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여성, 소수자와 함께하는 SF를 꿈꾸다, 김초엽 SF 작가

Feminist in STEM <페미회로> 인터뷰 프로젝트 010: 여성, 소수자와 함께하는 SF를 꿈꾸다, 김초엽 SF 작가

 

 장르 문학이 주목받는 요즘, SF 문단에서 주목받는 작가를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 김초엽 작가일 것이다. 김초엽 작가는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에 투고한 두 작품이 각각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대상 수상작 「관내분실」은 여성 화자를 통해 주인공 어머니의 경력단절이라는 성차별 문제를 잘 풀어냈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SF 작품으로 꼽힌다. 이외에도 김초엽 작가는 과학적 논리와 SF적 상상력으로 페미니즘적인 문제를 풀어내며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공계 대학에서 많은 페미니스트가 생겨나고 있으며, 과학에서도 젠더 혁신이나 소수자 관점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김초엽 작가로부터 SF 작가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과학, 소수자 등에 대한 가치관을 들어봤다.

 <페미회로>의 인터뷰어 배현주와 유재원은 ‘회로’로, 인터뷰이 김초엽님은 ‘초엽’으로 표기했다. 교정은 <페미회로>의 한솔, 현주, 발행은 <페미회로>의 우연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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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회로와 김초엽 작가의 인터뷰. 사진: 페미회로

 

회로: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초엽: 포스텍 화학과를 졸업했어요. 석사과정에서는 생화학, 그중에서도 바이오센서를 연구했고요. 열대 감염병의 바이오마커를 체액에서 검출하는 연구였어요.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에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고 작가로 데뷔해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회로: 많은 매체에서 작가님을 만나고 싶어합니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페미회로>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고민은 없으셨나요? 인터뷰에 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초엽: <페미회로>가 유명한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제가 <페미회로> 회원으로 활동하지는 않았지만 학생 시절에 주변에 <페미회로> 활동을 하는 친구가 많았어요. 관심 있는 단체여서 지금까지 다른 분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흥미롭게 봤고요.

작년에도 페미회로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그때는 작가로서 뚜렷한 활동을 한 게 아니라서, ‘인터뷰를 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작가로서 할 말도 있고, 페미회로에서도 저에게 궁금한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회로: 작가님을 처음 접하는 분들께 소개해드릴 대표작이 있다면요? 「관내분실」을 제외하고요.

초엽: 최근에 크로스로드에 「공생가설」이라는 글을 썼는데 재밌어요. (웃음) 꼭 읽어보세요.

 

SF 작가로서의 경험

 

회로: 재작년 2017년 10월에 「관내분실」로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았으니 데뷔한지 1년 반 정도가 되어가는데요. 작가님이 SF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강력한 동기가 있나요?

초엽: 글은 되게 오래 썼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에세이 위주로 글을 썼는데 소설에는 스스로가 계속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대학 졸업할 때쯤 소설 습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때도 SF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지만, 평소 즐기는 컨텐츠에 SF가 많았어요.

포스텍에서 SF와 관련된 강연이나 행사를 자주 했어요. 예를 들어, 포스텍에서 SF 소설 공모전이 열리면 상금을 타기 위해 SF 소설을 썼어요. 상금 20만원! (웃음) 그런 식으로 SF 소설을 쓸 만한 기회가 여러 번 있었어요. 강렬한 동기가 있기보다는 제 환경이 SF를 습득하기 좋은 환경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학교 공모전에 낸 SF 소설을 계기로 크로스로드 웹진에 원고료를 받고 SF 소설을 실었어요. 정식으로 데뷔를 하기 전인데, 이때부터 SF 소설로 전문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에 한국과학문학상 공모전에 지원해서 상을 받았고 지금까지 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회로: 환경이 달랐다면 어떤 작품을 썼을까요?

초엽: 지면이 있고 활동 기회가 있는 글을 쓰려고 했어요. 만약 SF가 아니었다면, 웹에 연재할 수 있는 다른 장르소설을 썼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판타지나 로맨스요.

