요? 또, 어떤 주제를 다뤘나요?

종서: 이번 학기에는 대항적 말하기 스터디를 진행했어요. 대항적 말하기는, 누군가 혐오 표현을 할 때 그에 대항하는 말하는 거에요.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 눌러 혐오표현을 못 쓰도록 만드는 방법이에요. 즉, 상대방(혐오자)의 허를 찌르거나, 혐오표현에 사용된 표현이나 논리를 이용하여 반박하는 방법을 통해 상대방의 재-반박을 원천적으로 막는 방법이랍니다.

엽록체: 먼저 대항적 말하기 방법을 공부하고, 위원들이 역할놀이를 진행했어요. 말을 잘 못 하는 제게 도움되는 내용이었고, 역할놀이도 실감나고 재미있었어요.

줄무늬뱀: 인터넷에서 굉장히 자주 쓰이는 논리를 예시로 썼어요. 작년 봄 KAIST KAMF에 쏜애플이 초청받아 논란이 된 게 기억나요. 제가 학소위 활동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KAIST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긴 논란이었어요. 혐오 표현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을 보고, 우리 위원들이 대응법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해 다른 위원들과 함께 그룹 스터디를 진행했어요.

원래는 주제별로 그룹 스터디를 나누어 진행해서 정기 회의 시간에 그룹별로 내용을 공유해요. 제가 속한 여성주의 스터디 그룹 외에도 장애인권, 성소수자 스터디가 진행되었죠. 작년 가을학기부터는 전체회의 시간에 연달아 모두가 참여하는 스터디 방식으로 바꿨어요. 스터디 진행을 담당자 한 명으로 정해놓기보다는, 스터디가 끝난 다음에 다음 주 스터디 지원자를 받는 형식이었죠. 주제는 인권 전반으로, 딱히 제약을 두지 않았어요. 혐오 표현과 소수자 스트레스(*)를 다룬 기억이 나요.

(*) 소수자 스트레스: 사회에서 소수자에게 씌우는 프레임 때문에 소수자가 받는 억압, 차별에서 오는 스트레스.

 

회로: 작년 가을학기부터 합쳐서 스터디를 진행한 이유가 있나요?

줄무늬뱀: 직전 학기 스터디 피드백할 때 여러 단점들이 제기됐어요. 우선, 여러 스터디가 진행되기는 하는데, 그룹 간 정보 공유가 잘 안 됐죠. 또, 각 그룹마다 주제도 다르고 호흡도 다르기 때문에, 매주 한 번 그룹별 스터디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것으로는 깊이 얘기 나눌 기회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격주로 진행하여 전체 스터디 진행 횟수가 줄더라도, 다 같이 같은 호흡으로 갈 수 있게 스터디하자고 의견을 모았어요.

 

회로: 학소위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이 전혀 관심 없거나 처음 보는 주제를 볼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이 본인에게 영향을 끼친 적이 있나요?

엽록체: 이동권, 식이소수자, 인종, 국적 등 이슈를 모르진 않았지만, 지금까지 체감한 적은 없었어요. 학소위에 들어오고 나서야 일상생활에서 식이소수자, 외국인 등이 많은 불편함을 겪는구나, 인식했어요.

위원들이 행사 준비하면서 많이 공부해요. 올해 3월에 성소수자 인권 행사를 준비할 때, 자료를 만들며 어떤 젠더와 어떤 성적 지향성이 있는지 많이 공부했어요. 인권에 관심이 있고 지식도 많지만 완벽하지는 않기 때문에 행사를 준비하면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회로: 스터디와 행사가 같이 이루어 지는 느낌이네요. 스터디에서 행사로 이어진적도 있나요?

종서: 5월 인권 행사에서, 카대전, 밤부(KAIST의 폐쇄 익명 커뮤니티)에 나오는 혐오 표현을 포스트잇으로 가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어요. 이 아이디어는 대항적 말하기 스터디에서 나왔어요.

줄무늬뱀: ‘중국인 헬스장 사용 못하게 하면 안 되냐’는 말도 있었구요.

종서: 열심히 고통 받으면서 혐오 표현을 수집했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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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이 연대의 말로 가려진 모습. 사진: 페미회로

 

회로: 스터디가 도움이 된 다른 예도 있을까요?

줄무늬뱀: 3월 성소수자 인권행사도 작년 겨울 LT 스터디에서 시작됐어요.  “2019학년도 봄학기에 어떤 행사를 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던 스터디에요. 작년에 부족했던 주제들이 무엇이었나 얘기했죠.

 ‘퀴어퍼레이드에 대한 학우들의 혐오표현이 많았고, 전체적으로 학우들이 성소수자 이슈에 관심이 없고, 캠퍼스 안에 성소수자가 같이 살아감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라는 의견이 나왔어요.

요약하면, 성소수자 가시화가 필요했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대체로 많은 사람이 성소수자를 떠올릴 때, 동성애자를 제일 먼저 생각하거나 성소수자의 의미를 동성애자에만 국한하지만, 동성애자만이 아니라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성소수자가 존재한다고 알리고 싶었어요. 성소수자 가시화와 성소수자의 다양한 범주 두 가지를 알리는 방향을 잡았어요. 프라이드 플래그(성정체성들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만든 깃발)를 이용한 행사뿐만 아니라, 플래카드를 캠퍼스 곳곳에 게시했어요. 플래카드에는 ‘오늘 저녁 뭐 먹지? -배고픈 퀴어 신입생 000’, ‘이번 퀴즈 어렵더라 ㅎㅎ -미소 짓는 퀴어 조교 000’처럼 일상적인 말을 적었어요. 학교 안에도 우리 주변에도 성소수자가 생활함을 강조했어요.

 

신엽: 3월 인권 행사는 출발점이 ‘사람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 이었기때문에, 어떻게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어요.

그 밖에도, 학교 곳곳에 프라이드 플래그들을 숨겨놓고 프라이드 플래그를 찾아오면 플래그의 의미를 아는지 묻고 설명을 해주고 선물도 주었어요. 또 데미걸, 안드로진, 스콜리오섹슈얼 등 성정체성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카드로 만들어서 단어와 단어의 뜻을 연결하는 게임을 만들어 참여자들과 같이 카드 게임을 진행 했어요. 더 좋은 기록을 낸 사람에게 상품을 줬어요. 성소수자가 동성애자 외에 다양하다고 알릴 수 있었어요.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리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인식시키자는 스터디의 내용이 행사로 이어졌죠.

3월 인권행사에서 KAIST 성소수자 동아리 <EQUEL>과도 협력해 플래카드와 비슷한 취지의 행사도 했어요. <EQUEL> 회원들과 학소위원들이 곰인형을 쓰고 사탕을 나눠줬어요. 사탕을 나눠줄 때는 의도를 말하지 않았고, 행사 후 <EQUEL>에서 후기를 남겨 행사 의도를 밝혔어요. 이 행사로, 우리 주변에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어요. 또, 손 글씨 이벤트를 진행했어요. 성소수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메시지를 손 글씨로 써서 페이스북에 친구 세 명을 태그해서 올리는 식으로 진행했어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사람들이 직접 참여토록 해, 성소수자가 있음을 가시화하려고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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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드 플래그와 성정체성 상징 문양, 설명을 담은 카드. 카드는 엽록체가 디자인했다. 카드는 논바이너리, 에이젠더, 에이섹슈얼, 판섹슈얼 등 31개의 성정체성을 담고 있지만, 여전히 카드에 담기지 않은 성정체성이 있다고 한다. 사진: 페미회로

 

회로: 이미 성소수자에 열린 사람이 아닌, 막연하게 두려워하거나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인권행사의 대상이었을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이 학소위실에 찾아와서 경품을 받고 대화하기도 했나요?

줄무늬뱀: 방금 질문 주신 내용은 저희도 인권행사를 준비할 때 항상 생각하는 문제에요. 이런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는 분들은 보통, 굳이 행사에 참여할 필요가 없는 분들이죠. 이 때문에 경품이나 사탕을 준비해서 불특정 다수에게 더 많이 다가가려고 노력해왔어요. 저희가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으니, 행사를 열어놓고 참여를 유도해요. 아직 본인이 ‘성소수자를 혐오했는데 행사를 통해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씀한 분은 없어요.

제 친구 중에서, 성소수자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는 친구가 있었어요. 제가 학소위에서 3월 인권행사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친구가 저에게 많은 질문을 했어요. 다양한 개념부터 성 정체성들에 대해서 묻더라구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답변해주었어요. 대화를 통해 그 친구가 가졌던 생각이 바뀌었는지는 모르죠. 하지만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 친구가 성소수자 인권 이슈에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고, 성소수자 인권 이슈를 스스로 깊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이 행사가 그 친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신엽: 저도 그런 면에서 3월 인권행사가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해요. 행사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소수자의 스테레오타입이나 해서는 안 될 말을 듣기도 했어요. ‘이렇게 진행하시는 분들은 성소수자 분들이에요?’, ‘(무성애자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럼 스님들은 무성애자인가요?’ 등. 그럴 때마다 바로잡아 드리기도 하고 설명해 드리기도 했어요. 그럴 때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도 있었어요. 이 과정에서 그 분들께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고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렸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인식을 바꿔 나가는 데에 인권행사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해요.

 

줄무늬뱀: 스스로 생각하는 계기를 심어주더라도, 전반적인 인권 담론을 대하는 데에 사람마다 생각이 별로 바뀌지 않을 수도 있죠. 하지만 원래 가지고 있던 편견이 더 커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성소수자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성소수자의 다양성 및 주변의 성소수자의 존재를 느낀다고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더 깊어지지는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저희가 생각할 계기, 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은 절대 마이너스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행사 참여자들이 관심을 가져줄 때 보람을 느끼고요.

 

회로: 행사에서 느낀 점을 주제로 스터디에서 공부하기도 하나요?

줄무늬뱀: 행사 준비를 하다가 스터디에 같이 논의한 적이 있어요. 작년 11월 이동권을 주제로 했던 인권 행사에서는, 기획 초기에 매우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논의할 사안이 뭐가 있나 찾아봤더니 엘리베이터, 경사로, 차량 없이 접근할 수 없는 대강당 언덕, 지형 등등 사안이 생각보다 너무 방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에서도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행사를 기획하다가 알게 된 점에 자료 조사를 덧붙여서 스터디 자료로 만들어, 학소위 사람들과 공유했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회로: 인터뷰 어떠셨나요? 앞으로 학소위 활동을 계속해나갈지 간단히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종서: 페미회로에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어요. 학소위 일을 앞으로 더 열심히 하지 않을까요?

신엽: 다음 학기에는 학소위에 없을 예정이에요. 스웨덴에 교환학생을 가거든요. 여러 이유로 스웨덴을 선택했지만, 스웨덴의 발전된 인권을 직접 체험해보고 배우고 싶었던 것이 가장 컸어요.

제게 인권은 제 주변 일상 생활의 얘기에요. 스웨덴을 선택하기 전, 교환학생 보고서를 보고 정말 깊이 인상 받았어요. 시청에 프라이드 플래그가 걸려있는 것, 성 중립 화장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성별을 선택할 때 남녀가 아닌 다른 선택지가 일반화된 것 등에서 소수자에 대한 많은 배려가 느껴졌어요. 어떻게 사회적 소수자를 배려하는지 다양한 면을 보고 배우고 싶어요. 제가 관심을 갖고 본다면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많은 공부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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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작님이 인터뷰어를 환영하며 그려주신 그림. 사진: 프로작 제공

 

엽록체: 인권 측면에서 제가 큰 충격을 두 번 받았어요. 첫 번째는 고 1때 페미니즘을 알고였고, 두 번째는 학소위에 들어와서였어요. 제가 모르는 것이 정말 많더군요. KAIST에 오래 머무르면서 학소위 활동을 계속하며 계속 배우고 싶어요. 학소위에 들어올 때 홍보 일을 하고 싶어했어요. 실제로 현재 학소위에서 홍보 일을 많이 하고 있고요. 학소위와 같은 인권 관련 단체는 대중의 반감을 사기 쉬워요. 학소위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귀여운 캐릭터를 이용해 홍보하는 등 학소위의 인식을 더 부드럽게 바꾸고 싶어요. 여건이 된다면, 인권 웹툰도 그려보고 싶어요. 학내 구성원들의 인권 인식과 학소위에 대한 인식을 바꿔 보고 싶습니다.

프로작: 더 많이 공부하고, 진중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번 페미회로 인터뷰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학소위원들이 학습을 활동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공부하며 나눈 논의가 활동에 반영했으며, 반대로 활동에서 느낀 부족한 점을 스터디에서 나누기도 했다.

지역 대학의 많은 페미니스트 그룹이 학습을 활동과 연결짓지 못해 한계를 느끼곤 한다. 이번 학소위 인터뷰는, 한계를 느껴온 페미니스트 그룹이 참고할만한 사례일 것이다. 이번 이번 인터뷰에서 언급된 학소위 활동들은 주로 KAIST 외부의 이슈보다는 캠퍼스 내의 상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새터 행사와 매년 선본에 질의서를 보내어 답변을 받는 새터 및 각 단위의 학생회 선거는 KAIST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정기 행사다. 학소위는 행사 현장의 구체적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아 개선하거나 주의할 점을 제안해왔다.

자신의 그룹이 뿌리내린, 가깝고 조용한 주변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014: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는 정치적인 페미니스트, 과학기술정책연구자 조승희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14: 공존하는 사회를 꿈꾸는 정치적인 페미니스트, 과학기술정책연구자 조승희 인터뷰

 

 지난 6월 5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환경의 날이었다. 매년 돌아오는 환경의 날이 무색하게도 미세 플라스틱, 미세먼지, 폐쓰레기 처리 등 환경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작년 8월부터 환경부에서 매장 내 일회용 컵 사용을 규제하고 9월부터 스타벅스 코리아에서 종이 빨대를 도입하는 등 환경을 지키기 위한 크고 작은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은 텀블러보다는 일회용 컵에 더 익숙하다.

 이번 페미회로 인터뷰에서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조승희 선생님을 만났다. 기후변화와 환경, 에너지에 대한 관심에서 과학기술정책 공부를 시작했다는 그에게 다양한 주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와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페미회로>의 인터뷰어 배현주, 우연, 윤정원은 ‘회로’로, 인터뷰이 조승희 님은 ‘승희’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산들,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배현주, 우연(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회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승희: 안녕하세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STP,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조승희입니다.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한 뒤 STP에서 석사를 마쳤습니다. 기후변화, 환경, 에너지에 관심이 많아서 석사 때는 재생가능 에너지와 시민에 관한 논문을 썼습니다. 박사과정에서는 재생가능 에너지만 마구 늘렸을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연구하고 있고, 제주의 에너지 정책을 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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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내 한 카페에서 만난 과학기술정책연구자 조승희. (사진: 페미회로)

 

회로: 화학에서 과학기술정책학으로 전공을 옮긴 계기가 있나요?

승희: 화학과에서도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산화탄소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교수님께 연락을 드렸고, 이산화탄소를 잡는 리간드(중심원자에 달라붙어 착이온을 형성하는 물질)를 합성하는 연구실에서 1년 동안 실험을 했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제가 하는 연구가 왜 이산화탄소 양을 감소하는 문제와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 리간드가 실제로 이산화탄소를 잡는 데 사용될까?’, ‘이렇게 작은 양의 리간드가 언제쯤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까?’, ‘화학과뿐만 아니라 전자과, 기계과, 건설환경공학과에서도 기후변화와 이산화탄소 관련 연구를 할 텐데, 그중에서 내가 하는 실험이 중요하다고 여겨질까?’, ‘그 판단을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고민이 들었어요. 이런 질문에 제가 답할 수 없다는 게 두려웠어요.

당시 저에게 기후변화는 너무 심각한 문제였어요. 2030년까지 빨리 무언가 하지 않으면 지구가 멸망하고 북극곰이 모두 사라질 것 같았거든요. 마음이 급해서 진득하게 합성 연구를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었던 거죠. 그래서 STP로 진로를 바꿨어요. 이후 4년 넘게 과학기술인류학과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했습니다.

 

회로: 당시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은 화학과에 비해 어떤 점이 매력이 있었나요?

승희: 배우는 내용이 아주 달라요. 중고등학교까지는 과학의 결과물을 외운다면, 학부 화학과에서는 그 과정을 직접 실험해보며 과학의 과정을 배워요. 그런데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과학에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어요. 가령 화합물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그걸 합성하는 과학자가 누구고, 합성 물질은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가 등 더 넓은 맥락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죠. 화합물에서 사람으로 관심이 바뀐 것 같아요.

 

회로: 하필 STP였을까요? 환경문제를 다루고 싶다면, 연구자가 아닌 다른 선택지도 있었을 같아요. 예시로 과학 다큐멘터리 PD 떠올라요. 승희 님은 문제에 직접 부딪히는 현장에 가는 것보다 문제의 청사진을 파악하는 맞았나요?

승희: 솔직히 말하면, 당시에 직접 북극곰이 있는 곳으로 갈 생각은 못 했어요. 그리고 저는 문제를 직접 마주하기보다는, 돌아서 가고 싶은 사람인 것 같아요. 이 문제가 왜 일어났는지 고민하고 싶어서 공부를 택했어요.

활동가가 되지 않은 배경이 있기도 해요. 학부 2학년 때 UNEP Angel이라는 동아리를 했어요. 전국의 각 지역에서 활동하며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단체인데, 그 활동을 하면서 회의가 들었어요. 아무도 듣지 않는 것 같은데도 계속 떠드는 걸 잘 못 하겠더라고요. 대신 사람들이 제 말에 귀 기울이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런 공부를 하기에 STP가 가장 적합했던 것 같아요.

 

연구자 조승희

 

회로: 기후변화, 환경, 에너지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주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승희: 어렸을 때 미국에서 자랐어요. 그때 본 국립공원의 풍경이 마음 속 깊이 남아 있어요. 호숫물이 참 맑았어요. 뒤로 설산도 있고, 가끔 코요테도 한 마리씩 나왔고요. 지금 생각하면 아픈 역사를 가진 공간이지만 당시에는 그 모습이 자연이라고 생각했어요. ‘인류가 지금처럼 살면 이곳을 언젠가 잃고 내가 보았던 풍경이 없어질 수도 있겠구나’하고 걱정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지구 Earth (2007)>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그 영화의 마지막 대사인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주세요”를 듣고 나도 빨리 무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학부 때 들었던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라는 과목도 제게 큰 영향을 주었어요. 그 수업에서는 자연, 환경, 인간의 관계가 단일하지 않다고 배워요. 자연과 환경이 인간과 맺는 관계는 역사적으로 계속 바뀌어 왔고, 그렇기에 사회가 받아들이는 ‘자연’과 ‘환경’의 의미 또한 다양하다고 배웠어요. 수업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사람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과 ‘자연을 해치는 사람’ 두 종류로 딱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때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Silent Spring (1962)>* 을 접했는데, 책 한 권, 말 한마디로 환경에 대한 생각이 전 세계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 정책에 관심이 커졌어요. 정책 한 방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해야 하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웃음)

*1962년에 발간된 책으로, 환경운동 역사 상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이다.