 

회로: 평소에 독서를 즐기신다고 들었는데, SF 소설 중에 좋아하는 작가나 좋아하는 작품이 있나요? 있다면 좋아하는 이유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초엽: 사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이 조금씩 바뀌어요. (웃음) 왜냐하면 한 작가님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여러 작가에게서 조금씩 받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과 인터뷰를 하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져요. 오늘은…… 정소연 작가님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정소연 작가님은 어떤 면에서 한국 SF 소설에서 독보적이에요. SF로 타자성이라는 주제를 정말 잘 다루셔요. 정소연 작가님 작품들을 읽고 ‘SF가 반드시 모험이나 우주를 정복하고 탐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타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르구나’ 크게 느꼈어요. 정소연 작가님 글에서 주제의식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다른 작가는 「허공에서 춤추다」를 쓴 낸시 크레스요. 이 작가는 생명공학을 소재로 글을 많이 쓰고, 가까운 미래 이야기를 많이 다뤄요. 너무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생명공학의 발전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을 많이 쓰세요. 제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은 이분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회로: 작가님 또한 소수자성을 다루다 보니 소설이 감상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을텐데, 과학적 논리를 놓치지 않으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끄는 서술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그에 대한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초엽: ‘글쓰기의 노하우가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회로: 그렇죠. 그런 서술 방식이 이제 작가님만의 문체가 되었으니 작가님만의 노하우가 있는지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초엽: 주변에서 제 글이 어렵지 않다는 말, 쉽게 읽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저는 나름대로 과학적 디테일을 많이 넣는 편이어서 ‘왜…. 다들 잘 이해할까?’ (웃음) 고민을 해봤어요. 아마, 소설을 쓰기 전에 논픽션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아요. 포스텍에서 교지편집위원회 일도 했었고, 다른 학교 교지에 과학 칼럼도 연재했어요. 그렇게 꾸준히 과학 논픽션을 많이 썼는데, 그런 종류의 글은 과학적 이론을 쉽게 풀어 쓰는 게 중요해요. 아무래도, 대중 독자들을 상정하다 보니까 너무 쉽게는 아니더라도 대학 신입생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쓰는 편이죠. 그때 글 연습이 지금 SF 소설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 외에 저만의 특별한 노하우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회로: 화학을 전공하셨는데, 소설은 우주과학이나 감정, 뇌인지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을 모티브로 삼아요. 소설의 주요 소재는 어디서 얻으시는 편인가요?

초엽: 필요한 아이디어를 두 종류로 나눠서 수집해요. 하나는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 다른 하나는 이야기에 대한 아이디어에요. 소재 아이디어는, 과학기사나 논문이나 책을 읽다가 디테일로 넣으면 재미있겠다 싶은 소재들을 메모해둬요. 이야기 아이디어는 논픽션에서만 따오지는 않아요. SF 소설은 과학적 디테일을 빼고 봐도 이야기 흐름이 있어야 하잖아요. 예를 들어, 「관내분실」은 딸이 잃어버린 어머니를 찾아가는 이야기죠. 그런 아이디어는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소설을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뉴스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얻어요. 두 종류의 아이디어가 합쳐질 때 소설이 되고요.

 

회로: 그럼, 본인만의 소재 창고를 따로 두고 소설을 쓸 때 필요한 걸 엮는 거군요?

초엽: 아마 다른 작가님들도 비슷할 거에요. 보통은 아이디어가 바로 소설로 이어지진 않아요. 주로 아이디어로는 독자들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감각을 전달할 만한 소재들을 메모해둬요. 특이한 소재여서 활용하고 싶어도 기승전결이 분명한 이야기로 한 번에 정리되지는 않으니까요. 그리고 나중에 소설을 쓰려고 마음먹고 이야기를 만들다 보면 예전에 메모해둔 소재가 자연스럽게 엮이는 것 같아요. 이건 길을 가다가 갑자기 영감을 얻는 것과는 다르고, 평소에도 끊임없이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고 무의식에 담아둬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회로: 작가들은 머릿속에 책장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비유하기도 하던데 그런 건가요?

초엽: 그런 표현은 너무 거창한 것 같아요. 그것보다는 어질러진 책상? (웃음)

 

회로: 누구라도 논문을 쓰고 석사를 받으면 학위를 어떻게 이용할지 고민할 것 같아요. 대학원에 가는 이유도 전공을 살려서 연구나 취직을 하고 싶어서일 것 같은데요. 작가님은 선택에서 망설임이 없었는지 궁금해요.

초엽: 원래부터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연구실에 들어가진 않았어요.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어요. 그런 일을 하기 전에 먼저 실험을 경험하고 싶었어요. 실험실에서 하는 연구는 교과서로 하는 지식 습득과 굉장히 다르잖아요. 그래서 과학지식을 생산하는 현장에서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갔어요. 과학을 경험할 수 있는 다른 현장이 있었다면 연구실을 선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진학한 것 같아요. (웃음)

 

SF와 페미니즘

 

회로: SF는 크게 우주과학이나 외계인을 소재로 다루는 하드 SF와 가까운 미래를 다루는 소프트 SF로 구분돼요. 「관내분실」은 소프트 SF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작가님은 어떤 갈래의 소설을 좋아하고, 또 쓰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초엽: SF라면 특별히 장르를 가리진 않아요. 독자이자 소비자로서 책을 가리지 않는 편이에요. 평소에 스페이스 오페라나 로봇, 인공지능 이야기 뭐든 잘 봐요. 어떤 장르를 콕 집어서 써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래도 제가 좀 더 관심이 가는 소재는 있어요. 현실과 미묘하게 맞닿아 있지만 조금 앞선 미래의 이야기. 지금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근미래 이야기를 자주 쓰고 있어요.

 

회로: 작가님은 여성과 과학기술인 이외에도 많은 정체성의 교점에 위치해 계세요. 작가님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거나, 쓸 때는 몰랐지만 완성된 작품에서 스스로의 얘기를 담았다고 느낀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초엽: 자전적이라는 표현은 조금 이상하지만 작가들은 대부분 어떤 작품에서든 자기 모습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생각해요. 저도 의식하고 쓰지는 않지만 분명 작품에 평소 생각과 성격이 녹아있어요. 소설을 맨 처음에 발표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최근에 제 작품을 페미니즘 SF 서사로 보는 분들이 늘어났어요.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제 작품 다수가 여성 서사를 다루기도 하고 갈수록 소설, 영화 분야에서 여성의 시각에서 세계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작품을 쓸 때 의도하고 쓴다기보다는 저의 여러 정체성이 글 속에 자연스럽게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회로: 안 그래도 최근에 페미니즘 SF 서사가 늘고 많은 주목을 받고 있어요. 작가님께서는 이렇게 페미니즘과 SF가 엮일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초엽: 최근에 제가 고민하고 있는 질문이기도 해요. 이 질문은 SF 소설과 사실주의 문학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두 장르가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 다른데, SF에서는 인물에게 해방을 줄 수 있어요. 여성으로서, 소수자로서 받던 억압을 뒤엎는 결말을 쓸 수도 있고, 더 극단적으로는 개인이 현실을 뒤집거나 여자가 남자를 다 죽이는 결말도 쓸 수 있어요. 사실주의적인 소설에서는 현실이 개인을 압도하기 때문에, 인물이 세계를 바꾸기가 아무래도 어려워요. SF가 가진 전복적인 특성,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특성 때문에 페미니즘 SF 소설을 쓰기 좋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다른 장르에 비해 SF는 사회 구조, 세계 자체를 많이 다루는 장르여서 ‘구조적으로 소외된 존재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올라오지 않았나’ 생각해요. 근데 저는 SF 적인 글도 쓰지만, 사실적인 설정이 섞인 글도 많이 써요. 예를 들어, 「관내분실」도 현실적인 이야기에 SF 소재가 섞여 있죠.

 

회로: 기존에는 SF를 남성 중심의 장르로 다뤘어요. 작가님께서 독자로서 SF 작품을 읽을 때와 대비해 현직에서 겪는 분위기와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등단하신 뒤에 깨닫게 된 현장의 분위기나 예상 밖의 어려움 등이 있었나요?