 

회로: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승희: 정책 한 방으로는 안 되는구나. (웃음) 그때는 그 정책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정책 하나 만들려면 정말 많은 사람이 뛰어들어서 노력해야 해요. 정책이 세워지더라도 이후에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르고요.

 

회로: 관심을 가지는 것과 연구를 하는 것은 다를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페미회로 회원 중에는 이슈에 대응하기 위한 생각과 학문적인 논의의 간격이 커서 고민하는 회원이 많은데요. 환경이나 에너지 이슈에서 비슷한 고민을 적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승희: 아주 많은 생각이 떠오르네요. 우선 페미니즘만큼 환경 분야가 논쟁적이지는 않아요. 당연히 실제와 학문, 또는 활동과 학문 간의 긴장은 있지만, 지금의 페미니즘은 관심이 있다는 것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잖아요. 환경 분야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대신 저는 연구자로서 어떻게 하면 환경운동가들의 말을 학문의 장에서 단순하게 반복만 하지 않을지를 고민해요. 연구하다 보면 현장의 환경운동가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는데요. 그분들은 비교적 확고한 언어로 문제를 대하세요.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마음속에 있는 것 같고, 그 의견에 저도 공감해요. 그러다 보니 제가 들은 말을 그대로 논문에 쓰곤 해요.

그런데 제 글을 읽는 교수님들께서는 ‘이 말은, 승희가 하고 싶은 말이니, 환경운동가들이 하고 싶은 말이니?’ 물으세요. 그래서 오히려 담론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보라고 조언도 해주시고요. 환경운동가들을 무조건 따르거나 비판하기보다, 그들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분석하라는 거죠. 대학원은 활동이 아닌 학문을 하는 곳이니까요.

 

연구자 조승희

연구자 조승희. (사진: 강미량)

 

회로: 방금 현장이라는 말을 하셨는데, 어떤 현장을 말씀하시나요?

승희: 연구는 현장을 찾는 것에서 시작해요. 가야할 곳을 정해야 연구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현장은 연구자마다 달라요. 어디가 현장인지 묻는 건 연구자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정치적인 질문인 것 같아요. 본인의 연구 색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곳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니까요. 공무원을 만날 수도 있고, 원자력 발전소 근처에 사는 사람을 인터뷰할 수도 있고, 환경 운동가를 찾아갈 수도 있어요.

 

회로: 현장을 찾는 데서부터 질문이 시작되는군요. 과정이겠네요. 승희 님의 말을 듣다 보니 연구를 하다 보면 허탈할 때가 있을 같아요. 정책 방으로 되지 않으니 탈진할 수도 있고요. 저(현주) STP 진학에 관심이 있지만, 가끔은 그냥 공부하지 말고 취업할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그럴 자신을 다잡는 원동력이 있나요?

승희: 저는 공부가 힘들어서 탈진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내가 알던 자연이, 미국 이주민이 원주민을 쫓아낸 공간이라는 걸 알았을 때 가장 힘들었어요. 정책 한 방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도 순진한 생각이었고요.

저도 취업할까 많이 고민했어요. 지금도 수없이 생각해요. 공부를 계속하는 제 모습과 월급을 받으며 출근하는 제 모습을 번갈아 가며 떠올려요. 그런데 후자의 저는 여전히 기후변화, 환경, 에너지 문제를 답답해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러면 연구를 계속하는 게 맞는데, 또 연구하는 나를 생각하면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닐까, 옷은 제대로 입고 있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웃음)

요즘엔 졸업하고 나서 현장이라고 불리는 공간에 가고 싶어요. 환경 정책을 만들거나 관련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요. 저에게도, 다른 이에게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회로: 승희 님께서 주변을 보고 느끼기에는 어떤 사람이 STP 맞는 같나요?

승희: 많이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요. STP 사람들은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가져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면을 연구하는 사람들이죠.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본인의 지식과 역량 내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대학원 총학생회장 조승희

 

회로: 2016년에 대학원 총학생회장을 하셨는데요, 총학생회장을 하며 기억나는 사건이 있나요?

승희: 제가 학부 10학번인데, 제 또래의 죽음을 많이 겪었어요. 학부 2학년 때는 거의 네 명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죠. 이후 한동안 사건이 없다가 제가 석사과정생이 되니까 석사 1~2학년들이 또 죽음을 택하는 거예요. 건너 건너서 아는 사람들이고, 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람들일 수 있었겠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또래가 그런 선택을 하니까 마음의 짐으로 남았어요.

특히 박사 1학년 당시 회장을 했을 때가 기억이 나요.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그걸 수습해야 했거든요. ‘수습’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게 싫은데, 마땅한 단어가 없네요. 한 사람의 극단적인 선택에 애도를 표하기보다는 각종 회의에 가서 학교와 사후 대책을 논의해야 했거든요. 그게 대학원 총학생회장의 일이에요. 당시에는 제가 해외에 있어서 부회장 오빠들이 각종 회의에 대신 갔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학생회를 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겪었어요. 박근혜 명예박사 철회촉구대회를 진행하고,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선언하고, 랩비(연구실 공동 자금) 근절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제가 학생회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대학원생 당사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많이 못 했어요. 학생회장이 되니까 대학원생보다는 보직교수 및 교직원과 주로 만나게 되더라고요.

 

회로: 박근혜 명예박사 촉구대회는 무엇인가요?

승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창 논란일 때, 카이스트 대나무숲에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도 시국선언을 했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왔어요. 당시 대학원 총학생회장이었던 제가 그 글을 보고 바로 시국선언을 원하는지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투표에 참여한 850명 중 810명이 찬성했어요.

그래서 학부 총학생회와 연합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수여했던 명예박사 학위를 철회하자는 취지의 대회를 했어요. 무대에 관련 풍자극을 올리기도 했어요. 한쪽에서 “박근혜 씨! 명예박사인 것 아시죠?” 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역을 맡은 사람이 “아, 제가 박사였습니까?” 하는 식의 연극이었어요. (참고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jDP2i1VDzg)

 

회로: 사실 엄청나게 분노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풍자극은 다른 이의 에너지를 돋을 있다는 점에서 좋은 아이디어네요.

승희: 움직인다는 건 어떤 문제에 감응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화가 너무 많이 나서 뜨거운 상태로는 무언가 하기 힘든 것 같아요. 화가 끝까지 차오른 뒤에 차갑게 식는 과정이 훨씬 중요해요. 충분히 분노한 뒤,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게 되는 시간이 와요. 저는 엄청 화가 날 때는 일단 뒤로 물러났다가 화가 식은 뒤에 나서는 타입이에요. 제가 한 번에 소모되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회로: 이건 다른 문제인데요, 대학원생이 대학원이라는 위계 사회 소수자이자 약자일 텐데, 대학원 학생회장을 맡으면서 인권 문제나 노조 문제에 직면한 적이 있나요?

승희: 어려운 문제에요. 대학원생이 학생인지 노동자인지는 정말 많이 들었던 질문이에요. 이 부분에서 대학원생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요.

그런데 ‘대학원생이 ‘소수자’’라는 표현은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총학생회장으로서는 조심해야 하는 발언이에요. 소수자는 사회에서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데, 카이스트 대학원생은 카이스트 학생이어서 누리는 권리들도 있거든요. 학교라는 경계 안에서는 소수자일 수 있지만, 학교 밖에서는 소수자가 아닐 수 있죠.

총학생회장일 때, 저는 카이스트 대학원생이 받는 것과 받지 못하는 걸 확실히 구분해서 말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카이스트 학생으로서 누리는 권리가 있지만, 사람으로서 이런 면은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지 못하는 주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뒀어요.

 

회로: 구분을 잘하지 못하면 비판하는 사람들과 똑같이 같아요.

승희: 내가 뭘 받고 있는지 인정해야 다음 논의로 넘어갈 수 있어요. 여성이 소수자인지를 두고 싸우는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위에서 대학원생이 무조건 피해자고 소수자라는 말을 하지 말자고 말했던 것처럼, 여성이 무조건 피해자라는 프레임은 위험한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페미니즘에서 ‘여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말이 되면 페미니즘의 목표를 달성한 것 아닐까요?

 

회로: 페미니즘은 소멸을 지향하는 학문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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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진행하는 회로와 승희. (사진: 페미회로)

 

페미니즘을 마주하다

 

회로: 이제 페미니즘 관련 질문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페미니즘을 언제, 어떻게 접했나요?

승희: 엠마 왓슨의 UN 연설과 강남역 사건으로 접했어요. 엠마 왓슨 스피치를 보고, 강남역 사건을 겪고 나니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점점 참고 넘어갈 수 없는 일들이 생겼죠.

살다 보면 차곡차곡 나만의 페미니즘 기준이 생기잖아요. 여기까지는 내가 동의할 수 있지만, 이 지점부터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기준이요. 처음 강남역 사건이 터지고 나서 1~2년은 엄청나게 화가 난 상태였어요. 그 시기에 아버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아버지께서 점점 저를 조심스럽게 대하시더라고요.

아까 화가 차오른 뒤에 식는 시간이 온다는 말을 잠깐 했는데, 아버지께서 해주신 조언이에요. 한 번은 아버지께서 한 번 끝까지 화가 나서 터지고 나면, 그 화가 가라 앉으면서 네 것이 될 거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화가 나더라도 나만의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연습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정치적인 페미니스트예요. 온건파, 강경파라기보다는 나의 상황에 맞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페미니스트요. 하지만 참지는 않아요.

 

회로: 제(정원) 분노에 자주 매몰돼서 그런지, 정치적인 페미니스트라는 표현이 닿아요. 저는 인생을 얼마나 챙겨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많은 페미니스트가 정치적으로 행동했으면 하는데, 승희 님이 생각하기에 정치적인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한 방법이나 도움이 되는 마음가짐이 있나요?

승희: 페미니즘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놓지는 말아야 해요. 내가 육식을 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에게 고기를 먹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듯이, 너무 많은 것을 한 번에 바꾸려고 하지 않는 것. 그게 정치적인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것 같아요. 매번 대응할 수는 없지만, 그 화를 잊지 않는 사람이 정치적인 페미니스트 아닐까요? 우리가 흔히 듣는 ‘말도 안 되는 소리들’보다는 오래 살아 남아야죠.

 

회로: 다른 이야기지만, 승희 님이 환경문제를 다루는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니, 에코 페미니즘이나 동물권, 비거니즘 이슈도 떠오르네요.

승희: 네, 관심 있어요. 제가 예전에 동물권에 관심이 있다고 했을 때 ‘네가 신은 신발은 동물 가죽인데 너부터 잘해라’, ‘고기 먹지 말라는 거냐’하는 말을 들었어요. 그때 아무런 반박을 못 한 게 천추의 한이 되었어요. 쓸데없이 과도하게 육식하지 말자고 말하는데 왜 꼭 그렇게 논점을 흐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말들이 얼마나 현실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는지 증명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싶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오기도 했고요. 아직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요.

 

회로: 지금까지 인터뷰를 들어보니 승희 님은 소멸하는 것들을 안타까워하고, 그래서 다양한 주체와 함께 있는 삶을 꿈꾸는 같아요. 혹시 인터뷰를 읽을 분들에게 마지막 마디를 남겨주시겠어요?

승희: 저는 어떤 편에도 속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느 편에 서는 순간, 내가 왜, 어느 지점에서 화내는지 돌아볼 시간을 갖기 힘들고, 그러다가 반복해서 화만 낼까 봐요. 그래서 정치적인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어요.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소속이 없고 근본 없는 페미니스트에 가깝다는 의미로요. 이 인터뷰를 읽는 분 중 삶의 여러 관계를 힘겹게 조율하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제 말이 도움이 되길 바라요.

 

회로: 혹시 저희 회원들에게도 마디 해주신다면요?

승희: 늘 건강하세요. 정신 건강과 몸 건강을 잘 챙기셔야 오래 갈 수 있어요. 고민하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페미니즘은 소멸을 지향하는 학문이지만, 소멸을 위해서는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함께해야 한다. 한 번에 소모되지 않기 위해 분노가 식은 뒤에 행동한다는 승희 님의 말이 머릿속에 남았다. 분노를 동기로 페미니즘을 접한 많은 페미니스트에게도 그들 자신의 지속을 위해 필요한 말이 아닐까 한다. 페미니스트로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사람과 만나서 대화해야 하고, 다양한 존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페미니즘은 오래 살아남아야 한다. 끝이 없어 보이는 분노와 충돌에 지친 많은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나를 위해 자신을 놓지 말라는 인터뷰이의 답변이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012: 다가가는 총여학생회, POSTECH 총여학생회 회장단 인터뷰(2부)

  작년 2018년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주제는 총여학생회 폐지였을 것이다. POSTECH 총여학생회는 5개 과학기술중점 대학 (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 중 유일한 총여학생회다. 제31대 POSTECH 총여학생회 <단비>는 대학가의 어려운 분위기에서 당선되었다. 회장단은 어떻게 이 분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헤쳐 나가고 있을까?

  이번 인터뷰는 2부에 걸쳐 발행된다. 1부에서는 회장단 개인이 POSTECH 총여학생회 집행위원과 회장단으로 활동한 계기와 그 과정에서 겪은 고충을 들어보았다.  2부에서는 POSTECH 총여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체육 생활 개선 사업, 성평등 문화 확산 사업을 알아본다. 또한 작년 2018년 많은 총여학생회가 사라지는 중 POSTECH 총여학생회가 POSTECH 학생 사회에 어떻게 대처하고 논의를 이끌었는지 들어보았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 김한솔, 조희수, POSTECH 총여학생회 <단비> 집행위원 이슬기, 최수연은 ‘회로X여학’으로, 인터뷰이인 회장단 김채림 님, 박하윤 님은 ‘채림’과 ‘하윤’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부경, 산들, 우연,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우연, 조희수(이상 가나다순)가 맡았다.

학우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회로X여학: 매달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캠페인을 진행하고 문구를 만들어 홍보하는 사업을 한다는 공약이 인상깊었어요. 3월 술자리 개선 캠페인 <부딪히는 건 술잔 뿐>이 그 시작인데요. 앞으로 어떤 주제로 진행할 예정인가요?
하윤: 4월에는 술자리에서 나오는 외모 질문과 관련된 캠페인을 진행하고 싶어요. ‘너 참 오늘 예쁘다’. ‘오늘 예쁘게 하고 왔네’ 같은 외모와 관련된 발언을 다루는 거죠. 이런 ‘칭찬’도 사람들한테 상처가 되고 불편한 말일 수 있어요. 5월은 가정의 달이니, 가부장제를 다룰 거에요. 행복한 가정을 만들려면 가부장제가 사라져야 한다고요.

채림: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도 같이 다룰 생각입니다.

하윤: 언어도 다뤄볼 생각이에요. 가족에 관련된 잘못된 단어가 정말 많아요. ‘친’가(親家)와 ‘외’가(外家)란 이름부터, 호칭에서는 남편 동생은 도련’님’, 아가씨라고 존대하지만, 아내의 동생은 처남, 처제로 부르는 것처럼요. 이런 단어 사용을 자제하자는 취지의 오프라인 부스를 계획하고 있어요.

총여학생회에서 5월에 진행한 캠페인. 사진: POSTECH 총여학생회

회로X여학: 정말 좋은 주제들이네요! 캠페인 주제는 어떻게 구상하나요?
하윤: 5월 주제는 ‘가정의 달’에서 연상했고요. 4월 외모 캠페인은 3월에 캠페인을 진행했던 팀원들이 제안해 주셨어요. 2학기에는 피임과 관련된 여성 건강 관련 사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작년에 피임 부스를 진행했을 때 한 번으로 끝나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올해는 아예 월마다 진행 하려고요.

회로X여학: 작년에 진행한 피임 부스에서는 어떤 내용을 다루었나요?
하윤: 피임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판넬을 세워놓았어요. 부스에 온 사람들은 퀴즈를 풀거나 바나나에 콘돔을 씌워보았고요. 또 학교 보건 선생님을 섭외해 피임 상담을 진행했어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피임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많더라고요.

회로X여학: 총여학생회에 대해 조사하다가 총여학생회 서포터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총여학생회 서포터즈는 어떤 업무를 맡나요?
하윤: 모든 학생이 여학생회(이하 여학)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데, 학내 자치단체이다 보니 많은 학우가 여학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단체 홍보를 위해 작년 회장단이 서포터즈 사업을 제안했어요. 서포터즈가 여학의 홍보를, 여학은 메일링 서비스를 맡아서 여학이 하는 일을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요. 작년부터 시행한 제도인데, 작년에는 여학과 여학 서포터즈가 서로 해줄 수 있는 게 많이 없었어요. 아는 사람을 통해서 의리로 서포터즈가 되어 주신 분도 있었고요. 생각보다 원하는 효과를 얻진 못했어요.

올해에는 여학과 서포터즈가 좀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려고 해요. 서포터즈는 여학 오피스에 자주 참여해주시고, 더 많은 독후감을 써주시고, 저희는 서포터즈 활동을 하시는 만큼 마일리지나 칭찬 스티커를 드려 활동 점수가 모이면 상품을 드리려고요. 또, 서포터즈 분들이 더 많이 활발히 참여하고 새로운 서포터즈를 모집하기 위해, 이달의 서포터즈를 공지하면서 축하하려고요. 이러면 서포터즈들도 리마인드하고 공고를 보고 들어오시는 분들도 생기겠죠.

여기에 더해, 여학이 행사 일정을 잡을 때 서포터즈 분들의 일정을 참고하려고 합니다. 일정이 맞지 않아 행사에 못 오시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저희가 모든 여학우의 의견을 다 받기는 어렵죠. 그래서 여학 집행위에서만 의견을 모아서 행사 날짜를 정해왔어요. 이러니 집행위원 말고는 참여하시는 분이 많지 않더라고요. 서포터즈들 일정은 참고해 행사 날짜 정하면, 서포터즈분들은 행사에 더 잘 참여할 수 있어 좋고, 여학은 더 좋은 행사 시간을 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회로X여학: 서포터즈는 얼마나 오래 활동하나요?
하윤: 원래는 학기마다 모집을 했는데 유령회원이 점점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오픈채팅방을 만들려고 합니다. 오픈채팅방은 들어오고 나가기가 편하잖아요. 그래서 1년마다 새 서포터즈가 들어올 때 새 채팅방을 만들고, 나가시고 싶을 때 나갈 수 있도록 하려고요.