초엽: SF가 남성적이라는 편견을 가진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렇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제가 주로 접한 한국 SF는 남성 작가 위주는 아니었어요. 한국 SF가 페미니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소수자성을 다루는 것에 비교적 많이 열려 있다고 느껴요. 해외에서는 SF가 남성 중심적인 장르였겠지만 한국에 들어올 때는 어느정도 필터링이 되기도 했고, 특히 최근 몇 년간 해외 여성작가들의 SF가 많이 출간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접한 SF는 그런 편견과는 맞지 않았어요.

SF가 남성적이라는 편견이 이해는 돼요. 『스타워즈』 같은 작품도 예전에는 남성 인물 위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는 SF 작가와 작품이 많이 있으니까 그걸 발굴해내는 문화가 중요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요.

 

회로: 작가님께서 SF 장르 현장에서 느낀 건 자유롭고 평등한 분위기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까요?

초엽: 지금 저는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회원인데, 이 단체에 가입할 때는 성소수자의 인권과 여성주의를 지지한다는 확인을 해야 해요. 실제로 제가 소속되었던 많은 단체는 그래도 평등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곳이라고 느꼈어요. 현실적으로 부족한 점도 있겠지만, 평등과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어요.

 

회로: 과거에 주목받던 SF에는 여성을 도구화하거나 소수자성을 배제하는 작품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필립 K. 딕의 「전-인간」이라는 작품도 그렇고,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도 마초적인 남성성을 부각하는 영화죠. 그런데 요즘 SF는 오히려 반대의 작품이 더 많은 듯해요. 아까 언급된 스타워즈도 최근 재개봉된 영화에서는 동양인 여성 배우를 캐스팅했죠. 무엇이 이런 전복적인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초엽: 이건 SF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세계적인 페미니즘 흐름과 같이 움직이는 거죠. SF 소설이 가진 작은 차이점은 있어요. 소설 자체가 자본이 많이 투입되지 않는 매체라서 작가의 생각과 책상만 준비되면 쓸 수 있어요. 그러니 영화처럼 자본이 많이 필요한 매체에 비해서 다양한 작가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왔어요. 시대가 ‘어떤 작품에 주목하느냐’ 문제라고 생각해요. SF 소설 장르 자체는 꾸준히 소수자들에 대해 이야기해오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확실히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 드라마, 게임처럼 남성을 주고객층으로 상정하고 여성 소비자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했던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스타트렉』과 『닥터후』같은 팬층이 두텁고 오래된 작품도 최근에 전부 여성이 주인공이 됐어요. ‘자본도 페미니즘 흐름에 저항할 수 없다’는 의미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해요. (웃음)

 

회로: 마지막으로 작가님께서 최근에 관심 있는 페미니즘 주제는 무엇인가요?

초엽: 계속 바뀌어요. 처음에는 임신중단권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어요. 그 관심이 사실 「관내분실」로 이어졌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아요. 선택하지 않은 임신에 처한 여성이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했는데, 사회 환경에 따라 많이 변하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실 지금 이 사회에서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불법낙태’를 할 수밖에 없어요.

「관내분실」의 배경은 조금 더 소프트한 사회, 근미래 사회에요. 그렇기 때문에 꼭 간절히 바라지 않았던 임신을 하더라도 주위에서 은근히 달래는 말을 해서 출산을 하고, 그게 주인공의 상황이에요. 출산이나 임신중단에 대해서 전 세대와의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죠. 이런 고민들을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글로 녹여보려고 했던 것이 「관내분실」이에요. 저는 비혼, 비출산을 지향하지만, 사람이 언제 예상치 못한 사건을 맞닥뜨릴지 모르잖아요. 너무 누군가를 배제하기보다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각자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었어요.

임신중단권 다음으로 관심 가진 주제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이중 소수자의 정체성이에요. 그렇게 쓴 소설이 「원통 안의 소녀」예요. 공기를 정화하고 기상을 통제하는 나노 기술이 보편화된 미래 사회인데, 그 나노입자에 알레르기가 있는 소녀가 주인공이에요. 투명한 플라스틱 원통 안에 갇혀서 돌아다녀야 하거든요. 장애를 원통에 비유하면서 썼어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장애 여성에게 던지는 시선이나 편견이 있잖아요. 남성이 아니기 때문에 더 받는 시선도 있거든요. 그리고 소녀이기 때문에, 청소년을 향한 시선도 있고요. 여러 정체성이 겹치는 주인공을 창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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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비평잡지 『에피』 3호에 수록된 김초엽 작가의 「원통 안의 소녀」. 사진: 페미회로

 

과학자 사회에 대한 생각

 

회로: 지금은 아니지만, 작가님께서 과학 현장에 계셨으니 보통의 과학자 사회가 폐쇄적이라는 인상에 어느 정도 공감하실 것 같아요. 앞으로 차별 없는 과학자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또 차별 없는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초엽: 어제 새벽에 오랜만에 브릭(BRIC; 포스텍 소재 생물학연구정보센터 홈페이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커뮤니티 게시판 첫 페이지에 ‘남녀의 능력이 정말로 동등할까요?’라는 제목으로 글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한숨) 그걸 보면서 ‘역시 변화가 없구나’ 생각했어요.

이런 문제에 <페미회로> 분들의 의견은 다를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과학자 사회라고 특수한 건 아닌 듯 해요. 사회 일반의 모습을 닮는 것 같아요. 과학자들 역시도 과학을 할 뿐 사회구성원이니까요. ‘과학자 사회가 사회와 닮았다’고 생각해요. 물론 과학자 사회가 갖는 특수성이 있을 수는 있어요. 그런 문제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방법으로 과학자 사회 내의 특수한 여성혐오를 연구해야겠죠. 하지만 궁극적이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과학자 사회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여성주의를 지향하면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회로: 최근 왜곡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과학을 비틀어 활용하는 논리가 많아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초엽: 그런 현상은 항상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구가 평평하다”, “기후변화가 거짓이다” 이런 주류 과학과 완전히 어긋나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은 당황스럽지만, 반대로 과학의 이름으로 논리정연하게 차별과 편견을 정당화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어요.

최근에 김승섭 교수님의 『우리 몸이 세계라면』이라는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이 책은 지식이 구성되는 과정에 자본 권력과 사회적 차별, 편견이 개입한다고 이야기해요. 과학이 여성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는 코델리아 파인의 『테스토스테론 렉스』가 흥미로웠어요. 테스토스테론이 만들어 내는 남성성이라는 공고한 신화가 허상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어요. 남성성을 좋은 특성으로, 사회적으로 유리한 특성으로 규정하기 위해 어떤 과학적 신화를 만들어왔나, 과학을 이용해서 성차별을 어떻게 정당화 해왔는가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반론이에요.

즉, 예전에 없었던 특수한 현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주장하기 위해서 과학을 왜곡하고 잘못 끌어다 쓰는 역사가 반복되었다고 생각해요. 과학기술계 내의 모든 사람이 이런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특히 과학계 내에서 여성들, 그리고 소수자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더 잘 포착한다고 봐요. 그래서 과학계의 다양성이 중요하고요.

 

회로: 지식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과학자들, 교수들이 엘리트, 사회 기득권이잖아요.

초엽: 그런데 과학 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자신이 엘리트층이라고 생각 않으세요. 이런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뜻이죠. 자신이 자신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과 비교를 하기 때문에, 나는 가난하고 허덕거리며 학교 다녔는데 내가 왜 기득권이냐, 이렇게 억울함을 표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하는 말도 똑같아요. 남자들도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운데 내가 왜 기득권이냐’고 이야기하잖아요. (웃음)

 

회로: SF뿐만 아니라 과학이라는 학문 자체도 잘 정의되지는 않잖아요. 과학이나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초엽: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기는 해요. 과학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식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지식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권위에 도전하는 반항적인 측면도 어느 정도 있지 않나 생각해요. 과학자들은 주류 이론을 뒤집기를 다들 내심 바라고 있지 않을까요. 아무리 주류 연구를 따라가는 과학자일지라도요. 이렇게 회의하고 질문하는 과정이 과학 바깥에도 적용이 되면서 도그마적으로 믿어왔던 편견들을 뒤집을 수 있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과학적 방법론을 소수자성과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는 어렵죠. 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된 과학이 타자를 배척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기 때문에 과학을 이상화하진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과학을 좋아하긴 하지만.