익명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할 생각이에요. 대신에 저희는 관리를 해야 하니까 저희는 누가 누구인지 정도는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회로X여학: 여학은 오픈 오피스 시간을 운영하더라고요. 오픈 오피스에 방문하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하윤: 가장 대표적으로 수면실을 이용할 수 있어요. 수면실은 여학우들만 이용할 수 있는데, 생리통 등으로 몸이 불편하고 힘들거나, 방 가기가 애매할 때, 수면실에 전기장판이 있어서 쉴 수 있습니다. 옆에 세면실도 있으니 편하죠. 아무 때나 와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여기서 식사하는 분들도 있고요. 집행위원과 친구면 식사를 여기서 하는 분들도 꽤 있어요.

채림: 페미니즘 서고 대여 시간도 오픈 오피스 시간으로 정해져 있어요. 책 대출은 2주까지 권장인데, 안 지킨다고 못 빌리거나 하진 않아요. 양심에 맡기고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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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의 페미니즘 서고. 사진: 페미회로

POSTECH 여학생들의 체육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회로X여학: 구체적으로 POSTECH 전체 여학생 수가 어느 정도 되나요? 성비뿐만 아니라 여학생 수 자체가 적다는 점도 POSTECH 여학생들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큰 원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공대라도 POSTECH은 다른 학교에 비해 전체 학생 수가 적은 편이잖아요. 똑같이 여학생이 10%여도 100명 중 10명인 것과 500명 중 50명인 건 다른 것처럼요.

하윤: 한 학번에 전체 학생이 350명인데, 여학생이 100명이 못 되요. 18학번에는 여학생이 많은 편이라 100명이 넘었고, 19학번은 100명보다 적다고 들었어요. 보통 여학생은 한 학년에 70-80명 정도에요.

채림: 16학번은 65명 정도, 17학번은 조금 더 많아서 70-80명 정도에요. 모든 학번을 통틀면 따지면 300명 전후일 것 같아요. 20명짜리 새터반 한 분반에 4명 정도네요.

회로X여학: 그런 상황에서는 여학생들이 체육 활동을 하기도 쉽지 않겠어요. 저도 수영이나 헬스처럼 혼자서 하는 운동은 종종 하는데, 축구나 농구처럼 단체로 하는 운동은 엄두를 못내겠더라고요. POSTECH 여학생들의 체육 생활은 어떤지 궁금해요.

채림: 학교 특성상 여학생의 비율뿐만 아니라 절대 수도 굉장히 적잖아요. 체육 수업이 있고 체육 동아리도 있지만, 축구 동아리 농구 동아리는 100% 남자뿐이에요. 거기에 여학생이 껴서 운동하기가 일단 쉽지 않죠. 체육 수업은 있지만. 그 마저도 제한적이고요.

회로X여학: POSTECH에서는 정규 과목으로 체육 수업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수업은 어떻게 운영되나요? 성적 매기는 방법이나, 졸업 요건, 개설된 과목 수 등이 궁금해요.

채림: 체육 수업의 종류는 10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 중 2개를 들어야 졸업할 수 있어요. 2개 중 하나는 모두가 들어야하는 필수 과목인 ‘체력 관리’에요. 이 수업만 PASS/FAIL(학점을 매기지 않고 통과 여부만 가리는 방식)이에요.

회로X여학: 그럼 체력 관리가 아닌 다른 체육 수업은 A~D, F로 성적을 매기나요?

하윤: 맞아요. 그런데 체육 수업도 평가 기준이 남녀를 달리하지 않아요. 능력에 따라서 점수 부여를 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공정하지 못한 평가 방법일 수도 있어요. 성별에 따른 신체 문제를 고려한 수업은, 오리엔티어링과 라켓볼이에요.

채림: 오리엔티어링은 나침반을 가지고 산을 타 정해진 지점에 도착하는 과목이에요.

하윤: 라켓볼은 여학생 체육 활성화 사업으로 시작한 수업이에요. 여학생들에게 원하는 체육 종목을 조사한 결과 라켓볼이 선정되었고, 성별 상관없이 모두가 들을 수 있어요. 오리엔티어링과 라켓볼 외에 댄스라는 과목에서도 성별에 따라 성적을 달리 매기기는 하는데, 이유는 신체 차이가 아닌 춤출 때 역할 때문이에요. 차차차처럼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이 나뉜 춤을 배워요. ‘여자’ 역할을 하는 남학생들이 생기는데, 그런 남학생들은 여학생들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죠.

회로X여학: 오리엔티어링이랑 라켓볼에서 성별 구분해서 성적 매긴다고 하셨는데 거기는 여학생들이 많은가요?

하윤: 성별 구분해 성적을 매기는 점때문에 많이 듣는다고 알아요. 특히 라켓볼 수업요. 제 주변에서 라켓볼이 성별 구분해서 채점한다는 얘기가 많이 오가니, 더 많이 들으려는 것 같아요.
반대로 탁구는, 토너먼트로 대진 결과로 학점 준다고 알아요. 다른 체육 수업도 성적 매기는 방법이 비슷하니, 체육 수업이 힘든 것 같아요.

회로X여학: 체육 수업의 개인의 실력 향상을 성적 기준으로 삼는 방식이라면 좀 더 나을텐데 아쉽네요. UNIST에서 교양 과목으로 열리는 ‘음악과 창의성’의 경우에는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등의 악기를 다루지만 수업이 실력이 얼마나 향상되었는지를 보기 때문에 기존에 악기를 다뤄보지 않은 학생들이어도 노력한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 들었거든요. 제 편견일 수는 있겠지만, 체육 수업의 경우에는 여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좀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해주신 여학생 체육 활성화 사업에 대해서도 궁금해요. 더 자세히 소개해주시겠어요?

하윤: 여학생들은 수가 너무 적어 모이기도 힘들고, 축구 동아리에서 같이 뛰기도 힘들죠. 작년에는 같이 풋살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함께 운동할 사람이 자기 친구 이상으로 뻗어 나가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오픈채팅방을 파서 각자 친구들 초대하고, 마음 맞는 분들끼리 톡방 새로 파서 빠져나가도록 했어요. 잘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희는 그냥 톡방 파고 관리만 해서요.

실제로 요구는 많은 것 같아요. 라켓볼 개설할 때 진행했던 체육 종목 설문 조사의 경우에 여학에서 진행하는 다른 설문조사보다 응답이 훨씬 많았어요. 여학에서 여는 강연 설문 조사하면 응답이 10개도 안 올 때도 있는데, 체육 종목 설문 조사는 50-60개 정도 오니까요. 체육 사업을 원하시는 분들은 확실히 많죠.

POSTECH을 바꾸기 위해서

회로X여학: <부딪히는 건 술잔뿐> 캠페인 보고 개강 초 술자리 문제를 많이 고민해왔다고 느꼈습니다. 여학이 SNS를 활용한 해결 방법을 구상했다는 데 관심이 가는데요. 문제가 하나라도 푸는 방법이 다양하잖아요. 예를 들어 연세대에서는 매뉴얼을 다양한 버전으로 만들어 배포했는데, 이처럼 메뉴얼을 배포하는 방법이 있고 여학처럼 캠페인 SNS 인증 같은 방법을 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텐데요. 여학에서 이번 캠페인에 SNS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를 들어보고 싶어요.

하윤: 저희도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해요. 그런데 좀더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매뉴얼이나 규칙은 혼자만 만들어서 다짐해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SNS 캠페인은 쉽게 참여할 수 있고, 누군가를 태그할 수 있죠. 저는 이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에 의미를 부여했어요. SNS 캠페인 외에도 오프라인 부스도 행사를 계획 중이에요. 음료 잔에 매뉴얼과 함께 ‘부딪히는 건 술잔뿐’이라는 슬로건을 붙이고, 그 잔을 짠하고 부딪히고 서명하도록.

회로X여학: 여학이 주목하는 문제들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술자리 문제 말고도 다른 문제에 관심 가진 것이 있나요?

하윤: 일단 혐오표현과 관련된 문제요. 술 마시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칭찬도 오가고, 특히 친한 친구일수록 농담도 쉽게 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칭찬한다고 외모 평가도 하고, 남자끼리는 ‘남자끼리 마시니 칙칙하다‘고 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술게임하다가 ‘병신샷’을 외친다거나, ‘귀엽고 깜찍하게 31(*)’같은 불편한 게임을 하자고 하기도 하고요. ‘술자리니까 그럴 수 있지~’라며 그저 재미로 넘어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또 이공계에서 볼 수 있는 여학생 차별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이런 말을 들어봤어요. ‘공대에서 대학원은 여학생들을 잘 안 뽑는데, 이유가 여학생은 전문연(**)에 해당하지 않으니 하다가 힘들면 나갈 거다’ 또는 ‘그냥 여학생들이니까 좀 더 못할 것’이라는 말이요. 차별에서 시작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표현들이 별 거리낌 없이 오간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어요.

채림: 그런 말은 교수-학생 간의 인권 문제와도 관련된 건데 말예요. 교수님들이 당연히 일반적으로 다 남학생이라고 가정하는 발언을 하신다거나.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신다거나 하는 일도 있죠. 수업을 듣다보니 ‘왜 교수님들은 제대로 성평등 교육을 받지 않는가’ 생각했어요.

하윤: 수업 중 발언이 자주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교수님들께서 웃기려고 던진 농담인데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수업 시간 체벌 관련해서도 작년에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교수가 결국 사과했죠.

채림: 저희 과에서도 교수님이 전공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을 비유로 들어 동성애혐오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모담> (이하 <모담>)에서 처리해서 사과하신 일이 한 번 있었죠. 2018년에 있었던 일이에요.