 

소수자성과 SF

 

회로: 최근에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다룬 SF 소설집 『토피아 단편선』에 필진으로 참여하셨어요. 누군가는 과학기술로 인한 유토피아를 상상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하기도 하잖아요? 작가님은 과학이 가져다주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중 어떤 미래, 어떤 작품이 더 와닿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초엽: 기대했던 답변이 아닐 것 같지만, 어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그건 너무 먼 미래고, 우리가 살 미래가 아니니까요. (웃음) 개인적으로는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을 상상할 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설이 이 상상을 도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개인을 억압하는 현실에서 저항할 수 있을까?’, ‘이 구조를 어떤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을까?’같은 질문을 SF 적인 사고실험으로 접근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디스토피아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디스토피아가 단순히 억압된 사회현실을 보여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개인 간의 갈등이나 저항을 항상 같이 다루잖아요. 디스토피아를 오락으로 소모하지 않는다면 변혁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디스토피아를 너무 많이 읽다 보니까 가끔은 산뜻하게 가고 싶어요. 현실은 억압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안에 작은 행복도 섞여 있잖아요. 즐겁다가도, 현실에 부딪히기도 하고. 그래서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유토피아에 마음이 기우는 것 같아요.

 

회로: 이번에 필진으로 참여하신 소설도 유토피아 파트에 참여하셨던데,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참여하시게 된 건가요?

초엽: 사실, 유토피아 파트를 고른 건 이런 생각으로 고른 게 아니에요. 기획자분께 지원자가 적은 쪽에 넣어 달라고 얘기했어요. (웃음) 그래도 이 소설을 쓰다 보니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돼서 방금 대답을 할 수 있었죠. 이번에 쓴 소설은 유토피아로 가는 과정을 다룬 소설은 아니고…… 뭔가 말해드리고 싶은데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웃음) 시간 나실 때 한 번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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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데뷔작인 「관내분실」과 최근 참여작인 토피아 단편선 1권 『전쟁은 끝났어요』 중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사진: 페미회로

 

회로: SF 소설은 이 세계를 묘사하거나 미래를 전망하기도 하지만, 현실을 비유하기도 해요. 작가님은 SF 라는 장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초엽: 인터뷰를 할 때마다 SF 장르가 뭐냐, 특징이 뭐냐, 장점이 뭐냐, 이런 질문을 받아요. 그런데 그때 그때마다 생각이 항상 바뀌어요. 제가 10년, 20년 정도를 SF 소설을 쓰면 생각이 확고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계속 다른 글을 쓰기를 시도해보고 있고, 어떤 작가도 자신이 데뷔작과 비슷한 작품만 쓰기를 원치 않는다는 말이에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글을 계속 써보고 있고, 몇 달 전까지 SF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글을 쓰고 있거든요.

 제가 SF의 명확한 특징을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사고실험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주의적인 문학이 할 수 없는 제한된 실험적인 환경을 구축하고, 인간성을 통제해내는 것이 일단은 제가 SF에서 좋아하는 특징이에요. 과학자들이 실험 환경을 꾸미듯이, 소설에서도 같은 일을 하는 거죠.