(*) 차례를 정해 1부터 31까지의 숫자를 순차적으로 외쳐 마지막 31을 외치는 사람이 지는 게임. 숫자를 외칠 때 ‘귀엽고 깜찍한’ 태도를 보이길 요구받기도 한다.
(*) 전문연구요원 제도. 여기서는 박사 전문연을 뜻하고, 박사로 3년을 수학해 병역 의무를 다하는 제도. 전문연 복무 중인 남학생들은 연구실에 사실상 묶인다.

하윤: 저는 교수님들이랑 학과 활동도 몇 번 했었는데 학과 활동으로 뒤풀이나 회식 같은 술자리를 가져도 항상 불편한 말들이 오가요. 상담센터 말로는, 교수님들도 성희롱 성폭력 예방교육을 들어야 하는데 이수율이 정말 낮대요.

채림: 교육을 듣지 않아도 따로 제제가 가해지는 것이 없으니까요.

하윤: 특히 전임교수. 나이 많으신 분들이 더 그런 편이래요. 정교수 분들은 정년이 보장되니 정말 안 들으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가장 많이 들어야 하는데. 그게 잘못되었다는 걸 인식을 못했던 세대였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세대가 많이 바뀌었고 그러면 안되는데,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데, 그래도 안 들으신다고 하더라고요.

채림: 동성애혐오적인 발언을 한 교수님이 수업 시간에 여성혐오적인 발언도 했어요. 그런데 교수님이 이미 은퇴하시고 했던 수업이고, 그중에서도 정말 마지막 수업이었어요. 뒤가 없어서인지 정말 주의하지 않고 말하더라고요. 저랑 <모담> 위원, 학보사 기자가 앉아 있었는데 무슨 저런 소리를 하냐고 했어요. 결국 수업 중에 사과를 하시긴 했어요.

연대 사업

회로X여학: 여학의 연대 사업과 관련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단체와 함께 사업을 진행해왔나요?

하윤: POSTECH 페미니즘 소모임인 <포스텍 페미니즘>과는 작년 ‘POSTECH 미투’ 때 공동 성명을 함께 냈어요(*). 그리고 KAIST 여성주의 연구회 <마고>와는 포카전(POSTECH-KAIST 학생 대제전. ‘카포전’이라고 불리기도 함)을 맞이해 POSTECH-KAIST 여학생 E-SPORTS 교류전을 진행했고요. 학내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모담>과는 간담회를 열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간담회 당시 <모담>이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방향성이 명확하지 않아서 ‘여학이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에 흡수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어요. 그래서 간담회에서 여학과 <모담>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 두 단체의 집행위원들이 고민을 나누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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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 사무실에 스크랩된 POSTECH 미투 기사. 사진: 페미회로

회로X여학: <모담>과는 또 어떤 이야기가 오갔나요?

하윤: ‘성희롱 성폭력 제보가 들어왔을 때 대처법을 담은 메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어요. <모담>과 여학이 관련 제보를 함께 처리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2차 가해 위험이 있어 각 단체가 받은 제보는 각 단체에서 처리하기로 결론 내렸죠. <모담>과는 서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을 것 같아 앞으로도 논의를 많이 하려고 해요.

회로X여학: 다른 학교와 연대를 진행한 것도 있나요?

하윤: 아니요, 학교가 포항에 있다 보니 다른 학교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서 다른 학교와 오프라인으로 만나 행사를 진행하기가 쉽지 않아서요.

채림: 그리고 연대 요청 들어오는 사안은 대부분 급하게 결정해야 해야 하는데, 의사결정을 빨리하기가 어려워요. 여학 이름으로 어떤 사업을 진행하려면 의결 기구인 여학생운영위원회를 거쳐야 해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되는 편이 아니에요.

하윤: 여학생 운영위원회 정기 회의가  3개월에 한 번 열리거든요. 그런데 급하게 결정할 사안이 있으면 임시회의를 여는 식이라 실제로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열리고 있긴 해요.

회로X여학: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보니 빠르게 의견을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겠어요. 이번에는 여학이 단독으로 연 행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작년 2학기에 세 번의 간담회를 열었는데, 간담회에서는 보통 어떤 이야기가 오가나요?

하윤: 작년 마지막 간담회에 대해 말씀드리면, ‘이공계 사회 내 페미니즘’을 주제로 POSTECH 내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점을 논의해보았어어요. 여자 기숙사가 고립되어 있어서 불편하다는 점이나 성희롱・성폭력 예방 교육에 대한 논의가 오가갔죠. 또, POSTECH에 ‘7000일’ 문화가 있는데요, ‘모태솔로’가 된지 7000일이 되는 날에 친한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거나 현수막을 걸어주는 문화에요. 비슷한 문화를 지적하고 개선점을 논의했죠. 그 때 논의에서 출발하여 올해 새내기 배움터에서는 여학 주도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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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POSTECH 새내기 배움터 성희롱 예방 교육 영상 자료 캡쳐 화면. 박하윤 회장이 2차 가해를 연기하고 있다. 사진: POSTECH 총여학생회 (페미회로 편집)

총여학생회 위기와 POSTECH 총여학생회

회로X여학: 다음 질문은 조금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꼭 여쭙고 싶은 내용이기도 했어요. 작년에 서울 대학가에서 총여학생회가 연달아 사라진 일이 큰 이슈가 되었는데요. 경희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 여러 총여학생회가 총여학생회 폐지 학생 총투표를 거쳐 폐지되었어요(*). POSTECH은 남초사회이다 보니 학에 대한 반발이 못지않게 심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어떤 반응이었는지 궁금해요.

채림: 라운지(POSTECH 학생들이 글을 올리는 익명 게시판)에 관련 글이 올라온 걸 보면 분명 학생들도 이런 사안을 인지하고 있긴 해요. POSTECH이 조용하지는 않았죠. 그런데 사람들이 바빠서(웃음) 누군가 총대를 메고 폐지 투표를 진행하려고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또, POSTECH은 전체 학생 수가 적어서 학생 사회가 워낙 좁다 보니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런 의견을 선뜻 제시하기가 쉽지 않기도 하고요.

하윤: 이 때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각 대학교에서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도 않고 총여학생회 폐지에 관한 의견이 급작스럽게 퍼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가 집담회를 열어 여학의 입장을 최대한 전달하고자 노력했어요. 제가 라운지를 둘러보다가 ‘연세대에서도 총여학생회가 폐지되었는데 우리 학교 여학도 폐지해야하지 않느냐’는 글을 봤는데, 그 글에 ‘집담회에서 그런 의견을 제시해보려고 생각해본 적 있느냐’라는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그걸 보고 집담회가 나름 긍정적인 효과를 일으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우리 학교 여학은 회피하려 하지 않고 이야기하려 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 같아요. 또, ‘총여학생회 폐지’와 같이 학생회칙을 개정해야 하는 안건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를 거쳐야 하는 일이라서, 전학대회 구성원들에게 사전에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을 전달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기도 했고요. 최대한 저희 학교 상황에 맞춰서 대응하려고 했던 점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 신지민, <총여학생회 폐지, 백래시일까 새로운 시작일까>, 2019.01.12. 허핑턴 포스트. https://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c395965e4b0922a21d50f8a/

회로X여학: POSTECH은 수적으로도 여학생이 소수인 점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다른 종합대학교에서는 여학생이 수적으로도 소수인 경우는 많지 않은데, POSTECH은 여학생의 수가 적다는 점이 총여학생회의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을까요?

하윤: 저희도 여학생이 수적 소수라는 사실이 총여학생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는 의견에 공감해요. 여학생 수가 적기 때문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2018년도에 여학생 입학생 수가 늘었을 때, ‘앞으로도 여학생 수가 늘면 총여학생회를 폐지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런데 2019년 여학생 입학 수는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런 의견이 다시 수그러들었고요.

회로X여학: 전체 학생 수도 중요하지만, 대표성도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POSTECH에서 대표자를 맡은 여학생의 수가 전체 학생 성비에 비해서도 적은 편인가요?

채림: 네, 모든 학번을 통틀어 여학생 비율이 전체에서 30% 정도인데, 올해 중앙운영위원회는 16명 중 여학생이 3명이니 20%가 못 되죠. 전학대회에도 여학생은 20% 정도고요. 작년에는 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해마다 편차가 큰 것 같아요.

회로X여학: 정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네요. 앞으로 두 분이 여학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어요.

채림: 저는 총여학생회의 위기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았는데, 다른 학교 사례를 보면, 총여학생회 회장단에 문제가 있을 때 회장단이 탄핵당하지 않고 총여학생회 자체의 존립에 위기가 오더라고요. 총여학생회가 잘못을 하면 이 잘못을 어떻게 해결해서 더 나은 총여학생회를 만들지 이야기하지 않고, 총여학생회 자체를 없애자는 쪽으로 논의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일단은 저희 회장단이 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윤: 총여학생회가 어려운 단체가 아니라 ‘힙’하고 재미있는 단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총여학생회가 없어지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총여학생회가 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고 공감되지 않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의미가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그리고 더 많은 분이 집행위원으로 참여해주었으면 좋겠어요. 학생 사회 자체가 요즘 들어 동력을 잃어가는 와중에 다른 대학교들의 총여학생회 폐지 이슈가 겹쳐 저희도 집행위원이 많이 줄었는데, 더 많은 사람과 즐겁게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요.