 

회로: 최근에는 AI 기술이 유행하고 있어요. AI를 주제로 한 소설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이런 것들이 직업을 뺏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있는데요. 이런 걱정들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초엽: AI가 지금 당장 소설가의 직업을 뺏게 생겼어요. (웃음) 며칠 전에 페이스북에서 봤는데 새로 개발된 AI가 소설을 너무 잘 써서 공개를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걱정에서 자유로운 직업군이 아니니 관망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기술, 자본을 가지고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항상 권력을 가진 사람이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배려 없이 다른 구성원들을 역사의 저편으로 밀어내는 것에 문제를 제기해야겠죠. 일반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SF 작가지만 AI가 SF 소설을 더 잘 쓸 것 같아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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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작가의 프로필. 사진: 김초엽 제공

 

회로: AI 말고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또한 SF의 주된 주제에요. 또 동물 학대, 공장식 축산, 임신중단권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프로라이프(prolife), 프로초이스(prochoice)라고 부르는 관점이 있잖아요. 아무래도 우리는 인간이니까 인간중심적인 관점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다른 동물을 존중할 수 있을지 물어보고 싶어요.

초엽: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관계를 맺어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반려동물과 관계를 맺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관점이 정말 달라요. 반려동물을 키워본 분들은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변했다고 말씀해요.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할 수는 없고 권장되지도 않아요. 그래서 미디어가, 사람들이 간접 경험을 하도록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인간중심주의자인 것 같거든요. 외계인, 타자성을 항상 얘기해왔지만, 인간조차 존중이 안되고 있는 사회잖아요. 동물권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일단은 옆에 있는 인간을 제대로 존중해야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로봇과 외계인에게 공감할 수 있으면 옆에 있는 인간과 비인간 동물에게도 공감하기 쉬워지지 않을까요? 공감의 영역이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로: SF 소설을 읽을 때 항상 느끼는 것이, 외계인에게 공감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외계인이 사실 있는지 없는지도 아직 모르잖아요. 우리가 뭔가에 공감한다는 범위가 명확하지 않고, 공감이라는 단어도 잘 정의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초엽: 한번은 SF에서 다루는 타자들에 대해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SF는 항상 인간이 무엇인지 규정하려고 했어요.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인간이 아닌가, 바이센테니얼 맨은 인간인가, 이런 주제를 탐구를 해왔어요. 인간이 다른 인간을 배제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는 룰이지 않을까요? 정상인간은 백인, 남성, 비장애인으로 규정되고, 이 규정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권리를 안 준 역사가 굉장히 오랫동안 이어졌죠. 흑인은 인간이 아니었고,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고, 장애인은 인간이 아니었죠. 똑같은 규칙을 외계인, 로봇, 사이보그에게 적용해서 너희는 인간이 아니라고 밀어내고 있는 거예요.

 ‘인간이 무엇인가’ 규정할 때는 항상 어떤 존재가 배제된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정의를 계속 넓혀간다고 해도 그것을 넘어서는 존재들이 있을 거예요. 이제는 인간이 무엇인가 선을 긋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다른 존재가 있을 때 다른 존재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질문을 하고 싶어요. 다른 존재가 여기에 있는 것 자체는 이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다른 존재들과 갈등할 수도 있고, 이런 갈등이 지금 우리의 도덕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때도 어쨌든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공생을 유지할까, 이게 제가 요즘 생각하는 주제예요. 공감이라는 말은 사실 소프트하죠. 대외적으로 말할 때는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말하지만요. 타자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 그 현상을 탐구하고 싶어요. 우리가 그 존재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같이 살 수는 있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회로: 영화 『디스트릭트 9』이 생각나네요.

초엽: 보지는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싸우는 이야기 아닌가요?

회로: 맞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회로: 앞으로 어떤 작품 계획이 있나요? 또 장기적으로 어떤 작품을 내놓고 싶나요?

초엽: 단편은 꾸준히 발표할 계획이고, 올여름 즈음에는 제 소설집도 낼 계획이에요. 장편 소설도 계획은 되어 있어요. (웃음) 계속 써야 해요. 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계약되어 있어서 이것저것 열심히 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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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 웃는 김초엽 작가. 사진: 페미회로

 

회로: 지금처럼 전업 작가로 머무르거나, 후에 겸직하시더라도 ‘작가 김초엽’으로서 글은 계속 쓰실 텐데, 어떤 작가가 되고자 하는지 궁금해요.