회로X여학: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채림: 얼마전에 기사를 봤는데, 한국의 성 격차 순위는 하위권인 115위이고, 전세계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경제 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202년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는 동안 성별 불평등이 완전히 해소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속상했죠. (웃음) 총여학생회를 없애려는 움직임이 많은데, 나중에 성평등이 이루어지고 ‘우리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해서 총여학생회가 스스로 해산할 수 있을 때가 왔으면 좋겠어요.

하윤: 총여학생회 그 자체를 봐줬으면 좋겠어요. 총여학생회의 작은 잘못을 가지고 총여학생회 자체를 비난하거나, 최근 페미니즘이 크게 이슈가 된 것에 대한 반발로 총여학생회를 폐지하자고 하는 이야기가 많아요. 하지만 그렇게는 절대 총여학생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회장단도 열심히 일할테니, 봐주시는 분들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여학을 바라봐 주시길 바라요.

(*) 최민지, <”남녀 경제 격차 해소 202년 걸려… AI 활용에 따라 더 벌어질 수도”>, 2018.12.18., 경향신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12182132005

총여학생회 집행위원 혹은 전체 여학우의 대표자로서의 고충을 알 수 있는 인터뷰였다. 특히나 여학우들을 포함한 일반 학우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고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안타까웠던 점은 지리적인 이유로 고립되었다는 점, 그리고 대의성을 의식해 연대 행사를 열기 위해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대의성을 의식하고 연대 행사에 필요한 조심스러운 절차는, 작년 카이스트 총학생회의 퀴어퍼레이드 참여 여부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논란들(*)을 떠올리게 해 더 안타까웠다.
POSTECH 총여학생회의 고민은 비단 POSTECH 총여학생회만의 고민이 아니다. 많은 대학에서 저마다 조금씩 다른 환경에서, 총여학생회와 여성주의 소모임이 조금씩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POSTECH 총여학생회가 하는 고민과 남기는 족적이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작년인 2018년 카이스트 총학생회가 서울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하려 모든 학우를 대상으로 의견 수렴을 거쳤다. 결국 참여는 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성소수자들이 혐오발언에 노출되었고, 참여 후 회장단이 사퇴했다.

012: 다가가는 총여학생회, POSTECH 총여학생회 회장단 인터뷰(1부)

작년 2018년 대학의 페미니스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주제는 총여학생회 폐지였을 것이다. POSTECH 총여학생회는 5개 과학기술중점대학(DGIST, GIST, KAIST, POSTECH, UNIST) 중 유일한 총여학생회다. 제31대 POSTECH 총여학생회 <단비>는 대학가의 어려운 분위기에서 당선되었다. 회장단은 어떻게 이 분위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쳐나가려 노력하고 있을까?

 이번 인터뷰는 2부에 걸쳐 발행된다. 1부에서는 회장단 개인이 POSTECH 총여학생회 집행위원, 회장단으로 활동한 계기와 활동하며 겪은 고충을 들어보았다. 2부에서는 POSTECH 총여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체육 생활 개선 사업, 성평등 문화 확산 사업을 알아보았다. 작년 2018년 많은 총여학생회가 사라지는 중 POSTECH 총여학생회가 POSTECH 학생 사회에 어떻게 대처하고 논의를 이끌어나갔는지 들어보았다.

인터뷰어인 <페미회로>의 김한솔, 조희수, POSTECH 총여학생회 <단비>의 집행위원 이슬기, 최수연은 ‘회로X여학’으로, 인터뷰이인 31대 회장단 김채림 님, 박하윤 님은 ‘채림’과 ‘하윤’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부경, 산들, 한솔 발행은 <페미회로>의 오이, 우연 (이상 가나다순)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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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회장 박하윤 님, 부회장 김채림 님. 사진: 페미회로

회로X여학: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하윤: 저는 POSTECH 총여학생회장 박하윤입니다. 화학과 17학번입니다.

채림: 저는 부회장 김채림입니다. 지금 17학번이고, 신소재공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회로X여학: 총여학생회들이 수난을 겪었던 작년 2018년에 당선되셨어요. 어려운 배경에서 당선 된 게 인터뷰에 응한 계기와 관련이 되어있을 것 같아요.

하윤: POSTECH 총여학생회도 대외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어요. 저희가 몇 개 안 남은 총여학생회임에도 불구하고 포항에 있다 보니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요. 그러다보니 연대가 필요할 때 힘이 되기도 힘들고, 도움을 받고 싶을 때도 적극적으로 요청하기가 힘들더라고요. 대외 행사나 인터뷰에서 저희의 생각과 뜻을 더욱 알리고 싶어요.

 

회로X여학: 여학 분위기는 어떤가요?

하윤: 소소하게 놀아요. 회의 때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존중한다는 의미로 존댓말을 써요.

회로X여학(수연): 재작년 회장님이 망년회 때 자신이 원하는 음료를 갖고 오자고 제안했어요. 술을 강권하지 않겠다는 취지였는데, 참 괜찮은 방법인 것 같아요.

하윤: 개강 총회와 종강 총회에 가져오는 음료수가 달라요. 개강 총회 때는 대개 평범한 음료수를 많이 마시는데, 종강 총회 때는 다양한 맥주가 등장해요. 종강할 때에는 다들 힘들어서 그런가봐요. (웃음)

회로X여학집행위원들끼리 정말 친하고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요. 편한 사이면 아이디어도 더 잘 나오던데 같이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하윤: 항상 눈치 보지 말고 힙하고 재미있게 하자는 말을 많이 해요. 사업은 아니지만,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아 굿즈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몇 안 남은 총여학생회라는 컨셉으로 만들면 인기가 있지 않을까요? (웃음)

채림: 지금 집행위원들은 대부분 목소리를 내기 좋아해요. 캠페인하기도 굉장히 수월하고 운동성 있는 사업을 같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회장단이 되기 전

회로X여학: 두 분은 언제부터 여학생회에서 활동하셨나요?

하윤: 여학생회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건 1학년 2학기 끝날 때였어요. 바빠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들어갈 때 약간 고민하기는 했어요. 총여학생회 활동에 관심은 많았지만 그때까지는 문제의식이나 ‘불편함’을 많이 느끼지 못했거든요. 단체에 들어오고 나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배우면서 불편함이 점점 커졌어요.

채림: 저도 하윤이랑 같이 여학생회에 들어왔어요.

하윤: 채림이가 제 여성주의적 눈을 뜨게 해줬죠. 옆에서 계속 ‘짜증 나, 짜증 나’라고 하니, 처음에는 ‘음, 그래’라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나중에 가서는 ‘그래! 맞아!’라며 동조하게 되더라고요.

(*) 포스텍 총여학생회의 구조

회장단(회장, 부회장) 과 총무, 집행위원으로 구성된다. 누구나 집행위원이 될 수 있으며, 집행위원은 실질적인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한다. 추가로 여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한 총여학생운영위원회가 있으며, 위원들은 의결권을 가진다.

회로X여학: 두 분 다 1학년 때인 17년도에 집행위에 참여하셨군요. 17년도는 한창 인터넷에서 여성주의 담론이 뜨거울 때였는데 인터넷이 영향을 끼쳤나요?

하윤: 저는 인터넷보다 교내 문제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모 동아리의 단톡방 성희롱 사건과 이후 대처 과정에서 많은 걸 느꼈어요. 당시에 총여학생회의 존폐가 논해졌는데요. 분명히 총여학생회가 잘못한 점이 있지만 존폐까지 논해야할만큼 큰 잘못이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사건 경과 과정을 지켜 보면서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생각이 트여 집행위에 들어갔다기보다는, 대처 과정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 집행위에 들어가게 된 거죠. 여학에 들어와서 여성주의에 생각이 좀 더 트인 사람과 지내니 생각이 깨어났고요.

채림: 어떤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는 어쩌다 된다’ 고 하더라고요. 새터에서 성희롱, 성폭력 강의를 들었는데 그 때 강연자 분이 『건축학 개론』을 예로 들면서 ”’여성은 꽃이다’라는 말도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처음엔 그런 여성주의적 시각이 굉장히 신기하게 다가왔어요. 여학생회도 그 존재만 알았지 처음부터 들어갈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고요.  그러다 친구인 POSTECH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모담> 현 위원장의 영향을 받아 여성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죠. 아까 하윤이가 제 영향을 받아 여성주의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 것처럼요. 여학생회에 집행위원으로 참여한 직접적인 계기는 수연(인터뷰어)이었어요. 제가 수연이와 많이 친해요. 수연이가 회장선거에 출마하려 할 때였는데, 그럼 여학도 할까 생각한 거죠. 이후 1년이 좀 넘게 흘렀는데 생각이 많이 정리된 것 같아요.

회로X여학: 회장단이 되기 전에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보람찼던 일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하윤: 피임부스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여학 내부 의사소통 문제로 거의 저 혼자 담당했어요. 여름 방학부터 준비한 행사였는데, 함께 준비하던 사람들이 여름방학까지만 여학을 한다던 사람들이었거든요. 게다가 행사가 열리고 난 후에도 초반에는 잘 참여를 안 하시더라구요. 콘돔을 나눠주며 부스를 홍보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어차피 못 쓴다’면서 그냥 지나갔어요. 집행위원들이 친구들을 데려오기 시작하면서 많이 참여하기 시작했죠. 참여하신 분들은 되게 좋다고 평해주셨어요. 특히 보건 선생님께 좋았다는 후기도 받았어요. 저도 제가 맡은 부스 시간이 끝나고 학교 보건 선생님에게 상담받기도 했어요. 꿀팁도 많이 얻어갔고요.

채림: 대나무숲에 이런 글 올라온 게 기억에 남아요. 나눠준 콘돔이 너무 크다면서, 대체 누가 쓰라고 나눠준거냐고.

하윤: 나눠준 콘돔이 교육용이라 조금 컸어요. 바나나에 끼워볼 수 있는 크기여야 했으니까요.

사진: 포스텍 총여학생회

피임 부스 행사. 사진: 포스텍 총여학생회

하윤: 집담회도 기억에 남아요. 지금까지 여학이 한 행사 중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참여한 행사가 없었어요. <총여학생회, 뭣하러 존재해?>라는 제목으로 시선을 확 끄는 포스터를 만들어 진행했어요. 정말 많이 오셨어요. 질문을 준비해서 오신 분, 같이 얘기해보자고 오신 분, 여학이 불편해서 오신 분, 다양한 분들과 다양한 얘기를 나눌 수 있던 행사에요. 꼭 생각해봐야할 문제도 나왔어요. 총여학생회의 회원이 여성뿐인데, 여성이라는 범주 자체가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나왔잖아요. 앞으로 총여학생회가 잘해나가기 위해 생각해봐야할 문제들도 잘 짚어주셨던 것 같아요.

채림: 집담회를 세 번 했는데요, 두 번째 집담회 <미디어 속 성차별에 대해서>도 재미있었어요. 다른 집담회는 조금은 딱딱했는데, 그 집담회는 굉장히 편안했어요. 다 같이 콜팝도 먹고, 영상물 보면서 불편한 점을 나눈 행사였어요. 진행했던 행사 중에 가장 분위기도 좋고 사람도 많았어요. 즐거운 분위기의 행사여서 기억에 남아요.

하윤: 회비 관련해서도 말이 나왔어요. ‘여학의 회원은 여성이고 여성만 의결권을 갖는데, 왜 총학생회비를 사용하느냐’는 말이 나왔어요. 회비와 관련된 말은 항상 나와요.

제 생각은 이래요. 총여학생회가 여학생의 복지만을 위한 단체라면 여학우들만의 회비를 받아서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복지보다는 성평등 실현이 우선인 단체이기 때문에 학교를 위해서 하는 일이죠. 그래서 여학생들에게 회비를 따로 걷지 않고 총학생회비를 사용하는 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채림: 저는 여학우 복지에도 총학생회비를 써도 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여학우 복지도 성평등 실현의 일환이니까요. 장애학생 복지에 총학생회비를 쓸 수 있듯이 여학우 복지에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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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첫번째 집담회 포스터. 사진: POSTECH 총여학생회

회로X여학: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진 계기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하윤: 처음에는 채림이와 어울리려고 여학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페미니즘에 관심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더라구요. 시간이 지나면 주변에 페미니즘에 관심 가진 사람들만 남기도 하고요. 여성주의 하는 사람들과 노는 게 재미있었어요. 편하게 말할 수도 있고요.

채림: 저도 비슷해요.

회로X여학: 여기 계신 분들 모두 17학번이신가요?

하윤: 채림이랑 저는 17학번이고, 슬기, 수연 언니는 16학번이에요. 다 MT 갔다가 총무 되고 회장, 부회장에 나가게 됐네요.

회로X여학(슬기): 제가 부회장된 것도 MT 가서 수연이가 부회장할 거냐고 물어봐서 됐어요.

회로X여학: 회장단으로 출마한 계기가 궁금해요.

하윤: 작년에 기획부장으로 활동했어요. 그해 말에 선거가 다가오니 이 단체가 사라지는 게 싫고, 제가 해야 할 것만 같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든 순간부터 어떤 공약을 하면 좋을까, 총여학생회 집행부를 어떻게 더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를 자꾸 고민했어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생각나는 걸 보니 정말로 출마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요. 전 회장님이 권하긴 했지만, 결심을 하는 것에 권유가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어요. 기획부장으로 일하면서 여학이 앞으로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이유가 커요.

제가 애정을 가진 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을 많이 좋아해요. 학과에서 홍보부를 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런 성격과 사명감이 합쳐져 회장단이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어요.

채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결정되는 것 같아요(수연: 저도 동감합니다.) 원래 부회장에 출마 하지 않으려 했어요. 전체 여학생의 대표가 되어 의견을 대변한다는 것이 부담됐거든요. 둥글게 말하지 못하는 제 성격도 출마가 부담스러웠던 이유 중 하나였죠. 그런데 하윤이와의 의리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옆에서 도와줘야겠다는 의리로 부회장에 출마했어요.

대표로서 겪는 어려움

회로X여학: 대표직을 맡으면서 어려웠던 일을 들어보고 싶어요.

하윤: 학과 대표를 해본 적이 있는데, 그 때에는 대표라기보다 의견을 모으는 일 이상으로 뭔가 더 하지 않는, 그저 일하는 과대였어요. 제 목소리를 냈던 일은 별로 없어서 그때는 어려웠던 일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여학회장이 되고나서 어려웠던 일을 생각해보면 여성주의나 성평등과는 다소 거리가 있긴 하지만 자치단체로서 예산 문제로 고민했던 것이 떠오르네요. 예산 책정 문제로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발언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에 여학뿐만아니라 많은 자치단체가 예산안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여학은 다른 단체에 비해서 예산 증감율이 더 커서 항목마다 변화가 쉽게 눈에 띄었어요. 그래서 캠페인에 들이려 했던 돈, 페미니즘 도서 구입비도 줄었어요. 많은 일을 하고 싶지만 학교 상황 때문에 힘든 상황을 처음 맞닥트렸죠.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여학이 제안한 사업을 줄여야지 않겠냐고 말할 때마다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어느 사업을 어떻게 줄일지 고민하면서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회로X여학: 개인 페미니스트로서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과 (학생) 단체에서 사업을 하는 것 사이에 충돌이 있을 수도 있고, 원하는 만큼 못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또 어떻게 생각하면 학생 사회의 힘을 빌려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죠. 개인으로서의 생각과 학생 단체의 일원, 특히 회장단으로 생각하는 것의 차이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채림: 공동 행사, 연대 제의가 들어왔을 때요. 개인이라면 그냥 일단 참여할 수 있죠. 행사 진행에 문제가 있어도 혼자 판단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자치단체로서 참여하기에는 고민이 많아요.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어떤 ‘성향’의 행사일까 많이 고민하죠.

하윤: 페미니즘에 워낙 다양한 사람이 많고,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여학 회원도 있을 수 있잖아요. 여학은 모든 여학우의 의견을 수렴하고 전달하는 단체고요. 그러니 제 생각만으로는 결정을 내릴 수 없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일이 옳지만, 이 일이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일인가 한 번 더 고민해요. 예를 들어, 이번에 3.8 여성의 날에 진행됐던 마녀행진이란 행사는 저 개인의 생각으로는 너무 좋고 충분히 공감할만한 행사였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행사일까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여학 이름으로 공동주최하려면 여학생 운영위원회 의결을 거쳐야 하거든요. 제가 운영위원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에는 사람들이 마녀행진에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실제로 운영위원회에서 이에 대하여 논의했을 때에는 마녀행진이 아니라 다른 행사에 대한 의견이 많이 들어왔어요. 서울대의 여성주의 학회 <달>에서 대학 페미니스트 공동회의 공동주최 제안이 왔는데, 저는 이게 무난히 통과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운영위원분들 생각은 다르더라고요. ‘페미니즘에는 워낙 다양하고 다른 생각이 많은데 공동회의에 갔다가 그냥 싸우고 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받았어요. 제가 다른 사람 관점으로 생각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논의를 하다보면 그게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는 뭔가 결정할 사안이 있을 때 채림이나 다른 주변 사람들에게 생각을 많이 물어봐요.

채림: 하고 싶은 대로 다 못하죠. 대의성은 좋지만, 여학이 그저 동아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강하게 하고 싶은데 못할 때도 있으니까요.

회로X여학: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일은 어떤 일인가요?

하윤: 저희가 페미니즘을 표방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어요. 총여학생회는 여성주의 연구회도 아니고, 여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단체니 페미니즘을 지향한다고 밝히기 어려워요. 저는 페미니스트니까 항상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데, 총여학생회를 페미니즘과 똑같이 여겨도 될까 스스로 많이 고민해요. 이 고민에서 다른 많은 고민들이 따라오죠. 항상 말을 편히 못한다든가하는 고민들이요.

채림: 페미니즘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이 공격적이든, 공격적이지 않든 익숙한 질문들을 던져요. 페미니즘에 관해서든, 여학에 관해서든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을 받곤 하죠. 개인적으로는 무시하고싶지만, 대표로서는 친절하게 답해줘야할 것만 같아요.

회로X여학(수연): 여학이 학우들에게 좀 더 다가가고자 오픈채팅방을 만들었어요. 채팅방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질문하기 쉽잖아요. 반말로 해도 되고 굉장히 편한데, 대답하는 여학 관계자는 항상 친절하게 존댓말 써야하니 감정 노동인 면이 있죠.

하윤: 실제로도 여학 사무실 앞 스티커도 떼라고 의견을 준 학우가 있어요. 못 뗀다고는 못하고 고려해보겠다고 했어요. 항상 그렇게 답할 수 밖에 없죠.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웃음)

 여성주의나 여성 운동에 관심 없던 사람이, 여성 운동에 참여하는 한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가까운 사람이 꾸준히 해온 말이었고, 관심을 넘어 실제로 여성 운동에 참여한 계기도 가까운 사람의 권유였다. 이처럼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주변에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다가갈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다음 인터뷰에 POSTECH 총여학생회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을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