초엽: 사실 아직은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지는 않아요. 작가라는 말에 익숙해지기까지 1년이 걸렸으니까요. (웃음) 어떤 작가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쓰고 싶은 글은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쓰고 싶은 글은, 항상 재밌고 쉽게 읽히지만, 여운이 남고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점을 주는 글이에요. 여기서 새로운 관점이라는 건 아무래도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SF가 타자성을 이야기하기 좋은 장르라고 생각해요. 로봇, 사이보그, 키메라는 우리와 닮았지만 미묘하게 다른 존재잖아요. 아니면 인간이지만, 특히 기술로 인해 소외된 사람들, 이런 존재들을 이야기하고 탐구하는 과정이 우리 사회에서 타자를 이해하는 과정과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어요.

 

회로: <페미회로>에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명명하는 회원이 많아요. 작가님께서도 여성 화자인 소설을 쓰시고 여성주의 문제를 생각하시는데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거든요.

초엽: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긴 해요. 그런데 최근에는 단순히 선언을 넘어서는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페미니스트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는 사람도 많지만, 이제는 자기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그렇다고 해서 선언한 분들이 정말로 페미니스트적인 액션을 하는가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잖아요. 선언보다는 행동에 조금 더 신경 쓰려고 합니다. 제가 가진 것으로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회로: 작가를 꿈꾸는 다른 이공계인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고, 작가가 아닌 다른 여성 과학자, 다른 차원의 김초엽 작가님이 계속 석사, 박사로 남아서 연구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다른 차원의 자기자신에게, 혹은 후배 여성 과학자와 여성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요?

초엽: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쓸 필요는 없지만 여성 과학자들의 글을 많이 읽고 싶어요. 동료 작가 중에 여성 작가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여성들이 망설이지 않고 과학자가 되면 좋겠어요.

 

회로: 나는 과학기술원에 있으니까 당연히 대학원에 가야지’ 하고 단순하게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작가님 경험에 빗대어서, 그런 선택할 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초엽: 제 경험을 기반으로 조언을 드리면 안 될 것 같아요. 저는 좀 생각없이 살거든요. (웃음) 석사 과정 동안 뭘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른 분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석사를 하고 연구 자체에 실망하는 분이 많아요. 나와서 아무 상관 없는 다른 일로 빠지는 사람도 꽤 많고요. 석사하고 취직을 해도, 학부 졸업만 해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도 많아요.  대학원에 가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다면 가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절실하게 마음을 먹어도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도 많거든요. 대학원에 가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대학원에서 많이 배웠고 만족도 하지만, 이걸 바탕으로 “너도 가면 뭔가 배울 수 있을 거야”라며 권유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회로: <페미회로>에게 바라는 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초엽: 활동량을 늘렸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잘 보고는 있어요. 외부인이 보기에는 자료가 드문드문 올라오는 게 아쉬워요. 적극적으로 광고하듯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트위터로 오시고 인스타그램을 만드세요. (웃음)

 

회로: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초엽 작가와의 인터뷰는 SF는 물론, 과학과 사회를 아우르는 폭넓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학과 통계는 오랫동안 차별을 정당화해주던 도구였다. 과학은 백인이 더 우월한 인종이라고 말하고, 남자가 더 진화한 인간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현재의 과학은 점차 평등한 길로 나아가고 있다. 다양한 소수자가 과학계에 진입하면서 과학자사회가 가질 수 있는 시선의 폭이 넓어졌다. 통계는 이제 차별을 드러내고 사회를 더 평등하게 만드는 도구로 쓰일 수 있다. 또한,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이 아니고 타자인 동물, 로봇, 인공지능, 심지어는 외계인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력의 최전선에 바로 SF가 있을 것이다. 어떻게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지, 어떻게 인간이 아닌 타자를 이해할 수 있는지, SF는 이런 질문을 묻고 답한다. 이런 질문을 더 많이 묻고 답할수록, 더 평등한 과학에 가까워질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가 과학에 대해 가져야할 태도라고 믿는다.

 

 

010: 여성, 소수자와 함께하는 SF를 꿈꾸다, 김초엽 SF 작가”에 대한 1개의 생각

  1.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과학에서 사회, 현실까지 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작가님의 글이 너무 매력적입니다. 페미니스트 선언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이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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